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25일(목)
오늘은 오랜만에 남한산성 성곽일주를 계획했었다. 그런데 출발부터 발목이 시큰거린다. 첫번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을 때 경험한 증상과 비슷하다. 나중에 귀국해서 한의원과 정형외과에 가서 진단 받기로는 염좌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침도 맞고 약도 먹었었지만 쉽게 낫질 않았었다. 아무튼, 시간이 지나면서 괜찮아졌었는데 왜 또 아픈 건지 모르겠다. 이번에는 심한 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많이 걸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일주는 포기했다. 더구나 계단을 오르는 다리가 왜 또 그렇게 무거운지. 롯데월드타워 계단 오르기보다 힘들었다.
오늘은 가까운 곳으로 가지만 출발시간은 늘 같다. 남한산성엘 가려면 집앞에서 버스(3416번)를 타도 되지만 개롱역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다. 버스를 타면 등산로 입구에서 하차하고, 지하철을 타면 한참 더 걸어가야 하지만 굳이 지하철을 타는 이유는 산에 오르기 전에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5호선 종점인 마천역에서 내려 화장실을 이용한 후 남한산성을 향해 걷는데 발목이 약간 이상하다. 딱히 아픈 것도 아닌데 걷기에 불편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으니 일단 가보자!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은 여러 갈래다. 그중에서 오늘은 ‘산할아버지’ 계곡을 따라 오르기로 했다. 이 계곡 초입에 산할아버지 기념물이 있는데, 이름이 누구인지는 나와있지 않고, 길과 다리를 놓고 관상수를 심어서 정원 같은 등산로를 만든 공로를 추모하기 위해 2006년 상(像)을 세웠다고 설명돼있었다.
여기서 조금만 오르면 송파구에서 나무데크로 만든 ‘1222계단’이 시작된다. 처음 오는 길도 아니고 평소 같으면 큰 무리 없이 오르는 계단이었는데 오늘따라 다리가 너무 무겁다. 게다가 발목은 점점 더 심하게 시큰거린다.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으니 일단 오르긴 하지만 당초 목표했던 남한산성 일주는 어려울 것 같다.
계단 시작지점에서 우익문(右翼門서문)까지는 450m. 100계단을 오를 때마다 페인트로 표시해놨다. 500계단과 1000계단으로 오르고 마지막으로 ‘1200’까지 표시해 놨는데, 나머지 222계단은 표시가 생략돼있다.
그래도 거의 쉬지 않고 올라왔더니 20분 남짓 걸렸다. 전망대로 향해 롯데월드타워를 가운데 두고 위례신도시와 하남 등이 보이긴 하는데, 멀리 보인다는 관악산북한산도봉산 등은 윤곽만 어렴풋이 짐작할 뿐 미세먼지 농도가 짙어 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전망대를 뒤로 하고 우익문으로 향한다. 남한산성에는 4개의 문이 있다. 좌익문(左翼門동문)우익문지화문(至和門남문)전승문(全勝門북문) 등이다. 우익문 앞에 세워놓은 설명문에 따르면, “서문은 규모가 가장 작고, 산성을 쌓았을 때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조 3년(1779) 다른 문들과 같이 개축하며 우익문이라 칭했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은 남쪽으로 바라보며 걱정을 살피니, 서문이 행궁 우측에 있어 우익문이라 했다. 인조 15년(1637) 1월30일 왕이 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항복하기 위해 남한산성을 나간 문이다.”
아무리 몸이 불편해도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수어장대(守禦將臺)까지는 가보기로 한다. 거리는 단 650m. 약간 오르막이긴 해도 걷기에 불편하진 않다. 그렇다고 발목이 괜찮아진 건 아니다. 참을 만한 정도다. 가는 길에 오른쪽으로 성벽을 보수하기 위해 비계를 설치하고 있었다.
수어장대 초입에 ‘남한산성’에 대한 설명문을 세워놓았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천연의 요새로 중요한 역할을 하던 곳이다. 백제 시조 온조의 왕성이었다는 기록이 있고, 나당전쟁이 한창이던 신라 문무왕 12년(672) 한산주에 쌓은 주장성(晝長城)이란 기록도 있다. 고려시대에는 몽고의 침입을 격퇴한 곳이기도 하고, (중략) 성곽형태 또한 단순하지 않아서 하나의 폐곡선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본성봉암성한봉성신남성과 5개 옹성으로 이뤄진 복잡한 구조다. 인조 4년(1626) 중앙부의 가장 큰 폐곡선인 본성이 완성됐고, 병자호란 이후 방어력을 높이기 위해 동쪽의 봉암성 한봉성 등을 비롯해 여러 차례 증축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수어장대에 들어서니 먼저 왼쪽으로 청량당(淸凉堂)이 있고, 그 앞에 설명문을 세워놓았다. “청량당은 마을의 신을 모시는 신당 성격을 갖고 있다. 10명의 무속신 가운데 이회 장군이 있는데, 이회는 인조 2년 남한산성을 축성할 때 동남쪽 부분을 담당했다. 그런데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날짜 안에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는 모함을 받아 처형된다. 그의 처첩도 삼남지방에서 축성자금을 모아 돌아오는 길에 남편소식을 듣고 강물에 투신했다. 그 후 이회의 무고함이 밝혀져 사당을 짓고 넋을 달래게 했는데, 이회를 도당신(都堂神, 마을수호신)으로 모셨다.”
수어장대에는 몇몇 사람들이 먼저 와서 앉아있다. 나는 먼저 설명문부터 읽어본다. “장대(將臺)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 장대가 있었다. 수어장대는 서쪽에 있어 본래 ‘서장대’라고 불렸다. 병자호란 당시에는 단층 누각이었고, 수어청(守禦廳) 우영장(두산백과에는 별장[別將]으로 돼있다. 이천부사가 겸임)이 서장대에 머물며 군사를 지휘했다. 이후 영조 27년(1751) 유수 이기진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란 편액을 달았다. 현종 2년(1836) 유수 박기수가 수어장대를 중수했는데,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그의 형인 박주수가 쓴 것이다. (중략) 수어장대는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관리해오다 2021년 보물로 승격됐다. 또한 수어장대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거치 중 하나인 군사경관에 해당한다.”
남한산성 이곳저곳 더 둘러보고 싶지만 발목이 더욱 시큰거리니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이제 내려가야 하는데, 중앙의 빠른 길로 가면 거리는 가깝지만 길이 울퉁불퉁해 아무래도 다리에 무리가 올 것 같아, 지겹게 올라왔던 계단을 따라 내려가기로 한다. 다들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다면서 내려가는 계단을 피하지만 오늘 같은 날에는 제일 안전한 길이 아닌가 싶다.
무사히 하산을 마치고, 전철역까지 걸어가는 것조차 무리인 듯해 가까운 곳에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버스를 타고 귀가했다. 하차하는 곳마저 집앞이니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