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9일(금)
어쩌다 보니 이번주는 2번씩이나 산엘 가게 됐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생각이 좀 바뀌었을 뿐이다. 산행을 잠시 중단하고 이번에는 한양도성길을 다시 걷기로 했다.
전에도 한양도성길 18.6km를 한바퀴 돌면 완주인증서를 발급해주곤 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완주인증서와 함께 동그란 완주배지를 주면서 계절별로 한번씩 4번 완주하면 메탈배지를 추가로 준다고 했다. 그 후로 3번 완주를 했는데, 한번은 인증사진을 제대로 찍지 못해 완주인증서를 2번만 받게 됐다. 그리고 오늘 세번째 한양도성길을 돌기로 한 것이다.
오늘 목적지는 숭례문에서 인왕산과 창의문, 백악산과 청운대를 거쳐 혜화문 옆에 있는 한성대입구역까지로 정했다. 전에는 한양도성길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흥인지문에서 시작해 창의문까지 하루에 걷고, 이어서 다음에 창의문에서 흥인지문까지 걸었었는데, 완주인증서를 발급해주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이 남산에 있기 때문에 완주인증서를 받으러 일부러 찾아가지 않고, 마지막 날 바로 발급받기 위에 코스를 바꿔보기로 한 것이다.
오늘 출발지인 숭례문으로 가려면 개롱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 후 회현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가서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보니 방향을 잘 모르겠다. 앱으로 지도를 보면서 어찌어찌 걷다 보니 연세세브란스 빌딩이 보인다. 서울역 근처에 있다는 걸 대충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방향으로 걸어가다 조금 익숙한 거리를 만나 숭례문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곳에 스탬프를 받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숭례문 앞에 도착해서 한양도성길 앱을 여니 스탬프 찍히는 진동이 심하게 울렸다. 그런데 숭례문으로 들어가는 문은 굳게 닫혀있다. 9시부터 개장이란 안내문이 붙어있긴 했지만 누군가 들어가길래 얼른 따라서 들어가려니까 금방 제지했다. 아마도 그 사람은 관계자였던가 보다. 전에는 흥인지문에서 출발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숭례문을 지날 즈음이면 언제나 안으로 들어가서 사진 찍을 수 있었는데, 오늘은 숭례문에서 출발하다 보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숭례문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숭례문은 1398년(태조7) 세워진 후 몇 차례 수리했다. 1907년부터 1908년 사이 양쪽 성곽이 철거됐고, 1961년부터 1963년 사이 전면해체 보수작업을 했으며, 2008년 방화로 훼손된 것을 2013년 복구했다. 조선시대 한양 출입문으로, 매일 인정(人定 밤10시경)에 닫았다가 파루(罷漏 새벽4시경)에 열었으며, 날씨에 따라 임금이 몸소 기청제 (祈晴祭)와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숭례문은 한때 ‘국보1호’였는데, 2021년 법령개정으로 지정번호가 없어졌지만, 지정순서가 1번 (1962.12.20)이어서 여전히 ‘1호’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숭례문 안에 들어가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큰길을 건너 돈의문터로 향한다. 이 길은 여러 번 다녔기 때문에 익숙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수시로 이정표를 체크하면서 걷는다.
옛 배재학당 자리에 1989년 조성된 배제공원을 지나고, 1885년 한국최초로 설립된 개신교회인 정동제일교회도 지나쳤다. 이곳은 몇 년전에 이승만대통령 관련행사가 있어서 와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그저 일반적인 교회로만 생각하고 그 역사성에 대해서는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정동길을 지나고 다시 큰길을 건너 돈의문터에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두번째 스탬프를 받았다. 이곳은 지난 2017년 9월, 옛 새문안동네를 ‘서울형 도시재생’ 방식으로 개조해 만들었지만,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가, 서울시에서 2035년까지 경희궁 및 돈의문을 복원하기로 계획하면서 이 일대도 공원으로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여기서 ‘새문(新門)’은, 1396년 세워진 돈의문이 1413년 폐쇄됐다가 1422년 정동사거리에 새롭게 조성되면서 얻은 별칭이다. 그리고 돈의문 안쪽 동네를 새문안골,새문안동네로 불렀다. 하지만 그 돈의문은 1915년 철거된 이후 아직까지 복원되지 않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앞을 지나는데, 곳곳에 프랑카드가 많이 걸려있고 피켓을 들고 시위하고 있는 사람들도 여럿 보인다. 내용으로 봐서는 교사들인 것 같은데, 그 신분을 잘 모르겠다. 아무튼, 받아들여질지도 모를 내용을 갖고 뜨거운 땡볕아래 시위하는 모습이 안쓰럽긴 하다.
눈에 익숙한 세븐일레븐 편의점 앞에서 드디어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날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오늘도 최고기온이 34℃까지 올라간다고 했는데, 지금 기온은 모르겠지만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그래도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몇몇 있으니 조금은 위안이 되는 듯하다.
조금 가다 보니 공사 중이니 우회하란 안내문이 보인다. 공사 중인 구간은 인왕산까지 바로 올라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난 우회길은 ‘한양도성 외부 순성길’이란 이정표가 서있다. 우회길은 처음 가는 중이다. 성곽외부에 나무데크 계단으로 만들어진 길이다. 그리고 5분쯤 올라가니 다시 성곽 안으로 길이 연결돼있어 안으로 들어갔다.
인왕산이 높진 않아도 성곽을 따라 난 계단을 오르는 길은 매우 가파르다. 게다가 더위까지 심하니 더 힘든 것 같다. 주위를 둘러봐도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시야가 좋지 않다. 맑은 날 선명하게 보이던 남산타워나 63빌딩도 흐릿하게 보인다. 서울 어디서나 보이는 롯데월드타워는 어디 있는지 찾지도 못하겠다.
8시47분, 인왕산 정상에 도착했는데, 아무도 없다. 좀전에 오르던 사람들은 이곳이 목적지가 아니었나 보다.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찍어줄 사람이 없다. 어디서 말소리라도 들리면 좀 기다렸다가 부탁해도
되겠는데, 주위는 너무 조용하다. 어쩔 수 없이 셀프로 찍어야겠는데, 경험이 없으니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그냥 지나갔다가는 나중에 완주인증서를 받을 수 없으니 어떻게든 내 얼굴과 인왕산 정상바위가 나오도록 찍어야 한다. 그리고 간신히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 창의문을 거쳐 백악산과 청운대를 올랐다가 혜화문까지 가야 하는데, 날씨가 너무 더우니 엄두가 나지 않는다. 결국 오늘은 창의문 앞에 있는 윤동주문학관까지만 가기로 계획을 수정했다. 창의문까지 남은 거리는 1.4km. 내리막 계단이 좀 험하긴 해도 올라오는 것보다는 더 수월하다.
오늘도 ‘한양도성 부부소나무’를 지난다. 보통은 연리지(連理枝)라고 표현하는데, 여기는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 그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도 좀 과한 느낌이다. 예로부터 귀하고 상서로운 것으로 여겼다든지, 두 몸이 한 몸 되어 영원한 사랑을 비유한다든지 등. 그런데 이 나무들이 좀 독특하긴 하다. 한 나무 줄기가 다른 나무 기둥으로 파고 들어간 모양새다. 느닷없이 뿌리근처에서 새 줄기가 나와 자란 것도 그렇고. 이러니 부부라고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아니, 한량이라고 해야 하나?
각자성석(刻子城石)은 언제 봐도 대단하다. 그 모양과 내용은 위치마다 다르긴 하지만, 완전한 공사실명제다. 다른 곳에 기록해놓을 수도 있었을 텐데, 아예 성돌에 새겨 쌓아놓았으니 달리 변명할 여지가 없겠다. 하긴 세월이 지나 그 사람들이 전부 사라진 다음에야 어떻게 할 방법이 없겠지만. 그런다고 그 후손들을 찾아갈 수도 없을 테고. 여기 있는 각자성석 내용은, “순조6년(1806) 11월 최일성이 공사를 돌봤고, 이동한이 감독했으며, 전문석수 용성휘가 참여해 성벽을 보수했다.” 완전한 연대책임이다.
서시정(序詩亭)과 윤동주 시인의 언덕을 지나 9시20분 윤동주문학관에 도착했다. 이곳은 상수도가압장이 있던 자리에 2012년 개관해 종로문화재단이 운영하고 있으며, 그동안 여러 차례 건축관련 상을 수상했다고 하는데, 보기엔 초라해 보이고 찾는 이들도 거의 없다. 오늘도 문이 반쯤 열려있지만 사람은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윤동주문학관 앞에서 7022번 버스를 타고 세종문화회관까지 간 다음 지하철로 갈아타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