카미노 셋째날, 축제의 도시 팜플로나 입성

by 이흥재

2018년 9월21일 (목요일)


아침 출발시간은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시간에 따라 다르다. 어제 저녁을 먹었던 식당(이 식당은 다른 언어와 함께 한글로 “아침식사”라고 쓰인 입간판도 있고, 메뉴판에도 한글이 병기되어 있었다)에서 아침 6시부터 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6시에 일어나 세수만 하고 식당으로 갔다. 꽤 이른 시간인데도 벌써 몇몇이 와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뉴가 여러 가지 있을 테지만, 잘 알지도 못하겠고 시간도 줄이기 위해 보이는 대로 주문했더니 감자와 계란이 섞인 오믈렛이 나왔다. 커피도 한잔 마시고 물도 한 병 사서 숙소를 출발했다.


오늘은 팜플로나(Pamplona, en euskera y cooficialmente Iruña)까지만 가고, 숙소도 미리 예약해 놓아서 비교적 여유로웠지만, 아침을 먹은 후에 짐을 정리해서 곧바로 출발하다 보니 다른 날보다 30분쯤 빨라서 밖은 아직 어둡다. 전에 대한민국 산티아고 순례자협회에서 교육받을 때는 플래쉬가 필요없을 거라고 했는데, 7시 반이 지나서야 밝아오기 시작했다. 그 전까지는 아주 조심해서 가야 하는데, 앞뒤에서 플래쉬를 비추는 게 더 방해가 되었다. 눈이 바로 적응할 수가 없어서.


역시 7시 반이 지나면서 주위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더라도 훤하게 보이는 건 아니라서 계속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자갈길에서 언제 미끄러질지 모르니까.


오늘 걷는 구간인 수비리(Zubiri)와 팜플로나 사이에는 여러 마을이 있지만, 실제로 지나치는 곳은 많지 않다. 게다가 집만 몇 채 있는 곳도 있어서 그마저 그냥 지나기기 일쑤다. 바(bar)라도 있으면 쉬면서 음료수라도 한잔 마시겠지만, 그마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2시간을 걸어 수리아인(Zuriain)에서 커피 한잔과 복숭아 한 개를 사 먹을 수 있었다.

그림10.jpg

오늘 걷는 길은 어제와 그제에 비해서는 너무 편안한 길이다. 그런데도 피로가 누적되어서인지, 아니면 포장도로를 많이 걸어서인지 발바닥이 계속 아프고 오늘은 발목마저 시큰거린다. 엊저녁에 발을 디딜 때마다 왼발 뒤꿈치가 아파서 진통제를 한 알 먹고 잤더니 그 때문인지 뒤꿈치 통증은 없어졌는데, 다른 부위가 또 아프니 계속해서 힘든 길이다.


수리아인을 지나면서 카미노 도중에 죽은 사람의 기념물을 처음으로 보았다. 무슨 이유로 죽었는지는 모르지만, 교통사고나 지병이 있지 않고는 카미노에서 죽을 일이 없을 텐데. 카미노를 출발하기 전에 인터넷에서 본 바로는, 카미노 중에 죽은 사람들이 꽤 있고 그 중에서는 길에 기념물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다고 했는데, 그 중에 하나를 본 거다. 그렇다고 특별한 감정은 없다.


카미노에서는 그저 걸을 뿐이다. 아니, 걷다보면 어쩔 수 없이 걷는 것에만 집중할 수 밖에 없어서 딴 생각을 할 겨를이 없다. 전에 숭산 스님이 쓴 글에서 ‘오직 할 뿐’이란 구절을 본 적이 있는데, 걸을 때는 ‘오직 걸을 뿐’이다.


팜플로나에 도착하기 전에 비야바(Villava, Atarrabia en euskera)와 부를라다(Burlada, en euskera y de forma cooficial Burlata)를 지나는데, 팜플로나와 붙어있는 지역이어서인지 온통 포장길 뿐이다. 그러니 발바닥은 더 아프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걷다보니 팜플로나 초입에 있는 막달레나 다리(Puente de la Magdalena)를 건너고, 프랑스 문(Portal de Francia)을 지나 드디어 팜플로나에 도착했다.

그림11.jpg
그림12.jpg

처음 찾은 곳은 팜플로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Santa María la Real). 현지주민들에게 물어가면서 어렵게 찾아갔지만, 장소가 좁아서 사진 찍기도 어렵다. 그저 보이는 대로 몇 장 찍고는 시내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시청(Ayuntamiento de Pamplona)을 찾으려고 하는데, ‘시티홀(city hall)’이 어디냐고 물으니 아는 사람이 없다. 찾는 걸 포기하고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가 보이는 대로 주문해서 먹고는(입맛에 맞지 않아서 다 먹지도 못했다), 예약해 둔 숙소(Gestión de Alojamientos)를 향해 카미노 사인을 따라 걷다보니 관광안내소(Oficina de Turismo) 앞에 시청건물이 보인다. 먼저, 관광안내소에 들어가서 스탬프(스페인어로는 ‘sello’라고 한다)를 받고 나와서 시청건물을 찍으려고 했더니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그림13.jpg
그림14.jpg

이제 숙소를 찾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숙소까지 가려면 아직 1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보도블록에 설치된 카미노 사인을 따라 한참을 걸어 숙소가 있는 동네까지는 갔는데, 예약한 숙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다시 여러 번을 물어가면서 찾아야만 했다. 어렵게 숙소 카운터에 가서 체크인을 하는데, 정작 숙소는 거기가 아니라고 했다. 결국 체크인만 하고 잠시 기다렸다가 숙소직원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가서 열쇠를 세 번(현관, 복도, 방)이나 열고 들어가니 그제서야 방이 나왔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39€)이긴 하지만, 트윈 베드에 욕실도 있어서 사용하긴 편했다.


그런데, 카미노를 떠나기 전에 생각하기로는, 가끔은 단체숙소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대도시(Pamplona, León)마다 따로 숙소를 예약했었는데, 몇 가지 불편한 점도 있었다. 즉, 따로 예약한 숙소를 찾아가려면 카미노를 조금 벗어난 위치에 있어서 좀더 걸어야 하기도 하고, 빨래를 해서 말릴 수가 없어서 속옷과 양말만 빨아야만 했다.


아무튼, 샤워하고 간단한 빨래를 한 후에 물이나 과일을 좀 사려고 밖으로 나갔지만, 거리를 한참 동안 돌아다녀도 가게가 보이질 않는다. 보이는 거라고는 한 두 군데 있는 기념품점 말고는 전부 카페 뿐이다. 다들 음료수와 빵만 먹고 사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배가 고파서 어느 식당으로 들어갔더니 닭고기가 들어간 볶음밥을 팔고 있어서 콜라까지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카미노에서 빵 없이 식사하기는 처음이다. 조금 느글거리기는 했지만, 콜라랑 같이 먹으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물을 사려고 카페에 들어가니 500㎖ 한 병에 1.75€라고 했다. 마트에 가면 0.25€면 살 수 있을 텐데. 그마저 살 곳이 많지 않다. 물이 없으니 갈증이 더 나는 것 같다. 걷는 동안에는 물의 거의 마시지 않지만, 한번 마시고 나면 계속해서 갈증이 나기 때문에 저녁에는 물을 많이 마시게 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카미노 둘째날, 에로 고개를 지나 수비리에서 머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