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아홉째 날, 카미노 중 가장 짧은 거리를 걷다

by 이흥재

2018년 9월27일 (목요일), 오전 흐리고 오후 맑음


오늘아침에는 숙소 식당에서 7시부터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해서 6시 반에 일어나 식당엘 가 보니, 스스로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거였다. 난 식당에 있는 시리얼에 우유를 부어서 오렌지 1개와 함께 먹었다. 요즘은 뭐든 배부르게만 먹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출발할 때마다 발이 아픈 건 이제 일상(日常)이 되었다. 아마도 40일 동안 걷는 걸 마칠 때까지 계속 그럴 것 같다. 그대로 걷다 보면 그런대로 참을 만 한데, 조금이라도 쉬었다가 다시 걸으려고 하면 더 아픈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쉬지 않고 걸으려고 한다. 그렇지만, 어쩔 수 없이 쉬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자주 쉬는 건 신발에 모래가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심해서 걷는다고 해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새 발바닥이 따갑다. 그걸 참고 걸었다가는 점점 더 아파지기 때문에 바로 멈춰서 신발을 털어내고 다시 걸어야 한다. 그나마 신발에 끈이 아니라 버튼이 있어서 벗고 신기에는 편하다.


오늘의 목적지인 나헤라(Nájera)가 11km 남았다는 화살표를 보고 난 후에 바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마셨다. 이럴 때마다 화장실도 이용하게 되는데, 적당한 바를 만나는 게 쉽지만은 않다.


라 리오하 지방이 와인으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확실히 나바라 지방에 비해서 포도밭이 많다. 나바라 지방은 밀 수확을 끝낸 들판이 온통 누런 흙빛이었는데, 라 리오하 지방은 어디를 봐도 포도밭으로 푸르다. 그런데, 포도밭이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던 풍경이 아니다. 일부분은 방치해 놓은 듯 잡초들이 무성하고, 밭에 포도넝쿨이 뻗어갈 기둥이나 줄을 매어 놓은 경우도 없다. 그러서인지 잘 자라는 포도도 있지만, 말라가는 포도들도 꽤 보인다.


나바레테에서 나헤라까지는 16.9km로, 이번 카미노 구간에서 가장 짧은 거리를 걷는 거지만 걷기 힘들기는 건 마찬가지다. 그저 숙소에 조금 일찍 도착할 수 있어서 힘든 시간이 줄어들 뿐이다.


오늘은 정보를 찾아 보다가 가장 적당할 것 같은 ‘푸에르타 데 나헤라(Puerta de Nájera)’를 숙소로 정하다 보니 나헤라에 도착하고도 한참을 더 걸어 나헤리야 강(Río Najerilla)을 건너야 했다. 그런데,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오후 1시에 문을 연다고 적혀 있었다. 앱(application)에는 11시부터 연다고 나와 있는데.



시간이 한참 남아 있어서 우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숙소 주위에는 다른 곳에 비해 맘에 드는 식당들이 꽤 있었다. 숙소 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가자 다양한 파에야 사진이 있는 간판이 보인다. 일단 들어가서 맥주 한잔을 먼저 시키고, 닭고기가 들어간 ‘파에야 발렌시아’를 주문했다. 한 알씩 따로 노는 볶음밥을 오로지 포크로만 먹어야 하는 게 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맛은 좋았다. 저녁에는 다른 종류의 파에야를 먹어보기로 했다.


12시45분쯤 되어 숙소로 오니 아직도 문은 닫혀 있는데, 기다리는 순례객이 몇 명 더 와 있었다. 나도 옆에 앉아서 문 여는 시간이 되길 기다렸다가 1시에 들오라는 숙소주인의 얘기를 듣고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가 여권(passport)과 순례자여권(credencial)을 보여주고 침대를 배정받았다. 먼저 씻고 빨래하는 건 늘 그대로다. 빨래를 세탁기로 돌릴까 하다가 숙소주민이 손님을 맞느라고 너무 바쁜 거 같아서 그냥 손으로 빨아서 널었다.


숙소는 오후4시가 되자 빈 침대가 없다고 했다. 그래서 몇몇 순례자들이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픈 다리를 이끌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알베르게를 찾아 헤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되도록이면 매일 짧은 거리를 걸어서 숙소에 빨리 도착하려고 한다.


저녁에는 점심을 먹었던 식당에 다시 가서 사진으로 좋아 보이기에 야채 파에야를 주문했더니 기대한 것만큼 맛이 좋지 않았다. 이럴 바에 혼합 파에야(Mixed Paella)를 주문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지만, 아무러면 어떤가! 그렇게 또 저녁 한끼를 먹었으면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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