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8월25일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소요산엘 갔다. 지난번 찾지 못했던 등산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지난주 소요산엘 갔다가 자재암 (自在庵)에서 우연히, 경기 광주에서 온 간호사를 만나 함께 등산하게 됐는데 제대로 된 등산로를 찾지 못해 길도 없는 능선을 오르느라 엄청 고생했었기 때문이다.
오늘도 원래의 목적지인 소요산역까지 가는 열차가 많지 않아서, 동두천역까지만 전철을 탔다. 그리고 1번 출구로 나와 버스정류장에서 소요산역까지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데, 맞은편에도 똑같은 정류장이 있다. 뭐지? 어디서 타야 하는 거야? 우선은 지하철역에서 나와 오른쪽 정류장에서 기다렸는데, 맞은편에 왔던 버스 2대가 모두 그냥 지나가 버렸다. 그제서야 맞은편 정류장으로 자리를 옮겼지만 버스운행 정보가 없어 버스가 언제 다시 올지 모르겠다.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좀더 빨리 버스를 타기 위해 한 정류장을 걸어 ‘안창말입구’까지 갔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버스가 왔지만 앞자리에 앉을 수 없어 네 정류장을 서서 갔다. 뒤에는 빈자리가 있었지만 멀미가 날까 염려돼 뒤로 가진 못했다.
지난주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요산역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해 소요산역 입구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오늘(25일)부터 내일까지 ‘2023 동두천 락 페스티벌’을 개최한다는 시설물들이 여기저기 설치돼있었다.
매표소(지난 5월4일부터 사찰입장료는 무료다)와 일주문을 지나 오늘도 원효굴에 들렀다. 원효굴 왼쪽에서 시원하게 떨어지고 있는 원효폭포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번주에 비가 내려서 그런지 지난주보다 물이 많이 불어서 물줄기가 시원해 보였다.
소요산도 수도권의 여느 산들과 마찬가지로 계단이 아주 많다. 원효굴을 나와 계곡을 가로지르는 조그만 다리(俗離橋)를 건너자마자 계단이 시작됐다. 그리고 조금 가면 ‘108계단’이 있는데, 이 정도는 애교수준이다. 108계단을 오르기 전에 오른쪽으로 가면 ‘공주봉’으로 바로 올라갈 수 있지만, 오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어서 108계단을 오른다.
108계단 끝에는 금강문(金剛門)이 있는데, 기둥 양쪽에는 “神光不昧 萬古輝猷 入此門內 莫存知解(신비한 광명이 어둠을 깨치고 만고에 오랫동안 그 빛을 발하니 불법의 문안으로 들어오려면 아는 체 하는 분별심을 버려라)”란 글귀가 쓰여있다. 그리고 그 앞에, 원효스님이 정진 중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머물며 좌정하고 수도하던 장소였다는 ‘원효대’가 있다.
원효대 옆의 계단을 내려가 조그만 다리로 계곡을 건너면 왼쪽에 ‘백운암’이란 조그만 암자가 있는데, 입구에는 “수행공간입니다. 출입을 삼가해 주십시오”란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그렇지 않아도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하고, 조그만 암자 하나 뿐이라 구경할 생각도 없었는데 그런 안내문마저 있으니 그냥 지나친다.
그곳에서 또 다시 계단을 올라가면 계곡 한가득 가설물을 설치해놨는데, 무슨 공사를 하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 바로 옆이 자재암(自在庵)이니, 거기서 공사를 진행중이겠거니 짐작만 한다. 그리고, 이내 자재암에 도착했다. 자재암은 신라 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조그만 사찰이다.
자재암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에 따르면, “자재암은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고려 광종 25년(974) 왕명으로 각규대사가 중창했으며, (중략) 한국전쟁 때 폐허가 된 것을 1961년부터 1977년까지 대웅전과 삼성각 등을 새로 건립했다”고 한다. 자재암 앞에 있는 청량폭포도 시원한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원효대사는 물론 그의 부인이었다는 요석공주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요지는,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자재암을 짓고 기거하게 되자 요석공주가 이곳으로 와서 함께 지내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등에는 요석공주에 대한 언급이 없다. 다만 <삼국사기> 열전에 설총의 아버지가 원효란 사실만 나올 뿐이다.
자재암을 지나자마자 가파른 계단을 또 오른다. 그리고 이내 이정표를 만났는데, 왼쪽은 ‘하백운대중백운대상백운대’로 돌아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나한대’를 거쳐 소요산 정상인 의상대로 가는 길이다. 오늘도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오른쪽 길을 택했다.
그리고 5분 남짓 더 걸어서 다른 이정표에 다다랐다. 여기가 지난주에 등산로를 헷갈렸던 곳이다. 정상적인 등산로는 왼쪽 계곡을 건너 오른쪽으로 계곡을 타고 올라가야 하는데, 지난주에는 오른쪽에 난 희미한 등산로를 잘못 택하는 바람에 있지도 않은 등산로를 개척하면서 힘겹게 올라가야만 했었다. 그나마 나 혼자였다면 어떻게는 올라갔을 테지만, 동행하던 간호사는 산행경험이 많지 않아 너무 힘들어해서 보조를 맞추며 오르려니 더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라 오르는 길도 만만치는 않다. 계곡을 타고 바위를 밟으며 오르다 보니 조금만 한눈 팔아도 길을 잃을 지경이다. 그래도 중간중간 이정표가 제대로 올라가고 있다고 있다고 알려주니 다행스러웠다.
소요산의 두번째 높은 봉우리인 나한대(571m)를 200여m 남겨두고 가파른 계단이 계속 이어진다. 그리고 갈림길이 나오는데, 좀더 선명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갔더니 나한대를 지나치게 됐다. 다음 이정표에서 잠시 멈춰 나한대를 다녀오기로 했다.
그렇게 나한대에 올랐는데, ‘봉우리’ 같질 않다. 그저 삐죽삐죽 한 바위투성이다. 그곳에 세워진 안내문을 보니, “조선 태조가 이 절에 머물며 절을 고치고 절 주위 봉우리들을 불교와 관련된 명칭으로 부르면서 이곳을 나한대(羅漢臺)라고 했다”고 한다. ‘나한’은 범어 아라한(阿羅漢)의 줄임말로, 일체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어 중생의 공양에 응할 만한 자격을 지닌 불교의 성자라고 한다.
조선 태조는 왕위를 물려준 後 소요산을 자주 찾았으며, 태종 2년 (1402)에는 소요산 아래 별전(別殿)을 짓도록 했다는 기사가 나오는데, 자재암에 대한 언급은 없다.
나한대를 내려와 이정표를 보니 소요산 제1봉인 의상대(587m)까지는 200m다. 그렇지만 그 짧은 구간도 산길이 만만치 않다. 미끄러지기 쉬운 가파른 산길을 오르고 이어지는 계단을 올라 드디어 의상대 정상에 섰다. 이곳도 표지석이 서있고 그 옆에 태극기가 펄럭이지만 바닥에 데크를 깔아놓아 정상이란 느낌은 들지 않는다.
정상에서 사진 몇 장 찍고 공주봉을 향해 산을 내려간다. 이내 또 다시 가파른 계단이 이어지지만 내려가는 길이니 조금만 조심하면 힘은 들지 않는다. 의상대에서 공주봉까지는 1.2km쯤 된다. 산길을 잘 내려가나 싶었는데, 공주봉을 코앞에 두고 또 계단이다. 그래도 어쩔 건가! 공주봉엘 올라야 하기도 하고 하산길도 그곳을 거쳐야만 한다.
공주봉 또한 ‘봉우리’라기 보다는 펑퍼짐한 곳이다, 게다가 이곳에는 공연장 같이 널따랗게 데크를 깔아놓았지만 용도는 잘 모르겠다. 자연을 해치면서 괜한 작업을 해 놓은 게 아닌가 싶다. 안내문을 보니, ‘공주봉’은 요석공주의 남편을 향한 애끓는 사모를 기려 붙인 명칭이라고 한다.
이제 본격적인 내리막길이다. 이정표를 보니 일주문까지 1.4km, 소요산역까지는 3.7km다. 내려가는 길이 좀 험하긴 해도 내려가는 게 올라가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하다. 더구나 옆에 밧줄로 가이드레일을 설치해 놓아서 잡고 내려가니 한결 안전한 것 같다.
20분쯤 내려오니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이 있고 몇몇 사람들이 자리잡고 쉬고 있어서, 나도 그 옆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계곡물로 세수하고 손을 아주 시원하고 좋다. 위에도 사람들이 있긴 했지만 시원한 물로 양치하면서 한모금 마시기도 했다. 별 일 있으려구! 약밥과 오이로 요기도 했다.
다시 하산. 3분쯤 내려갔더니 드디어 일주문 근처에 다다랐는데, 그곳이 바로 아까 108계단을 오를 때 오른쪽으로 나있던 길이었다. 아, 여기였구나! 그리고 원효굴에 다시 들러 원효폭포 사진을 또 찍었다. 일주문을 지나면서도 또 찍고.
주차장까지 내려왔는데, 그 초입에 ‘이태조 행궁지(李太祖 行宮址)’란 표지석이 있었다. 올라갈 때는 보지 못했는데!
주차장에는 ‘동두천 락 페스티벌’이 한창이었다. 올라갈 때 의자 배치해 놓을 걸 봤었는데, 그 앞에서 공연 중이었다. 그렇지만 구경하는 사람들이 너무 없다. 좌석은 몇 백석 될 것 같은데, 관중은 몇 십 명이 고작이다. 아마도 관중보다 행사관계자들이 더 많을 것 같다. 행사가 내일까지라고 하니까 토요일인 내일은 좀더 많은 사람들이 오려나?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또 다시 걸어 소요산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20~30분 간격으로 차가 배차되는데, 철도근무자들이 일부 파업 중이라서 배차가 원활치 않다는 안내방송이 나왔지만, 곧바로 차를 탈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2번이나 갈아타야 했지만 지하철 안이 시원하니 지루할 틈도 없이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