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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둘레길

by 이흥재

2024년 5월14일(화) 맑음


오늘은 송파둘레길을 걸으려고 계획했었다. 그런데, 지난주 완주한 한양도성길 완주인증서를 받기 위해 남산에 있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엘 가야 했는데, 그러면 이참에 남산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전에, 한양도성길 남산구간을 지나면서 남산둘레길이 있는 건 알고 있었지만 걸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는데, 이왕 한번 걸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넷을 자료를 찾아보니, 남산둘레길은 남산준위를 한바퀴 도는 7.5km의 트레킹 코스로, 가볍게 걷기에 괜찮을 것 같았다. 특징에 따라 몇 개 길로 나눠져 있긴 해도 걸을 때는 별로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남산둘레길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여럿 있는데, 집에서 가기 편하고 한양도성길 완주인증서를 받기에도 수월할 것 같은 코스를 짜다 보니 회현역에서 올라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집에서 회현역까지 가려면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한번 갈아타야 하진 해도, 그 정도 불편함 정도야 처음도 아니니 문제가 될 건 없었다.


그런데, 엊저녁에 알람시간을 바꿔놓지 않아 너무 늦게 일어났다. 평상시엔 7시 반에 맞춰놓고, 산에 갈 땐 5시45분에 일어나는데, 아침에 너무 밝은 것 같아 시간을 확인해보니 7시가 거의 다됐다. 이런! 가까운 곳이니 좀 늦어도 별 문제는 없지만, 출근시간과 겹치면 지하철에 사람들이 많은 게 탈이다.


아침을 먹고 허겁지겁 개롱역으로 나갔더니 역시 다른 때보다 사람들이 많다. 다들 이때쯤 출근해야 하는 시간이니 당연했다. 그래도 안으로 들어가 몇 정거장 만에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한번 갈아타고 회현역에서 내려 3번 출구로 나가 남산방향으로 골목길을 걸어 올라갔다. 목적지는 남산둘레길 출발지점인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전부터 많이 봐왔던 원형건물이다. 그 건물 바로 아래 담벼락을 따라 걷는 게 오늘 남산둘레길 시작이다.


남산길을 올라가는데 아침부터 관광버스들이 많이 와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야간주차장으로 쓰는 곳인가? 교육연구정보원 밑에 도착해서 왼쪽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정표를 보니 왼쪽으로 150m 가야 남산둘레길의 북측순환로 정식코스다.


조금 가다 보니 오른쪽으로 남산N타워 올라가는 길이 보인다. 10분쯤 걷다 보니 오른쪽에 조그만 인공폭포가 보인다. 그리고 바로 옆에 목멱산방이란 음식점이 있다. 2층 건물 1층엔 개방형 화장실이 있어 사람들이 들락거리지만 나는 지금 이용할 일이 없다. ‘목멱’은 남산의 본래 이름인 목멱산(木覓山)에서 따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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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목멱’이 무슨 뜻이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앞산을 뜻하는 ‘마뫼’의 이두식 표기라고 한다. 木은 ‘마’를, 覓은 ‘뫼’를 적은 것인데, ‘마’는 ‘앞’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 마뫼나 목멱 모두 앞산을 뜻하는 것이니, 목멱산은 ‘역전(驛前)앞’처럼 중복된 글자다. 그리고, 南이 지금은 남쪽을 뜻하지만 옛날엔 ‘앞’이란 뜻도 있었다고 하니, 이 또한 앞산이다. 즉, 이름 없는 앞산이 고상하게 목멱이 됐던 건데, 지금은 남산으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곳엔 산신을 모시는 목멱신사(目覓神祠)란 사당이 있었다. 조선 태조 4년(1395), 남산의 산신을 봉해 목멱대왕(目覓大王)이라 하고, 산꼭대기(지금의 팔각정 자리)에 사당을 세운 後 봄•가을에 제사를 지냈는데, 국사당 (國師堂)이라고도 했다. 그런데, 이 국사당은 1925년, 일본인들이 남산기슭에 조선신궁(朝鮮神宮)이란 신사를 세우면서 국사당이 높은 곳에 있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인왕산 기슭으로 옮겼으며, 그 국사당은 1973년 국가민속문화재로 지정됐다.


목멱산방 왼쪽엔 ‘한국인의 미소’라고 이름 붙여진 목조각상이 있는데, 2014년 5월 강풍으로 쓰러진 75년 된 뽕나무로 만든 거란 설명문이 같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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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조금 걷다 보니 왼쪽 길가에 조지훈 시비(趙芝薰 詩碑)가 보이고, 전면에 ‘파초우(芭蕉雨)’란 시가 새겨져 있다. 이 시는 1946년6월 간행된 <청록집 (靑鹿集)>에 수록됐다고 하는데, 내겐 좀 낯설다. <청록집>은 박목월• 조지훈•박두진 등 3인의 시 39편이 수록됐으며, 제명(題名)은 박목월의 시 <청노루>에서 따온 따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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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둘레길은 양쪽으로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여름에 걸어도 그리 덥진 않을 것 같다. 게다가 길 양옆으로 실개천이 흐르고 있어 그 소리만으로도 시원한 느낌이다. 이 물은 지하수를 이용한 거라는데, 그러니 사시사철 가뭄과는 무관하게 늘 흐르고 있을 것 같다.


09시 정각에 와룡묘(臥龍廟)에 도착했다. 와룡묘는 제갈량을 모시는 사당이라는데, 왜 모시는 건지 모르겠다. 게다가 몇 번이나 새로 짓고 고쳤다고 하니 대단한 정성이다. 그래도 궁금해서 가파른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가보니, 와룡묘는 물론 단군성전과 삼성각도 있다. 참 오묘한 조화다. 와룡묘 옆에는 불상까지 만들어 놓았으니, 종합성전세트다.


30분쯤 더 걸어가니 왼쪽에 국궁장(國弓場)인 석호정(石虎亭)이 있다. 앞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조선 인조 때인 1630년경 창정(創亭)됐으며, 1970년 현재 위치로 옮긴 것”이라고 했는데, 다른 자료를 찾아보니 창건연대가 확실치 않지만 1435년경 건립됐을 것이라고 하며, 위치는 여러 곳에 있었지만 모두 지금의 장충단공원 주변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또한 남산 터널공사를 하면서 1970년 현재위치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한양도성길 남산구간과 만나는 지점에 왔는데, 사람들이 여럿 모여서 체조를 하고 있다. 앞에는 선생도 있다. 그늘이라 시원하긴 해도 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떻게 모인 건지 궁금했지만, 딱히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들을 지나쳐 보행(步行)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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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은 여기서 오른쪽의 가파른 계단으로 남산 정상으로 올라가야 되지만, 남산둘레길은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그늘진 곳으로 계속 직진해서 가다가 왼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이정표가 좀 이상하다. ‘남산둘레길 350m’. 앞에 남산둘레길이 있는 거라고? 그럼 지금 지나온 길은 뭐지? 오면서 계속 이정표를 본 것 같은데?


소나무가 양옆에 우거진 계단을 따라 내려가다 보니 배드민턴장이 나온다. 이 길이 맞나? 네이버 지도를 검색해보니 둘레길을 벗어났다. 그런데 옆에 있는 사람이 참견한다. ‘어디를 찾는 거냐?’고. 그런데, 그가 남산둘레길을 잘 모를 것 같아 그냥 얼버무렸다. 남산을 자주 찾는 사람들이라도 관심이 없으면 ‘남산둘레길’은 잘 모른다. 그저 길이 잘 만들어져 있으니 열심히 걷긴 하지만, 나처럼 목적을 갖고 한바퀴 다 걷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지도를 보니 다행히 많이 벗어나진 않았다. 길을 찾아가다 오늘도 남산팔영 (南山八詠)을 봤다. 이곳은 암저유화(巖底幽花)다. ‘바위 틈새에 피어있는 그윽한 꽃들’이란 뜻이란다. 조선 태종 때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 후에 한성부윤[漢城府尹],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으로 바뀌었다)를 지낸 정이오 (鄭以吾)가 남산의 빼어난 8가지 경치와 조망에 대한 지를 읊었는데, 이를 남산팔영이라고 한다.


그 중에 암저유화의 내용은 이렇다.
“봄이 가고 꽃이 이미 졌는데,
산중에 빽빽하게 녹음 무성하네.
물 건너니 그윽한 향기 풍기고,
가까운데 언덕 위 바위 틈에 기이한 풀이 있구나.
늦은 떨기 은일(隱逸= 속세를 피해 숨음)인 양 가련하고,
부질없는 꽃 흥망성쇠 애석하네.
이로부터 정(貞)하고 길(吉)하나니
하늘이 어찌 소나무 두었는가.”
해석해 놓은 것인데도 내용이 좀 어렵다.


지도를 보면서 가다 이정표를 만났는데, 갈래길에서 양쪽 다 남산둘레길 표시가 있다. 어디로 가지? 일단 왼쪽으로 내려갔는데, 또 길이 헷갈린다. 다시 지도를 켜고 찬찬히 살펴보니 잘못 왔다. 다시 갈림길로 가서 다른 길로 갔다. 아, 이제 제대로 찾았구나!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다 이젠 오른쪽 산길로 들어선다. 오늘 처음 밟아보는 흙길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갈림길마다 표시가 잘 돼있어서 길 잃을 염려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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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서식처와 개구리•도롱뇽 등 소생물권 서식지를 지났다. 이곳에는 반딧불이와 개구리의 일생(一生)에 대한 설명문도 세워져 있다. 사람들이 별로 다니지도 않는 길인데, 참 정성스럽다. 또한 도롱뇽에 대한 배려도 대단하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대부분의 도롱뇽이 보호야생동물로 포획이 금지돼있고, 서울시 보호야생생물 대상종이란다. 지난 2003년엔 경부고속철도 건설 중 천성산 터널공사 때 도롱뇽 관련 소송이 대법원까지 가서 기각된 바 있었다. 그렇게 대단한 생물인가? 너무 별스럽단 생각이 든다.


소월시비로 가는 큰길 바로 못 미처 이번엔 남산팔영 중 구일등고 (九日登高)가 있다. ‘중양절인 음력 9월9일 남산 오르기’란다. 이 시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내용이 이렇다.


“술병 차고 높은데 오르는 날,
하늘도 맑은 9월초일세.
단풍 숲 먼 골짜기에 한창이고,
푸른 소나무 층층이 언덕 둘러쌌네.
남동(藍洞)은 시 짓던 곳이고,
용산(龍山)에 모자 떨어지던 때로다.
예나 이제나 취함은 같은 것,
마음에 맞으면 그 밖에 다른 무엇을 구하리.”
그런데, 남동이니 용산이니 하는 구절들은 중국의 고사를 인용한 것이라서 더 어렵다. 그중에 ‘용산에 모자 떨어지던 때’에 대한 고사는 이러하다.


“용산(龍山)에 맹가(孟嘉)의 낙모대(落帽台)가 있다. 맹가는 진(晉)나라 사람으로, 재상 환온(桓温)의 참군(參軍)으로 있을 때 9월9일 환온이 용산에서 잔치를 열어 술을 마시고 놀 때 바람이 불어 맹가의 모자가 날아갔는데도 알지 못하자, 환온이 손성(孫盛)을 시켜 그를 조롱하게 했지만 맹가가 답으로 지은 글이 매우 훌륭해, 맹가 낙모대는 중양절 연회장소를 비유됐다.”
즉, 용산에서 맹가의 모자가 떨어지던 때가 마침 중양절이었다는 것에 대한 비유다. 참, 쉽지 않다.


남산 정상으로 오가는 노선버스가 다니는 포장도로지만 양옆에 나무들이 많아 그늘지고, 찻길 옆에 널찍한 보행로도 있어서 산책하기에 참 좋은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걸어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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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월시비(素月詩碑)에 새겨진 산유화 사진을 한장 찍고, 오늘 최종목적지인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내센터로 올라간다. 지난주 완주한 한양도성길 완주인증서를 받기 위해서다. 이번에 두번째 받는 인증서다. 지난해 한번 더 걸었었는데, 낙산에서 인증사진을 찍지 못해 자료부족으로 인증서를 받지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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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센터로 가서 인증서를 받으러 왔다고 했더니, 신청여부를 묻고 몇 가지 입력한 후에 키오스크에서 인증서를 출력하라고 한다. 이것도 전과는 다른 시스템이다. 담당자가 출력해 줬었는데, 나보고 직접 하란다. 그런데 키오스크가 작동을 잘 안한다. 전화번호와 생년월일만 입력하면 되는데, 숫자판이 잘 뜨지도 않고 숫자를 눌러도 바로 입력되지 않는다. 이럴 거면 바로 인쇄해주는 게 낫지 않나! 암튼, 올해 5360번째로 완주했다는 인증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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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현역으로 내려와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야 했었는데,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열심히 보다가 내릴 것을 지나쳤다. 안내방송을 들으니 혜화역이다. 두 정거장을 지나친 거다. 어쩔 수 없이 바로 내려서 반대편에서 오는 차를 타고 다시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까지 와서 갈아타고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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