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악산 영봉(1097m)

by 이흥재

2024년 4월5일(금) 맑음


™ 덕주사 주차장(충북 제천시 미륵송계로2길 87)~ 마애불~ 영봉(원점회귀)


오늘 산행목적지는 월악산이다. 당일치기로 다녀오기엔 조금 먼 거리다.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어하던 곳이긴 하지만 오늘에야 하게 되 사연이 있다. 요즘은 매주 한번씩 산엘 가는데, 이번 주는 아내가 다니는 교회의 목사가 오늘 심방(尋訪, 원어적 의미로는 히브리어의 파카트[보살피다], 헬라어의 에피스켑토스[돌보다]란 뜻이라고 한다) 올 예정이니 마주치는 게 곤란하면 어디든 다녀오라고 했다. 그것도 오후 늦게 방문한다는 거였다.


그래서 가능한 한 먼 곳으로 산행지를 잡다 보니 월악산으로 가게 됐다. 아주 오래 전에 버스를 타고 다녀온 적이 있었는데, 시간도 많이 걸릴 뿐더러 버스를 타기 위해 버스터미널까지 가는 것도 번거로워 이번에는 차를 운전해서 다녀오기로 했다.


네이버 지도를 찾아보니 거리는 왕복 290km, 연료비는 4만원 정도, 통행료는 1만원 남짓 된다고 했다. 그러니 금전적으로만 따지면 버스로 가는 것보다 조금 더 들지만, 시간을 2시간 정도 절약할 수 있고 몸도 조금 덜 피곤할 것 같았다.


자동차 네비게이션에 덕주사 주차장을 입력하고 달리다 보니 이른 아침이라 교통이 원활해서 2시간 남짓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장은 꽤 넓었다. 차를 주차하고 대웅보전 쪽으로 올라갔더니 절에서 기거하는 듯한 젊은이가 개와 놀고 있길래 화장실과 등산로 위치를 물어보니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절이라서 해우소(解憂所)가 있을 줄 알았더니 번듯한 ‘화장실’이 있었다. 게다가 한 칸에는 비데(Bidet)까지 설치돼있었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잠금장치가 없다는 거였다. 그래도 이른 아침부터 이용하는 사람도 없을 뿐더러 사람기척이 들리면 헛기침 두어 번이면 해결할 수 있으니 그럭저럭 사용할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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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을 나와, 젊은이가 가르쳐준 대로 덕주탐방지원센터 바로 옆에 있는 조그만 다리로 계곡을 건너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물론 아직은 산에 오르는 사람이 나 말고는 없다. 이정표를 보니 영봉까지는 4.9km, 마애불까지는 1.6km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바닥에 야자매트가 깔려 있어 걷기 좋았는데, 이내 돌로 포장된 길이 나왔다. 처음엔 약간 경사만 있었지만 돌계단이 이어졌다.


산에서는 자연석으로 만든 계단이 친환경적일 순 있지만, 너무 딱딱해서 걷기엔 불편하다. 그래도 다른 길이 없으니 밟고 가는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정성스럽게 설치해놓은 걸 보면 감사하면서 지나갈 일이다.


덕주사에서 500m쯤 거리에 누군가 돌탑을 쌓아놨다. 그런데 대부분의 돌탑은 삼각뿔 형태로 안정적인데 비해 여기 돌탑은 위로 올라갈수록 급격하게 좁아져서 조금 위태로워 보인다. 조금만 센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을까 염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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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계단은 끝없이 이어진다. 그래도 군데군데 낙엽이 쌓여있어서 조금의 쿠션감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30분쯤 걸어 마애불까지 왔다. 그런데 흐릿한 기억으로는, 전에 왔을 때는 마애불 쪽으로 등산로가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보니 등산로 오른쪽으로 마애불은 물론 요사채도 있다. 그런데 이곳 요사채의 용도가 뭐지? 덕주사의 요사채인가?


아무튼 등산로를 벗어나 마애불을 향해 올라간다. 산중턱에 있는 큰 바위에 새겨놓은 마애불이라 보러 올라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아직은 등산 초반이니 힘을 내본다.


높이 13m 바위 면에 새겨진 마애불의 정식명칭은 ‘덕주사 마애여래입상 (德周寺 磨崖如來立像)으로,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돼있다. 마애불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월악산 중턱 마애불엔 덕주공주가 오빠인 마의태자(麻衣太子)와 함께 망국의 한을 달래며 덕주사를 짓고 아버지 경순왕(敬順王)를 그리워했다는 전설이 담겨있다.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기자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 일행은 신라의 국권회복(國權回復)을 위해 병사를 양성하려고 금강산으로 가던 중 문경군 마성면(하늘재)에 이르러, 마의태자 꿈속에서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이 말하길 ‘이곳에서 서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서천(西天)에 이르는 큰 터가 있을 것이다. 그곳에 불사 (佛事)를 하고 석불(石佛)을 세우고, 북두칠성이 마주 보이는 영봉을 골라 마애불을 조성해 만백성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을 잊지 말라’고 했다. 일행은 그 장소를 찾아 석불입상을 세우고 북두칠성의 별빛이 한껏 비추는 최고봉 아래 마애불을 조각하며 8년을 보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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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에서 등산로로 가려면 올라왔던 길을 다시 내려가야 해서 길도 없는 산중턱을 따라 등산로가 있음직한 곳으로 무작정 갔더니 다행히 얼마 안가 등산로가 나왔다.


등산로를 찾아가니 이번에는 철제계단이 마중한다. 바닥에 고무타이어 조각을 붙여놔서 푹신하긴 한데, 높이를 맞추느라고 그랬겠지만 단(段)이 너무 높다. 내가 오르기에도 버거울 정도면 작은 애들이나 여자들은 꽤 힘들 것 같다.


옛 기억으로는 영봉 근처에서만 계단으로 올라갔던 것 같은데, 지금은 계단이 너무 많다. 다른 루트여서 그랬는지, 최근에 다시 설치해놓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계단을 설치해놓은 지 꽤 오래됐는지도 모르겠다. 계단 주변으로는 등산로가 아예 보이지 않는다. 그만큼 당초 등산로는 자연화된 것 같다.


쉼터에는 환경부 등에서 ‘자가진단 체크리스트’와 ‘심혈관계질환 사전증상’ 등을 설치해놨다. 세부사항을 보니 한두 가지는 나한테도 해당되는 것이 있다. 아니, 나 자신한테 해당된다기 보다 ‘가족력’을 언급하고 있어서다. 그런데 실상 여러 가족 중에 이런 증상이 없는 가족 한두 명 없는 집이 있을까? 그래도 항상 조심하는 게 제일 좋다.


멀리 영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옆에서 보는 영봉의 모습은 정상에서 보는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인터넷을 보니 높이가 150m 되는 바위라는데, 한면이 반듯하게 깎여있으니 더 아찔해 보인다.


덕주사에서 2.5km 지점. 계곡을 가로지르는 아찔한 철제계단을 지나니 ‘무선충전기’가 설치돼있다(나중에 보니 영봉 맞은편에도 있었다). 2022년 한겨울에 치악산엘 갔다가 핸드폰 배터리가 강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방전된 적이 있었는데, 그럴 때 요긴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하긴, 그 추운데 충전하기 위해 기다리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얼마 만에 충전되는 지도 모르겠고.


영봉을 2.2km 남겨둔 지점부터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영봉이 저 높은 곳에 있으니 내려간 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건 불문가지다. 그래도 어쩌겠나! 길이 있으니 가는 수밖에!


영봉 1.5km 못 미처 있는 송계삼거리에 안전쉼터와 산행리본 게시대가 있다. 산악회에서 가져온 리본을 묶어놓은 곳이다. 여러 산을 다녀봤지만 리본게시대는 처음 본다. 1m 남짓 높이의 리본게시대에 리본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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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 아래 꽤 높은 철제 산행로가 설치돼있다. 어림잡아 10m 가까이 되는 것 같다. 심장이 약하거나 고소공포증이 있는 사람은 가기 어렵겠다.


아니나 다를까, 영봉 300m를 남겨둔 지점에 “정상까지 가파르고 좁은 목재계단이니, 고소공포증•심장질환이 있으면 조심하라”는 경고문이 세워져 있다. 하긴 지금까지 지나왔으면 앞으로도 견딜 만할 것이다. 그래도 바위를 따라 설치된 철제계단은 아찔하다. 높아서라기보다 조금의 부실공사만 있어도 사고가 날까 염려돼서다. 다행히 어느 한 곳도 이상한 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니 아직은 매우 튼튼한 것 같다.


2시간12분(8시12분~10시24분)만에 4.9km 거리의 산행을 마쳤다. 그런대로 양호한 편이다. 출발할 때는 2시간 반 정도 걸리면 괜찮겠다 싶었는데, 이 정도 시간이면 만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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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 정상석 사진을 몇 장 찍고 맞은편 봉우리에 설치된 나무벤치에 앉아 에너지바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올라오면서 지나쳐왔던 젊은이가 막 올라오고 있어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가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오늘도 인증사진 한장 없이 내려가야 하나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찍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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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봉 아래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월악산은 삼국시대 영봉 위로 떠오르는 달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월형산(月兄山)으로 불렸고, 고려초기에는 ‘와락산’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이는 왕건이 고려를 건국하고 도읍을 정할 때 개성 송악산과 중원 월형산이 경쟁하다 개성으로 도읍이 확정되는 바람에 도읍의 꿈이 ‘와락’ 무너졌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봉은 높이 150m, 둘레 4km나 되는 암반으로 형성돼있으며, 신령스러운 봉우리라 하여 영봉(靈峯) 또는 나라의 큰 스임이 나온다고 하여 국사봉(國師峰)이라고 불렸는데, 우리나라 산 중에서 정상을 ‘영봉’이라고 부르는 곳은 백두산과 월악산 뿐이다.”


이제 산을 내려가야 한다. 내려가는 길이 무릎에 무리를 줄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하지만 그래도 올라올 때보다는 훨씬 빠르게 내려갈 수 있다. 내려가는 중에 그제서야 올라오는 사람들을 몇 명 만났다. 그중에는 외국인들도 보인다. 송계삼거리 안전쉼터를 다시 지날 때는 외국인여자 2명이 나무데크에 앉아 간식을 먹고 있기도 했다.


영봉에서 덕주사까지 내려오는 데는 1시간 반쯤 걸렸다. 화장실에 들러 땀에 젖은 옷을 갈아입고 매점에서 시원한 음료수도 한병 사서 마셨다. 그리고 아침에 미처 보지 못했던 덕주사 경내를 둘러봤다. 대웅보전 (大雄寶殿)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는 약사전(藥師殿) 관음전(觀音殿)이 있고, 왼쪽 끝에는 산신각이 있었다.


약사전에는 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이 모셔져 있었는데, 원래 한수면 정금사 절터에 있던 것을 충주댐을 만들면서 1983년 지금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약사여래불은 12가지 서원을 세워 중생의 질병구제• 수명연장•재화소멸•의식(衣食)만족을 이뤄주며 중생을 바른 길로 인도하며 깨달음을 얻게 하는 부처다.


차를 타고 나오다가 입구에 세워진 ‘덕주사 연혁(德周寺 沿革)’을 볼 수 있었는데, “덕주사는 신라 진평왕 9년(586) 월형산(月兄山) 월악사(月岳寺)를 창건했지만, 경순왕이 고려에 귀의한 뒤 덕주공주(德州公主)가 높이 15m 거암(巨岩)에 마애미륵불을 조성하며 일생을 마친 후 산을 월악산 (月岳山)으로, 절을 덕주사로 개명했다.”


차를 타고 귀가하는데, 피곤하기도 하고 배도 고파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아, 고속도로에서 처음 만나는 충주휴게소에 들러 점심으로 만두가 들어간 떡국라면을 먹고 집으로 오다가, 어제 주유하면서 대기자가 많아 포기했던 세차를 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조금 피곤하지만 뿌듯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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