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30일(일)
어제는 오늘 묵을 트리아카스텔라(Triacastela)의 알베르게를 예약하기 위해 몇 군데 이메일을 보냈지만, 모두 예약이 완료됐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오늘은 공립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Triacastela)이 묵기로 했다.
엊저녁에는 바로 옆에서 자는 순례자가 코를 심하게 골라서 밤중에 잠이 깬 후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코 고는 소리도 어느 정도 규칙적으로 나면 그나마 좀 나을 것 같은데, 소리는 큰데 간헐적으로 들리니 잠들기가 저 힘들다. 생각 같아서는 잠을 깨우고 싶었지만 끝내 참다가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 5시도 되기 전부터 또 부스럭거리는 서리에 잠을 설쳤다. 결국 5시 반도 되기 잔에 일어나 출발채비를 한 후 잠시 카톡을 확인하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그런데 평지를 걸을 때는 이 시간이면 길을 분간할 수 있을 정도로 밝았는데, 산길을 걸으려니 너무 깜깜하다. 그래서 오랜만에 헤드랜턴을 꺼내 머리에 썼다. 출발한지 40분만에 첫 마을 리냐레스(Liñares)에 도착했다. 이곳은 6년전 프랑스길을 걸을 때 오 세브레이로에서 알베르게를 찾지 못해 무작정 걷다가 머물게 된 마을이었다. 알베르게와 가게, 그리고 작은 예배당만 있는 마을이어서 아주 조용했다. 개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트리아카스텔라까지 19.5km란 이정표를 보면서 리냐레스를 벗어나 10여분 만에 산 로케 고개(Alto de San Roque)에 올랐다. 이곳은 바람을 맞고 있는 순례자상(Monumento al Peregrino)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아직은 밝지 않아서 순례자상의 얼굴표정을 찍을 수 없어 아쉬웠다. 길가에 세워놓은 산 로케 고개 표지판에는 온갖 스티커를 붙여놓아 스티커를 붙여놓아 글씨를 제대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다. 멀리 있는 산에는 구름이 산 아래까지 내려와있다.
갈리시아지방에는 거리표지석이 너무 자주 보인다. 1km 안에도 서너 개씩은 있는 것 같다. 갈림길이나 순례자들이 헷갈려 할 장소에만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외길에도 여러 개 설치해놓은 건 낭비란 생각이 든다.
출발한지 1시간쯤 지나 첫번째 바르에서 오늘도 크루아상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카스티야 이 레온 지방에서는 마을표시가 명확해서 어느 마을에 도착했는지 금방 알 수 있지만, 갈리시아지방은 유심히 살펴봐야 마을이름을 알 수 있다. 표지석을 열심히 세워놓은 것만큼 마을표지판도 설치해놓으면 순례자들에게 많은 편의를 줄 것 같다.
스페인에는 크고 작은 마을마다 예배당이나 성당들이 꼭 있다. 대부분은 너무 낡아서 사용하지 않는 것들도 많은 것 같다. 지금이야 관리하는데 추가비용이 들지 않겠지만, 이 또한 과잉투자 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우리나라도 마을마다 교회가 들어서 있긴 해도 대부분 사용하는 것일 테니, 사정이 좀 다른 것 같다.
갈리시아지방에서는 길 상태도 좋아졌다. 지금까지 너덜길이나 포장도로를 걷느라 발이 많이 피곤했었는데, 여기는 산길도 대부분 흙길이어서 걷기 편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이 스페인 전역에 흩어져있지만, 갈리시아지방이 관리를 제일 잘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9시 반쯤 이름을 알 수 없는 마을에 있는 바르에 들러 맥주 한잔을 마시고 다시 계속 걸어서 11시5분쯤, 트리아카스텔라 초입에 있는 공립알베르게에 도착했다. 하지만, 알베르게 문을 오후 1시에 열기 때문에 아직은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배낭을 벗어두고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볼 겸 마을구경을 나서 두 군데 알베르게를 들렀지만, 역시 침대가 없다고 한다. 슈퍼마켓도 가봤지만 일요일이어서인지 문이 닫혀있다. 오늘은 어쩔 수 없이 점심과 저녁 모두 식당에서 먹어야 할 것 같다.
다시 알베르게를 찾아 나섰는데, 오늘 묵는 알베르게(Albergue Atrio)가 열려있어 들어갔더니 침대를 2층을 써야 한다고 해서 잠시 망설이다가 그냥 여기서 묵기로 했다. 숙박비는 14유로로, 공립에 비해 조금 비싸긴 하지만, 공립알베르게에서는 와이파이도 안된다고 했다. 이곳도 원래는 오후 1시에 오픈이지만 우선 접수는 받아줄 테니 나중에 오라고 했다.
그래서 점심 먹을 곳을 추천해달라고 했더니 공립알베르게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가보라고 한다. 여기까지 알베르게를 찾아온 건 시내의 편의시설을 사용하려고 했던 건데, 500m나 떨어진 그곳 식당을 이용할 거면 여기까지 온 이유가 반감된 느낌이다. 더구나 슈퍼마켓도 이용할 수 없는 처지다.
아무튼, 식당으로 올라가서 ‘오늘의 메뉴’를 주문했다. 오늘은 모두 색다르게 에피타이저는 샐러드를, 메인은 닭고기를 시켰는데, 샐러드는 어느 정도 예상대로지만 닭고기는 닭가슴살이라 너무 퍽퍽했다. 함께 먹을 거라곤 감자튀김 뿐이라 먹기가 더 힘들었다. 후식은 요구르트를 먹고 14유로를 지불했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와 씻은 다음 수건을 빨아 널고 오전에 못다한 마을구경을 계속했다. 이번에는 점심을 먹은 식당 반대방향으로 내려가면서 식당도 기웃거려 보고 다양한 볼거리를 사진에 담았다. 그런데 어느 식당 앞에 ‘오늘의 메뉴’가 다양한 언어로 붙어있는데, 당연히 한글도 있다. 몇 시부터 먹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언제든지 가능하다고 한다. 더 가까운 곳에 식당이 있는데, 알베르게 주인은 왜 더 먼 곳의 식당을 알려줬는지 모르겠다. 무슨 인연이라도 있는 곳일까? 아무튼, 저녁식사는 이곳에 와서 먹어야겠다. 보통 때는 점심과 저녁 중 한끼는 간단하게 먹고 한끼는 식당에서 ‘메뉴’로 해결하지만, 오늘은 슈퍼마켓이 문을 닫았으니 두 끼 모두 ‘메뉴’를 먹는 수밖에 없다.
오후 6시가 지나 저녁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 거리를 돌아다니는데 어디선가 단체로 온 듯한 학생들 무리 중에 몇 명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며칠 전에 봤던 애들과는 다른 무리인 것 같다. 처음엔 그들이 자기들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랑 같이 찍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그 정도야 얼마든지 가능하지. 그들이 자기들 카메라로 먼저 찍은 다음 내 휴대폰으로도 같이 찍었다.
저녁식사는 ‘오늘의 메뉴’다. 한가지 특이한 건 이 식당에는 한들로도 메뉴판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선택해야 할 음식이 너무 많다. 에피타이저(Primer Plato)가 11가지, 메인(Segundo Plato)이 12가지나 된다. 다른 곳은 대개 3~4가지 정도씩 있다. 그중에서 갈리시안 수프와 소고기 스테이크를 시켰다. 전에 먹었던 메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알베르게로 돌아가려는데 비가 조금씩 내린다. 하긴 오늘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는 했었다. 하지만 언제 내릴지 몰랐는데, 저녁에 그것도 아주 조금씩 잠깐 내려서 그나마 다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