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4일 (목요일), 맑음
엊저녁 메뉴는 피자였다. 한 끼로는 조금 많고, 두 끼로는 부족한 크기. 그래도 오늘 아침을 위해 3조각을 남겨 놓았다. 식당에서 피자를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사람이 피자 맛이 어떠냐고 물어본다. 식당에서 직접 만든 건 아니지만, 괜찮은 맛이었다.
어제 묵은 공립 알베르게는 넓은 공간에 침대가 30개가 넘다 보니 잠들기 전까지 시끄러웠다. 불도 너무 환해서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너무 큰 소리로 얘기하길래 밖에 나가서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지만,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짐을 풀고 정리하느라고 계속 소란스러웠다. 사정은 아침에도 비슷했다. 아마도 새벽 5시부터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다신 공립 알베르게를 이용하지 말아야지 했었는데, 하루 만에 오늘 다시 공립 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Frómista)에 묵게 되었다.
아침식사는 어제 남겨놓은 피자를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귤 하나를 더해서 해결했다. 오늘은 25km를 걸을 거라서 배낭을 경배달서비스로 부치고, 에코백만 메고 가볍게 출발했다. 주위는 오늘도 역시 어둡다. 그래도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아침부터 언덕을 하나 넘었다. 언덕에 올라 뒤를 돌아보니 멀리 오늘 떠난 카스트로헤리스(Castrojeriz)의 불빛이 보인다.
첫번째로 휴식한 마을은 이테로 데 라 베가(Itero de la Vega). 역시 화장실을 이용하고 맥주를 한잔 마시기 위해서다. 바를 나와 성당(Iglesia De San Juan) 쪽으로 갔는데, 카미노 표시가 없었다. 다른 순례자들은 성당 왼쪽으로 돌아가는데, 아무래도 미심쩍어서 지나가는 현지주민에게 물어보니 역시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다. 이런! 먼저 간 순례자들이 보이지 않으니 카미노는 이쪽이라고 얘기해 줄 수도 없었다. 가다가 이상하면 다시 돌아오겠지!
카스티야 운하(Canal de Castilla)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오늘 처음 보는 한국여자를 만났다. 그 여자는 11월 말까지 조금씩 걸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은 보아디야 델 카미노(Boadilla del Camino)에서 머물 예정이란다. 10km 밖에 안 되는데! 그 여자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앞서 걸어갔다.
난 2시간을 더 걸어서 보아디야 델 카미노에서 휴식을 하면서 점심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요즘 걷는 구간은 메세타(Meseta, 스페인 한가운데 있는 고원[高原]으로서 610~760m 평균고도를 유지한다) 지역으로 걸으면서 지루하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저 넓은 주위경관을 즐기면서 걷다보면 나름대로 재미도 있다. 사방이 탁 트여 있어서 보기에 시원하다. 먼 곳에도 산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평지보다 조금 높은 언덕이 있을 뿐이다.
1시간쯤 걷다보니 멀리 보아디야 델 카미노 마을이 보인다. 그런데, 마을에 도착하려면 아직 1시간을 더 걸어야 한다. 마을만 보면서 걸으면 언제 도착하나 지루하고 조급하겠지만, 역시 주위를 둘러보면 걷다보면 걸을 만하다. 그런데, 오늘은 색다른 경험을 했다. 땅만 보면서 걸으니 꼭 멀미가 날 것만 같다. 아무튼, 발끝을 주의해야 하지만, 적당한 간격을 두고 사방을 둘러보는 게 여러 면에서 좋다.
보아디야 델 카미노 초입에서 먼저 온 순례자들을 만났다. 멀리서 보면 멀쩡하게 걷는 것 갔지만, 마주서서 보면 다들 사정이 비슷하다. 그저 온 힘을 다해 걷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바에 들어가서 오믈렛과 맥주를 주문했다. 오믈렛이라고는 하지만 계란과 감사를 섞어서 피자처럼 둥글게 만들어 찐 것을 조각 내어 파는 거였다. 그런대로 먹을 만하기 때문에 카미노를 걸으면서 자주 먹는 편이다.
이제 오늘의 목적지인 프로미스타(Frómista)까지는 2시간 정도 남았다. 운하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된다. 한동안 걷고 있는데, 앞에서 길을 막고 굴삭기로 운하정비작업을 하고 있어서 옆에 있는 밀밭으로 들어가 걸어야만 했다. 그래도 밀밭이 길 보다는 탄력이 좋아서 걷기에는 편하다.
2시간이 조금 안 걸려서 프로미스타에 도착했다. 아침에 배낭을 카날 데 카스티야 알베르게(Albergue Canal De Castilla)로 보냈기 때문에 그 알베르게를 찾아야 한다. 그런데, 시내로 들어가다 보니 알베르게로 향하는 화살표가 시내와는 반대방향이다. 화살표를 따라가 보니 프로미스타 역(Estación de Frómista)이 나왔다. 그 옆에 알베르게가 있고, 내 짐도 거기에 있었다.
숙박비는 저녁식사를 포함해서 15유로. 그런데, 아침식사는 할 수 없다고 했다. 게다가 시내까지 나오기에도 너무 멀었다. 어쩔 수 없이 배낭을 메고 다른 알베르게를 찾기 위해서 시내로 나왔다. 초입부터 알베르게 이정표가 보이길래 따라가다 보니 더 이상 안내판이 보이질 않았다. 도대체 알베르게가 어디야?
날씨는 뜨거운데 현지주민들한테 물어 물어서 간신히 공립 알베르게의 위치만 알 수 있었다. 어제 묵었던 알베르게 때문에 다시는 공립 알베르게에 안 가려고 했었는데! 게다가 문 여는 시간이 오후1시30분이라고 해서 30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그 동안 다른 알베르게를 찾으려고 주변을 돌아다녀 봤지만 끝내 찾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알베르게가 몇 군데 있다고 표시되어 있기는 한데, 정확한 위치를 알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공립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예상보다 조금 일찍 담당자가 나왔다. 곧바로 따라 들어가서 침대를 배정받았다. 다행히 이곳은 4~5개의 침대가 있는 방이다. 공간도 넓어서 지내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숙박비는 9유로. 아침식사는 3유로라고 하는데, 7시15분부터 가능하다고 해서 너무 늦은 거 같아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오늘도 역시 샤워부터 한 후에 빨래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넓은 마당에 햇볕이 잘 들어서 빨래도 잘 마를 것 같았다. 알베르게 주변을 둘러보니 오늘저녁은 물론 내일 아침식사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 아쉬운 건 식당을 제외한 가게들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문을 닫는 바람에 기다렸다가 이용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래도, 그 동안 쉬면서 기다리면 되니까 큰 상관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