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종주, 첫날

by 이흥재

2023년 8월31일(목)


2년 만에 다시 북한산종주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정해진 루트가 없는 것 같다. 들머리와 날머리는 물론 중간코스도 다 제각각이다. 그러니 이런 정보를 토대로 내가 임의적으로 정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잡은 코스는 들머리를 지하철 우이신설선의 북한산우이역으로 하고 영봉과 백운대, 북한산성 성곽길(백운봉암문~ 용암문~ 대동문~ 대남문)을 거치고 문수봉•비봉•향로봉•족두리봉을 지나, 지하철 3호선 불광역을 날머리로 했다. 그런데 그 거리가 16km가 넘기 때문에 하루에 걷기엔 무리인 것 같아 두번에 나눠 걷기로 하고, 첫날인 오늘은 대남문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그래서 우선 출발지점으로 가기 위해 6시 반쯤 개롱역에서 전철을 타고 2번(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성신여대입구역) 환승한 後 1시간 남짓 지나 북한산우이역에 도착했다. 이 역에는 2개의 출구가 있는데, 지도를 보니 2번 출구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인터넷에서 찾아본 대로라면 하루재와 영봉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방향이 도선사로 향하길래 우선은 도선사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평일인데도 산엘 가는 듯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조금 걷다가 도선사로 향하는 오르막이 막 시작될 무렵 이정표가 보였다.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도 되지만 경사가 급하고 바닥이 딱딱하기 때문에 일단 산길로 걷기로 작정했지만, 오른쪽과 왼쪽 모두 목적지가 ‘백운대’였다. 이럴 때는 좀 더 낯선 길을 택한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도선사 주차장이 나올 테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어디로 이어지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새로운 코스에 도전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길로 가든 백운대까지의 거리를 똑같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등산객은 왼쪽 길이 더 힘들 것 같다면서 오른쪽으로 올라갔다.


돌계단과 흙길이 적당히 섞여 있는 등산로여서 많이 힘들진 않았다. 그리고 이번주부터는 기온도 많이 내려가서 땀은 나지만 지난주처럼 무덥게 느껴지지도 않고, 시원한 바람도 이따금 불어왔다. 그렇게 30분쯤 올라갔더니 도선사 주차장을 통해 올라는 길과 만나는 지점에 이정표가 있었다. 그곳엔 백운대까지 1.8km라고 쓰여 있었는데, 좀전의 이정표에는 3.3km라고 했으니까 1.5km를 올라온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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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계속 돌이 깔린 오르막길이 이어졌다. 08시42분, 하루재에 도착했는데, 왠지 주위가 낯익다. 언젠가 백운대에 올랐다가 이 길로 하산했던 것 같다. 거기서 이정표를 보니 영봉(영봉)까지가 200m다. 등산로상에 있는 봉우리인줄 알았는데, 따로 올라갔다 와야 하는 거라서 조금 부담스럽긴 했지만 가까우니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엄청난 경사다. 그리고 거리도 체감상 200m보다는 훨씬 더 길게 느껴졌다.


10분 남짓 걸려 영봉 정상에 올라갔는데, 주위에 해발 604m라고 표시된 정상석이 있었지만 봉우리란 느낌이 들진 않았다. 더구나 옆을 보니 좀더 높은 봉우리가 있기도 했다. 그런데 왜 이곳이 영봉이지? 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거기서 보는 백운대 전경이 아주 볼 만했다. 백운대 상단에 안개가 자욱해서 봉우리를 볼 수 없었지만 맑은 날 다시 한번 와봐야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멋진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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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는 어떤 사람이 카메라를 설치해놓고 안개가 움직이는 모습을 영상에 담고 있었다. 아니, 동영상을 찍는 게 아니라 1초에 한 컷씩 자동으로 찍히도록 세팅해 놓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렇게 1시간을 찍으면 1분짜리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굉장한 수고다. 가끔 유튜브나 방송에서 구름이 흘러가는 모습의 영상을 본적 있는데, 그때는 동영상을 빨리 돌린다고 생각했었지만, 오늘 얘기를 듣고 보니 이렇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에게 부탁해서 백운대를 배경으로 인증사진도 한장 찍고 하루재로 다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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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대를 향해 등산을 계속했다. 오늘은 혼자 오는 외국인들이 꽤 있다. 전에는 단체로 몇 명씩 무리 지어 산에 오르는 외국인들을 본적 있었는데 혼자 올라가는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09시11분, 인수암에 다다랐는데 스님들이 작업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 불전(佛殿)에는 외국인 한명이 안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암자 입구 오른쪽에는 ‘相中無佛 佛中無相’이라고 쓰여있었다. 해석하면 ‘相으로 보면 부처를 볼 수 없고, 부처에게는 相이 없다’란 뜻인데, 相은 산스크리트어로 ‘lakṣaṇa’이며, 외형적•피상적인 것과 굳어진 생각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그런 相으로 대상을 보면 부처가 될 수 없고, 부처에겐 그런 相이 없다는 것이다. 알듯 모를 듯 이해하기가 쉽진 않다.


인수암에서 인수봉이 잘 보였지만 그곳에서 안개가 끼어있다. 조금 오르다 보니 인수봉에 대한 안내문이 보이는데, “백제(百濟) 시조(始祖) 온조왕이 형 비류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곳으로, 산 전체형상이 마치 어린아이를 업은 듯해 부아산(負兒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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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도 비온 뒤라 그런지 계곡에 크고 작은 폭포들이 많다. 오죽하면 어떤 등산객은 이 길로 여러 번 올라왔지만 이렇게 물줄기가 떨어지는 걸 처음 본다고 했다. 어쩌면 행운을 잡은 건지도 모르겠다.


09시34분, 한국전쟁 초기 서울함락을 비통해하며 숨진 국군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9년 세운 ‘白雲의 魂’ 추모비가 있는 백운산장에 도착했다. 마당에 있는 나무탁자에는 등산객이 쉬고 있었지만, 산장 문은 닫혀있다. 이곳은 95년간 운영되다 2019년 폐쇄된 후 2021년 3월 뉴스에 대피소로 만들고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출입문에 응급상황 시 특수산악구조대로 연락하란 안내문이 붙어있는 것으로 보아 특별한 경우에만 이용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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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를 보니 여기서 백운봉암문까지는 200m, 백운대까지는 500m다. 그렇지만 쉽진 않다. 경사가 심한 돌길이기 때문이다.


09시45분, 10분이 채 걸리지 않아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에 도착했다. 이곳은 북한산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있으며, 북한산성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이라고 한다. 1711년(숙종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 암문 중 하나다. 암문은 일종의 비상출입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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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계단과 바위길을 지나 백운대(白雲臺, 836.5m)로 향한다. 북한산은 삼각산(三角山)이라고도 하는데, 이는 고려수도인 개성에서 백운대와 인수봉(仁壽峯, 810.5m)•만경대(萬景臺, 787m)가 3개의 뿔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왜 ‘북한산’이라고 불리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은 없다.


09시58분, 드디어 백운대에 올랐다. ‘白雲臺’라고 쓰이진 커다란 바위를 몇 장 찍고 옆에 있는 사람한테 부탁해서 이곳에서도 인증사진을 찍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산에 오르면서 내 사진을 거의 남기지 않았는데, 올해부터는 정상에 올랐을 때 옆에 사람이 보이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는 편이다. 오늘은 백운대 정상에도 거의 바람이 불지 않아 태극기도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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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백운대를 내려와 넓은 바위에 앉아 커피도 한잔 마시고 수박도 한조각 먹으려고 앉았는데, 고양이들이 다가온다. ‘너희에게 줄 건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런데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곧바로 다름 사람한테로 갔다. 물론 그 사람도 고양이한테 줄 음식은 없었다. 서울 근교의 산 정상에는 고양이들이 많다.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주기 때문인 것 같은데, 누군가는 등산객이 고양이를 데려와서 놓고 간 거라고도 하지만 그 사정은 알 수 없다.


백운대를 내려와 백운동 암문을 지나고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가 삼거리에 섰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조금 더 가깝지만 오늘은 명색이 북한산 종주를 하기 위해 온 것이니 왼쪽 길을 택한다. 성곽을 따라 대남문으로 가기 위해서다. 이곳을 지나며 보이는 백운대 뒷모습도 역시 장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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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암문(龍岩門)에 다다르기 전 경사지에 계단공사를 하고 있는데, 공사안내문을 보니 한곳은 11월6일까지 마친다고 하고, 다른 곳엔 12월6일까지 마친다고 써있으니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하긴 언제 끝나든 이곳을 다시 지나기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 같기는 하다. 그때는 공사가 전부 마무리돼 있었으면 좋겠다.


용암문을 지나 대동문으로 향한다. 이정표의 거리는 1.5km다. 전에는 가는 길이 평지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산길의 연속이다. 오늘 코스는 대동문을 지나 보국문과 대성문을 거쳐 대남문까지 간 後 그곳에서 하산하면 된다.


11시12분, 대동문에 도착했는데 오늘도 공사 중이다. 아니 공사가 중단된 것 같기도 하다. 일하는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안내문을 보니 2022년 5월부터 대동문과 보국문 해체보수를 시작해 같은 해 11월 끝낸다고 했는데, 1년이 지나도록 방치된 이유를 모르겠다. 전에는 대동문 주위에 휴식공간도 있어서 사람들이 꽤 많이 모여있었는데, 오늘은 공사판이 어수선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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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어 도착한 보국문도 가려져 있다. 더구나 이곳은 벽을 세워놓아 안쪽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벽 주위로 임시등산로를 만들어놓아 위험하기조차 하다. 오늘같이 사람이 얼마 없을 때는 괜찮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성문에 가기 위해 또 다시 산을 넘는다. 그리고 대성문 못 미처 있는 곡성 (谷城)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아침을 6시에 먹었기 때문에 늦어도 11시쯤에는 점심을 먹으려고 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먹을 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지 못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먹을 수 있으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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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대성문으로 가기 위해 또 산을 오르고, 대성문을 지나서도 대남문까지 몇 개의 산을 또 넘어야 한다. 그리고 드디어 대남문에 도착했다. 설명문을 보니, “대남문(大南門)은 북한산성 가장 남쪽에 있으며, 산성이 축성된 1711년 지어졌다. 성문 하부는 홍예 모양으로 통로를 내고 성문을 달아 여닫을 수 있게 했고, 상부에는 군사를 지위하고 성문을 지키기 위한 단층 문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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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려가는 길만 남았다. 북한산 국립공원 구기분소까지는 2.5km. 그런데 여러 번 지나간 길인데도 낯설다. 왜지? 그렇게 내려오다가 승가사로 올라가는 삼거리에 다다랐을 때야 등산로가 조금씩 낯이 익었다. 그렇지만 그 후로도 아주 익숙하진 않았다. 아무래도 큰 비가 내리면서 등산로를 쓸어갔기 때문에 바닥이 완전히 달라졌고, 그 바람에 주위조차 변하게 보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3시30분, 드디어 구기분소까지 내려왔는데 햇볕이 너무 뜨겁다. 산속에서는 계속 흐리다고 생각했었는데, 날씨가 갑자기 변한 건지 내내 맑았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러 가면서 도로에 표시된 흰 선을 보게 됐다. 담벼락의 안내문에 따르면 개인소유 지번임을 알리는 것이라는데, 어떤 의도인지는 모르겠다. 국가에서 땅을 사라는 건가, 지나다니면서 고마워하라는 건가?


러시아대사관이 있는 언덕을 넘어 버스를 타러 갔다. 정류장이 아닌 곳에 버스가 서있길래 비상상황인 것 같아 가지 않았더니 이내 출발했다. 다행히 다른 버스가 바로 와서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나와 지하철로 귀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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