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대서문~ 중성문~ 대남문 코스

by 이흥재

2024년 7월16일(화)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귀국한지 1주일 만에 첫 산행을 나선다. 목적지는 북한산 백운대(白雲臺•836m). 지하철을 타고 구파발까지 가서 다시 704번 버스로 갈아타고 북한산성입구 정류장까지 가야 한다. 지하철은 아침 일찍이라서 앉아갈 수 있었는데, 704번 버스를 타니 사람들이 엄청 많다. 다른 때는 이 시간에 이렇게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앉기는커녕 버스를 타기도 만만치 않다. 알고 보니 오늘이 예비군훈련 소집일이어서 훈련장으로 향하는 예비군들이 많아서라고 했다.


비좁은 버스에 간신히 올라타 힘겹게 매달려 가는데, 북한산엘 가는 듯한 사람들의 얘기를 듣게 됐다. 백운대로 올라가는 등산로를 통제한다는 것이다. 그럼 오늘은 백운대에 올라갈 수 없는 거야! 아무튼, 그래도 갈 수 있는 데까지는 가보자는 생각으로 북한산성입구 정류장에서 내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걸어가 보니 역시 ‘탐방로 통제’ 안내문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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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을 보니, 지난 4월29일 산사태가 발생해 낙석위험이 있어 복구가 완료될 때까지 일부 등산로를 폐쇄한다는 거였다. 주요등산로 4곳 중 통제구간이 대동사부터 백운봉암문까지와 용암문에서 백운봉암문까지 등 2곳이어서 숨은벽이나 영봉을 거쳐 하루재를 지나는 루트로 가면 백운대를 오를 수는 있지만, 산행 출발지점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지금 다시 그곳까지 이동하는 건 무리가 있는 것 같아 부득이하게 오늘은 백운대에 오르는 걸 포기해만 했다.


대신에 대남문 쪽으로 가는 루트를 택했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조금 가다 갈림길이 나올 때 왼쪽 계곡길을 따라가도 되지만, 요즘은 거의 오른쪽 포장도로를 따라 올라가는 편이다.


그 길로 조금 가다 보면 대서문(大西門)을 지난다. 이 문은 1711년 숙종(肅宗) 때 북한산성을 보수,축성하면서 설치했으며, 북한산성을 출입하는 16개 성문 중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지금 모습은 1958년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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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금 올라가면 돌로 만든 ‘地下女將軍’과 ‘천하대장군’을 지나 무량사 (無量寺)에 이른다. 이 절은 고종의 후궁인 순빈엄씨(淳嬪嚴氏)가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藥師佛坐像)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 (영친왕 이은[李垠])을 낳아 순빈의 원당(願堂)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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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올라가 포장도로가 끝나는 곳에 조그만 단층건물이 있는데, 전에는 북한동역사관이었지만, 언제부턴가 자원활동가센터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문은 항상 닫혀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다. 하긴, 북한동역사관으로 쓰일 때 안에 들어가봐도 특별한 전시물은 없었다. 그저 옛날 북한동의 모습을 담은 사진 등이 몇 점 전시돼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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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교를 건너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보리사를 거쳐 대동사로 이어지는데, 대동사부터는 통제구간이기 때문에 올라갈 수가 없다. 그래서 보리사까지만 갔다가 되돌아와 오른쪽으로 간다. 이 길로도 우회해서 백운대에 올라갈 수는 있지만, 역시 용암문부터는 갈 수 없다. 이정표를 보니 대남문(大南門)까지는 3.7km다. 다른 사람들도 다들 오른쪽으로 간다. 하지만 그들의 최종목적지가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대남문까지 3.3km란 이정표에 이르니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까지는 1.9km라고 돼있다. 그러면 총거리는 5.2km다. 산길이긴 해도 쉽게 갈 수 있는 거리다. 탐방로 통제 안내문은 등산로 곳곳에 걸려있다. 만에 하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인 것 같다. 그런데도 이를 무시하고 통제구간을 지나 정상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늘 있다. 그러다가 사고라도 나면 또 세상이 시끄러워진다. 참, 몹쓸 사람들이다.


오전 9시 정각에 중성문(中城門)을 지난다. 대서문에서 여기까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게 중성(重城)을 쌓고, 문을 만들었다. 중성문 옆에는 암문과 수문이 있었는데,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암문으로 시신(屍身)이 나갔기 했기 때문에 시구문(屍軀門)이라고 불렸다. 현재 중성문은 1998년 복원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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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은 산영루(山映樓)를 지나 중흥사(重興寺)로 올라간다. 산영루는 1603년 조선중기 문인 이정귀(李廷龜)가 북한산 일대를 유람한 뒤 남긴 <유삼각산기 (遊三角山記)>에 “산영루 옛터로 내려왔다”는 기록이 있어 17세기 이전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과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그리고 성호 이익(星湖 李瀷) 등이 산영루에 대한 시문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지금의 산영루는 고양시가 2014년 복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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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는 고려초기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져 있으며, 북한산성 축성 때 승군을 통솔하던 팔도도총섭(八道都摠攝)이 머물던 사찰로 명성이 높았는데, 1900년대 초 화재와 홍수로 폐찰(廢刹)이 됐던 것을 2005년부터 불사(佛事)을 시작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중흥사 경내로 올라가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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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흥사를 지나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왼쪽으로 올라가면 북한산대피소와 백운대로 갈 수 있다. 이정표를 보니 대남문까지는 2.0km다. 그리고 여기부터는 처음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길로 백운대를 올라가면서 궁금했던 길이기는 하다.


바닥은 거친 돌들이 많지만 경사가 완만해서 그럭저럭 걸을 만하다. 그런데, 너무 숲이 무성하고 날씨가 흐리니 으스스한 기분이다. 이럴 때 낯선 소리라도 들리면 소름이 돋을 것 같다. 그러다가 이상한 소리를 듣긴 했다. 가까이 가보니 고양이다. 이 산중에 왜 고양이가 와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소리에도 놀랄 만큼 조용한 숲길이다.


대남문으로 가는 동안 유사시 왕실에서 사용할 어공미(御供米)를 저장했던 호조창지(戶曹倉址), 전란시 왕이 임시로 거처하는 별궁인 행궁권역(行宮圈域), 전란에 대비해 식량과 군수품을 보관하던 경리청상창지(經理廳上倉址), 북한산성 내 승영사찰(僧營寺刹) 중 하나인 보국사지(輔國寺址), 북한산성 성곽수비와 관리를 맡았던 금위영유영지(禁衛營留營址) 등을 지났다. 그중 경리청상창지에서는 인부들 여럿이 작업을 하고 있었는데, 궁금해서 가까이 가보긴 했지만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는 물어보지 못했다.


계속 올라가다 보니 2016년 5월부터 대성암(大聖庵) 중창복원 불사를 한다면서 울타리를 쳐놓은 곳에 출입문이 있어 안으로 들어가보니 산 중턱에 조그만 암자 하나와 그 옆으로 사무실인 듯한 역시 작은 건물이 있는데, 안내문을 보니 이곳에서 일요법회도 하고 안거(安居)도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규모로 보아 어디서 법회를 열고 안거를 한다는 건지 알 수가 없다. 마당에는 잡초가 무성해서 드나들기조차 힘들 정도다. 더구나 지금은 사람이 거주하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한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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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12분, 대남문에 도착했다. 이 문은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37) 지어졌는데, 군사를 지휘하고 성문을 지키기 위한 단층 문루가 있다. 지금 문루는 1991년 복원된 것이다. 대남문 앞 돌계단에 앉아 냉커피 한잔을 마시고 참외와 파프리카 몇 조각을 먹었다. 아직은 10시밖에 안됐지만 새벽에 아침을 먹었고 힘든 산길을 걸어와서 그런지 배는 고프지만 덥고 땀이 많이 나니 입맛이 별로 없어서 많이 먹진 못하겠다.


오랜만에 문수사(文殊寺)에 들렀다 내려가기로 했다. 안내문은 보니 이 절은 1109년 탄연 (坦然) 스님이 창건했고, 1451년 문종의 딸인 연창공주 (延昌公主)가 중창했다고 한다. 이후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57년부터 중건하기 시작해 2002년 대웅전(大雄殿)•응진전(應眞殿)•요사 등 대대적인 중창불사가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연창공주는 문종의 딸이 아니라, 세종의 첫 딸이자 문종의 동생인 정의공주(貞懿公主)의 별호였다. 연창공주가 문수사를 중창했다는 기사는 <문종실록> 문종 1년 (1451) 5월5일에 기록돼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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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산을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이정표를 보니 대남문에서 구기분소까지는 2.5km다. 그러니 오늘 산길을 총 7.7km 걷는 셈이다. 내려가는 길 역시 바닥이 돌이어서 넘어질 위험도 있지만, 무릎에 이상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나무계단도 그렇긴 하지만 돌계단은 디딜 때마다 충격이 심해서 한발한발 걱정스럽다.


문수사를 출발해 거의 1시간 걸려 구기분소까지 내려왔다. 하지만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러시아대사관저가 있는 언덕을 넘어가야 한다. 발바닥에 통증을 느끼며 버스정류장 가까이까지 갔는데, 버스가 막 떠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수밖에. 여기까지 오는 버스는 2대가 있다. 그중 7212번은 불광역 방향과 광화문 방향을 번갈아 가고, 7730번은 녹번역 방향으로 간다. 지하철만 탈 수 있으면 어느 곳으로 가든 상관없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광화문 쪽으로 가는 7212번과, 7730번 버스가 나란히 왔다. 7730번 버스가 먼저 출발했지만, 오늘은 광화문 방향으로 가기 위해 7212번 버스를 탔다. 그런데, 에어컨이 너무 센데다 땀에 젖은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지 좀 춥다. 그렇다고 약하게 해달라고는 할 수 없으니 그냥 참고 갔는데, 좀 지나니 적응이 됐다.


낮 12시가 조금 지나 광화문 앞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점심을 먹기 위해 주변을 둘러봐도 마땅한 곳이 없다. 저멀리 KFC가 있길래 가봤더니 대기자가 너무 많다. 결국 점심 먹는 걸 포기하고 지하철을 타고 개롱역으로 와서 홍콩반점에 들어가 1주일 전에 먹었던 짬뽕밥을 주문했는데, 너무 짜다. 꽤 맛있었던 기억이 있어 다시 먹은 건데 앞으로는 더 이상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 식당을 나와 집으로 가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산이 없으니, 비를 맞으며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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