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9월26일 (수요일), 맑음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는 것 같은데도 출발은 조금씩 늦다. 오늘 아침에도 숙소에서 미리 예약해 두었던 아침식사를 하고 바로 짐을 꾸려 출발했는데, 거리에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긴 아직은 해 뜨기 한참 전이라서 주위가 어둡다. 그래도 조금 일찍 출발해서 그만큼 빨리 다음 숙소에 도착하면 시간을 여유롭게 쓸 수 있으니까 늘 그런 방법을 택하고 있다. 어차피 걷는 시간은 항상 같고, 걷는 동안 계속해서 힘이 드니까 굳이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다.
오늘도 걷는 거리는 20km가 넘지만, 중간에 쉴 만한 곳이 많지는 않다. 지금까지 걸었던 나바라 지방(Comunidad Foral de Navarra)을 뒤로 하고 오늘 드디어 라 리오하 지방(Comunidad Autónoma de La Rioja) 들어서지만, 수도(Capital de la comunidad autónoma)인 로그로뇨(Logroño, 150,979명)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아니, 라 리오하 지방에 들어서자 카냐스(Cañas)란 곳을 지나긴 했는데, 창고건물을 본 게 전부였다.
로그로뇨는 아주 큰 도시였다. 전에 팜플로나를 지날 때는 옛날 도시라고 생각했는데, 로그로뇨는 현대적이고 도시면적(79.55km2)도 꽤 넓어 보였다. 그래서 로그로뇨 도심을 지나가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러다가 로그로뇨를 벗어날 무렵 ‘기아자동차’ 로고가 보였다. 자동차가 전시되어 있는 걸 보니 대리점인 것 같았다. 지나면서 보니까 유리창에 가격표도 붙어 있고, 내가 관심을 보이니까 가게주인이 들어와 보라고 했지만, 관심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건물외관 사진만 찍고 계속 걸었다.
어쩐 일인지 거리에는 현지주민들만 걷거나 뛰고 있었고, 순례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앞서 간 사람들이 안 보이는 걸 보면 대부분 뒤따라 오는 것 같다.
요즘은 매일 같이 발바닥과 발목이 아파서 어기적거리며 걷는 데도 뒤따라 오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걸 보면 다른 순례자들도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러면서도 다들 열심히 걷고 있다. 숙소에서는 매일 만나게 되는 걸 보니까.
오늘의 목적지인 나바레테(Navarrete) 바로 전(그래도 5~6km는 남았다)에 있는 바에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는데, 동양여자 둘이 식사를 하고 있어서 아는 체 하려다가 말고 맥주와 빵을 주문해 먹었다. 그 여자들은 내가 먹는 중에 먼저 출발했는데, 이내 카미노에서 다시 만났다. 그래도 궁금해서 일본에서 왔냐고 했더니 그렇다고 했다. 난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서로 크게 웃고는 그 여자들을 지나쳐 걸었다.
조금 가다가 공원에 있는 저수지를 지나는데 노인들 몇 명이 저수지에 바게트 빵을 던져 주길래 가까이 가서 보니 오리와 물고기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여기서는 오리나 물고기도 주식(主食)이 바게트구나!
나바레테에 도착해서 숙소를 어디로 정할까 하다가 15유로짜리가 보이길래 뭔가 다르겠지 하고는 물어물어 찾아갔더니 도심을 조금 벗어난 곳이었다. 그런데, 체크인을 하려고 하니 50유로라고 했다. 너무 비싸다고 하니까 40유로로 할인해 주겠다고 했다. 아니, 15유로인줄 알고 왔는데, 40유로라니!
다리는 무척 아프지만 터덜터덜 도심 쪽으로 되돌아 오면서 처음 만나는 알베르게(Albergue Turístico el Cántaro)로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걷다 보니 이번엔 20유로짜리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들어가 보자. 주인이 2층으로 안내하는데, 깨끗하고 침대도 좋았다. 그래서 20유로라는 거구나! 그런데, 10유로라고 했다. 횡재했네! 게다가 아침까지 준단다.
언제나 그렇지만 숙소에 도착하면 샤워한 후에 빨래부터 한다. 먼저 씻어야 수건도 함께 빨 수 있고, 빨래를 빨리 해야 해가 떠 있는 동안 말릴 수 있기 때문에. 세탁기도 있었지만(세탁과 건조 각 3.5유로) 날씨가 좋으니 잘 마를 것 같아서 직접 빨아 널었다.
배가 고파서 뭐라도 먹으려고 거리로 나가보니 슈퍼마켓이 있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처음 보는 슈퍼마켓이다. 먼저 바로 가서 맥주 한잔 마시고는 슈퍼마켓에 들어가 봤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것에 비하면 부족함이 없었다. 물과 우유 등 몇 가지만 사 왔는데, 조금 있다가 장을 더 봐서 저녁식사까지 해결하기로 했다.
저녁시간에 맞춰 슈퍼마켓엘 다시 가서 비프스튜(beef stew)를 사다가 전자레인지에 돌려 먹으니 색다른 맛이었다. 함께 사온 클루와상을 찍어 먹었더니 한끼 식사로 충분했다. 디저트로는 과일로 대신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