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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봉.오봉 가는 새로운 길

by 이흥재

2025년 3월25일(화) 흐림


지난주에는 산행을 한번 거르고, 오늘 목적지는 도봉산의 여성봉과 오봉으로 정했다. 전에는 도봉산역에서 출발해서 원점으로 회귀하는 코스를 택했었는데, 이번엔 송추역으로 내려가는 루트를 생각하면서 네이버지도를 검색해보니 귀가길이 꽤 복잡했다. 그래서 逆으로 송추에서 올라가는 코스를 결정했다. 물론, 시작점으로 찾아가는 여정도 쉽진 않지만 산행을 끝내고 지친 몸으로 돌아오는 것보다는 아침에 힘을 좀더 쓰는 게 나을 것 같아서였다.


먼저, 오봉탐방지원센터로 가려면 개롱역에서 지하철 5호선을 탄 後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타고 도봉산역까지 가서 또 다시 1호선으로 환승 後 회룡역에서 마지막으로 의정부경전철을 타고 흥선역까지 가야 한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다. 흥선역에서 1번 출구로 나가 흥선광장 버스정류장에서 23번 버스를 타고 한참 가야 한다. 아무튼, 흥선역까지는 많이 기다리지 않고 갔는데, 버스를 타기 위해 흥선광장 정류장으로 가니 16분 후에 버스가 온다는 메시지가 떴다. 택시를 타고 가기엔 좀 먼 거리라 버스가 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오전 8시쯤 버스가 왔는데, 중간출입문을 기준으로 그 앞으로는 아예 좌석이 없었다. 처음 보는 버스형태다. 탔을 때는 학생을 비롯한 손님이 너무 많아 어쩔 수 없이 서서가야 했지만, 학생들이 다 내린 후에도 좌석에 앉으면 멀리할까 염려돼 앞에서 서 있다가 짐을 올려놓는 공간이 있어 잠시 앉았다. 의자만큼 편친 않아도 서서 가는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버스를 타고 11정류장을 지나 송추역 정류장에서 내려 길을 건너 지도를 보면서 오봉탐방지원센터 쪽으로 걸었다. 먼저 송추原마을을 지나는데, 입구에 마을표지석과 설명문이 나란히 설치돼있다. 설명문에 따르면, “소나무(松)와 가래나무(楸)가 많아 원래 송추(松楸)로 불렸다가, 사계절 내내 맑고 시원한 물이 계곡에 흘렀기 때문에 못 추(湫)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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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세의 정원’을 지나 계곡에 놓인 작은 다리를 건너 오봉탐방지원센터에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지원센터’라곤 해도 사람이 보이지 않는데다 딱히 ‘지원’ 받을 것도 없을 것 같다. 이정표를 보니 여성봉까지 1.7km, 오봉까지는 3km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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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초입은 숲길이다. 하지만 5분쯤 지나자 나무로 만든 계단이 나타난다. 그렇지 않아도 흥선광장 버스정류장에서 만났던 아주머니가, 여성봉엘 간다고 했을 때 계단이 많을 거란 얘길 했었다. 이 정도 계단쯤이야! 하지만, 흙길이 조금 이어지다 이번엔 돌계단이다. 다른 등산로의 돌계단은 대부분 화강암 등을 사각형으로 잘라서 만들었었는데, 여기는 둥글둥글한 강(江)돌이다. 어디서 가져왔는지 모르겠지만, 꽤 힘들었겠다. 여성봉 조금 못미처서는 나무데크 계단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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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14분, 여성봉(女性峰)에 도착했다. 설명문을 보니, “암석모양이 여성의 신체 일부를 닮아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인터넷에서 두산백과를 찾아보니 좀더 사실적으로 설명했다. “여성이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모습과 흡사해 여성봉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모양이 정말 많이 닮았다. 지금은 말라있지만 여름이 되면 가운데 조그만 풀도 자란다. 전에는 안으로 들어가 기념사진 찍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줄을 매놓았다. 하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들어갈 수 있겠지만.


오늘은 날씨가 너무 안 좋다. 특히 미세먼지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가까이 있는 오봉도 아주 흐릿하게 보인다. 너무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나혼자 뿐이다. 간식을 먹기에도 애매하다. 곧바로 오봉(五峯)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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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흙길이 이어지는가 했더니 곧바로 계단을 포함한 오르막의 연속이다. 거리는 1.3km밖에 안되지만, 쉽지 않은 코스다. 9시49분, 오봉 중 제1봉에 도착했다. 전에는 봉우리마다 올라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가지 못하도록 경고문을 붙여놨다. 가까이서 보니 바위들이 웅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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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에 대한 전설이 여럿 있다. 그중 하나는 다섯 형재와 건너 마을 처녀의 연정에 얽힌 이야기다. “옛날 도봉산 기슭 마을에 다섯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형제들 모두 건너 마을 처녀를 사모했다. 처녀의 아버지는 도봉산

꼭대기에 가장 큰 바위를 올려놓는 자에게 자기 딸을 주겠다고 약속했다. 다섯 형제는 북한산 상장능선에서 바위를 들어 도봉산을 향해 힘껏 던졌는데, 넷째만 힘에 부쳐 산꼭대기에 바위를 올려놓지 못했다. 처녀 아버지는 사윗감을 결정하지 못하고 혼사(婚事)를 미뤄오다 세월이 흘러 전부 죽었는데, 처녀는 여성봉으로, 다섯 형재는 오봉으로 환생해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바라보면서 애틋하게 그리워하고 있다.”


오봉에서 200m지나 오른쪽에 오봉샘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었지만, 오늘은 승락사(勝樂寺) 쪽으로 내려가기 위해 자운봉(紫雲峰) 방향으로 계속 갔다. 그런데, 처음 가는 길마냥 낯설다. 분명 전에 갔던 길일 텐데 도무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그래도 이정표가 가리키는 대로 가는 수밖에.


오봉에서 1km 지점에 자운봉(0.9km)과 도봉탐방지원센터(3.4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다. 그리고 100여m 가자 또 다시 이정표가 보이는데 이번에는 도봉탐방지원센터 표시가 없다. 그래도 짐작으로 왼쪽으로 난 계곡길로 내려간다. 바닥에 돌이 너무 많아 거친 길이다. 조금이라도 딴 생각을 했다가는 큰 사고가 날 수도 있겠다.


다시 100m쯤 내려온 곳에 왼쪽으로 마당바위(0.8km)를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이지만 무시하고 지원센터 방향으로 계속 내려가다, 10시32분 거북샘 쉼터에서 잠시 쉬며 커피를 곁들여 간식을 먹기로 한다. 그런데, ‘거북샘’은 어디 있지?


궁금증은 조금 내려가다 바로 풀렸다. 조그만 바위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바위 안에 물소리가 들리고, 그 앞에 ‘거북샘’이란 팻말이 있다. 잘 보이지도 않거니와 수질(水質)도 어떨지 몰라 마시진 않았다. 지금은 그렇게 목마를 시간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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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km 남짓 내려오다 우이암으로 가는 이정표를 만났는데, 그제서야 전에 왔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는 아직 2.1km 남았다.


10시58분, 계곡 한가운데 있는 문사동(問師洞) 마애각자(磨崖刻字)에 도착했다. 큰 바위에 ‘스승을 모시는 곳’ 또는 ‘스승에게 묻는 곳’이란 뜻의 글자를 초서(草書)로 새겨놓은 곳이다. 군자의 도를 가르쳐주는 스승이 있다면, 아무리 깊은 계곡에 숨어있어도 찾아갔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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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각자 아래에는 이름 없는 3단 폭포가 있다. 저 정도 규모면 누군가 이름을 지어주고 그럴 듯한 설명문도 세워 놓음직한데, 아직도 무명(無名)인 이유를 모르겠다. 모여있는 모양도 괜찮지만, 하나씩 봐도 2단이나 3단으로 떨어지는 모양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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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시11분11초에 승락사 아래를 지난다. 내가 좋아하는 숫자가 ’11’인데, 우연히 시분초가 똑같이 찍힌 게 희한하다. 대학교 때 학번 끝자리가 ‘11’이었는데, 군대도 특전사령부 ‘11’공수여단을 다녀오다 보니 11이란 숫자에 애착이 생긴 것 같다. 아무튼, 사찰을 통해 ‘마당바위’가 있는 등산로로 연결된다는 안내문도 붙여놨다. 아마도 절 구경하고 산에 오르란 뜻이겠다. 하지만, 지금 가파른 계단을 올라 절 구경하고 싶진 않다.


계곡 옆에 있는 구봉사(亀峰寺) 앞을 지나고, 금강암(金剛庵)에도 들러 잠시 대웅전을 보고 하산을 계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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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다 내려와 계곡 옆에 난 길을 따라 가다 계곡 안 바위에 새겨놓은 ‘고산앙지(高山仰止)’를 카메라에 담았다. <시경(詩經)>에 나오는 말로, ‘높은 산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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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아마도 너무 일찍 올라가서 사람들이 없었나 보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이 시간에 올라가면 언제 내려오나? 괜한 걱정을 한다. 아무튼, 나와는 시간이 맞지 않으니 알아서들 하겠지. 김수영 시비는 오늘도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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