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1일(토)
오늘의 산행목적지는 남한산(南漢山, 522m) 이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는 남한산에 대한 존재를 몰랐다. 북한산성 근방에 북한산(北漢山, 836m)이 있듯이 남한산성 언저리에 남한산이 있을 것 같은데, 지도를 찾아봐도 딱히 표시된 곳이 없었다. 그러다가 청량산(淸凉山, 482.6m)인가?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곳조차 어디인지는 정확히 몰랐다. 나중에야 인터넷을 찾아보고 수어장대(守禦將臺)가 건립된 곳이 청량산이란 걸 알게 됐다.
아무튼, 한동안 남한산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고 지냈는데, 얼마 전에 다시 한번 막연히 남한산을 가려고 인터넷을 찾다 보니 정상석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지도를 살펴보고 드디어 남한산의 위치를 알게 됐다. 익히 알고 있던 ‘벌봉’과 가까운 곳으로, 우익문(右翼門西門)과는 대각점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데는 여러 코스가 있지만 가장 짧은 길을 택하기 위해, 지도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망월사(望月寺)를 거쳐 가면 어떨까 생각하고 지도를 살펴봤지만 산길표시가 없었다. 그래도 좀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남한산성 도립공원 사무실에 전화해봤지만, 그곳 담당자도 망월사 뒤로 산길이 있는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현절사(顯節祠) 쪽으로 가보라고 했다.
집에서 남한산성으로 가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우선 아파트를 나서면 정문 앞에 바로 버스정류장이 있고, 거기서 버스를 타면 산행초입에서 내릴 수 있다. 또 하나는 지하철을 타는 것인데, 개롱역까지 가야 하는 거리도 있지만, 마천역에서 내려 산행초입까지도 꽤 걸어가야 한다.
그렇지만 산행을 시작하기 전에 언제나 화장실에 먼저 들렀다 가야 해서 후자를 택했다.
개롱역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이 떠나버렸기 때문에 한참(13분, 출근시간대지만 휴일이어서 평일보다 배차간격이 훨씬 길었다) 기다렸다가 갔는데도 7시 반쯤부터 산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오늘은 남한산이 최종 목적지니까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은 최단코스를 택했다. 그만큼 경사가 심한 길이라 힘들긴 했지만.
50분쯤 걸어서 서문에 도착했다. 서문의 정식명칭은 우익문(右翼門)이다. 남한산성에는 동서남북에 4개 대문이 있는데, 서문이 규모가 가장 작다. 정조 3년(1779) 개축하면서 우익문이라고 했다. 행궁을 중심으로 국왕은 남쪽을 바라보며 국정을 살피니, 서문이 행궁 우측에 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돌아올 때 북문(全勝門) 쪽으로 올 요량으로, 갈 때는 수어장대를 거쳐 남문 (至和門) 방향으로 가기 위해 오른쪽 길을 택했다. 남한산성은 요즘 성벽보수공사 중이라 오른쪽으로 가림막을 설치해 놨지만, 휴일이어서인지 일은 하지 않고 있었다.
며칠 전에 다녀왔기 때문에 오늘은 수어장대에는 들르지 않았다. 수어장대에서 남문까지는 1.8km인데, 성벽을 따라 갈 수도 있고 안쪽에 난 포장도로를 따라 가도 된다. 오늘은 포장도로를 따라가기로 했다. 그리고 조금 내려가면 서암문(西暗門)이 있는데, 제6암문이라고도 한다. 남한산성에는 총 16개(본성 11개, 봉암성 4개, 한봉성 1개)의 암문이 있는데, 동문 (左翼門) 근방에 있는 장경사 암문(제1암문)을 시작으로, 시계 반대방향으로 여섯번째 있는 암문이다.
서암문을 지나 남문으로 내려가는 포장도로는 내리막 경사가 심한 데다 워낙 꼬불꼬불해서 걷기에 쉽지 않다. 자칫 잘못 하면 발가락이 앞으로 쏠리면서 신발과 마찰해 발톱이 빠지는 것처럼 아프다. 또한 중간에는 언제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산사태로 길이 끊긴 곳을 긴급하게 보수하는 곳도 있었다. 그나마 지금은 걸어갈 수 있도록 해놓긴 했지만 아직도 한창 공사 중이었다.
08시59문, 수어장대에서 25분 남짓 걸어 남문에 도착했다. 남문은 4대문 중 가장 큰데, 정조 3년(1779) 개축하면서 지화문(至和門)이라고 했다고 하며, 현판이 남아있는 유일한 문이다. 또한 병자호란 때 인조가 이 문을 통해 남한삼성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남한산성 중심부를 지나고 로터리에서 오른쪽으로 가다가 연무관(演武館)을 지났다. 연무관은 이름 그대로 군사들이 무술을 연마하던 곳으로, 2021년 보물로 지정됐다. 남한산성은 2014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는데, 연무관은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군사경관(군사시설)에 해당된다고 한다.
이제 남한산으로 올라가는 길목인 현절사를 찾아야 하는데 어딘지 모르겠다. 스마트폰으로 검색해 보니 조금 더 가다가 왼쪽으로 꺾으면 된다. 다행히 조금 가다 보니 ‘현절사’ 이정표가 보인다.
이정표를 보면서 왼쪽으로 돌아 조금 올라가니 현절사가 보이는데, 규모가 아주 작다. 그리고 형태도 조금 특이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곳이 절인 줄만 알았다. 입구에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지만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았다. 게다가 아직은 문도 잠겨있다.
현절사를 끼고 돌아 산행을 계속했다. 이곳부터는 경사가 급하긴 해도 숲길이라 많이 덥진 않다. 그래도 땀은 계속 흐른다.
09시42분, 제3암문(봉암성 암문[蜂巖城 暗門])에 이르러 성벽과 다시 만났다. 이곳은 원성(元城, 本城)과 봉암성(한봉성[漢峰城], 신남성[新南城]과 더불어 외성 [外城]이라고 한다)을 연결하는 주출입구여서 다른 암문에 비해 크다. 문 윗부분이 무지개 모양으로 둥글게 만든 홍예문(虹霓門)이다.
이정표를 따라 제3암문 을 통해 바깥으로 나가 성벽외곽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봉암성이 보인다. 안내문에 따르면, 남한산성은 본성과 3개의 외성, 그리고 5개의 옹성으로 이뤄진 복잡한 구조인데, 봉암성은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까지 쌓은 외성이다. 봉암성은 신성 또는 동성이라고도 하는데, 성의 길이는 2,120m다. 물론 지금은 대부분 허물어져서 흔적만 남아있다. 요즘도 본성 보수공사는 한창이지만 이곳까지 보수할 것인지는 모르겠다.
09시56분, 드디어 남한산 정상적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곳이 정상은 아니란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성곽보수공사를 하고 있는데, 그곳이 정상이라고 한다. 안내문을 보니, 성곽보호를 위해 정상적을 옮겨서 새로 설치했다고 한다. 자료를 찾아보니 이 정상석은 남한산성 도립공원 지정 50주년을 기념해서 2021년 3월17일 설치됐다.
또 다른 자료를 보면, ‘천사모 산악회’에서 허물어진 성곽 위에 정상석을 설치한 사진이 있는데, 지금은 어디에 보관돼있는지 모르겠다.
정상석 근방에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간단하게 간식을 먹었다. 약밥을 싸가긴 했지만 너무 더워서 입맛이 없어 먹지 못했다. 게다가 깜박 잊고 냉커피를 가져오지 않아 파프리카로 물을 대신했다.
이제 하산이다. 올라오는 동안 땀을 많이 흘려서 옷이 다 젖었지만 어쩔 수 없다. 티셔츠를 예비로 가져오긴 했지만 내려가는 동안 또 땀을 흘릴지 모르니 갈아입지도 못하겠다. 다행히 내리막에다 숲길이니 땀은 많이 나지 않았다. 올라갔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오니 다시 현절사 앞을 지나게 됐는데, 이번에는 문이 열려있어서 들어가봤다. 한복 입은 남자가 앉아있다가 들어오라고 한다. 그제서야 이곳이 사찰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현절사는 병자호란 때 청에 항복하길 거부하다 심양으로 끌려가 처형 당한 삼학사(홍익한윤집오달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인데, 나중에 김상헌과 정온의 위패도 함께 모셨다. 사당은 숙종 14년(1688) 유수 이세백의 주도로 세워졌는데, 숙종 19년 왕은 ‘현절사’란 이름을 내려줬으며, 고종 때까지 국가에서 제사를 지냈다. 현절사는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 중 통치경관(제의시설)에 해당한다.
당초 집에서 나올 때는 귀가할 때 북문 쪽으로 돌아 서문을 통해 내려가 버스를 타고 귀가할 예정이었지만, 걷다 보니 다리가 많이 아프기도 하고 너무 무더워 남한산성에서 바로 버스를 타고 가까운 전철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귀가하기로 생각을 바꿨다.
부지런히 걸어 버스정류장에 왔더니, 마침 버스가 있어서 타려고 하니까 더 앞으로 가서 타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 버스는 그 자리에 계속 서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못 타긴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한참 동안 그러고 있으니 이유를 몰라 답답했다.
땡볕에 오랜 시간 기다리다가 다른 버스가 와서 산성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차고 귀가했다. 그런데 기다리면서 보니 그 버스에 무슨 문제라도 있었는지, 운전기사가 다른 사람들과 심각하게 얘기하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애초에 그 버스는 운행할 수 없는 처지였던 거다. 물론 그 운전기사가 세세한 얘기를 해주지 않아 우린 답답했던 거고. 아무튼, 점심시간이 다 되어 배가 고프긴 했지만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