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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둘레길 제4일, 보루길 ~ 왕실묘역길

by 이흥재

2024년 5월1일(수) 맑음


™ 16구간 보루길~ 17구간 다락원길~ 18구간 도봉옛길~ 19구간 방학동길~ 20구간 왕실묘역길


오늘 걸을 시작지점인 화룡탐방지원센터까지 가려면 지하철을 타고 회룡역까지 가서 3번 출구로 나가 1.2km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군자역에서 지하철을 갈아타기 위해 내렸는데, 급히 화장실엘 가야 해서 어쩔 수 없이 개찰구를 빠져나갔다가 볼일을 본 후 회룡역을 갔다.


오늘이 공휴일(근로자의 날)인 걸 생각지 못하고 산행날짜를 잡은 거였는데, 그래선지 산에 가는 사람들이 꽤 보였다. 그렇지만 대부분은 산 정상으로 가는 사람들이지, 나처럼 둘레길을 걸으려는 사람들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평일과 다르게 둘레길에서 드문드문 사람들을 만나긴 했다. 마을과 가까운 구간에서는 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사람들도 대부분 산 정상을 향하고 있었다.


회룡역에 도착한 시간은 7시48분. 화장실에는 이미 다녀왔으니 바로 3번 출구로 나가 회룡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신호등을 몇 번 건너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지만 휴일 아침이라 차들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하고 매연냄새도 거의 나지 않아 좋았다.


회룡역에서 10분 남짓 걸어 산길로 접어드는 마을입구에 400년 넘은 회화나무가 있는데, 겨울철에 앙상한 가지만 보다가 푸르른 잎이 돋아난 나무를 보니 싱그러워 보였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려고 보니 바로 옆에 중장비들이 서있어서 조금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옆에 설명문을 보니,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때 수령이 420년이라고 했으니 이제 460년이 넘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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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룡탐방지원센터 옆에 있는 이정표를 보니 회룡역까지 1.2km라고 하는데, 시간을 보니 15분쯤 걸렸다. 지난번 롯데월드타워 수직마라톤을 하고 나서 체력이 좋아진 것 같다. 그 전에도 나름대로 꾸준히 운동하고 있었는데, 왜 그런지 이유는 잘 모르겠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걸 이루고 나니 심리적으로 힘이 더 생기는 건가?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200m만 가면 왼쪽으로 16구간 보루길 입구가 있다. 그런데, 보루길은 회룡탐방지원센터에서 오른쪽으로 100m 지점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그곳에 세워놓은 입구를 보면 안골길(15구간)이 끝나고 보루길이 시작되는 것으로 돼있다. 아무튼, 입구를 지나 산길을 오른다.


산길을 5분 남짓 올라 ‘보루전망대’에 도착했는데, 앞에 붙여놓은 사진을 보니 천보산•죽엽산•용암산 등 처음 보는 산이름들이다. 오른쪽 끝에 수락산이 보이긴 했다. 그래도 오늘은 날씨가 좋아 멀리까지 보이니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 첫번째 포토포인트(보루길)에 도착했는데, 거기부터 급경사 내리막길이다. 바닥에 돌을 깔아놓아서 자칫 넘어지기라고 하면 큰 사고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겠다.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사패산에도 보루가 있었다. 이곳은 3보루인데, “1보루에서 800m, 2보루에서 940m 떨어진 곳으로, 수락산보루와 대응하며 중랑천을 따라 남북으로 연결되는 고대 교통로을 통제하는 역할을 했던 보루로 추정된다.” 아, 그래서 여기가 ‘보루길’이 됐구나! 그러고 보니 서울주변 대부분의 산에 보루가 설치돼있었나 보다.


원심사란 작은 절 앞에 도착했는데, 절로 올라가는 나지막한 언덕길에 분홍꽃잎들이 깔려있다. 말 그대로 ‘꽃길’이다.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보기 좋으라고 놔둔 건지를 모르겠다. 마음의 여유가 있다면 쉬엄쉬엄 절구경도 해야겠지만, 오늘 목표는 20구간까지 무사히 걷는 것이니 그냥 지나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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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파른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따라 채 5분도 내려가지 않았는데, 다시 오른쪽 산길로 들어간다. 이정표에는 원심사까지 400m로 돼있다. 작은 계곡에 놓인 원심교란 나무다리를 건너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올라가다가 이번엔 돌다리로 계곡에 난 개울을 건넌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적멸보궁 도봉산 영산법화사’라고 쓰인 표지판을 따라 아스팔트 포장길을 올라간다. 그런데, 적멸보궁(寂滅寶宮)은 사찰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하고 있는 불교건축물로, 우리나라에 5대 적멸보궁이 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포함돼있지 않다. 하긴 진신사리가 석가모니의 실제유해라고 하는데, 그 옛날(석가모니가 입멸한 해가 서기전 480년이라고 하니 2,500년전) 그것을 어떻게 구해서 모셨는지 알 수 없다. 하긴 종교에서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으니, 그저 믿는다면 그만이긴 하겠다.


포장길을 조금 걷다 왼쪽으로 난 산길로 올라간다. 그리고 원각사(圓覺寺) 앞에 다다르니 다락원길 시작지점이다. 이 구간은 ‘다락원터(樓院店址)’를 지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 같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원(院)’은 조선시대 수령(守令), 공용여행 중인 관원, 기타 일반인 여행 등에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도로상에 설치된 숙박시설이며, 도봉구 경내에 다락원(樓院)이 설치돼 있었고, 그 터가 남아있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 이름만 남아있는 것 같다.


포장길을 따라 내려가다 망월사 입구에서 오른쪽 길로 간다. 이정표엔 원도봉입구까지 0.8km, 다락원까지 2.5km로 돼있다. 어딘지도 모르고 원도봉입구를 지나온 셈이다.


800m쯤 가다 보니 저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다른 곳에서 볼 때는 제1봉인 자운봉이 주변 봉우리들과 높이차이가 별로 나지 않아 보이는데, 이곳에서 보니 자운봉이 우뚝 솟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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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원 이정표를 따라 계속 걸어왔는데, 정작 다락원이 어디인지 모르고 지나쳤다. 그리고 조그만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산으로 향한다. 이곳에서도 자운봉이 잘 보이지만, 카메라에 담기엔 너무 멀다. 눈으로 만족하는 수밖에!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17구간 포토포인트에 도착했다. 쌓다 만 돌탑이 보이는데, 그 뒤에 “17구간(다락원길) 촬영인증장소이며, 돌탑을 쌓아보라”는 프랑카드가 걸려있다. 그렇지만, 사진모양만큼 쌓이려면 아직 멀었다.


사진을 찍고 숲길로 들어간다. 시원한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길바닥은 흙으로 부드러우니 이래저래 걷기에 좋은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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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보옛길(18구간)을 따라 무수골로 향한다. 이정표를 보니 3.2km 남았다. 그 전에 1.5km만 가면 도봉탐방지원센터가 먼저 나온다. 도봉 문화관광 홈페이지를 보면, “무수(無愁)골은 원래 수철동이었는데, 세종이 먼저 죽은 아들의 묘를 찾아왔다가 약수터 물을 마시고 ‘물 좋고 풍광 좋은 이곳은 아무런 근심이 없는 곳’이라고 해서 유래됐다”고 했는데, 그 앞 문장을 보면 “무수골이란 마을이름은 1477년(성종8) 세종의 9번째 아들 영해군의 묘를 조성하면서 유래됐다”고 했으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세종은 1450년 사망했는데, 이런 일화가 생겼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세종은 문종(제5대)과 세조(제7대)를 비롯한 19남7녀의 왕자와 공주를 뒀는데, 영해군(寧海君 1435~1477)은 신빈 김씨 소생으로 17번째 아들이었다.


걷다 보니 도봉산 전망대가 따로 있었다. 이곳에서 제일 잘 보이긴 하지만 역시 멀어서 사진 찍긴 어렵다. 그래도 초록 산줄기와 흰구름 섞인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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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계단을 따라 산길을 오르내리다 보니 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에 도착했다. 도봉산에 오르면서 수없이 지나치던 곳이다. 그리고 여기부터 익숙한 길이 시작된다. 도봉분소 바로 앞에 있는 광륜사(光輪寺)를 지나 조금 더 가면 도봉탐방지원센터다. 광륜사는 신라시대(673) 의상조사(義湘祖師)가 만장사(萬丈寺)란 이름으로 창건했으며, 여러 번 중창을 거듭한 후에 2002년 광륜사로 개창했다고 한다.


도봉탐방지원센터 옆에 놓인 통일교로 계곡을 건너 올라가다 보면 능원사 (能園寺)와 도봉사(道峰寺)를 지나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둘레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오른쪽으로 가면 도봉산 자운봉으로 가는 길이다. 도봉사는 고려 4대 광종 때 국사였던 해거스님이 창건했고, 여러 차례 소실된 사찰을 1961년 복원했으며, 현재 서울시 유형문화재라고 한다.


교회를 지나 무수골에 도착했지만, 이름을 있게 한 영해군의 묘는 어딘지 모르겠다. 여기서 찻길을 건너면 방학동길(19구간)이 시작된다. 오늘 걷는 길은 서울둘레길과 겹치는 구간이 많다. 하지만 지금은 거꾸로 걷고 있으니 조금은 낯설다. 걷다 보면 세 갈래길이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둘레길은 대부분 산을 향해 오르도록 나있다.


10시47분, 쌍둥이전망대에 도착했다. 2개 전망대가 나란히 설치돼있는데, 왼쪽으로 올라가 오른쪽으로 내려오도록 해놨다. 물론, 오른쪽으로 올라가도 되겠지만 오늘처럼 사람이 많은 날에는 우측통행 하듯 룰을 지켜주는 게 좋을 것 같다. 전망대 위의 풍경은 초록색 산과 파란 하늘이 어우러져 멀리까지 잘 보이니 마음도 시원해지는 듯하다. 이곳에서는 도봉산은 물론, 북한산도 잘 보인다. 그런데 사진에는 도봉산만 표시돼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아래 설치해놓은 나무벤치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늘 갖고 다니는 햄버거와 파프리카, 그리고 커피가 오늘 메뉴다. 그런데 커피를 따라놓고 잘못 건드려 벤치에 쏟고 말았다. 끈적이지 않으니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곤 그냥 두고 자리를 떠났다.


전망대 앞에 있는 방학동길 포토포인트 사진을 찍고 정의공주묘를 향해 둘레길을 계속 간다. 그런데, 정의공주묘를 조금 지나면 바로 연산군묘가 나오는데, 이정표엔 정의공주묘로 표시돼있으니 연산군을 너무 무시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임금이었는데. 정의공주묘가 먼저 나오니까 그렇게 한 건가?


길을 걷다 보니 철제 울타리가 설치돼있고 ‘야생 멧돼지 출몰가능지역’이란 팻말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철문이 달려 있는데, 멧돼지 출몰가능지역으로 나가도 괜찮나! 하긴, 언제 생길지 모를 재난을 대비하는 것이니 조심하면서 다니면 문제는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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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지막 구간인 왕실묘역길(20구간) 입구에 도착해 사진을 찍으려는데 먼저 온 사람들이 여러 명 서있다. 비켜달라고 하기도 미안해서 그들이 모두 다른 곳으로 간 후에 사진을 찍었다. 물론, 찍지 않고 그냥 지나쳐도 되긴 하지만 기회가 있을 때 찍어놓으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 이제 여기서 오늘의 최종목적지인 북한산우이역까지는 1.5km 남았다.


11시47분, 정의공주묘에 도착했다. 정의공주(貞懿公主)는 세종의 둘째 딸로 소헌왕후 소생이며, 남편인 양효공 안맹담(良孝公 安孟聃)과 나란히 묻혀있다. 위키백과에는 정의공주가 1415년생이라고 나오는데, 이곳 설명문에는 ‘?’로 돼있으니, 언제 태어났는지는 잘 모르나 보다. 그런데, 왕비소생이고 둘째 공주인데 태어난 해를 잘 모른다는 게 좀 의아하긴 하다.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니, 세종10년(1428) 2월12일 “왕녀를 책봉해 정의공주로 삼고 다음날 안맹담에게 시집 보냈다”는 기사가 정의공주에 대한 첫 언급이긴 했다. 안맹담이 1415년생이니 13살에 결혼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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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공주묘를 지나 찻길을 건너 400m만 가면 연산군묘다. 묘역 앞 사무실에는 ‘순찰중’이란 팻말이 있어 묘역으로 올라가봤다. 이곳에는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를 비롯해 태종의 후궁 의정궁주 조씨와 연산군의 딸 휘순공주와 사위의 묘가 앞뒤로 나란히 있다.


태종의 후궁 묘가 함께 있는 게 의아해서 관리사무소에 비치된 자료를 찾아보니, “이곳은 세종의 넷째 아들 임영대군 땅이었는데, 임영대군이 자손이 없던 의정궁주를 모시다가 죽은 후 묘를 조성했다. 임영대군 외손녀인 거창군부인은 강화도에 있던 연산군묘를 이곳으로 옮겼고, 나중에 본인과 딸도 묻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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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묘 옆, 원당정(元堂亭)이 있는 조그만 공원을 둘러본 후에 원당천 (元堂泉)에서 물을 한 바가지 떠서 마시고 조금 가니 오른쪽에 연산군묘 재실(齋室)이 있다. 재실은 묘관리자가 상주하던 곳으로, 제향(祭享)을 지낼 때 제관(祭官)들이 머물며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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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산군묘에서 지하철역이 있는 우이령입구까지는 1.5km다. 물론, 높고 낮은 산길을 오르내려야 하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또 힘이 난다. 지하철역을 700m 남겨준 지점부터 찻길 옆 갓길을 걸어 북한산우이역에 도착해 젖은 티셔츠를 갈아입고, 오늘도 무사히 산행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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