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일, 누적거리 300km 걸어 카스트로헤리스

by 이흥재

2018년 10월3일 (수요일), 맑음


엊저녁은 숙소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코스요리(Menú del Día)를 먹으러 갔다. 우리말로 하면 ‘오늘의 요리’라는 건데, 대부분의 메뉴판이 인쇄되어 있는 걸 보면 매일 같은 메뉴가 나오는 게 일반적이다. 순례자메뉴(Menú del Peregrino)는 매일 같은 요리가 나오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되지만.


아무튼, ‘오늘의 요리’는 에피타이저(Primeros o Primer Plato)로 샐러드(Ensalada)나 수프(Sopa) 등 5~6개 중에서 하나를 고르고, 메인 요리(Segundos o Segundo Plato)도 비슷한 수 가운데 고른다. 바게트는 주문하지 않아도 거의 함께 주고, 아이스크림 등 디저트(Postre)가 뒤따라 나온다. 또한, 음료는 와인(vino)과 물(agua) 중에 선택하도록 하고, 맥주를 마시려면 추가요금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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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는 물을 선택하고 맥주를 별도로 주문한 적이 있었는데, 어제는 와인으로 달라고 했다. 에피타이저는 야채 수프, 메인 요리는 스테이크. 오랜만에 국물과 고기를 먹으니 기분이 좋았다. 마지막으로 디저트로 아이스크림까지 잘 먹었다.


아침식사는 숙소에 예약했었다. 아니, 숙박비에 포함되어 있었다. 어제 숙소주인이 몇 시에 먹으면 좋겠냐고 물어보길래 6시나 6시 반이면 된다고 했더니, 그러면 6시 반에 주겠다고 해서 6시 15분에 일어나 씻고 식당으로 가서 기다렸다. 시간에 맞춰서 크루와상 2개와 토스트 식빵 2개, 그리고 딸기잼과 버터가 나왔길래 전부 다 섞어서 먹었다. 디저트는 내가 갖고 있던 복숭아를 먹는 것으로 대신하고.


오늘 걸을 거리는 비교적 짧지만(19.9km), 아침을 조금 늦게 먹는 바람에 출발시간(7시10분쯤)도 늦어졌다.


오늘은 카미노에 사람이 거의 없다. 거리가 짧아서 다들 늦게 출발하는 건가? 어차피 혼자서 걷는 거니까 별 상관은 없다. 오르니요스 델 카미노(Hornillos del Camino) 마을을 벗어나면서 카미노 표시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크게 문제될 건 없었다. 다행히 조금 더 가다 보니 카미노 표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오늘 걷는 구간에는 지나는 마을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쉬어가기 좋을 만한 거리에 마을이 하나 있다. 온타나스(Hontanas, 10.6km). 2시간 반쯤 걸어서 온타나스에 도착했다. 지나오면서 한국사람들 몇을 지나쳤다. 바에 들어가 맥주 한잔을 마시고는 다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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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까지는 9km 남짓 남았다. 그 중간에 산 안톤 유적(Ruinas del convento de San Antón, 16.2km)이 있고, 그곳에도 조그만 바가 있었지만 쉬어가기에는 애매한 거리여서 그냥 지나쳤다. 이제 목적지까지 남은 거리는 3.7km. 멀리 보이기는 하는데, 아스팔트 포장길을 1시간 더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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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헤리스 초입(初入)에서 곧바로 뻗은 포장길을 놔두고 카미노 화살표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저 따라가는 수 밖에. 성당(Collegiate of Santa María del Manzano)도 지나고 언덕 위에 있는 성벽(Castillo de Castrojeriz)도 지나쳐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처음에 가려고 했던 곳은 로살리아 알베르게(Albergue Rosalía). 사전에 찾아본 정보로는 꽤 괜찮아 보였기 때문에, 여러 번 물어가면서 찾아갔더니 예약으로 꽉 차서 빈 자리가 없다고 했다. 이런! 그러면서, 계단을 올라가면 알베르게가 있을 거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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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대로 계단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공립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San Esteban)가 있었지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서 옆에 있는 마을지도를 보니까 그곳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옛 성당건물을 증축해서 만든 2층 알베르게에 머물기로 했다.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니 두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나도 잠시 기다렸다가 침대를 배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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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환경이 더 좋다. 침대간격도 널찍하고 천정도 높아 시원해 보였다. 내가 원하는 1층 침대를 배정받으니 기분이 더 좋았다. 게다가 빨래 해서 짤 수 있는 일명 ‘짤순이’도 있었다. 늘 빨래하고 나면 물기가 많아서 말리기가 어려웠는데, 짤순이를 이용하면 쉽게 말릴 수 있다. 숙박요금은 5유로.


이제 마을구경을 할 시간이다. 어제에 비해서 햇볕도 따갑고 그늘에 들어가도 춥지 않다. 요즘 날씨로는 아주 좋은 편이다. 식당을 찾아가서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알베르게를 찾으면서 지나쳤던 벼룩시장으로 갔다. 마을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벼룩시장에는 여러 물건을 팔고 있었지만, 내가 사려는 건 오직 과일 뿐이다. 처음으로 서양배를 사봤다. 맛은 별로 없었지만. 어떻든, 배와 사과, 그리고 귤을 하나씩 샀는데도 1유로. 역시 벼룩시장이라서 그런지 조금은 싸다.


되돌아오면서 모여있는 주민들을 사진으로 찍으려고 하자 포즈를 취해주면서 한 장 더 찍으라고 해서 그에 응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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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또 새로운 한국인 부부를 만났다. 산 안톤 유적지를 지나기 바로 전에 우연히 만났었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알베르게에 묵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두번째로 카미노에 온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첫번째 왔을 때는 조금 어려웠는데, 두번째 오니까 이젠 조금 쉬워졌다고 했다. 아마도 카미노를 끝내고 귀국하면 분명히 또 오는 것에 대해서 고민하게 될 거라고! 정말일까? 그때는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정말로 의아해 했었는데,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그곳엘 또 가고 싶은 생각이 드니 무슨 조화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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