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종주 제2일

by 이흥재

2023년 9월7일(목)


오늘은 북한산종주를 마무리하는 날이다. 지난번에 대남문에서 산행을 끝냈으니 그곳에서 다시 시작해야겠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불광역에서 대남문으로 걷기로 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 불광역으로 갔다.


불광역 9번 출구로 나와 시내를 걷는데, 2년전 길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도 지도상 이 길이 맞는 것 같아 계속 걸었더니 한참 만에야 익숙한 곳이 나왔다. 정문에 얼굴조각상이 있는 아파트. 그렇지만 아파트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 아파트를 지나 곧바로 왼쪽길로 간다. 그리고 조금 더 가면 북한산둘레길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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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제8구간(구름정원길) 들머리를 표시하는 구조물을 통과해 왼쪽을 따라가다 나무데크로 만든 스카이워크를 지나 오른쪽 산길로 가면 북한산종주 제2일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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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바로 급경사다. 그래서 맑은 날의 은평구 아파트단지들이 한눈 가득 들어온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별 특징이 없는 아파트들이다. 아니, 한 단지씩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넓은 지역을 한꺼번에 내려다보고 있으려니 그렇다는 거다.


08시44분, 첫번째 봉우리인 족두리봉(해발370m)에 도착했다. 이름을 보면 모양을 보고 붙였을 텐데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그곳을 지나쳐 뒤돌아보면 족두리 모양이 뚜렷하다. 그래, 어련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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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이지만 산행하기엔 아직 더운 날씨다. 그래도 가끔 불어오는 바람은 꽤 시원하다. 하지만 그뿐이다. 땀은 계속 나고 오늘따라 배도 빨리 고픈 것 같다. 아침에 분명히 잘 챙겨먹고 나왔는데, 왜 그러지?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점심 때도 되기 전부터 허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날. 그럴 땐 초코바로 간식을 먹으면 될 테지만 그건 또 귀찮아서 배고픔을 참으면서 계속 걷는다.


09시40분, 두번째 봉우리인 향로봉(香爐峯, 535m)에 도착했다. 족두리봉도 그렇지만 향로봉도 등산로에서는 조금 비껴있다. 그래도 정상까지 올라가본다. 정상은 온통 바위투성이인데 아무리 둘러봐도 향로처럼 생기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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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로봉을 지나니 멀리 비봉(碑峰, 560m)이 보인다. 그리고 정상에 있는 진흥왕순수비(眞興王巡狩碑)의 모조비(模造碑)도 뚜렷하게 보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북한산비는 김정희(金正喜)와 조인영(趙寅永) 등이 1817년 비를 탁본해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냈다고 한다. 하지만 12행(각행 21자 또는 22자)의 비문내용은 마멸이 심해 판독하기 어렵다고 하며, 진흥왕이 신료들을 대동하고 북한산을 순수하며 민심을 두루 살피고 백성들을 위로한 사실, 한성(漢城)을 지나다가 석굴에서 도인을 만난 사실, 수가인명 (隨駕人名, 임금으로 모시고 따라다닌 사람) 등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북한산비는 1972년 국립중앙박물관에 옮겨 보존•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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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봉정상 150m’ 이정표가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런데 정신 없이 걷다 보니 ‘비봉 0.4km’ 이정표까지 지나쳐 걸었다. 언제 지나친 거지? 비봉엘 다녀오려면 왕복 0.8km. 이내 포기한다. 전에 다녀온 적도 있고, 앞으로 갈 수 있는 기회는 늘 있으니까.


‘1.21사태 무장공비 은신장소’ 안내판이 보인다. 처음 보는 거다. 다른 때는 무심히 지나쳤었나 보다. 1968년 1월21일, 북한 124군부대 소속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하고 정부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내려왔다가 최종 은거한 장소라고 한다. 그들 중 30명이 사살되고 한명은 생포돼 청와대까지 가진 못했다. 은신장소에는 밀랍인형까지 만들어놨다고 하는데, 가보진 않았다.


사모바위는 여러 번 지나쳤지만 제대로 된 사진을 찍지 못하겠다. 어느 방향에서 찍어야 멋진 사진이 나올까? 언젠가는 사람들이 많아서 못 찍고, 어떤 땐 햇빛 방향이 맞지 않아 찍기 어려웠다. 오늘도 여러 방향에서 몇 장 찍었지만 역시 마음에 드는 사진은 없다.


10시17분, 승가봉(僧伽峰, 567m)에 도착했다. 그런데 좀전 비봉을 지날 때쯤 어떤 부부가 승가봉이 어디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땐 제대로 대답을 못했었는데 승가봉이 여기였구나! 그런데 그 부부는 이곳을 지나치지 않았나? 산행 방향으로 봐서 분명 이곳을 지나온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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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문수봉(文殊峰, 727m)을 향해 간다. 그런데 길이 점점 험해진다. 게다가 400m를 남겨둔 지점에서 ‘쉬운 길’과 ‘어려운 길’ 이정표가 있는데, 호기심 때문에 어려운 길을 택했더니 정말 어려운 길이다. 쇠파이프로 가드레일을 만들어놓긴 했지만 거의 수직암벽이다. 등산화가 조금만 닳았어도 미끄러질 수 있겠다, 싶다. 그리고 마지막 구간에는 가드레일도 없는 경사진 바위다. 오른쪽은 그대로 낭떠러지지만 안 갈 수는 없다. 다행히 한발씩 내디디며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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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봉 정상에 올랐다. 그런데 앞에 있는 바위가 더 멋있다. 아무러나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기로 했다. 약밥과 포도, 그리고 냉커피가 다지만.


점심을 먹고 있는데 어디선가 강아지가 한마리 나타났다. 산 정상에서 고양이는 자주 봤는데, 강아지를 보긴 처음이다. 뭔가 먹을 걸 바라는 거겠지만 주진 않았다. 어디선가 산에서 만난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경고문을 본 것 같아서다. 그렇지만 갖고 간 약밥을 다 먹진 못했다. 너무 더우니 입맛도 별로 없다. 게다가 엊그제 산 미국산 포도는 생각했던 맛이 아니어서 많이 못 먹겠다. 그래도 시원한 커피는 아주 맛있었다.


점심을 먹고 문수봉 정상석 사진을 몇 장 찍고 이제 대남문을 향해 본격적인 하산이다. 문수봉을 다시 내려왔는데 양쪽으로 길이 나있다. 그리고 왼쪽 길이 더 선명하다. 그래, 이쪽인가보다. 그리고 그쪽으로 한참 갔는데 아무래도 방향이 이상하다. 마침 올라오는 여자등산객이 있어서 물어보니 역시 다른 쪽이란다. 그런데 그 여자는 말을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만 방향을 가리켰다. 말하기 불편한 건가, 아니 귀찮은 건가! 그래도 도움을 주니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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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를 따라 문수봉까지 다시 갔더니 왼쪽 방향을 가리키길래 그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알고 보니 문수봉에서 바로 내려가면 되는 거였다. 괜히 되돌아갔다가 길만 잃은 뻔했다.


문수봉에서 10분 만에 대남문에 도착했지만 지난주에도 왔던 곳이라 얼른 사진 몇 장 찍고는 바로 하산이다. 대남문 오른쪽 문수사(文殊寺)에서는 스님들의 목탁소리가 들려오지만 오늘은 귀찮기도 하고 피곤하기도 해도 들르지 않기로 했다.


12시12분, 대남문에서 2.5km를 50분 가까이 걸어 하산을 마쳤다. 이제 또 1km 정도 걸어서 버스를 타러 가야 한다. 산속에서도 더웠지만 도로도 한껏 달아오른 데다 햇볕이 따가워서 걷기에 쉽진 않지만 어쩔 수 없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니 버스가 연거푸 2대나 지나가는데 모두 방향이 맞지 않아 그냥 보냈다. 조금 기다리다가 버스시간이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찾아보려는 때쯤 버스가 왔고, 다행히 광화문 방향으로 가는 거여서 얼른 올라탔다. 차 안이 시원해 땀을 식혀주니 고마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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