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1일,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까지

by 이흥재

2024년 7월2일(화)


오늘도 5시45분쯤 맨 먼저 알베르게를 나섰다. 알베르게 앞은 환하지만 곧바로 순례길로 접어들면 어두울 테니까 처음부터 헤드랜턴을 착용했다. 그리고, 처음 만난 거리표지석을 보니 113.460km다. 누군가 마케팅을 위해 사리에서 산티아고까지 112km라고 정해놨겠지만, 실제 거리와는 조금 차이가 난다. 그런데, 왜 굳이 ‘112’로 했을까? 실제 거리인 ‘114’로 하는 게 맞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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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전에 순례길을 걷기 시작할 때 지금과 같은 시간에 출발해도 헤드랜턴 없이 걸을 수 있었는데, 갈리시아지방은 산이 많아서 그런지 헤드랜턴 없이 걷기에 매우 불편하다. 1시간 정도는 착용하고 걸어야 할 정도다. 물론 시간이 지나면서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밝아오긴 해도 헤드랜턴을 끄면 어둠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하기 되도록 오래 착용하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충전해놓으면 되니까.


10분쯤 걸었는데 갈림길이 나온다. 표지석이 양쪽을 가리키고 있지만 main way라고 표시된 방향으로 걷는다. 거리도 큰 차이가 나진 않는다. 낮이라면 호기심에 다른 길로 갈 수도 있겠지만, 어두워서 방향을 알 수 없는 시간에 모험할 필요는 없다. 조금 걷다 보니 이 시간에 걷고 있는 순례자들이 더러 있다. 걸은 지 15분만에 드디어 112.444km 표지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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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정도 걸어 빌레이(Vilei) 마을 바르에 도착했다. 순례길을 출발하기 전에는 사리아가 아닌 이곳 빌레이에서 묵으려고 했었는데, 알베르게를 예약하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예약 없이 묵을 수 있는 사리아의 공립알베르게를 선택했던 거였다. 하지만 그마저 착오로 인해 다른 알베르게에 묵긴 했지만. 화장실부터 다녀온 후 토르티야와 커피로 아침을 먹었는데, 커피를 마시면서 먹는데도 감자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그런지 토르티야가 너무 퍽퍽해 다 먹지 못했다. 가끔 계란이 많이 들어간 토르티야를 먹으면 부드럽고 먹기 좋은데, 감자가 많을수록 퍽퍽해져서 먹기 어렵다. 한국에서라면 김치나 국물과 함께 먹기 때문에 괜찮겠지만, 커피만으론 부족한 느낌이다.


비슷한 듯 새로운 마을을 지난다. 갈리시아의 곡물저장고인 오레오 (Hórreo)들이 가끔 보인다. 오늘도 무화과가 탐스럽게 달린 나무들이 더러 있다. 대부분의 나무들에 아직은 열매가 없는 것으로 보아 달려있는 게 특이한 것 같은데, 왜 그런지 알 수 없다.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따 먹을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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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식사 후 2시간 정도 더 걸어 브레아(A Brea) 마을 바르에 들러 맥주를 한잔 마셨다. 그런데 늘 마시던 맥주인데도 오늘은 양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렇다고 남길 순 없어 다 마시고 나니 배가 부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쉬고 나면 발바닥이 아파 한동안 걸은 후에야 조금 나아지곤 했는데, 요즘은 쉬고 난 후에도 그런 증상이 없어서 마음이 편하다.


멀리 산능선을 따라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구경하면서 부지런히 걸어 9시9분, 아 페나(A Pena) 마을에 있는 100km 표지석에 도착했다. 표지석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따라온 여자순례자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핸드폰을 건네줬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너무 못 찍었다. 아니 대충 찍은 것 같다. 나도 그 순례자 사진을 찍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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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비슷한 풍경의 길을 걷다 보니 10시쯤 저 멀리 오늘 목적지인 포르토마린이 보인다. 하지만 아직은 1시간 이상 더 걸어가야 한다. 조그만 마을 몇 개를 더 지나고 포르토마린에 거의 도착했나 싶었는데, 경사가 심한 바위길이 나온다. 좀전에 수레를 끌고 순례하는 사람을 만났었는데, 이 길에 어떻게 끌고 가려는지 못내 궁금했지만, 그렇다고 그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내려오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내 앞에 걷던 순례자는 결국 내게 먼저 가라고 양보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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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리(Ponte Nova de Portomarín)만 건너면 포르토마린이다. 그런데 다리를 건너면서 밑을 내려다보니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물빛이 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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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를 건너 가파른 계단을 올라 마을로 들어가야 하는데, 여러 인부들이 작하고 있어 계단을 이용해도 되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한다. 계단을 오르고 조그만 예배당을 지나 마을에 들어선 것 같은데,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잘 모르겠다. 감시 벤치에 앉아 지도로 오늘 묵으려고 예약해놓은 두 알베르게 중 한 곳(Albergue Novo Porto)을 검색한 후 걷다 보니 다른 곳(Albergue Pasiño a Pasiño)이 더 가까운 곳에 있어 여기서 묵기로 했다. 노보 포르토 알베르게에 가려면 심지어 언덕을 더 올라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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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쯤 도착해서 알베르게 문이 열려있길래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다. 소리질러 사람을 찾다가 입구에 종이 매달려 있어서 여러 번 쳤는데도 인기척이 없다. 한참 후에야 직원이 와서 접수를 받아주긴 하는데, 아직은 오픈시간이 안 됐으니 12시에 오라고 했다. 배낭을 알베르게에 두고 식당을 찾아가서 순례자메뉴(16유로)를 먹고 12시가 지나 알베르게로 돌아왔더니 아직 청소가 덜 됐으니 15분 후에 오라고 한다. 다시 알베르게에서 나와 마트에 들러 저녁에 먹을 파에야와 납작복숭아를 사면서 시간을 보낸 후 다시 갔더니 기다리는 순례자가 아주 많다.


내 순서를 기다렸더니 오늘도 3층에 있는 2층 침대를 쓰라고 한다. 3층까지 오르내리는 것도 쉽지 않고 2층 침대를 쓰는 것도 마땅치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아무래도 언어장벽 때문에 조금씩 손해 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샤워한 후에 오늘도 수건만 빨아 널었다. 나머지 빨래는 봉지에 담아놨다가 내일 세탁기를 돌려야겠다.


오늘은 컵라면을 먹고 싶었는데, 몇 군데 마트를 둘러봐도 찾을 수 없어 결국 파에야와 바게트, 요구르트와 납작복숭아로 저녁을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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