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29일(토)
오늘도 걷는 거리가 20km가 안되기 때문에 엊그제 맞춰놨던 알람시간 (5시45분)을 그대로 뒀었지만, 그 전에 잠이 깨어 출발준비를 하고 알베르게를 나왔다. 내가 씻고 있는 동안 여자 순례자 한명도 함께 준비하긴 했지만, 출발은 나보다 늦은 것 같다.
어둠을 뚫고 걷다 보니 40분 만에 발카르세 호텔(Hotel Valcarce)에 도착했다. 주위에 마을은 없고 주요소와 호텔만 덩그러니 있는 곳인데, 컨테이너를 실은 화물차들이 많이 주차하고 있다. 호텔에 누가 묵는지는 모르겠지만, 호텔라운지와 주요소를 이용하는 고객은 주로 화물차 기사들인 것 같다. 나도 라운지로 가서 크루아상과 커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평소에 먹던 가격과 다르지 않았다(3.2유로). 라운지 한켠에는 판매하는 듯한 여러 종류의 칼들이 진열돼있다.
호텔을 나와 라 포르텔라 데 발카르세(La Portela de Valcarce) 마을을 지나려는데, 초입에 사진으로 많이 봤던 순례자복장을 한 산티아고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그 밑에는 산티아고까지 190km, 론세스바예스까지 559km라고 새겨져 있다. 그런 총 거리가 749km란 건데, 론세스바예스에는 790km란 표지판이 있고, 좀전에는 174.4km란 표지석을 지났으니, 어느 것 하나 맞는 게 없다.
암바스메스타스(Ambasmestas) 마을 표지판을 지난 건 7시25분이고, 마을이 끝났다는 표지판은 4분 후에 지났는데, 1분만에 또 다시 암바스메스타스 표지판이 세워진 곳이 봤다. 마을경계가 어디부터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아무튼, 마을 끝 표지판이 끝난 건 7시35분이었다.
베가 데 발카르세(Vega de Valcarce) 마을을 지나는데, 고속도로 교각상부가 특이하게 생겼다. 그냥 보기엔 저런 모양이 힘을 받기 어려울 것 같은데, 왜 저렇게 만들었는지 못내 궁금하다. 모양을 내기 위해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나중에라도 전문가들한테 물어보고 싶다. 마을에 바르간판은 많이 보이는데, 문을 연 곳은 없다. 하긴 쉬어가지 좀 애매한 시간이긴 하다.
루이텔란(Ruitelán) 마을을 지나치고 라스 에레이라스(Las Herrerías) 마을 바르에 들러 맥주를 한잔 마셨다. 오늘은 날씨가 흐려서 많이 덥진 않지만, 휴식을 겸해서 습관처럼 한잔씩 마시게 된다.
마을을 지나 잠시 내리막길이 있나 싶었는데, 이내 오르막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길은 라 파바(La Faba) 마을을 지나 갈리시아 자치지방(Comunidad Autónoma de Galicia) 경계석이 세워져 있는 곳까지 1시간 이상 계속됐다. 그 오르막길을 오르는 동안 아스토르가에서 출발했다는 한국인 부부도 만났고, ‘채식주의자 쉼터’란 안내문도 봤다.
그런데, 갈리시아지방에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자욱하다. 안개가 너무 심해서 이슬이 내리는 것 같다. 혹시 몰라 배낭커버를 씌워야 할 정도다.
10시26분, 드디어 갈리시아지방 경계석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한국 젊은이들이 셀카를 찍으려고 하기에 내가 찍어주고 나도 부탁해서 몇 장 찍었다. 그런데 표지판은 전과 같은 것 같은데, 바닥은 새로 만들어 놓았다. 콘크리트로 2단 바닥을 만들고 그 위에 경계석을 올려놓은 상태다. 경계석을 지나면서 안개가 더 짙어졌다. 정말 이슬비가 내리는 것 같다. 그리고 기온이 많이 내려갔는지, 추워지기 시작한다.
갈리시아지방에 들어서면서 달리지는 게 또 있다. 거리표지석이다. 다른 곳에서도 거리표지석이 있었지만, 갈리시아지방처럼 일률적이지 않다. 여기도 오래 전에는 다른 모양이었지만, 지금은 갈리시아지방 경계부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똑같은 규격으로 만들어 놓았다. 더구나 거리를 m 단위로 적어 놓았다. 처음 만나 표지석에 적인 거리는 160.948km다.
10시50분,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에 있는 바르로 들어가 점심을 먹으려는데, ‘오늘의 메뉴’는 오후 1시부터 가능하단다. 오늘도 점심을 간단하게 먹을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늘 먹던 토르티야조차 지금은 없다고 해서 엠파나다를 처음 먹어봤다. 맛은, 먹을 정도는 됐다. 그런데 알베르게 (Albergue de peregrinos de O Cebreiro) 문 여는 시간이 오후 1시라고 해서 유튜브를 보면서 12시까지 시간을 보냈다.
낮 12시가 지나 안개를 뚫고 알베르게로 향했다. 6년전에는 어디 있는지 몰라 3.3km 떨어진 다음 마을(Liñares)까지 갔었다.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여자순례자가 먼저 와있었다. 그런데 밖에서 기다리려니 너무 춥다. 배낭 깊숙이 넣어뒀던 패딩을 오랜만에 꺼내 입었더니 조금 낫긴 한데 따뜻한 정도는 아니다.
알베르게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 동안 몇몇 순례자들이 더 도착했고, 오후 1시가 되자 드디어 문이 열렸다. 나보다 먼저 왔던 여자순례자가 먼저 접수를 마치고 내가 두번째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이곳은 1층 침대가 나란히 있는 형태다. 그런데 샤워장엘 갔더니 칸막이만 돼있고, 출입문이 없다. 그러니까 3면은 막혀있지만 정면은 오픈돼있다. 하긴 우리나라 목욕탕을 생각하면 새로울 건 없지만, 여기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기 때문에 세탁기는 물론 건조기까지 돌렸다, 요금은 각 3유로씩. 다른 곳보다는 세탁비가 싸지만, 건조기까지 돌리니 결과적으로 더 든 셈이다. 그런데, 건조기에서 빨래를 꺼내보니 수건과 양말 3짝이 안보인다. 어디로 간 거지? 건조기를 다시 살펴봤지만, 없다. 세탁기에서 안 꺼낸 건가? 지금은 다른 사람이 세탁기를 사용하고 있어서 확인할 순 없지만, 어떻게 된 건지 의아할 뿐이다. 나중에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양말이야 남은 한 켤레를 매일 빨아서 신으면 된다지만, 수건이 없으면 당장 닦을 수 없어 씻기도 곤란해진다.
아무리 찾아도 양말과 수건이 보이지 않는다. 이제 마지막으로 확인할 곳은 지금 돌아가고 있는 세탁기 뿐이다. 시간을 확인해보니 세탁완료까지 20분 정도 남았다. 그래서 그 시간 동안 기다렸다가 얼른 세탁기로 가보니 빨래주인은 아직 오지 않았다. 얼른 세탁기 안을 살펴보니 수건과 양말이 세탁기 면에 붙어있다. 다행이다! 양말과 수건을 꺼내 야외 빨래줄에 널었다. 마침, 하루 종일 안개가 끼어있던 날씨가 맑아지면서 햇볕이 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잃어버린 줄 알았던 양말과 수건을 찾게 되어 한시름 놓았다.
저녁에는, 낮에 점심을 먹었던 식당으로 다시 갔다. 에피타이저로 갈리시안 수프, 메인은 갈리시안 비프를 주문했다. 갈리시안 수프는 전에도 먹어본 것과 좀 달랐다. 그래도 시래기와 감자가 들어간 수프는 그런 대로 입맛에 맞았다. 비프도 좀 짜긴 해도 맛있었다. 디저트로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알베르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