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11일(토) 흐림
코스: 창의문~ 백악마루~ 청운대~ 숙정문~ 혜화문~ 낙산~ 흥인지문
오늘은 한양도성길 걷기 2일차이자 완주하는 날이다. 거리도 창의문부터 혜화문까지의 백악구간 4.7km와, 다시 혜화문부터 흥인지문까지의 낙산구간 2.1km로 총 6.8km 정도다. 어제 일기예보를 보니 오후 늦게 비가 올 거라고 했지만, 오늘은 오전 중에 산행을 마칠 수 있으니 염려할 바가 아니었다. 그런데, 아침에 다시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부터 올 거라고 상황이 바뀌었다. 어쩌나 잠시 망설였지만 이왕 계획한 거니 그냥 출발하기로 했다. 대신 우산을 갖고 가서 필요할 때 쓰면 될 터였다.
출발지인 창의문까지 가려면 지하철은 한번만 타면 되지만, 광화문역에서 버스를 타고 윤동주문학관까지 가야 한다. 버스는 오래 기다리지 않아 도착했다. 휴일아침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 사람도 별로 없다. 맨 앞자리를 차지하고 느긋하게 목적지에서 내렸다.
창의문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에 ‘청계천 발원지(發源地)’란 표지석이 있다. “이곳에서 북동쪽 북악산 정상 쪽으로 150m지점 약수터를 청계천 발원지로 정했다.” 그런데, 정했다? 뉴스를 찾아보니, 그동안 발원지로 알려졌던 인왕산북악산남산 중에서 2005년 3월부터 11월까지의 조사를 통해 북악산인 것으로 확인됐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래서 요즘도 인왕산 쪽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창의문(彰義門)에 도착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에는 4대문(四大門)과 4소문(四小門)이 있었는데, 창의문은 돈의문(敦義門)과 숙정문(肅靖門) 사이에 있으며, 4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 지어진 문루(門樓)가 남아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17)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하며, 이 문 부근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인 자하동과 닮아 자하문 (紫霞門)이라고도 불린다.
몇 계단 올라 창의문 안내소 앞에 갔는데, “북악산 한양도성 자율입산제 시행으로 2023년 12월20일부로 안내소 운영이 종료됐다”는 안내문과 함께 문이 닫혀있다. 예전엔 사전예약 해야만 갈 수 있었던 때도 있었고, 그 후로 사전예약 없이 신분증을 제세한 후 지나다닐 수 있도록 했었는데, 이젠 아예 안내소가 없어졌다. 전에는 안내소를 지나야만 북악산으로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안내소 옆으로 따로 길을 내놓았다.
안내소를 지나자마자 백악마루까지 엄청난 경사의 계단이 시작된다. 그래도 첫 시작이니 힘을 내본다. 5분쯤 오르자 ‘자북정도(紫北正道)’란 표지석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글씨라는데, 본인은 어떤 마음으로 썼는지 모르겠지만, “‘자하문 북쪽의 바른 길’로 풀이되며 ‘정도’는 곧 ‘국가안보’란 뜻”이라고 적어놓은 사람도 있었다. 아무튼 좋은 뜻일 거다.
백악마루 300m 전에 ‘돌고래 쉼터’가 있지만 계속 올라간다. 그렇게 조금 올라가다 보니, “지금부터 경사가 심해 위험하니 천천히 탐방”하란 안내문이 붙어있다. 지금까지와 별로 다를 게 없는데, 조금 뜬금없다. 계속 비슷한 경사도를 유지하면 계단이 설치돼있으니, 지금보다 훨씬 아래 붙여놓아야 할 안내문 같다. 아무튼, 조심하면서 계속 올라간다.
백악쉼터를 지나 8시쯤 백악마루에 도착했다. 이정표를 보니 창의문에서 800m 지점이다. 그런데, 이렇게 힘들다고! 급경사를 올라왔으니 그런가 보다. 백악산(白岳山 342m) 표지석 옆에 있는 안내문은 보니, “이곳은 1979년 10월15일부터 2000년 9월9일까지 북악통제대와 발칸진지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아, 그래서 이곳을 통행제한 했었구나!
‘백악산’ 이름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백악산은 ‘북악산(北岳山)’이라고도 하는데, 어떤 이들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북악산으로 불렸다고 하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그렇게 실려있다. 하지만, 어불성설 (語不成說)이다. 드물지만, 조선왕조실록에도 ‘북악산’이 몇 차례 언급된다. ‘백악’은 백악산신(白岳山神)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뜻으로 볼 땐 백악산이라 하고, 방위를 중시할 땐 북악산이라고 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백악산에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 ‘1.21 소나무’가 있다. 1968년 1월21일, 북한 무장공비들이 청와대 습격을 목적으로 침투해 경찰과 교전할 때 총탄 흔적이 있는 소나무다. 침투한 무장공비 31명 중 28명은 사살되고 2명은 도주했으며, 유일한 생존자 김신조는 후에 목사가 됐다. 또한 이 사건을 계기로 같은 해 4월1일 향토예비군이 창설됐다.
08시09분, 오늘 첫번째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 청운대(靑雲臺 293m)에 도착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남자 둘이 있다. 얼른 핸드폰을 내밀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오다가다 사람들을 만나긴 했지만, 딱 필요한 곳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너무 감사하다. 핸드폰을 받아 들고 주변경치를 몇 장 더 찍고 숙정문을 향해 간다.
백악산 조망명소인 청운대 쉼터를 지나 백악곡성(白岳曲城) 밑에서 올라가볼까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지나친다. 거리는 40m에 불과하지만 이곳 역시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려야 해서 만만치 않은 길이다. 사실 탁 트인 시야 말고는 딱히 볼거리도 없다.
백악마루에서 1.2km 지나 ‘백악촛대바위’에 도착했다. 그런데 모양으로는 왜 그런 이름을 붙였는지 알 수 없다. 어떤 이가 써놓은 글을 보면, “1920년대 일제가 민족정기 말살을 위해 쇠말뚝을 박았었는데, 이를 뽑고 지석을 놓았다”고 했는데, 길을 막아놓아 가까이 가긴 어려워 확인이 쉽지 않다. 사진을 찍어보니 큰 바위 위에 조그만 지석이 보이긴 하는데, 그 모양을 따라 촛대바위라고 했나 보다. 하지만 내 눈엔 이 모든 게 억지로 보인다. 서울의 산을 다니다 보면 지금도 바위에 박혀있는 쇠말뚝은 많다. 물론 해방 후에 박아놓은 것들이다. 촛대바위 옆에는 소나무 보호군락지도 있다.
일제가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부르짖으며 우리를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하려던 것은 맞다. 하지만, 이는 창씨개명(創氏改名)이나 역사왜곡(歷史歪曲) 같은 구체적인 것들로 비판해야지, 수탈이니 쇠말뚝이니 하는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것으로 왈가왈부 할 일은 아니다. 일제가 만들어놓은 역사왜곡은 아직도 많은 부분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나?
08시32분, 숙정문(肅靖門)에 도착했다. 한양도성 4대문 중 북대문(北大門)에 해당하는 문이다. 하지만 다른 3개 대문에 대해서는 동대문(東大門)서대문 (西大門)남대문(南大門) 등으로 조선왕조실록에 실려있지만, 북대문은 찾아볼 수 없다. 아마도 산속에 있어 쓰임새가 많이 않아서였을 것이다. 게다가 풍수상의 이유까지 겹쳐, 이 문은 만든 이후 별로 쓰지 않았다. 숙정문은 숙청문(肅淸門)이라고도 했으며, 현재 문루는 1976년 지은 것이다. 이곳에서 마지막 스탬프를 받고 혜화문을 향해 간다.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는데 이곳 역시 운영이 종료돼 문이 닫혀있다. 그런데 사무실은 물론 화장실조차 폐쇄되는 바람에 이곳을 이용했던 사람들은 아쉬울 것 같다. 그래도 사무실 옆 데크는 남아있으니 이곳에서 쉴 순 있다.
와룡공원과 삼청공원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와룡공원 쪽으로 향한다. 작은 글씨로 ‘혜화문 방향’이라고 쓰여 있어서다. 그런데 가다 보니 정식 한양도성길이 아니다. 그러니 조금 돌아온 셈이지만 얼마 안가 합류할 수 있었다.
삼거리 지나 데크 위에 전망대가 있는데, 멀리 삼청각(三淸閣)이 보인다. 이름이 낯익어 인터넷을 찾아보니, 1972년 건립돼 1970~1980년대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다가, 후에 경영난을 문을 닫기도 했었지만 2022년 새로 개관해 음식점과 공연전시장 등으로 쓰인다고 한다.
와룡공원을 지나 성벽을 따라 내려가 혜화문(惠化門)으로 향한다. 가다 보니 이상한 길이 있다. 오른쪽 건물엔 ‘혜화로6길’, 왼쪽 건물엔 ‘창경궁로35다길’이라고 표시돼있다. 어떻게 된 거지? 입구가 다른 쪽에 있어서 그런가? 그러면 왜 여기에 번호 표지판을 붙여놨지? 아리송하다.
오늘은 혜화문을 올라가 봤다. 이곳 역시 가파른 계단을 꽤 올라야 한다. 이 문은 비교적 최근에 지은 거라서 그런지 아직 칠도 마르지 않은 것 같다. 이 문 역시 사연이 많다. 본래는 지금의 큰 도로에 있던 것인데, 일제 때 도로를 확장하면서 없앴다가, 1994년 지금 자리로 옮겨 새로 지었다. 그래서 건립위치를 갖고 왈가왈부 하는 이들도 있는데, 어쩔 수 없으면 받아들여야 하지 않나? 그렇다고 큰 도로 한가운데 세울 수도 없는 노릇이고! 어차피 세월을 받아들일 수 밖에.
혜화문에서 내려가려는데 앞쪽 계단이 막혀있다. 보수 중이란다. 어쩔 수 없이 되돌아와 뒷문으로 내려가 큰 길을 건너 낙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성돌모양을 볼 수 있다. 기록에 따르면, 한양도성은 크게 4번 수리했다는데, 그때마다 사용한 돌들이 모두 다르다. 게다가 최근에 수리하는 돌은 또 다르니 이래저래 다양한 모양의 성돌이 있게 됐다. 화강암을 크고 각지게 깎아 쌓은 곳은 반듯한데 반해 조선 초에 쌓았을 호박돌로 쌓은 구간은 배부른 곳들이 꽤 있다. 아마도 토압 때문에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 같다. 이러다가 언젠가는 허물어질 것 같은데. 지금은 주위에 주택들도 많아서 피해를 입을 것도 같고. 여러 전문가들이 수시로 점검하고 있을 테니, 걱정은 잠시 미뤄두자.
장수마을을 지나 가파른 언덕을 올라 마지막 인증장소인 낙산 정상으로 향한다. 언덕을 다 오르고 나면 오른쪽으로 성안으로 들어가는 조그만 문이 그 문을 지나 왼쪽으로 조금 가면 ‘낙산공원’ 팻말이 세워져 있고 거기서 인증사진을 찍으면 된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어서 사진부탁 하기가 너무 쉬었다. 또 한번 감사하다.
이제 오늘 마지막 목적지인 흥인지문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은 크게 두 갈래인데, 왼쪽은 성벽에 붙어있는 길이고 오른쪽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다. 성벽길이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포장길에 차들이 자주 다녀서 너무 성가시기 때문에 성벽길을 따라 내려간다. 중간에 그늘막이 있어서 잠시 앉아 간식을 먹었다.
흥인지문에 가까워올수록 사람들이 많아진다. 오늘도 외국인들이 꽤 보인다. 흥인지문에 도착해 근처에 있는 ‘흥인지문공원’ 팻말 사진을 찍고 큰길을 건너 지하철을 타러 간다. 바로 앞에 있는 동대문역에서 탈 수도 있지만, 한 정류장만 가서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5호선을 탈 수 있는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걸어가기로 한다. 처음 가는 길이다. 한 정거장이니 금방 갈 수 있다. 물론,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은 귀찮아할 수도 있지만, 걷는 김에 내처 걸었더니 더 피곤하진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