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3일(금) 맑음
오늘은 북한산둘레길을 완주하는 날이다. 둘레길 전체 71.5km 중 우이령길 6.8km만 걸으면 된다. 그런데, 실은 출발지점과 끝나는 곳에서 버스나 전철을 타기 위해 걷는 거리까지 합치면 전체거리는 거의 80km 정도는 된 것 같다.
우이령길은 서울 우이동이나 양주 교현리 중 어느 한 곳에서 출발해 반대쪽으로 넘어가면 되며, 사전예약을 통해 통행이 가능했었는데 올해 3월부터는 9~11월과 주말을 제외하고는 예약 없이 통행할 수 있도록 제도가 변경돼 요즘은 주말이 아니면 아무 때나 갈 수 있도록 돼있다.
오늘은 우이동에서 출발하기 위해 지하철을 2번(청구보문) 갈아타고 북한산우이역으로 갔다. 그런데, 보문역에서 우이신설선을 갈아탄 다음 문제가 생겼다. 북한산우이역은 우이신설선 종점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모두 내릴 때 따라 내리면 된다고 생각해서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별 생각 없이 앉아있었다.
그런데 좀 시간이 지난 후부터 사람들이 급격히 많아졌다. 어! 어떻게 된 거지? 종점으로 갈수록 사람들이 많아질 리가 없는데! 그제서야 역명을 확인해보니 다시 보문역이다. 그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종점인 신설역까지 갔다. 그런데도 다 내리지 않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있다. 뭐지? 그때서야 이 경전철은 종점 사이를 쉼 없이 왕복하고 있었던 거다. 나중에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이곳은 무인으로 운행되기 때문에 휴식이 필요 없는 구간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40분(신설동역에서 북한산우이역까지 대략 20분 정도 걸리는데, 왕복했다)을 허비하고 나서야 북한산우이역에 내렸다.
북한산우이역 2번 출구로 나가, 북한산둘레길 걷기 첫날과 반대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앞에 몇몇 젊은 사람들이 가고 있어 풍경사진 찍는데 방해되는 것 같아 빠른 걸음으로 앞질렀지만, 사진 몇 장 찍다 보면 다시 뒤처지길 반복하며 걸었다.
한참 걷다가 갈림길이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하나 확인하기 위해 지도를 봤는데, 어! 둘레길이 아니다. 어디서부터 잘못 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다행히 둘레길은 멀지 않았다. 조금 걷다 보니 우이령탐방지원센터가 나왔다. 탐방예약을 했을 때는 이곳에서 예약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부터 젊은이들이 많아졌다. 아무도 어디선가 단체로 우이령길을 걷는 것 같았다.
조금 걷다 보니 ‘우이령길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1983년 15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며, 우이령을 경계로 북한산과 도봉산으로 나뉜다. 소귀고개로 알려진 우이령은 1968년 무장공비 침투사건 이후 출입이 금지됐다가 2009년부터 예약제로 개방됐다.”
걷다 보면, 북한산 깃대종에 대한 설명도 있다. “깃대종(flagship species)은 특정지역 생태지리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생물종 중 보호가치가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곳 깃대종은 산개나리와 오색딱따구리다.”
출발한지 40분만에 우이령 정상에 도착했는데, 대전차 장애물이 설치돼있다. 벽 밑바닥에 폭약을 설치해 유사시 폭파시켜 적의 진격을 저지하는 군사시설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현대전에는 무용지물일 것 같다. 요즘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보면 전차가 진격하기 전에 후방지역부터 공격하기 때문인 것도 있고, 요즘은 여러 곳에 넓은 도로가 뚫려있는데, 굳이 이런 산길로 올 것 같지도 않다. 아무튼, 가슴 아픈 유물임은 틀림없다.
도봉산 오봉이 보이는 곳에 설치된 오봉전망대 앞에 우이령길 포토포인트가 있다. 이로써 21개 포토포인트 인증사진을 모두 찍었다. 옆에 오봉의 유래에 대한 설명문이 있었다. “한 마을 다섯 총각들이 원님의 어여쁜 외동딸에게 장가들기 위해 상장능선(오봉과 마주한 북한산 능선)의 바위를 오봉에 던져 올리기 시합을 하여 현재의 독특한 모습의 봉우리가 만들어졌다.” 전설치곤 너무 싱겁다. 그래서 어땠다고? 결말이 없다. 황당한 내용에 전개마저 황당하다. 아무튼, 오봉 산꼭대기 둥근 암석은 ‘토르(tor)’라고 하는데, ‘똑바로 서있는 석탑’을 뜻한다. 이는 본래 영국 다트무어(Dartmoor) 지방에 있는 화강암덩어리를 지칭하는 지방어였는데, 현재는 세계 공통용어가 됐다고 한다.
우이령길을 걷다 보니 오봉이 잘 보이는 곳이 여럿 있었다. 어떤 곳은 오봉전망대보다 더 가까이 뚜렷하게 보이는 곳도 있었지만, 어느 곳이나 핸드폰 카메라로 찍기엔 좀 멀었다.
우이령에서 500m쯤 지나온 지점에 앞서 걷던 젊은이들이 모두 모여있다. 아마도 여기까지 걸으려는 건가 보다. 그런데, 어디로 가려고? 여기는 우이동과 교현리 중간지점이어서 어디로 가든 거리를 비슷할 텐데. 그래도 그들의 목적지가 있다면 그쪽으로 가겠지!
차량통제소를 지나 유격장 앞에 왔을 때 문자로 슬픈 소식을 들었다. 며칠 전에 송이가 임신했단 소식을 들었었는데, 유산됐다는 거였다. 이런 염려를 걱정해서 그랬는지, 그때도 임신소식을 알리려고 하지 않았는데, 손자가 말해버려서 알게 된 거긴 했다. 아무튼, 실감나진 않지만 왠지 서운하다. 옛말에 ‘든자리는 몰라도 난자리는 안다’고 했는데, 듣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프다. 하긴 당사자는 오죽할까? 빨리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회복하길 바랄 뿐이다.
10시 정각. 교현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앞에서 빗자루를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여자가 있었는데, 이곳의 유일한 직원인 듯했다. 잠시 머뭇거렸더니 무슨 일이냐고 해서 완주인증서를 받으려고 한다니까,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인증사진을 보여달라고 해서 핸드폰을 내밀었더니 확인한 후에 스탬프투어 패스포트를 달라고 건네줬더니 칸마다 스탬프를 찍어주고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북한산둘레길 완주인증서’에 관리번호를 적어줬다. 2024-1513. 올해 나보다 먼저 완주한 사람들이 1,500명이나 된다는 거였다.
직원이 마지막으로 둘레길 인증배지를 주길래 나도 배낭에 달고 다니던 산티아고 순례길 기념배지(조가비와 태극기가 그려져 있는)를 빼서 줬더니 아주 좋아했다.
500m쯤 걸어 큰길로 나와 버스를 타고 구파발역까지 가서 지하철을 바꿔 타고 오늘도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