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하루째, 점심도 거른 채 벨로라도까지 걷다

by 이흥재

2018년 9월29일 (토요일), 오전 맑음


카미노 중에는 아침식사를 어떻게 먹어야 하는 지가 항상 고민거리다. 점심이나 저녁은 어디를 가든 먹을 수가 있는데, 아침에는 이른 시간에 먹을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어쩌다가 숙소에서 아침을 제공하면(물론 유료이지만) 맘 편하게 먹을 수 있지만, 그마저도 너무 늦게(7시 이후) 나오면 그 시간까지 기다릴 수가 없다. 그러니 뭐든 준비해서 스스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늘아침 메뉴는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을 수 있는 파에야다. 엊저녁에 슈퍼마켓에서 사다 놓은 걸 아침에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리고, 과일과 바게트를 곁들여 먹으면 그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오늘도 아침 7시가 조금 되기 전에 출발했다. 어제는 침대 바로 옆에 한국사람들이 여럿 잠을 잤었는데, 그 중에 대구에서 왔다는 은수자(隱修者, 글에서는 봤지만 본인이 그렇게 표현하는 건 처음 들었다)께서 핸드폰을 침대 머리맡에 두고 먼저 나갔길래, 어떻게든 만나겠지 하는 마음에 일단 들고 나가기로 했다. 그런데, 5분 정도 걸었을까. 역시 핸드폰을 찾으러 그 은수자께서 되돌아오고 있었다. 깜깜한 길을 되돌아 오려니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해서 현지경찰의 도움까지 받았다고 했다. 아무튼, 핸드폰을 무사하게 전달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다시 어두운 카미노를 계속해서 걷고 있는데, 이번에는 69세 되셨다던 할머니를 만났다. 아침에 일찍 출발했지만 걸음이 빠르지도 않은 데다가 길을 잘 못 들어서는 바람에 늦었다고 했다. 그 분도 오늘의 목적지가 나와 같은 벨로라도(Belorado)라고 했는데, 무사히 도착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Santo Domingo de la Calzada)를 출발해 첫 마을인 그라뇽(Grañón)까지는 가까워서(6.9km) 그냥 지나치고, 두번째 마을인 레데시야 델 카미노(Redecilla del Camino, 10.9km)의 바에 들어가 화장실도 다녀오고, 맥주도 한잔 마셨다.


오늘 걷는 구간에는 그 후에도 2km마다 마을이 있었지만, 다 그냥 지나치고 벨로라도 바로 전 마을인 비야마요르 델 리로(Villamayor del Río, 17.8km)에 들어 간단하게 점심을 먹을 생각이었는데, 막상 그 마을에 도착해 보니 바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이를 악물고 5km를 더 걸어서 벨로라도까지 가야만 했다.


쭉 뻗은 신작로(新作路, 요즘은 잘 쓰는 표현이 아니지만 어릴 때 봤던 모습 그대로다) 같은 길은 끝이 보이질 않는다. 이럴 때는 길바닥만 보고 걸어야 한다. 앞을 보고 걸으면 아무리 가도 거리가 줄어들 것 같지 않지만, 땅만 보면서 걷다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게 된다. 이럴 때는 인내(忍耐)하는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걸어서 벨로라도에 도착했다. 이제는 숙소를 정해야 한다. 출발하기 전에 여러 정보를 종합해서 오늘 묵으려고 생각했던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el Corro, ‘municipal’은 행정기관에서 운영하는 공립알베르게를 뜻한다)에 가 보니 12시 반에 문을 연다고 쓰여 있다. 도착한 때는 15분 전이다. 배낭에서 바게트와 복숭아를 꺼내 우선 허기진 배를 채웠다. 5분쯤 지나자 직원이 출근하면서 10분을 더 기다리라고 했다. 결국, 12시 반 정각에 알베르게 문이 열렸다.


오늘도 내가 1착(着)이다. 침대는 물론 저녁까지 주문을 마쳤다. 저녁식사는 7시부터 시작하는데, 6시까지만 알려주면 된다고 했지만, 어차피 시간이 지난다고 바뀔 건 아니라서 한꺼번에 다 해결했다.


첫번째 도착해서인지 침대도 1인용을 주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렇다고 싱글룸은 아니지만, 1인용 침대를 두는 경우가 흔치 않기 때문이다. 샤워를 마치고 빨래를 하려고 했는데 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세탁기를 돌리고(요금은 3유로), 밖에다 널어서 말렸다.


이제 늦은 점심식사를 해야 한다. 숙소를 나와 골목을 걷다보니 식당이 보이길래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오믈렛과 맥주를 시켜서 먹고 있는데, 어제 숙소에서 얼굴만 봤던 한국사람들이 들어왔다.


그 중에 한 사람은 우연히 만나서 함께 온 사람이고, 나머지 셋은 일행이며 그 중 둘은 부부라고 했다. 그 부부는 이번이 두번째라고 했다. 남편이 천식이 심해서 걷는 게 힘들다면서도 이곳 벨로라도에서 5km를 더 가야 도착하는 토산토스(Tosantos)까지 갈 거라고 했다. 참, 대단한 사람들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슈퍼마켓을 찾아갔더니 오후5시까지는 문을 닫는다고 쓰여 있다. 오늘 출발한 산토 도밍고 데 라 칼사다에서도 그랬지만, 다른 가게들은 대부분 시간에 관계없이 문을 여는데 슈퍼마켓만은 현지주민들이 주로 이용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오후2시부터 5시까지는 문을 닫았다가 다시 5시부터 저녁8시까지 문을 연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5시 이후에 과일과 내일 아침에 먹을 걸 사기로 했다. (그런데, 오후5시가 지나 다시 그 슈퍼마켓을 찾아갔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토요일이어서 그런가?)


카미노에 오기 전에 읽었던 글을 보면, 카미노를 걷는 동안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저녁을 해 먹는다고 했는데, 혼자 다녀서 그런지 그럴 기회는 거의 없었다. 그래서 언제나 숙소에서 주는 저녁을 먹던가,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적당한 곳에 들어가 저녁을 해결하곤 한다.


오늘도 숙소에서 주는 저녁을 먹었다. 이 숙소에는 순례자메뉴(menu del Peregrino)가 있는데, 코스로 나온다. 오늘 먹은 건 전채가 수프[Cream of vegetable with balsamic oil & dry fried onion]이고, 메인 요리는 고기[Lasaña de carne], 그리고 후식은 아이스크림이었다. 그렇게 해서 또 하나의 스페인 요리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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