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14일(금)
성남누비길 걷기 넷째날, 4구간 출발지점인 태재고개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서현역(수인분당선)까지 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아침 일찍 지하철을 탔는데, 오금역에서 한번 갈아타고 수서역에서 다시 환승 했더니 일찍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앉을 자리가 없다. 어쩔 수 없지! 다행히 몇 정거장 가서 자리가 나기에 잠시 앉았다.
서현역에서 내려 2번 출구로 나왔는데 방향을 모르겠다. 네이버지도를 보면서 겨우겨우 길 건너에 있는 버스정류장을 찾아가기 위해 육교 옆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2번이나 탔다.
‘서현역’ 버스정류장에서 버스정보를 찾아보는데, 내가 타려고 했던 522-2번 버스는 전광판에 “정보 없음”이라고 뜬다. 도대체 얼마 후에 버스가 온다는 거야? 다른 버스를 찾아보니 522번 버스도 ‘태재고개’를 간다고 나오는데, 그 버스 또한 “정보 없음”이다. 어떡하나, 잠시 생각하는 사이에 522-2번 버스가 왔다. 일반버스와 달리 중형버스 크기다. 아무려면 어때! 태재고개엘 가는지 물어보고 얼른 올라탔다.
처음 타는 버스라서 가는 길은 잘 모르겠다. 그래도 지난번에 봤던 요한성당과 그 다음 정류장인 태재고개를 잘 알고 내렸다. 이제 4구간(불곡산길) 시작지점을 찾아가야 한다. 사전에 지도에서 봤던 대로 오른쪽 찻길로 걸어가다 보니 왼쪽에 ‘불곡산길, 여기부터 제4구간입니다’ 안내판이 보였다. 시작하자마자 약간 경사진 길이지만 무리가 될 정도는 아니다.
여기도 육산(肉山)이어서 걷기는 좋다. 다만 아직도 새로 산 신발에 길이 들지 않아 이곳저곳 아플 뿐이다. 그런데 왜 아픈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엄지발가락은 콕콕 찌르는 통증이 느껴지는데 신발을 들여다봐도 뾰족한 곳은 없다. 오늘은 봉숭아뼈 쪽도 아픈데 신발에 돌기가 나있는 것도 아니어서 왜 아픈지 알 수가 없다. 시간이 지나면서 길이 들면 나아지겠지, 기대하면서 참으며 걷는다.
오늘은 같은 길을 걷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더구나 여자들이 전부 나를 앞서간다. 내가 가끔 사진을 찍으면서 가긴 하지만, 저 정도면 꽤 빨리 걷는 건데! 그렇다고 따라잡을 생각은 없다. 어차피 목적지도 다를 테니까.
이 길에도 나무말뚝을 박아놓은 구간이 있다. 그런데 지난번에 봤던 것과는 다르게 아주 많이 세워놨다. 그리고 가운데 조그만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산악오토바이 출입에 따른 등산객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 설치한 시설물’이라고 했다.
이제 진달래꽃이나 벚꽃은 다 지고 길가에 새로운 꽃들이 더러 피어있는데 꽃 이름은 잘 모르겠다. 개복숭아인가? 아니면 앵두나무?
오전 8시28분, 불곡산(344.5m)에 도착했다. 바닥이 평평한 곳도 아닌데 운동기구들이 설치돼있고 운동하는 여자들이 여럿 보인다. 그중에 남자들도 한두 명 있고. 옆에 2층짜리 정자도 세워져 있는데 사진만 찍고 올라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불곡산에 대한 설명문은 4구간 시작지점에 세워져 있었는데, 내용은 이렇다. “불곡산(佛谷山)은 골안사(骨安寺) 동쪽 산으로 부처님이 있는 골짜기를 품은 산이란 뜻이며, 주민들이 성스러운 산으로 여기고 산신제를 지낸 것에서 유래해 성덕산(聖德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한 성덕산은 백제 때 태자궁에서 훈련하면서 영장산부터 성덕산으로 이어진 훈련코스에서 사냥하기도 했는데, 특별히 왕이 동참해 사냥에 나서면 많은 군중이 왕의 건재함에 탄복해 만세를 불러 왕이 은전을 베풀어, 왕의 성덕이 영원하란 뜻의 성덕영세(聖德永世) 란 산말을 가지고 있다. 현지에서는 효종산(孝鐘山) 부성산(浮聖山)이라고도 한다. 구전에 따르면, 지금 골안사 자리에서 ‘미륵불이 땅에서 솟아올랐다’고 해서 불곡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겪을 때까지 인근주민들은 골안사를 불곡사(佛谷寺)라고 불렀고, 산이름도 불곡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불곡산 정상에 스탬프 찍는 곳이 있다. 배낭을 벗어 스탬프를 찍고 가는 방향을 알기 위해 이정표를 다시 살폈다. 이럴 때는 ‘성남누비길’ 리본을 걸어둔 곳이 있으면 금방 방향을 찾을 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든다. 그래도 이정표가 정면을 가리키니 그곳으로 갔는데, 아무런 표시가 없는 게 아무래도 그 길이 아닌 것 같아 다시 올라왔다가 살펴봐도 달리 갈 곳이 없어 그 길로 다시 갔다.
그나마 넓은 산길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면서 갔는데, 역시 잘못 찾은 길이었다. 그런데 그곳에 엉뚱하게도 교회(신성전원교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뻥과자를 조그만 비닐봉지에 담아놓고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고 쓰여있다. 나처럼 길을 헤맨 사람들을 위한 건가? 3봉지를 챙겼다. 그나저나 이 산속 교회에 누가 오지?
거기서 네이버지도를 검색해보니 ‘누비길’과는 꽤 떨어진 곳이다. 그래도 다행히 ‘누비길’을 찾아갈 수 있는 임도(林道)가 있어서 따라가다 보니 길이 끊겼다. 아니, 저 앞에 길이 보이는데 중간에 집과 비닐하우스가 막고 있었다. 마침 주인이 나오길래 길을 물었더니 비닐하우스를 통과해서 가라고 했다. 고마운 일이다. 플래카드를 보니 그곳은 ‘굼벵이농장’을 조성중인 것 같았다.
이제 다시 제대로 된 ‘누비길’을 찾았다. 세갈래 길에서 오른쪽으로 갔다. 길 상태는 여전히 육산이어서 걷기는 좋다. 마주 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오전 9시9분, ‘정자동’ 마을유래 안내판이 세워져 있는 곳까지 왔다. 설명문을 보니, “조선 중기 이천부사 겸 광주병마진관 등을 역임한 이경인(李敬仁, 1575~1642)이 병자호란의 치욕을 부끄럽게 여겨 벼슬을 내놓고 이곳 탄천변에 정자를 짓고 학문에 전념했는데, 그 후 정자가 있는 마을이라 정자리(亭子里)로 불리게 됐다고 하며, 정자나무가 있어서 정자말 정자골 정자동이라 했다고 한다.”
오전 10시쯤 산길을 다 걷고 찻길로 내려와서 ‘오리역’을 찾아가려는데 또 방향을 모르겠다. 차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한테 물어보니 오른쪽으로 가서 큰 길을 건너가라고 했다. 조금 가다 보니 거기부터는 ‘오리역’ 이정표가 있어서 찾아가긴 수월했다. 4구간 도착지점은 오리역에서 1km쯤 더 가야 하지만 어차피 오리역으로 되돌아와야 하기 때문에 다음 5구간을 조금 더 걸을 요량으로 오늘은 오리역까지만 걷기로 했다.
시내를 한참 걸어오다 건널목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가 길가에 ‘국가비점 오염물질측정소’란 조그만 집이 하나 있었는데, 그 문 앞에서 젊은 남자가 담배를 피우면서 침을 뱉고 있었다. 아니, 저렇게 하면 ‘오염물질’ 측정이 제대로 되겠어?
신호등을 몇 번 기다리면서 큰 길을 여러 번 건너고 오리역에 도착해 집으로 오는 지하철을 탔는데, 낮에도 빈자리는 없다. 그래도 먼 거리가 아니라 다행이다. 더구나 몇 정거장 가다가 앉을 자리가 생겼다. 수서역과 오금역 등 2번 갈아타고 개롱역에서 내려 집으로 왔다. 오전 11시쯤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