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2일 (화요일), 맑음
오늘은 왜 이렇게 피곤하지? 먼 거리를 걸은 것도 아니고, 걸으면서 다른 날에 비해 더 힘들다고 느낀 것도 아니었는데, 카미노를 걷는 중에 처음으로 낮잠을 잤다.
어제는 우여곡절 끝에 숙소로 들어가서 대충 씻고는 숙소주위를 둘러보기 위해 다시 방을 나왔다. 대성당(Catedral de Burgos = Santa Iglesia Catedral Basílica Metropolitana de Santa María)이 가까운 곳에 있기도 했지만, 오늘아침에 일찍 출발하기 위해서는 카미노의 위치를 미리 알아놓기 위해서였다. 구글지도상으로는 대성당 뒤로 카미노가 지나가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어서 대성당만 찾으면 카미노의 위치를 쉽게 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도를 보면서 먼저 대성당으로 가 보니 주변에는 단체관광객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오후까지 바람이 많이 불면서 꽤 추웠는데도, 대성당 주변광장은 따뜻한 햇볕이 비추고 있어서 추위를 피하기에도 아주 좋았다. 그런데, 카미노가 어디인지 확인하지는 못했다. 그저 저쪽 어디쯤 있으려니 짐작만 했을 뿐이다.
숙소로 돌아와서 조금 쉬다가 6시가 조금 지나서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가서 메뉴판을 보니 딱히 마음에 드는 먹을 거리도 없는데다가 7시부터나 저녁식사가 가능하다고 했다. 그 시간까지 그냥 기다릴까 하다가 식당을 나와 다른 곳을 찾고 있는데, 슈퍼마켓이 보이길래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다가 고기 파는 곳에 가 보니 훈제된 닭을 팔고 있었다. 그래서 바로 저녁에 먹을 것으로 결정해 버렸다. 가격도 4.99유로(6,500원 정도)로 비싸지 않은데다가 포장용기가 따뜻할 정도로 그냥 먹어도 될 것 같았다. 맥주도 한 캔 사서 숙소로 돌아와 4분의3쯤 먹어 치웠다. 남은 걸로 아침식사를 할 수 있는 양이었지만, 바게트를 이미 사다 놨기 때문에 나머지는 그냥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고는 곧바로 바게트 빵에 슬라이스 된 하몬을 끼워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과주스까지 마시는데도 너무 퍽퍽하다. 그래도 배는 부르게 먹어야 해서 억지로 조금 먹고는 나머지는 과일로 배를 채웠다.
매일 출발하는 시간은 비슷하다. 일부러 출발시간을 맞추려는 건 아니지만, 일어나서 씻고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한 다음 짐을 꾸려서 출발하면 대개 비슷한 시간이 된다. 오늘도 짐을 꾸려서 출발하려니 7시10분 전쯤 되었다.
어제 다녀온 대성당 쪽으로 갔더니 카미노는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전에는 이른 아침에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었는데, 오늘은 꽤 많은 순례자들이 나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한 것 같았다. 부르고스가 대도시여서 이곳에 묵었던 사람들도 많았나 보다. 앞사람을 따라 가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미노 표시를 찾는데도 신경을 썼다.
첫번째 휴식하려던 타르다호스(Tardajos, 10.8km) 마을은 바가 카미노에서 조금 벗어나 있어서 그냥 지나치다 보니 오늘의 목적지인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illos del Camino)까지는 이제 한 마을 밖에 남지 않았다. 만약 그곳에도 바가 없다면 쉬지 않고 20km를 걸어야 한다.
그런데, 2km를 더 걸어서 만난 라베 데 라스 칼사다스(Rabé de las Calzadas, 12.6km) 마을에 다행스럽게도 바가 있었다. 이 마을에도 바로 카미노 옆에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서 바로 들어가 맥주 한잔을 마셨다. 안주는 배낭에 늘 갖고 다니는 짭조름한 과자면 충분했다.
이에 이 마을을 벗어나면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까지 8km 정도를 들판만 보면서 걸어야 한다. 다른 목적으로 온 여행이라면 이런 들판이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보일 수도 있었겠지만, 오직 걷기 위해 온 나한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다. 다리가 아프니 주위를 둘러볼 여유도 없다. 그저 가끔 고개를 들어 잠시 구경할 뿐, 늘 보아왔던 광경이라서 특별함도 없다.
마지막 급경사를 어렵게 내려가 드디어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네 도착했다. 바로 알베르게(casa rural Albergue de Sol a Sol)가 보였지만, 묵으려고 생각해 놓은 곳이 있어서 그곳으로 가 보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되돌아가 처음 보았던 알베르게에서 침대를 배정받았다. 4인용 방(2층 침대 2개)이라서 깨끗하고 좋았다. 가격이 다른 곳에 비해 조금 비쌌지만(아침식사 포함 15유로) 괜찮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