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24일(금) 흐림
오늘은 송파둘레길 나머지 구간을 걷기 위해 종합운동장역으로 갔다. 4번 출구로 나가 작은 길 하나만 건너면 바로 탄천이다. 강남면허시험장 부근에서 공사 때문이 일부 구간을 우회하도록 해놨지만 오늘 코스와는 무관하다.
길이 꽤 넓어서 자전거를 타고 되겠지만, 자전거와 킥보드는 탈 수 없는 금지구간이다. 아무래도 보행자들과 접촉사고가 날 수도 있으니까 사전에 차단해놓은 것 같다.
한강에서 장지천까지의 탄천구간은 전체길이가 7.4km지만, 지난번에 조금 더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1km쯤 덜 걸어도 된다. 그래도 딱딱한 포장도로를 걸으면 발이 쉽게 피로해진다.
평일 이른 아침인데도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꽤 있다. 물론 나처럼 작정하고 한바퀴 도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달리기하는 사람도 있고 커플이나 강아지와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도 있다.
안내문을 보면 탄천에 사는 동물들이 꽤 많은 것 같다. 뱀 출몰지역이란 표지판도 보인다. 어릴 때 뱀에 물려 한달 정도 고생한 이후 뱀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어서 뱀은 그림도 보기 싫다. 다행히 걷는 동안 뱀을 만나진 않았다. 하긴 뱀도 사람이 무서울 테니 아무 때나 돌아다니진 않겠지. 대신 꿩을 봤다. 그것도 두번이나. 하지만 너무 멀리 있어서 줌으로 당겨 사진을 찍었는데도 너무 흐릿하게 나왔다. 까치는 흔하기 때문에 마음껏 볼 수 있다. 그러다가 그 소리가 너무 청량한 것 같아 동영상도 찍었다.
길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지속가능한 생태순환을 위해 단절됐던 광평교에서 삼성교까지 4.4km 구간을 2021년 7월, 50년 만에 연결해놓았다고 한다. 하긴, 몇 년전에 송파둘레길을 걸으면서 이 구간에서 길을 찾지 못해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기억이 있다. 그땐 길이 없는 갈대밭 사이로도 걸었었다.
생태계 교란식물을 퇴치 중이란 팻말도 여럿 보인다. 구간이 넓어 조를 나눠 자원봉사 하고 있는 것 같다. 대표적인 식물로 가시박과 환삼덩굴이 있단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 식물들이 천대받는 이유는 덩굴식물로서 다른 식물들을 못살게 굴기 때문인 듯 한데, 이미 전국적으로 퍼져 토착화 돼있기 때문에 완전히 제거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는 견해들이 많았다.
더구나 환삼덩굴의 경우, 면역체계 강화 등 여러 효능이 있다면서 섭취하는 방법까지 자세하게 전해주는 사이트도 있었다. 사진을 찾아보니 전부터 자주 봐오던 풀이었다. 어느 식물을 죽이고 살리는 게 사람한테 유리한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
이참에 자료를 더 찾아보니, 생태계교란 생물은 외국에서 유입돼 생태계 균형을 교란하거나 가져올 우려가 있는 야생생물을 환경부 산하 국립생물자원관에서 선정 운영하고 있는데, 포유류 1종(뉴트리아)을 포함한 동물이 21종, 식물이 17종 등 총 38종이 있다. 그런데, ‘우려’까지 포함하다 보니 좀 애매한 경우도 있을 것 같다. 특히, 환삼덩굴의 경우 전국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만큼 퍼져있는데, 그 정도면 토착화된 것 아닌가!
탄천구간 중간쯤에 송파둘레길 완성기념비가 있고, 거기서부터는 자전거도로와 보행로가 나뉘어 있다. 게다가 자전거도로는 2차선이라 오고 가는 자전거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다. 보행도로 꽤 넓어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부딪칠 일은 없을 것 같다.
둘레길 옆에 주변 거리나 시설물에 대한 설명문을 세워놓았다. 그중에 문정동 로데오거리는 송파구 문정1동 주민센터 일대를 일컫는 명칭으로 1992년 외국 유명브랜드 할인매장이 들어서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그런데 ‘로데오’는 뭐지? 이는 미국 로스엔젤레스의 비버리힐즈에 있는 로데오 드라이브(Rodeo Drive)에서 차용한 것으로, 주로 젊은 소비층을 대상으로 한 상권들이 들어서있는 번화가를 뜻하는 곳에 적용했는데, 1990년대 초 압구정로데오거리를 시작으로 전국에 수많은 로데오거리들이 있다.
그런데, 로데오 드라이브는 스페인어 란초 로데오 데 라스 아구아스(Rancho Rodeo de las Aguas)란 비버리힐즈의 옛 지명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이는 물로 둘러싸인 목장(Ranch of the Gathering Waters)이란 뜻이다. 즉, 로데오는 ‘둘러싸다’는 스페인어인데, 로데오경기(길들이지 않은 소나 말을 타고 오래 버티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지만, 문정동 로데오거리 입구에는 말을 타고 로데오경기를 하는 듯한 기념물을 세워놨다. 완전 엉터리인 거다.
좀 걷다 보니 탄천(炭川) 이름 유래에 대한 유래가 만화로 그려져 있다. 삼천갑자 동방삭(三千甲子 東方朔)에 대한 설화(說話)인데, 내용은 이렇다. 즉, 하늘의 뜻을 어기고 삼천갑자(1,800년)나 살고 있는 동방삭이 있어 옥황상제는 저승사자를 보내 잡아오라고 했지만, 잘 숨어 지내기 때문에 찾을 수가 없었다. 이에 저승사자는 꾀를 내어 동방삭이 출몰한다는 지역에서 숯을 빨고 있으니, 지나가는 사람이 궁금해서 물어봤다.
“숯은 왜 그렇게 빠는 거요?”
“숯이 하얘지게 하려고 그럽니다.”
“내가 삼천갑자를 살았지만 숯을 빨면 하얘진다는 소린 처음 들어보오.”
그제서야 저승사자는 이 사람이 동방삭인 걸 알고 잡아갔다는···.
그러면서 아주 작은 글씨로 다른 유래에 대한 얘기도 써놨는데, 조선시대 강원도에서 한강을 통해 가져온 목재로 이 개천 주변에서 숯을 만들었기 때문에 개천물이 검게 변해 ‘숯내’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좀더 그럴듯한 내용이다.
08시33분, 탄천구간을 끝내고 장지천 구간으로 접어든다. 출발한지 1시간15분쯤 지났다. 대략 시속 5km쯤 걸은 셈이다. 부지런히 걸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 정도다. 하긴 서두를 건 없다. 앞으로 1시간쯤 더 가면 오늘 걷기도 끝이니까.
오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긴 해도 장지천 구간을 한갓지다. 탄천구간은 사람뿐만 아니라 자전거들이 꽤 많이 다니기 때문에, 길이 구분돼있어도 번잡한 편이었다.
길가에 세워놓은 ‘가든파이브’ 설명문을 보니, 이는 쇼핑몰(Life)·업무단지 (Works)·공구상가(Tool)·물류단지(Express)·배후주거단지(Dream) 등 5개 구역으로 나뉜다는 뜻으로 지었다고 돼있다. 수없이 다니면서도 무심코 지나쳤었는데, 오늘에서야 그 뜻을 알게 됐다.
찻길을 지나 2019년 롯데마트의 후원으로 만들었다는 ‘어울林 푸르林’으로 접어든다. 장지동 뒤쪽으로 숲을 조성해 놓았다. 장지천구간 종점인 성내4교까지는 2.35km가 남았다. 하긴, 거기가 끝은 아니다. 집에까지 가려면 또 1km 이상 더 가야 한다.
숲이 우거진데다 바닥도 흙길이니 걷기에 좋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약간의 오르막이 있긴 해도 그 정도는 호흡이 가파지는 것도 아니다. 도토리는 야생동물 먹이기니 주워가지 말라는 프랑카드가 이곳에도 매달려 있다. 부지런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산길에 흩어져 있는 도토리도 그냥 지나치지 못해 전부 주워가는 바람에 야생동물들이 굶는다는 하소연이다.
장지근린공원부터는 계단과 경사로를 같이 만들어놨다. 경사로로 올라가면 좀더 편하겠지만, 계단길이 더 짧고 운동도 더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계단으로 올라간다.
메타세콰이어 숲을 지난다. 설명문을 보니, “이 나무는 오래 전 멸종해 화석으로만 볼 수 있었는데, 1941년 중국 장강 상류에 살아있는 것이 확인되면서 널리 보급됐고, 우리나라에는 1956년 들어왔다. 이름에서 메타 (meta)는 ‘다음’이란 뜻이고, 세콰이어(sequoia)는 미국의 대표적인 침엽수다. 즉 세콰이어의 뒤를 이을 나무란 뜻에서 메타세콰이어라고 했다.” 지난번 서울둘레길을 걸으면서 하늘공원 아래를 지날 때 꽤 큰 메타세콰이어 길을 지났었는데, 이곳은 거기보단 규모가 좀 작은 편이다.
09시27분, 마지막 스탬프 찍는 것에 도착했다. 그러고 보니 탄천구간에서는 스탬프를 찍지 못했다. 지나면서 생각해봐도 스탬프함이 어디에 있었는지 모르겠다. 지난번에는 걸으면서도 눈에 확 띄었었는데, 다른 곳으로 옮겨놨나, 아예 치워버렸나? 그럴 리는 없을 텐데!
스탬프함 옆에 재미있는 꽃말 설명문이 있다. 미스김라일락(Syringa patula ‘Miss Kim’). 해방 후인 1947년 미군정청에 근무하던 원예전문가가 북한산 백운대에서 토종식물 털개화나무 씨앗을 채취해 미국에서 원예종으로 개량한 것인데, 한국근무 당시 식물자료 정리를 도와준 미스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라일락 품종으로, 1970년대 역수입됐다.
09시39분, 성내4교에 도착하면서 송파둘레길 21km 일주를 마쳤다. 이제부턴 피곤한 다리를 이끌고 집에까지 가는 게 남았다. 그래도 아직은 힘이 남아있으니 천천히 걸어가면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