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8일(수) 맑음
코스 : 흥인지문~ 남산~ 숭례문~ 돈의문터~ 인왕산~ 윤동주문학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 위해 이달말 출국을 앞두고, 5월에는 가볍게 마무리 산행을 하기로 했다. 대상은 한양도성길과 송파둘레길이다. 그래도 시간이 좀 남긴 할 텐데, 그건 또 나중에 생각해보자. 한양도성길은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전체 길이는 18.6km, 송파둘레길은 4개 코스로 나뉘어 전체 길이가 21km라서 하루에 걷기엔 조금 버거울 것 같아, 각각 2번에 나눠 걷기로 했다.
오늘은 첫날, 한양도성길 걷기 제1일이다. 출발지점은 흥인지문(興仁之門) 앞이다. 그곳에 첫번째 스탬프 받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흥인지문까지 가려면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는 조금 거리가 있어 한번 갈아타고 동대문역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7번 출구로 나가 한양도성 스탬프투어 앱을 열면, 두둥 스탬프가 찍힌다. 그곳에서 흥인지문 사진 몇 장 찍고, 한양도성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한양도성길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로 향해 있다. 그곳에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도 있고. 그러니까 스탬프를 받기 위해 동대문역까지 다녀온 셈이다. 하긴, 그건 내 사정이고 공식적인 루트를 그렇게 정해져 있으니 그대로 따라간다.
DDP는, 2007년말 옛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2009년 공사를 시작해 2014년 3월 개관했으며, 쇼핑몰과 전시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설계는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사로, 여성 최초의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자하 모하마드 하디드가 했다. 프리츠커상은 프리츠커 가문이 운영하는 하얏트 재단에서 수여하는 상으로,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린다. 건물 외벽은 은색 알루미늄 외장패널 45,133장을 붙였다고 한다.
DDP 옆에는 이간수문(二間水門)이 있다. 이간수문은 조선 초기부터 남산의 개울물( 南小門洞川)을 도성 밖으로 흘려 보냈던 시설이며, 2칸의 반원형 아치가 있어 이간수문이라고 부른다. 일제강점기 경성운동장 건립 때 파괴됐던 것을 DDP를 건립하면서 발굴복원했다. 전에는 밑으로 내려가서 사진을 찍었었는데, 오늘 보니 위에서 반대쪽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생긴 모양은 양쪽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야자매트가 깔린 길을 따라 광희문 방면으로 가는 길 옆에, 1955년 제3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최초로 이용됐던 성화대가 설치돼있다. 성화 전국일주는 1969년 제50회 전국체육대회 때부터라고 한다.
길을 건너 광희문(光熙門)에 도착했다. 광희문은 한양도성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屍軀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으로 불렸다. 조선시대 때는 도성 안에 무덤을 둘 수 없어 시체를 도성 밖으로 내보냈는데, 서소문(西小門= 昭義門)과 함께 광희문으로 시체를 운반했다. 일제 때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곳에 고쳐 지었다.
장충체육관 쪽으로 걷다 보니, 축성시기에 따른 축조형태를 알려주는 안내문이 보인다. 한양도성은 크게 세 차례 고쳐 쌓았는데, 태조 때(1396) 처음 쌓을 때는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고, 세종 때(1422) 처음 고쳐 쌓을 때는 옥수수알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했다. 숙종 때(1704)는 성돌크기를 40~45cm 내외의 장방형으로 규격화했고, 마지막 순조 때(1800)는 정방형 60cm로 정교하게 다듬어 쌓았다.
장충체육관에서 다산성곽길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이곳엔 안팎으로 길이 나있는데, 오늘은 안쪽 길로 간다. 그런데 시작부터 또 계단이다. 이젠 그러려니 하니, 견딜 만하다. 그래도 이내 길이 부드러워지고 나무가 많아 그늘지니 땀은 많이 나도 그렇게 덥게 느껴지진 않는다.
반얀트리 호텔과 국립극장을 지나 남산으로 간다. 한양도성길은 성곽을 따라 조성돼있기 때문에 성곽처럼 급경사 구간이 많다. 포장도로를 따라 빙 돌아서 남산으로 올라갈 수도 있지만, 길도 더 멀 뿐더러 오늘은 한양도성길을 걸으니 왔으니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오른다.
계단을 한참 오르다 보면 만나는 전망대에서는 국립국장과 신라호텔은 물론 멀리 북한산과 도봉산도 보인다. 그런데 맑은 날인데도 멀리는 뿌옇게 보인다. 아마도 요즘 심한 미세먼지 때문인 것 같다.
전망대에서 잠시 내려가다가 다시 가파른 경사로가 시작된다. 계단은 없지만 워낙 가팔라서 오르는 게 쉽지 않다. 이럴 땐 차라리 계단이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물론 계단이 있다면 또 다른 생각을 했겠지!
올라가는 길 옆에 남산팔영(南山八詠)이란 안내판에 세워져 있다. 조선 태종 때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1466년[세조12] 한성부윤[漢城府尹]을 고쳤다)를 지낸 정이오(鄭以吾)가 남산의 빼어난 8가지 경치와 조망에 대한 시를 지었는데, 리를 남산팔영이라고 한다. 안내판에 세워진 곳은 일곱번째인 척헌관등 (陟巚觀燈), 즉 초파일 남산에 올라 연등 구경하기다. 이외에 운횡북궐 (雲橫北闕 구름이 흘러가는 경복궁의 운치), 수창남강(水漲南江 장마철에 물이 넘쳐흐르는 한강전경), 암저유화(巖底幽花 바위 틈새에 피어있는 그윽한 꽃들), 영상장송(嶺上長松 언덕 위 큰 소나무 전경), 삼춘답청(三春踏靑 봄날 남산나들이), 구일등고(九日登高 중양절 남산 오르기), 연계탁영(沿溪濯纓 계곡에서 갓끈을 씨는 선비들의 운치) 등이 있다.
남산공원 안내소를 지나 N타워가 있는 남산 정상에 도착했다. 남산은 해발 270m로, 본래 이름은 인경산(引慶山)이었는데, 조선초 태조가 남산 산신에게 목멱대왕이란 벼슬을 내리고 제사 지내면서 목멱산(木覓山)으로 봉했다. 그러다 한양 남쪽에 있는 주작(朱雀)에 해당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남산 (南山)으로 불리게 됐다.
정상 한켠에는 서울 중심점이 설치돼있다. 서울은 조선 태조 때 한양천도 후 행정구역이 확장되면서 한양도성 중심에서 한강 남북을 아우르게 되고, 이곳이 서울의 지리적 중심점이 됐다. 이 표지는 우리나라의 지리적 위치결정을 위한 측량 출발점인 대한민국 최초의 경위도 원점이었던 곳에 설치됐다.
남산 팔각정 옆에는 국사당터(國師堂址)가 있다. 조선 태조 4년(1392) 12월, 남산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작하고 목멱신사를 세워 국사당으로 불러오다가 1925년, 일제가 남산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을 세우면서 국사당이 신사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종로구 무악동으로 옮기면서 인왕산 국사당(仁王山 國師堂)으로 불리게 됐다. 국사당은 1973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울타리에 걸려있는 열쇠사진을 찍고, 오늘 첫번째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봉수대 앞으로 갔다. 마침 가까운 곳에서 손을 씻고 있는 사람이 있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찍어줬다. 고마운 일이다.
이곳 봉수대는 서울에 있어서 경봉수(京烽燧)라고 불렸었는데, 전국 봉수가 집결됐던 곳이다. 봉수제도는 연기나 불을 피워 변방의 긴급한 사정을 중앙까지 알리는 통신수단이다. 남산에는 5개 봉수대가 있었는데, 이곳은 1993년 그중 하나를 복원한 것이다.
숭례문(崇禮門)을 향해 남산을 내려가다 잠두봉 포토아일랜드에 잠시 들렀다. 깎아지른 듯한 바위형상이 누에머리(잠두[蠶頭])를 닮았다고 해서 유래한 지명이며, 이곳에서는 서울시내는 물론 북한산도봉산 등 서울주변 산들을 조망할 수 있다.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지난다. 특히 이곳 계단은 계단높이도 다른 곳보다 높고, 계단참도 넓어 내려가기가 워낙 불편한 게 아니다. 한발에 한 계단씩 내려가자니 조금 버겁고, 그렇다고 두 발에 가자니 성가시다. 이래저래 조금 짜증나는 내리막길이다.
09시30분, 숭례문에 도착했다. 두번째 스탬프를 받는 곳이다. 계단을 내려가 굴다리를 지나는데 예쁘게 생긴 손지갑을 싸게 팔길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중 고마운 사람을 만나면 기념품으로 주기 위해 몇 개 샀다. 그리고 스탬프를 받고 숭례문을 찍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는데, 먼저 와서 찍고 있는 외국인이 있어서 잠시 기다렸다가 얼른 찍었다. 그 와중에 몇몇 사람들이 또 그곳을 지나갔다. 구경거리뿐 아니라 통로구실도 하는 것 같다.
숭례문은 조선 태조 7년(1398) 세워졌으며, 세종성종고종 때 크게 수리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 철거됐던 성곽을 한국전쟁이 끝난 후 응급 복구했고, 1961년부터 1963년 사이 전면해체 보수작업 했다. 2008년 방화사건으로 훼손된 것을 2013년 4월 복구하면서 성곽도 함께 복원했다.
남지터(南池址)를 지난다. <한성부 내 연지(蓮池) 연구>란 서울대학교 박사학위 논문을 보면, 서울에는 동지(東池)서지(西池)남지(南池)어의동지 (於義洞池)경모궁지(景慕宮池) 등의 연못이 이 있었다고 하며, 남지는 숭례문 밖에 있던 연못으로 장원서(掌苑署)에서 관리했다.
아펜젤러 기념공원과 배재어린이공원, 정동제일교회를 지난다. 전에 이승만대통령 관련 행사가 있을 때 몇 번 이 교회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보니 생각보다 규모가 꽤 크다. 그때 드나들었던 건물은 별관쯤 되는
것 같고, 오른쪽에 꽤 큰 본관이 있었다. 또한 그 중간에는 높다란 100주년 기념탑도 세워져 있다. 교회 앞에 있는 안내판을 보니 1885년 설립된 한국 최초의 개신교회다. 이승만대통령 등 개화기 인물들이 예배를 보던 곳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승만대통령 관련 행사를 이곳에서 자주 열었었나 보다.
교회에서 정동길을 따라가다 사거리에서 새문안로를 건너가면 돈의문터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없고 인근에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있다. 돈의문(敦義門)은 한양도성 서대문(西大門)으로 정동사거리 한복판에 있었는데, 1915년 도로확장을 위해 철거했다. 처음 돈의문은 1396년 지어졌지만 1413년(태종13) 서전문(西箭文)에 성문기능을 넘겨줬다가 1422년 (세종4) 서전문을 닫고 돈의문을 옮겨 세웠다. 이후 돈의문은 새문 또는 신문 (新門)으로 불렸다. 지난 1월, 새문안로를 지하화하고 원래 자리에 돈의문을 복원한다는 뉴스가 있었는데, 언제 추진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돈의문터에서 세번째 스탬프를 받고 인왕산으로 향한다. 돈의문터에서 인왕산까지는 2.5km쯤 된다. 전에 한번은 이 지점에서 길을 잃은 적이 있었는데, 오늘 보니 그렇게 복잡한 곳이 아니었다. 아무튼 ‘한양도성’ 이름만 잘 따라가다 보니 인왕산 등산로입구가 나온다. 그곳엔 언제나 편의점 세븐일레븐이 있어 이정표 구실을 한다.
멀리 인왕산이 보인다. 그리고 여기부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이 늘었다. 단체로 온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더운 날씨에 가파른 산길을 계단으로 오르려니 땀은 비오듯 하지만 습도가 높지 않은지 무덥지는 않다. 그저 땀을 닦고 그늘에 들어서면 이내 시원해지는 것 같다.
인왕산을 450m 남겨둔 지점에 있는 작은 봉우리에 사람들이 모여있다. 앞에 보이는 인왕산을 바라보며 언제 오르나, 염려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아무렴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포기하면 되겠어! 여기서는 청와대와 경복궁이 다 보이는 곳인데, 너무 멀어서 사진으로 담긴 어렵다.
인왕산 정상을 향해 마지막 피치를 올린다. 올라온 길도 그렇지만, 아직도 가파른 오르막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이 험한 곳을 오르는 것만도 이렇게 힘든데, 성벽을 쌓은 조상들은 존경을 넘어선 존재들이다.
11시 정각, 드디어 인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여기서 두번째 인증사진을 찍어야 한다. 오늘은 다행히 산에 온 사람들이 많아 부탁하기 쉽다. 처음에 나이 좀 든 사람한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뭔가 못마땅해 보인다. 그저 무시하고 핸드폰을 받아 든 후 이번엔 다른 젊은이한테 또 사진을 부탁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먼저 사람이 더 잘 찍었다. 암튼, 고맙다!
정상바위에서 내려와 그늘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메뉴는 약밥과 파프리카, 그리고 커피 한잔이다. 그런데 더워서 그런지 입맛도 없는 것 같아 약밥을 반만 먹고 말았다. 빨리 집에 가서 저녁 일찍 먹으면 되지 뭐! 짐을 챙겨 마지막 목적지인 윤동주문학관을 향해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자칫하면 무릎에 무리가 갈 수 있으니 조심이 제일이다. 윤동주문학관과 인접해있는 창의문(彰義門)까지 가리는 1.6km다. 내려오는 길 옆에 울타리가 쳐져 있는데, 공사안내판을 보니 지난 2022년 12월부터 올해 11월까지 성곽보수공사를 하는 중이었다. 하긴 오래되어 낡은 성곽이다 보니 지속적으로 보수공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이곳에도 연리지(連理枝)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부부소나무’라고 돼있고, 설명도 좀 다르다. “한 나무가 죽어도 다른 나무에서 영양을 공급해 살아나도록 도와주는 연리지는 예로부터 귀하고 상서로운 것으로 여겼다.” 새로운 해석이다. 그런데 이곳 연리지는 다른 곳에 있는 것보다 좀 망측스럽게 생겼다. 모양이 너무 노골적인 것 같다.
윤동주문학관 바로 위에 있는 서시정(序詩亭)을 지난다. 그런데 나무가 너무 우거져 사진 찍기가 어렵다. 그래도 한장쯤 찍어야지.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올라 <서시> 시비(詩碑)를 찍고 윤동주문학관으로 내려가 버스를 타고 광화문에 내렸는데, 사람이 엄청 많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부처님오신날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고, 외국인도 많아 와있다. 지하철역으로 내려가 5호선 전철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