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11일(화) ~ 3월12일(수)
여정 : 청량리역~ 단양역(기차)~ 다리안관광지(택시)~ 천동탐방지원센터~ 천동쉼터~ 천동삼거리~ 비로봉 ~ 소백산천문대~ 제2연화봉대피소~ 죽령탐방지원센터~ 풍기역(버스)~ 청량리역(기차)
제1일(3월11일)
우리나라 여느 산들처럼 소백산을 오르는 코스는 다양하다. 충북 단양 쪽에서 올라갈 수도 있고, 경북 영주 쪽에서 올라가는 등산로도 있다. 언제인지도 모를, 기억도 나지 않는 아주 오래 전에 아내와 함께 연화봉엘 오른 적은 있지만, 소백산 최고봉인 비로봉(1,439.5m)까지 가는 것은 처음인데, 이번에는 다리안관광지에서 등산을 시작하기로 했다.
하지만, 시작지점까지 가는 여정도 만만치 않다. 우선 지하철을 타고 청량리역까지 가야 하는데, 개롱역에서 환승해야 하는 왕십리역까지는 5호선은 첫차를 타면 되지만, 왕십리역에서 청량리역으로 가는 경의중앙선은 배차간격이 넓어 전철을 타기 위해 한참 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도 늦지 않게 청량리역에 도착해서 잠시 기다렸다가 아침 6시57분 출발하는 중앙선 itx마을 열차를 타고, 8시49분 단양역에 내렸다. 기차요금은 경로우대를 받아 10,400원. 단양역을 나와 택시를 타고 산행 출발지점인 다리안관광지로 향했다. 도중에 운전기사와 잠시 대화를 나눴는데, 지금 가는 강변길은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충주댐에 물이 가득 차면서 도로가 물 속에 잠긴다고 했다. 서울에도 물에 잠기는 잠수교가 있긴 해도 이런 길은 처음 보는 것 같다. 택시요금은 15,700원. 신기하게도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가격과 정확히 일치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택시에서 내리자 곧바로 이정표가 보이는데, 비로봉까지 7km다. 이 또한 사전에 알고 있던 거리와 비슷했다. 그런데, 예상시간이 빗나갔다. 눈길이긴 해도 실제 산행시간과는 1시간 이상 차이가 났다.
아무튼, 천동탐방안내센터로 가는 길에 다리안폭포를 지났다. 하지만 어디가 폭포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폭포로 향하는 이정표를 따라 계곡에 가로놓인 목재다리까지 갔는데, 다리난간에 이상한 글귀가 적힌 프랑카드가 걸려있다. ‘다리안폭포 흔적’이라니! 구구한 설명이 곁들여 있었지만, 결국 폭포는 보지 못했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잠시 더 가보니 ‘다리안폭포(橋內瀑布)’ 안내문이 세워져 있었다. “이 폭포가 위치한 지역으로 들어오려면 입구 골짜기에 놓여있었던 구름다리를 건너야만 했다고 해서 ‘다리안폭포’란 이름이 붙어졌다고 전해진다. 용이 승천할 때 힘껏 구른 발자국이 크게 찍힌 곳이 소(沼)가 됐다고 해서 용담폭 (龍潭瀑)이라고도 부른다.” 설명은 장황해도 실체가 없으니 허망할 뿐이다.
이곳에 지난 1999년 세운, 제천출신 산악인 허영호(許永浩)의 기념비가 서있다. 그는 당시 세계 최초로 3극점과 7대륙 정상에 발자취를 남겼다고 한다. 여기서 3극점은 남극점과 북극점에베레스트산을 말하며, 7대륙 최고봉은 아시아의 에베레스트산(8,849m), 남아메리카의 아콩카과산(6,962m), 북아메리카의 매킨리산(6,190m),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산(5,895m), 유럽의 엘브루스산(5,642m), 오세아니아의 푼착자야산(4,884m), 남극의 벤슨산 (4,892m) 등이다.
오전 9시40분, 천동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는데, 무슨 일인지 앙상한 뼈대만 남아있다. 공사안내판을 보면, 지난해 9월23일 착공해서 오는 3월21일 준공예정이라고 적혀있는데,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 현장을 보면, 꽤 오래 전부터 공사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철거만 하고 중지한 것 같다. 그 옆에는 조그만 이동식 화장실만한 크기 시설물에 ‘천동탐방지센터’ 간판이 걸려있다. 그 때문인지 탐방로 입구를 지키고 있는 소백산 깃대종인 여우(이름 ‘미우’)도 쓸쓸해 보인다.
천동탐방로 입구를 지나면서부터 눈길이 시작됐다. 그래서 대피소에 연락했을 때 아이젠이 필요하다고 했던 거구나! 하지만, 아직은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하지만 오를수록 눈은 점점 많아진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쌓인 눈이 점점 많아지니 언제 미끄러질지 몰라 안절부절하면서도 끝내 아이젠은 착용하지 않았다. 웬 고집이람!
11시15분, 천동쉼터에 도착해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런데, 예상했던 시간보다 많이 늦은 상태다. 안내지도를 보면, 출발지점에서 5.1km 올라왔고, 11시쯤 도착할 것으로 예상했던 천동삼거리까지는 아직 1.7km나 남았는데, 벌써 11시가 지났다. 그래도 배가 고프니 기운도 차릴 겸 안 먹고 갈 수는 없다.
천동쉼터를 지나자 본격적인 살길이 시작됐다. 지금까지 올라온 길도 등산로이긴 하지만 포장된 구간도 있고, 길도 넓어서 눈길이 아니면 그렇게 힘든 구간이 아니었는데, 이젠 산행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그런데, 이곳 이정표가 또 이상하다. 천동쉼터에서 분명히 천동삼거리까지 1.7km란 지도를 봤는데, 여기선 2km 남았다고 돼있다. 참내! 어쩔 수 없다. 그냥 올라가보는 수밖에.
낮12시21분, 예상시간보다 1시간20분 늦게 천동삼거리에 도착했다. 산에 눈은 많이 쌓여있어도 하늘은 아주 맑다. 바람도 별로 없고 기온도 적당해서 추운 줄 모르겠다.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가면 비로봉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연화봉인데, 목적지가 연화봉을 지나 대피소로 갈 계획이므로 이 지점에 배낭을 내려놓고 맨몸으로 비로봉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여기서 비로봉까지 600m이니 왕복 1.2km 거리다.
15분쯤 걸어 드디어 비로봉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이 탁 트여있지만 지금은 온통 눈 뿐이다. 소백산 정상석 뒷면에는 조선초기 문신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小白山’이란 시가 새겨져 있었다. “小白山連太白山(태백산에 이이전 소백산) 透迤百里揷雲間(백리에 구불구불 구름이 솟았네) 分明劃盡東南界 (뚜렷이 동남의 경계를 그어) 地設天成鬼破慳(하늘 땅이 만든 형국 억척일세)”
정상석 사진을 찍고 나니 왠지 아쉽다. 셀프로 찍으려고 해도 어설프다. 어떡할까 잠시 생각하면서 볕 좋은 벤치에 잠시 앉아있으려니 어디선가 사람소리가 들린다. 그래, 기다렸다가 찍어달래야지. 잠시 후에 젊은 여자가 혼자서 올라왔다. 그런데, 바로 정상석으로 가지 않고 주변경치만 열심히 감상하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다가 염치 불구하고 정상석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물론, 그 여자도 찍어줬다. 그런데 뻣뻣이 서서 찍는 나에 비해 그 여자는 여러 포즈를 취하면서 찍길래, 재미있다고 했더니 나도 다시 찍어주겠단다. 처음 취하는 포즈라 어색하긴 해도 그녀가 시키는 대로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몇 장 찍으니 그냥 찍은 것보다 보기에 좋다.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 배낭을 메고 연화봉 방향으로 가는데, 길이 더 안 좋다. 아예 길이 보이지 않는다. 다행히 누군가 먼저 간 사람이 있어서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지만, 푹푹 빠지는 곳이 많다. 다리엔 쥐가 나려고 하고, 등산화엔 눈이 잔뜩 들어가 양말이 젖기 시작한다. 이정표엔 오늘 목적지인 제2연화봉대피소까지 6.7km로 돼있다. 천천히 걸어도 3시간이면 될 것 같다.
오후 2시쯤 제1연화봉(1,362m) 아래 도착했다. 하지만 정상까지 올라가진 않았다. 눈이 많이 쌓여있어서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목적지가 비로봉이니 올라가지 않은 것에 대한 아쉬움은 없다. 등산로는 여전히 눈이 푹푹 빠지는 길이 연속된다.
희방사와 대피소로 가는 삼거리를 만났다. 물론, 이정표가 서있어서 알게 된 거다. 비로봉에서 4.2m 왔고, 대피소까진 아직 2.9km가 남았다. 희방사까진 2.5km라고 한다. 그리고 같은 방향으로 연화봉이 100m 남았다고 하는데, 이 또한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이 삼거리에서 연화봉과 희방사로 가는 길에 비해 대피소로 가는 길은 눈이 더 많이 쌓여있다. 아니, 다닌 사람들이 별로 없어 쌓인 상태 그대로라고 해야 맞겠다. 그래도 목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눈길을 뚫고 2시50분, 소백산천문대 화장실까지 왔는데, 여기도 희방사와 연화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희방사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대피소에서 여기까지 걸어와서 내려가야 한다고 했다. 소백산에 오기 전에 전화로 대피소에 물어보기로는 대피소에서 계곡을 따라 2시간쯤 내려가면 희방사에 다다를 수 있다고 했는데, 여기 와서 보니 3~4시간 걸리는 거리였다.
아무튼, 이정표에는 연화봉까지 200m라고 돼있지만, 가파른 눈길을 올라가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아 곧바로 대피소로 가기로 했다.
2시52분, 소백산천문대를 지났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봤을 때는 강우량 레이더관측소가 천문대와 같은 장소에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막상 도착해보니 관측소를 다른 곳에 있었다. 그리고 관측소라고 착각했던 구조물은 첨성대를 본뜬 거였다. 이곳부터는 눈길이긴 해도 많이 녹아있어서 질척거린다. 하지만 신발은 이왕 다 젖었으니 무시하고 그냥 걷는다.
오후 3시33분, 큰 화강암에 ‘백두대간 제2연화봉’이란 비석이 세워진 곳에 도착했는데, 우연히 위를 보니 레이더 관측소 옆에 제2연화봉대피소 간판이 보인다. 저렇게 높은 곳에 있었나! 내려가면서 만날 거라고 예상했던 대피소가 산 위에 있으니 뜨악하다. 이정표에는 300m 올라가면 된다고 했지만, 꽤 가파르기 때문에 쉽지 않다. 그래도 10분만에 드디어 대피소에 도착했다. 지리산과 덕유산의 여러 대피소를 다녀봤지만 여기처럼 찻길이 있는 대피소는 처음이다.
대피소에 들어가 접수하는데, 오늘 묵은 사람이 나를 포함해서 3명이란다. 여기 정원이 97명이라는데. 아직은 눈도 녹지 않은 시즌이라 그런가 보다. 둘은 일행이라 같이 지내고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침상을 배정받았다. 지난번 지리산종주 하면서 나무침상이 너무 딱딱해서 그 후에 에어쿠션을 하나 준비했었는데, 이참에 아주 잘 써먹었다. 입으로 공기를 주입하는 거였는데,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어서 그 또한 괜찮았다.
옷을 갈아입고 대피소를 둘러보는데, 죽령에서 풍기로 가는 버스시간표가 보인다. 하루 2번 다니는데, 첫차가 아침 9시였다. 당초 희방사 방향으로 내려가려고 했었지만, 시간이나 도로사정이 맞지 않아 걱정했는데, 잘 됐다. 덕분에 5시에 일어나려던 계획도 조금 늦출 수 있게 됐다.
오후 5시쯤 취사장으로 가서 컵라면에 햇반을 말아 저녁을 먹었다. 그런데, 마트에서 엊그제 세일하는 햇반을 샀더니 덜 익혔는지 서걱서걱했다. 밥이 찰지지 않고 밥알이 굴러다닐 정도였다. 그래도 꾸역꾸역 다 먹었다. 음식쓰레기를 남길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니 더 그랬다.
저녁 취침시간은 저녁 8시다. 하절기엔 그보다 1시간 늦지만, 동영상을 보는 말고는 딱히 할 일도 없다. 그 시간이면 주위도 어두워져서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으니, 그저 일찍 잠자리에 들 수밖에 없다.
제2일(3월12일)
새벽 5시30분, 알람소리에 맞춰 일어났다. 죽령까지 버스시간인 9시까지 도착하면 되니까 시간이 여유롭지만, 저녁 8시부터 잤으니 9시간 반이나 잔 셈이어서 충분하다. 물론, 불편한 잠자리 때문에 자면서 여러 번 뒤척거리긴 했어도.
떡으로 아침을 먹고 난 후에도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서 1시간 정도 동영상을 보다가 7시 조금 전에 배낭을 챙겨 죽령으로 출발했다. 아침이라 그런지 바람이 많이 분다. 방한모를 쓰긴 했어도 그리 춥진 않아 다행이다.
내려가는 길은 포장도로이고 차도 가끔 다녀서 그런지 눈이 많이 쌓여있진 않아도 빙판길이 자주 나타났다. 그런데 너무 투명해서 무심코 밟고 가다 2번이나 엉덩방아를 찢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도 오른쪽 허리가 아프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아프지 않은 것으로 봐서 뼈에는 이상이 없는 것 같지만, 계속 통증이 있으니 불편하다. 진통제를 먹어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침 7시52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아 죽령에 도착했다. 대피소 직원은 1시간 반 정도 걸릴 거라고 했는데, 너무 빨라 도착했다.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마침 문 연 가게가 있어 들어갔는데, 대부분 말린 약초를 파는 곳이었다. 그래도 과자도 팔고 마즙도 팔길래 연양갱 한봉지와 마즙을 한잔 사 마시면서 난로 곁에 앉아 시간을 보냈다.
9시에 출발하는 버스가 8시40분쯤 들어왔다. 버스에 들어가 기다렸다가 시간에 맞춰 죽령을 출발하는데, 승객은 나 혼자 뿐이다. 풍기읍내로 가는 동안 몇몇 할머니들이 더 탔다. 대부분 지팡이를 짚고 거동하기도 불편한 사람들이다.
9시 반쯤 풍기읍내에 도착했는데, 기차시간(10시50분)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어 ‘역전다방’에 들어갔다. 요즘은 ‘다방’이름을 달고 있는 커피점이 별로 없기 때문에 특별한 메뉴가 있을 것 같아 들어갔는데, 역시 색다른 메뉴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쌍화차(7천원)는 너무 비싼 것 같아 대추자(천)를 한잔 마셨다. 30분쯤 시간을 보내다가 조그만 슈퍼에 들러 기차 안에서 점심으로 빵과 물을 사서 풍기역으로 갔다.
대합실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다가 시간 맞춰 승강장으로 가서 청량리역행 기차를 타고 2시간 만에 도착해,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이번에 희방사와 희방폭포를 보지 못하고 온 게 못내 아쉬워 다음에 시간을 내서, 희방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는 산행을 해볼 예정이다. 대피소에 비치된 지도를 보니, 희방주차장에서 희방탐방지원센터와 희방폭포 희방사를 거쳐 연화봉까지 3.7km(2시간 소요), 연화봉에서 비로봉까지 4.3km (1시간30분), 비로봉에서 천동탐방안내소까지 6.6km(2시간20)이니, 풍기에서 하루 묵고 아침 일찍 출발한다면, 다음날 단양을 거쳐 귀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은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 세부적인 계획에 그때 가서 세우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