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13일(목)
오늘도 일어나는 시각은 새벽 5시 반으로 똑같다. 그런데 갈수록 밤에 자주 깬다. 시끄러워서 깨기도 하지만, 어떨 때는 그냥 눈이 떠질 때도 있다. 하지만 너무 일찍 일어나봐야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계속 자려고 한다. 그렇게 5시 반에 알람소리를 듣고 일어나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침낭을 비롯한 모든 짐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식당에서 짐을 싸려고 했던 건데, 식당 문이 잠겨있어서 어쩔 수 없이 밖에서 배낭을 꾸리려니 너무 춥다.
덜덜 떨면서 배낭을 싸서 이내 알베르게를 나왔다. 이번 숙소는 순례길과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서 어제 기억을 되살려 왔던 길을 되돌아 순례길을 찾아갔다.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서 곧바로 노란 화살표를 발견하고 오늘의 순례를 시작했다.
요즘은 알베르게에서 아침식사를 하지 않고 출발하기 때문에 언제 처음 만나는 바르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곤 한다. 그런데 오늘은 두번째 마을 (Espinosa del Camino)을 지날 때까지도 문을 연 바르가 없어 그대로 지나치고 세번째 마을인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Villafranca Montes de Oca)까지 갔는데도 바르가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런데 바르 옆에 있던 남자가 7시 반에 문을 열 거라고 알려줬다. 아직 10분쯤 남았지만, 다음 마을인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까지는 12km나 더 가야 하기 때문에 잠시 기다리기로 했다. 내게 문 여는 시간을 알려준 사람은 바르 바로 옆에 있는 숙소 주인이었다.
7시 반이 지나도 문이 열리지 않자, 숙소주인도 함께 나와 걱정해주고 있었는데, 잠시 후 드디어 문이 열렸다. 그런데 나 말고도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이 꽤 있어서 문이 열리자 마자 바르 안이 북적거렸다. 나는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에 크루아상 2개와 오렌지주스를 주문했다. 요금은 5유로가 조금 넘었다.
바르를 나와 마을을 벗어나는데, 산티아고까지 544.4km 남았다는 표지석이 보인다. 그리고 거기부터 오르막이 시작됐다. 가파른 정도만 다를 뿐이지 30분 이상 오르막이 계속됐다. 그곳이 숲길이라 길 양옆으로 나무가 무성해서 햇빛이 보이지 않을 정도여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앞서가던 순례자들이 몇 명 있었지만, 내가 전부 따라잡고 앞서 걸었다.
1936년부터 1939년까지 있었던 스페인내전(guerra civil española o guerra de España)을 기념하는 조형물을 지나 평지를 걷다 보니 작은 돌로 화살표를 여러 개 만들어 놓았다. 사진을 찍으려니까 내 그림자에 가려 제대로 찍을 수가 없다. 어떤 화살표는 아주 길게 만들어놓은 것도 있다.
09시18분, 승용차에 몇 가지 먹거리를 갖고 와서 팔고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처음 보는 한국여자를 만났다. 자기는 일원동 사는 카미노 할망이라고 소개하면서 이번에 네번째 온 것이며, 팜플로나에서 출발해 매일 조금씩 걷고 있는데, 오늘은 비야프랑카 몬테스 데 오카에서 산 후안 데 오르테가까지만 걸을 거라고 했다. 거기로는 12km쯤 된다. 서로의 사진을 찍어주고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먼저 출발했다.
숲이 계속 이어지는데 도로가 굉장히 넓다. 아무래도 순례길 용도로만 쓰기엔 너무 낭비 같은데, 또 달리 쓰이는 곳이 있겠지! 드디어 숲길을 벗어나 산 후안 데 오르테가 마을 초입에 도착하니 젖소와 흑소 몇 마리가 풀을 뜯고 있다. 이렇게 가까이서 보는 건 처음이라 사진을 몇 장 남겼다.
산 후안 데 오르테가에서 처음 만나는 바르에 들어갔는데, 입구에 여러 나라 말로 ‘환영’이라고 써있다. 그중에 한글로 ‘환영’은 물론 알파벳으로도 ‘HAWN YOUNG’라고도 써놓았다. 대단한 정성이다. 바르를 나와 성당 (Santuario de San Juan de Ortega)을 지나는데, 그곳에도 바르가 있고 여러 순례자가 해바라기 하는 것처럼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만, 그냥 지나쳤다. 생각해보니 지난번 왔을 때는 그곳에서 맥주를 마셨던 것 같다.
다시 숲길을 지나니 멀리 아헤스는 물론, 오늘 갈까 망설였던 아타푸에르카 마을도 보인다. 아헤스에 도착하니 산티아고까지 518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인다. 그런데 지금까지 봐왔던 거리와 계산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그저 걷다 보면 도착하겠지, 하는 마음 뿐이다.
곧바로 공립알베르게(Albergue municipal de Agés)로 가서 접수를 마친 후 샤워하고 빨래를 하려는데 세탁장이 좀 열악하다. 그래서 오늘도 세탁기를 돌리기로 했다. 사용요금이 4유로지만, 처음엔 얼마인지 몰랐다. 세탁기에는 2유로와 1Í2유로가 나란히 적혀있는데, 나중아 알고 보니 2유로 동전 하나와 1유로 동전 2개를 나란히 넣으란 표시였다.
이제 점심식사를 해야겠는데, 식당을 겸하고 있는 알베르게에서는 오후 1시부터 점심식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 시간이 12시10분이니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 마을초입에 있는 바르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순례자메뉴였는데, 요금은 16.5유로. 언제나 비슷한 메뉴를 시켰다고 생각했는데, 나오는 음식을 항상 달랐다. 오늘은 누들수프와 닭고기를 주문했는데, 누들수프는 비슷했지만 닭고기는 전혀 다르게 나왔다. 게다가 이번엔 밥도 조금 준다.
그럭저럭 점심을 먹고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세탁해놓은 빨래를 널었다. 그런데 너는 것조차 만만치 않다. 빨래줄도 별로 없는데다가 바람이 많이 불어 자칫 날라갈 수도 있겠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철망에 빨래를 끼워 넣기도 하고 나름대로 날아가지 않도록 빨래를 널었다. 다행히 햇볕이 너무 좋아 빨리 마를 것 같긴 하다. 밖은 햇볕이 쨍쨍해서 뜨거운데, 일기 쓰는 동안 앉아있는 식당으로 바람이 불어오니 시원하다 못해 서늘하다. 도대체 날씨를 모르겠다. 아침에 핸드폰에 뜬 기온은 4도였는데, 낮에는 20도가 넘을 테니, 일교차가 20도 가까이 된다. 이럴 때일수록 건강조심!
저녁에는 알베르게 1층에 있는 식당에서 닭날개와 닭봉 튀김을 먹었다. 샐러드도 함께 줬는데, 전부 짜다. 덥고 땀을 많이 흘리니 짜게 먹어야 한다고는 하지만, 음식맛이 없을 정도로 짠 건 좀 곤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