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일, 오 페드로우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by 이흥재

2024년 7월6일(토)


드디어 세번째 산티아고 순례길과 두번째 프랑스길 걷기 마지막 날이다. 그래도 일정은 여느 때와 다름 없다. 5시 반에 일어나 화장실에 가려는데 먼저 일어난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어 짐을 싸들고 1층으로 내려가 채비를 마치고 출발했다. 그런데, 초반부터 날씨가 심상찮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는 것 같아 배낭커버를 씌우고 알베르게를 나섰다.


그런데, 오 페드로우소를 벗어나기도 전부터 빗줄기가 점점 세진다. 그렇다고 소나기 수준은 아니지만 이전 순례길에서는 가장 많이 내리는 것 같다. 입고 있는 옷이 이내 젖었지만 지금 비옷을 꺼내 입기도 애매하다. 비옷을 입으면 어차피 땀 때문에 이 정도는 젖을 거다. 그리고 비가 그친다 해도 비옷을 벗을 때까진 마르지 않는다. 또한 비옷에도 빗방울이 묻었으니 이 또한 말려서 벗어야 하는데, 비옷은 햇볕이 아니 않으면 바람만으로는 잘 마르지도 않는다. 이래저래 비옷이 필요한 때는 아닌 것이다.


그런데 배낭커버조차 씌우지 않고 걷는 순례자들도 더러 있다. 옷이야 비가 그치면 금방 마르겠지만, 배낭이 젖으면 말리는 게 쉽지 않은 텐데.


걸은 지1시간 만에 길가에 있는 조가비표지석을 만났다. 순례길에 있는 몇 가지 상징물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너무 이른 시간인데다 날씨까지 흐려서 사진이 깨끗하게 찍히지 않아 아쉽다. 하긴 다른 사람들은 보는둥 마는둥 무심하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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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모를 숲을 지나 7시40분쯤 라바코야 성당(Iglesia de San Pelayo de Sabugueira) 앞에 있는 바르에 들어가 아침을 먹었다. 그런데 처음 들어간 바르 화장실 입구에 “화장실만 이용하려면 1유로를 내라”는 안내문을 붙여놓았다. 나는 아침을 먹을 거니까 내와는 상관없지만, 그래도 기분이 이상해서 바로 옆에 있는 바르로 옮겼다. 지금까지 수많은 바르를 지나왔지만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요금을 내라고 한 곳은 없었다. 하긴 주문해야만 화장실 열쇠를 주는 데가 한두 곳 있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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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순례자들이 점점 많아진다. 특히 단체로 온 학생들이 많다. 잘 모르겠지만, 일정한 시기가 되면 과제처럼 이곳에 와서 순례길을 걷는 행사가 있나 보다. 그렇지 않으면 한두 팀도 아니고 벌써 여러 단체학생들이 걸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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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히 걸어서 9시에 몬테 도 고소의 예배당(Capilla de San Marcos) 앞에 이르렀다. 이번에는 순례자 기념물(Monumento ao camiñante= Escultura de los Peregrinos)을 보기 위해 산 마르코스에서 오른쪽 에스트렐라스 길(Rúa das Estrelas)을 따라 가려고 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예배당까지 오게 됐다. 하는 수 없이 몬테 도 고소 공원(Parque Monte do Gozo)을 가로질러 순례자기념물을 찾아가는데, 얘기로만 들었던 공연(Gozo Festival 2024)을 준비하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린다. 나무들에 가려 무대가 잘 보이진 않지만 리허설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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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 걸어서 순례자기념물에 도착해 사진을 찍고 있는데, 다른 순례자 둘이 다가왔다. 이곳이 유명하긴 해도 순례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어 큰맘을 먹지 않으면 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도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하긴 6년전에는 이곳(Albergue del Centro Europeo de Peregrinación Juan Pablo II)에 머물면서 구경했었지만, 2년전에 비까지 오는 바람에 들를 생각도 없이 지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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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온 김에 가까운 곳에 있는 돌하르방 기념물도 들렀다. 이곳은 지난2022년 7월, “제주도와 갈리시아지방과의 공동번영과 관광교류 활성화를 위해 양측 우정의 길에 상징물을 설치했다”는 설명문이 있었다. 이곳에 설치된 돌하르방은 예로부터 제주인의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간세는 제주도 조랑말을 모티브로 제주올레의 대표적인 길안내 표식이란 설명도 덧붙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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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최종목적지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Santa Apostólica y Metropolitana Iglesia Catedral de Santiago de Compostela)까지 4km 정도 남았다. 공원(Parque do Pazo de Congresos)의 기념물(Porta Itineris Sancti Iacobi)을 지나고 조금 가다 보니 한무리 학생들이 앞서가고 있다. 이들 뒤를 따라갔다가는 순례자사무소(Oficina de Acogida al Peregrino)에 도착해서 순례인증서 (Compostella)를 받을 때 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추월해서 가기로 했다. 하긴 이런 무리들을 앞서가는 건 어렵지 않다. 학생들이 아무리 빨리 걷는다 해도 뒤에 처지는 애들까지 기다려야 해서 무작정 빨리 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내 이들을 앞질러 걸어갔다. 그때부터 많이 보이던 순례자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들 어디로 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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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반테스 광장(Praza de Cervantes)을 지나고 대성당 광장(Praza do Obradoiro)도 그냥 지나쳐 10시쯤 순례자사무소에 도착했는데, 기다리는 순례자들이 거의 없다. 2년전에는 순례자가 많은 건 물론이고, 사전에 핸드폰으로 등록하라고 해서 우왕좌왕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은 컴퓨터 단말기를 여러 대 설치해놓아 등록하기도 아주 편했다. 화면에 뜨는 내용대로 빈칸만 채우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창구에서도 곧바로 순례인증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유료인 거리증명서(Certificado de distancia)도 발급받지 않고, 순례자 기념배지도 사지 않았다. 이제 경력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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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인증서를 받아 들고 예약한 숙소(Hospedería San Martín Pinario)에 갔는데, 오후 1시부터 체크인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점심시간도 오후 1시부터라고 쓰여있다. 어쩌지? 이왕 힘도 들고 하니 호텔 1층 카페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유튜브를 보다가 잠이 와서 낮잠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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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시가 되어 카운터로 갔더니 벌써 체크인하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순례자들도 있고 관광객도 있는 것 같다. 내 차례가 되어 숙소를 배정받은 후 너무 배가 고파 씻지도 않고 점심부터 먹으러 갔다. 이 호텔에서는 식당도 운영하는데, 아침식사는 숙박료에 포함돼있고, 점심과 저녁은 15유로다. 다른 식당에서는 대부분 와인이나 물 중 선택하게 하는데, 이곳은 물도 큰 병으로 주고 와인도 한병을 준다. 그런데 저녁식사 시간이 오후 8시라 좀 늦은 편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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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방으로 돌아와 씻은 다음 대성당 광장으로 나갔다. 그곳은 언제나 붐빈다. 단체로 온 사람들, 소리 지르는 순례자들로 북새통이다. 하긴 다들 이곳까지 걸어오느라 힘들었을 테니 저 정도 흥분하는 건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다. 광장에서 사람들을 구경하다가 대성당 뒤로 돌아갔더니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문을 막 개방하는 중이었다. 2년전에는 성년(año santo jacobeo, 최근 성년은 2021년이었고 다음 성년은 2027년이다)이어서 그런지 안으로 들어가는 줄이 너무 길어 들어가는 걸 포기했었는데, 오늘은 바로 들어갈 수 있어서 내부를 구경했다. 그런데 안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럼, 지금 개방한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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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성당 정면에 있는 산티아고상 어깨에 손을 얹기 위해 긴 줄을 서있었지만, 나는 정면에서 사진만 찍었다. 또 다른 줄은 지하에 있다는 산티아고의 무덤을 찾아가는 줄인 것 같다. 옛날부터 여기까지 걸어오는 산티아고를 만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그 소원을 이루려는 사람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것이다. 특히 성당 정면에 있는 산티아고상의 어깨를 만지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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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6시쯤 다시 대성당 광장으로 나갔다. 광장에서 무슨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행사내용이나 시간을 알 수 없었다. 지금 시간이 저녁 7시가 지났는데, 몇 시에 행사를 하는 건가? 설치물로 봐서는 누군가 이 광장으로 골인하는 것 같다. 옆에는 시상대도 있었지만, 결국 내용을 알지 못하고 돌아와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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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서 저녁을 8시에 먹을 수 있기 때문에 시간 맞춰 식당으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에피타이저는 수프, 메인은 돼지고기다. 맛이 아주 좋다. 그런데 와인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된다. 개봉하지도 않은 와인을 병째로 주니 한두 잔으론 성이 차지 않아 반 병 이상을 마시게 된다. 정신을 못 차릴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몽롱해지는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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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는 밤 9시까지 해가 떠있는 걸 보고 신기해 했는데, 오늘 저녁에는 9시50분인데도 해가 떠있다. 아마도 그동안은 해지기 전에 잠을 잤기 때문에 그 사정을 몰랐었던 것 같다. 해지는 시간을 정확히 재진 못했지만 10시가 훨씬 지날 때까지도 어두워지지 않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침 7시에 해가 떠서 밤 10시에 지니 낮 길이가 15시간이나 되는 건가? 하긴 얼마 전에 하지가 지났으니 앞으론 조금씩 짧아지긴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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