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27일(수) 맑음
광나루역~ 아차산~ 용마산~ 아차산역
오늘 산행지는 아차산과 용마산이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이다. 규모도 아주 작다. 큰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산이다. 실은, 어제 다녀오려고 했었는데, 아침부터 비가 내리는 바람에 오늘로 미룬 터였다.
가까운 산이라도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은 늘 같다. 개롱역에서 일곱 정거장 지나 광나루역에서 내렸다. 환승 하지 않고 산에 가는 것도 꽤 오랜만이다. 이런 경우는 아차산과 남한산성에 오를 때 뿐이다.
광나루역 1번 출구를 나와 광장중학교와 광장초등학교 방향으로 간다. 광나루는 서울과 강원지방을 이어주던 나루로, 양진.광장.광진으로 불렸으며 조선시대까지 조운업(漕運業)이 성행하던 교통요충지였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이름만 남아있을 뿐이다.
학교 담벼락을 끼고 돌아 아차산 초입에서 ‘아차산 어울림 정원’ 쪽으로 내려간다. 나무데크 계단을 조금 내려가면 양쪽으로 조그만 연못이 있고, 오른쪽에는 인어석상이 앉아있다. 왼쪽에는 분수가 있었는데, 가동하지 않는 건지 없앴는지 보이지 않는다.
연못을 가로지르는 짧은 나무다리를 건너 왼쪽으로 가니 벚꽃이 반발해 있다. 하지만 나무가 몇 그루 없어 아쉬울 뿐이다. 벚꽃을 보면서 조그만 경사를 오르자 ‘아차산 어울림 정원’이라고 쓰여있는데, 아직은 식물이나 나무가 별로 없다.
‘아차산 어울림광장’을 지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왼쪽에는 아차산 표지석이 서있고, 오른쪽에는 ‘아차산성’ 한자(漢子) 표기에 대한 설명문이 세워져 있다. “아차산성 한자표기는 보통 ‘峨嵯山城’으로 한다. 아차산성에 대한 가장 앞선 기록인 <광개토왕비>(414)에는 ‘아단성(阿旦城)’으로 돼있지만, <삼국사기(三國史記)>에 ‘아차성(阿且城)’으로 표시되면서 ‘阿旦’보다는 ‘阿且’가 자주 쓰였다. 고려 후기부터 ‘峨嵯山’이 쓰이면서 지금도 ‘峨嵯山’으로 표기한다. 다만, 문화재청이 1973년 국가사적으로 고시할 때 <삼국사기>를 근거로 ‘阿且山城’으로 표기하면서 공식 문화재 안내문 등에는 이를 따르고 있다.”
아차산성은 <삼국사기>에 백제 책계왕 28년(286)에 수리했다는 기록이 처음 나오며, 396년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이 성을 빼앗았으며, 475년에는 백제 개로왕이 이 성 아래서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벽과 시설물들은 7세기 이후 신라가 축조한 것이다.
아차산과 용마산에는 각각 6개와 7개의 보루(堡壘)가 있는데, 삼국시대 유적이며 반 이상이 고구려 유적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보루’는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시설물로, 소규모 성곽을 일컫는다.
약간 경사진 아스팔트 포장길을 오르다 지금은 말라있는 개울을 건너 가파른 암벽을 오른다. 그런데, 그 암반 사이로 자리고 있는 소나무들이 경이롭다. 조그만 바위 틈을 뚫고 올라와 더디지만 열심히 자라고 있다. 저 정도 자라려면 뿌리는 얼마나 길어야 할까?
암벽 꼭대기에 건축된 고구려정(高句麗亭)에 오르니 아침 해가 산능선을 넘고 있었다. ‘고구려정’은, 삼국시대 치열한 각축장이었던 곳에 1984년 콘크리트 구조로 팔각정을 건립했지만, 노후화된 것을 2008년 1월 철거하고 2009년 7월 새로 건립하면서 ‘고구려정’으로 이름을 바꿨다.
고구려정을 지나면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대성암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 계단을 오르면 해맞이공원이 나온다. 군데군데 진달래꽃이 피어있다. 진달래꽃은 철쭉처럼 군락을 이루는 것도 아니고 꽃 색깔조차 화려하지 않아서 보면서도 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꽃이다.
7시45분, 바위산을 올라 ‘꿈과 희망’ 석탑이 세워져 있는 해맞이공원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한강 쪽을 바라보면 잠실과 강남이 한눈에 들어오지만, 오늘은 공기가 뿌연해서 좀 아쉬운 풍경이다. 해맞이공원에서는 매년 1월1일 새벽에 해맞이행사를 하지만 참석해보진 못했다.
해맞이공원을 지나면 또 다시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은 ‘아차산 1보루’로 올라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조금 에둘러 가는 길이다. 하지만 오른쪽길도 가다 보면 왼쪽길과 다시 만나기 때문에 경사만 조금 다를 뿐 같은 높이만큼 오르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물론 왼쪽길로 올라간다. 바닥에는 야자매트가 깔려있다. 처음 설치했을 때는 바닥이 울퉁불퉁해서 걷기 불편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바닥이 평평해지면 걷기 편하다.
1보루를 내려와 산능선 길을 걷는데, 서울특별시 광진구와 경기도 구리시 경계표시가 있다. 걷는 길은 광진구지만 바로 오른쪽은 구리시다. 그래서인지 시설물을 유지보수 하는 것도 경계에 따라 두 자치단체가 나눠서 하는 것 같다.
아차산 5보루 정상에 소나무가 나란히 서있고, 그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눈부시다. 그런데 가다 보니 보루 순서가 차례대로 돼있지 않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겠다. 알아서 잘 관리하겠지. 하긴 지나면서 보면 보루에 특별한 시설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지나칠 뿐이다.
08시02분, 아차산 정상(295.7m)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차산 3보루 지역이다. 정상이라곤 해도 거의 평지다. 전에는 어디가 정상인지 알지 못했는데, 요즘엔 그나다 정상표시가 돼있어서 아, 여기가 정상이구나 알아챌 뿐이다.
능선길을 따라 걷다가 아차산 끝자락에 있는 4보루에 도착했다. 이곳은 다른 보루들과 달리 주위에 치(雉)가 여럿 설치돼있다. 치는 성벽에 접근하는 적을 옆에서 공격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켜 만든 방어시설로 4보루에는 5개가 있다. 그런데 고구려성에서 치간 거리는 화살의 유효사거리인 80m 정도인데 비해, 이곳은 치간 간격이 매우 좁다. 이것은 방어기능과 함께 성벽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보강구조물 기능도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4보루를 지나 용마산으로 가기 위해 나무데크 계단을 내려간다. 그리고 다시 바위산을 오른다. 아차산 끝자락에서 용마산 정상까지는 1km도 되지 않는 짧은 구간이지만 이처럼 산을 여러 번 오르내려야 해서 꽤나 번거롭다. 게다가 길도 고르지 못해서 자칫 정신차리지 않으면 헛디뎌서 다칠 수도 있다.
용마산 정상아래 산스장에는 두어 명이 운동하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정상으로 올라간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에 사람을 보지 못했었는데 정상에도 두어 명이 있다. 나부끼는 태극기를 동영상에 담고, 정상석도 몇 장 찍었다. 마침 옆에서 서성이고 있는 젊은이한테 부탁해서 정상석 옆에 앉아 인증사진도 한장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구도가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쩌겠나!
용마산 정상에는 대삼각본점이 설치돼있다. 이곳은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토지조사사업을 위해 서울지역에 설치된 2개의 대삼각본점 중 하나(다른 한곳은 양천구 신정7동 갈산공원 정상에 있다)로, 1994년 7월 현재 모습을 갖췄으며, <세계측지계> 도입에 따른 측량기준점으로 이용되는 중요시설물이다. ‘세계측지계(世界測地系1984, World Geodetic System 1984)’는 지구의 질량중심을 원점으로 한 세계적인 측지좌표계로 1984년 발표됐다.
용마산 정상에서 하산하는 길은 세 갈래다. 올라온 길로 되돌아가는 길과 용마산역이나 아차산역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용마산역으로 내려가면 지하철을 환승 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지만, 출발할 때부터 아차산역으로 하산할 계획이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방향을 잡았다. 이 길은 오늘 처음 가지만, 지도를 보면서 가면 길은 찾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오는 길에는 진달래꽃이 더 많이 피어있다. 또한 이 길로 올라오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하지만 길을 물어보진 않았다. 어차피 산을 다 내려가도 지하철역까지는 골목골목을 지나 한참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길을 물어보는 게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용마산 보루를 지나고 산길을 내려가 마을버스가 서있는 곳까지 내려갔다. 마침 ‘광진구청’ 작업복을 입고 가지치기 하는 사람이 있어서 아차산역을 물어보니 처음에는 잘 모르겠다고 하다가 이내 오른쪽으로 쭉 내려가면 될 거라고 했다. 가는 길이 멀기 때문에 자세하게 물어볼 수도 없거니와 여기부터는 지도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조금 내려가다 보니 ‘군자역’과 ‘아차산역’을 향하는 화살표가 나왔다. 어느 역으로 가든 5호선을 한번만 타면 집에 갈 수 있지만, 애당초 생각했던 대로 아차산역 쪽으로 걸었다. 그렇게 지도를 보면서 골목을 돌아 한참 걸어갔더니 드디어 아차산역이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전철이 오긴 했지만, 우리집 방향이 아닌 ‘하남검단산역’으로 가는 거여서 잠시 기다렸다가 ‘마천역’ 방향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