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일, 수비리에서 팜플로나까지

by 이흥재

2024년 6월4일(화)


요즘은 이래저래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다. 일찍 자기도 하지만 새벽 5시 전부터 일어나 부스럭거리는 사람들이 있는데다, 오늘 새벽에는 코 고는 사람까지 있어 뒤척이다 일어나보니 5시20분이다. 알람을 5시 반에 맞춰 놨으니 일어날 시간이 거의 되긴 했다.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짐을 들고 식당으로 가서 배낭을 꾸리고 아침식사를 준비했다.


오늘 아침식사는 어제 사다 놓은 파에야를 전자레인지에 돌리고, 요구르트와 함께 먹었다. 디저트는 납작복숭아. 스페인에 올 때마다 자주 사먹는데 물도 많고 달아서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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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먹고 나니 6시쯤 됐는데, 밖이 벌써 밝다. 지난번에 왔을 때는 가을이어서 그랬는지, 이 시간에는 밖이 어두워 헤드랜턴 없이 다니기 불편했는데, 이번엔 헤드랜턴 쓸 일이 거의 없겠다. 오늘도 날씨는 쌀쌀하지만 조금 걸으면 땀이 날 테니 평소 복장대로 출발한다.


알베르게 식당바닥에 나무로 짠 조그만 박스가 있는데, 다른 언어들과 함께 한글로도 ‘기부’라고 써있다. 뚜껑을 열어보니 순례하다가 불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놓고 가란 듯 잡다한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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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라소아냐(Larrasoaña)까지 5.5km란 이정표가 있어서 그곳에서 쉬면서 맥주라도 한잔 할까 했는데, 막상 라라소아냐까지 갔더니 마을이 순례길과 조금 떨어져 있어서 그냥 지나쳐 다음 마을로 향했다. 그러나 작은 마을을 여러 개 지나는 동안 바르를 구경할 수 없다. 그렇다고 길바닥에 앉아 쉴 수도 없어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걷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길가에서 재미있는 건물을 봤다. ‘Welcome to the Basque Country’라고 크게 써놓은 밑에 한글로 ‘문화를 느낌’이라고 써있다. 여기엔 영어조차 없고 바스크어와 스페인어에 한글만 병기해 놓았다. 누가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도 한글이 대단함을 느낀다. 하지만 정작 그 ‘느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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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아인(Zuriáin) 마을을 지나는데, 전에 왔을 때는 다리 건너 왼쪽 집에서 음료를 팔고 있었지만, 오늘은 문을 열지 않았다. 건물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듯한데, 밖에는 아무 것도 내놓지 않았으니 들어갈 수가 없어 그냥 지나쳐야 했다. 오늘은 쉴 곳이 마땅치 않아 참 힘든 날이다.


이로츠(Iroz, Irotz en euskera) 마을을 지날 때 순례길 첫날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만났던 젊은 한국남자가 뒤쫓아왔다. 수비리 다음 마을에서 잤다는데, 잠깐 얘기하면서 나란히 걷다가 걸음이 빠른 것 같아 먼저 가라고 한 후 뒤에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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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순례자 기념물을 만났다. 2006년 설치된 나무십자가다. 스테인리스 철판에 이름도 새겨 넣었다. 여기서 어떤 사고를 당했는진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걷는 게 힘들어서 죽었을 리는 없겠다. 죽도록 힘들다면 쉬면서 걸으면 될 텐데, 그렇게 미련하게 걷지는 않았을 거다. 그러니 지병이 있는 상태로 왔을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생의 마지막을 위해 순례길을 떠났다는 게 가상하긴 하다. 아마도 본인은 어느 정도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순례길을 걷다가 죽는 사람도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놀랄 테지만, 그 숫자가 많지 않고 그 정도면 자연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그 죽음은 순례와는 무관하다고 봐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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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넘고 오솔길을 지나 트리니닷 데 아레 다리(Puente de la Trinidad de Arre)를 건너 9시54분, 비야바(Villava, en euskera: Atarrabia)의 파라다이스 바르에서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맥주를 한잔 마셨다. 오늘 첫 잔이 너무 시원하다. 집에 있을 때는 술을 거의 마시지 않지만, 이곳에만 오면 매일 땀을 흘려서 그런지 걷는 내내 맥주생각이 간절하다. 그리고 바르를 만나기만 하면 언제나 한잔 마시게 된다. 가끔 오렌지주스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지만 시원한 맥주 맛을 따라올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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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지나면서 보니 이곳 가로수들은 줄기를 전부 연결해놓았다. 누가 처음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페인 여러 곳에 상당히 널리 퍼져있는 형태다. 어릴 때 두 나무의 작은 가지를 묶어 놓으면 자라면서 두 가지가 붙는 것 같다. 그래도 볼수록 신기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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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06분, 팜플로나(Pamplona, Iruña; en euskera) 초입에 있는 막달레나 다리 (Puente de la Magdalena)에 도착했다. 이곳저곳 사진 몇 장을 찍고 다리를 건너는데, 가운데가 살짝 올라간 정도인데도 걷는데 힘이 더 든다. 다리를 건너고 나니 왼쪽으로 공립알베르게(Albergue Jesús y María) 이정표가 서있다. 오늘 공립알베르게에서 묵을 예정이긴 하지만, 아직은 문 열 시간도 꽤 남았고, 팜플로나에서 유명한 프랑스문(Portal de Francia o de Zumalacárregui)을 지나기 위해 오른쪽으로 걸어간다. 1553년 건설된 프랑스문은 수말라카레기 문으로도 불리는데, 카를로스 대공과 그의 아들이 이사벨 2세 여왕에 대항해서 일으킨 카를리스타 전쟁 때 카를로스를 지지하던 토마스 수말라카레기(Tomás de Zumalacárregui)가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어두운 밤에 홀로 이 문을 지나 팜플로나를 떠났기 때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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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15분, 드디어 프랑스문을 지나고 팜플로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 de Santa María la Real de Pamplona)에 잠깐 들렀다가 공립알베르게를 찾아갔는데,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먼저 와있는 순례자가 한명 있었지만, 문을 열려면 아직 1시간이나 남아있었다. 그동안 점심이라도 먹고 올까 하다가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마트에 들러 물만 한병 사 갖고 알베르게 문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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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정각에 알베르게 문이 열리면서 사람들이 우루루 들어가는 바람에 내 순서가 뒤로 밀렸다. 잠시 기다렸다가 침대를 배정받고 2층으로 올라갔는데,침대배치가 너무 옹색하다. 주위를 둘러보니 침대가 꽤 넓게 배치된 곳도 있는데, 순서대로 주는 건지 돈을 더 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샤워를 마친 다음 세탁기 사용이 무료라고 해서 옷을 전부 넣은 후 30분으로 세팅해 놓고 돌렸다. 그리고 점심을 먹고 왔더니 누군가 내 빨래를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놓고 자기 걸 돌리고 있어서 햇볕 잘 드는 뒤꼍에 널었다. 건조기는 1유로에 쓸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방법을 몰라 사용하지 못했다.


이제 물건을 챙겨 1층으로 내려가서 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방안에 넣어둔 여권과 순례자여권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카운터로 가서 물어봤지만,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가방을 다시 찾아보라고 한다. 에코백이 큰 것도 아닌데 여러 번 찾을 게 뭐 있나! 아무튼, 이제 어떡하지? 임시여권을 발급받으려면 대사관으로 연락해야 하나? 그러다가 대사관이 있는 마드리드까지 오라고 하면 어떻게 하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초조해하고 있는데, 직원 아가씨가 와서 여권을 찾았다고 했다. 어휴, 고마워라! 그래서 갖고 간 동전지갑을 선물로 줬다. 얘길 들어보니 점심 먹은 식당에 두고 왔었다는 것 같은데, 거기서 왜 꺼냈는지 모르겠다. 아마도 계산하기 위해 동전지갑을 꺼내면서 여권을 먼저 꺼내 테이블에 놓았었나 보다. 그렇지만 아무런 생각이 나질 않는다. 생각해보면 직원 아가씨보다 여권을 알베르게로 갖다 준 식당주인에게 더 고마워해야 할 것 같다. 이름만 알고 어디 묵는지 모르는 사람을 일일이 연락해서 알아봤을 것 아닌가? 다음에 들러서 감사표시를 해야겠다.

저녁에는 이곳에서 만난 한국 젊은이들과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당초엔 어제 수비리에서 먹으려고 했었는데, 먹을 만한 마땅한 곳이 없어서 오늘로 미룬 거였다. 여기서도 식당을 찾아보고 결정해야 할 것 같긴 하다. 한번쯤 식사를 사주고 싶은 마음에 제안은 했지만, 비싼 건 아무래도 곤란할 테니 인당 20유로 내외의 순례자메뉴 파는 곳을 알아보라고 했기 때문에 소식을 기다리는 중이다.


점심 먹으로 갔던 식당을 다시 찾아갔지만 종업원 근무시간이 바뀌었는지 모르는 사람이 근무하고 있었다. 괜히 설명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아 그냥 식당을 나왔다. 마음으로만 고마움을 전하며.


한국의 젊은이들과 저녁 먹기로 한 약속이 취소됐다. 연락하고 있던 장주석 군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함께 식사하기 곤란하다고 하는 바람에 다른 친구들도 자연스레 만날 수 없었다. 연락처를 받아뒀던 유지은 양에게 문자를 보냈지만 읽지 않은 것 같고, 카톡은 연결되지 않아 달리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심지어 숙소도 다른 곳이었다. 결국 낮에 돌아다니다가 봐놨던 식당에 가서 혼자 저녁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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