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일, 카스트로헤리스에서 프로미스타까지

by 이흥재

2024년 6월17일(월)


오늘은 다른 때보다 1시간쯤 더 걸어야 하는 거리지만, 12시쯤 목적지에 도착하려면 평상시처럼 5시 반에 일어나도 충분하다. 10여분 준비하고 출발하면 되는데, 그 시간이면 걸을 수 있을 만큼 밝아온다.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마을을 벗어나 들길로 접어드나 싶었는데, 이내 산길로 이어졌다. 그동안 크고 작은 언덕을 넘어오긴 했지만, 오늘처럼 산을 넘는 건 첫날 피레네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그런데 산을 다 오르고 나니 평지다. 그리고 한참 걸어가서야 내리막길이 있었다. 산 모양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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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길을 걸어가고 있다가 7시쯤 뒤돌아보니 오늘도 좀전에 넘어온 산 위로 해가 떠오르고 있어 쳘 걸음마다 한번씩 사진을 찍어뒀다. 오늘도 풍력발전기가 참 많이 보인다. 사방을 둘러보니 날개가 힘차게 돌아가고 있는 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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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는 산 니콜라스 예배당(Ermita de San Nicolás)에 들러 스탬프를 찍고 피테로 다리(Puente Fitero)를 건너니 팔렌시아 주(Provincia de Palencia)로 이어진다. 피수에르가 강(Río Pisuerga)에 놓인 피테로 다리가 좁아서 그런지 다리 양쪽에 신호등이 세워져 있다. 아마도 다리에서 차량이 만나게 되면 교차하기 어려워 그런 것 같다. 하긴 다리 폭을 보면 간신히 피할 정도는 되지만, 언제든 사고위험이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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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렌시아 주 경계에서 15분쯤 걸어 첫번째 마을 이테로 데 베가(Itero de la Vega)에 도착했는데, 바르는 문이 닫혀있다. 마을로 좀더 들어가니 슈퍼마켓이 있어서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 좀 쓰겠다고 했더니 옆으로 가면 바르가 있으니 거기로 가라고 한다. 다시 배낭을 메고 바를 찾아갔지만 바르 역시 문이 닫혀있다. 이대로 가면 너무 배가 고플 것 같아 슈퍼마켓으로 돌아가 빵 한조각과 복숭아를 사서 급히 먹고 다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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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슈퍼마켓 주인이 나오더니, 순례길은 그쪽이 아니라며 맞는 방향을 알려줬다. 가다 보니 좀전에 바르를 찾으러 갔던 길이다. 그리고 거기서 순례길 표시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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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에서 여전히 신기한 것 중 하나는 지역표시다. 우리나라는 경계가 있으면 마을과 도시가 이어지는데, 여긴 마을 시작과 끝이 표시돼있고 이어지는 마을이 없다. 그러다가 다시 마을이 나타나고 거기에 마을이름을 붙여놨다. 그 중간은 뭐지? 그곳에도 밭들이 있고 주인이 있을 텐데! 그곳 주소는 어떻게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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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들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는다. 오늘은 들에서 일하는 농부들이 더러 보인다. 한 사람은 베어놓은 목초를 기계로 돌려가며 말린다. 처음 보는 광경이다. 아마도 밭에서 다 말린 다음 포장해서 사료로 쓰나 보다. 그런데 포장된 모양이 지금까지 봐왔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스페인에서도 일명 ‘마시멜로’로 불리는 형태로 포장해놓은 걸 봤었는데, 여기는 직육면체로 묶어놨다. 나중에 보니 이렇게 포장하는 기계가 있었다. 어쩌면 직육면체가 운반하고 보관하는 데는 더 유리할 것 같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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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염없이 걷다 보니 멀리 마을이 보인다. 그렇지만, 지평선 끝에 있는 마을이어서 한참 걸어가야 한다. 그렇게 50분을 더 걸어 보아디야 델 카미노 (Boadilla del Camino)에 있는 바르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오늘 목적지인 프로미스타까지는 5.7km 남았다. 1시반 반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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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미스타에 가까워질수록 이곳의 상징과도 같은 운하(canal de castilla)가 나타난다. 운하를 따라 한참 동안 걸어갔는데, 중간에 공사를 하고 있어서 순례길이 한참 우회하도록 나있다. 어쩔 수 없이 그 길을 따라 돌아가는데, 앞서 걸어가던 순례자 커플은 직선으로 가고 있다. 그들도 어차피 마을에서 만날 수는 있겠지만, 나는 순례길 표시대로 오른쪽으로 돌아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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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미스타 마을에 접어드니 공립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Frómista) 표시가 있어 따라가다 우연히 슈퍼마켓이 있길래 잠시 들어가 저녁에 먹을 즉석식품과 복숭아를 사고, 시원한 2리터짜리 물도 한병 샀다. 그동안은 작은 물병으로 샀었는데, 어제부터는 2리터 물 한병을 사면 다음날 출발할 때까지 거의 다 마실 수 있어서 앞으로는 큰 병으로 사려고 한다.


슈퍼마켓을 나오니 공립알베르게기 가까운 곳에 있다. 그런데, 인터넷에는 12시 오픈이라고 했었는데, 막상 도착해서 확인해보니 오후 1시 반에 문을 연다고 써있다. 어쩔 수 없이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작은 샌드위치 하나와 토르티야로 간단하게 점심을 먹었다. 잠시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1시 조금 전에 식당을 나와 알베르게 앞에서 기다리다가 오늘도 제일 먼저 접수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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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워를 마치고 세탁기를 찾았더니, 주인이 대신 돌려주겠다고 한다. 요금은 4유로. 어제 미뤄놨던 것까지 한꺼번에 맡겼더니 널어주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계속 이틀에 한번씩 세탁기를 돌릴 예정이다. 그러면 매일 수건만 빨면 돼서 번거롭지 않아 좋다. 또한 요즘처럼 햇볕이 강한 맑은 날에는 빨래 말리는 게 아주 수월하다.


오늘 저녁은 즉석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바게트와 함께 먹고, 복숭아와 요구르트도 후식으로 먹었다. 대단한 맛은 아니지만 배가 부르니 그것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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