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23일(수) 맑음
오늘 산행은 관악역에서 시작하는 삼성산 오르기다. 대체로 화요일에 산엘 가는데,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와서 오늘로 하루 미룬 터였다. 삼성산엘 가려면 지하철 신림선 관악산역이나 1호선 관악역에서 시작하면 되는데, 한동안 관악산역을 이용하다가 오랜만에 관악역으로 오게 됐다. 그리고, 오늘은 안양예술공원에서 산행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우선, 관악역까지 가려면 개롱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올림픽공원과 노량진 등 2번을 갈아타야 했는데, 노량진역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1호선이 언제부턴가 급행이 생겼는데, 곧바로 탄 지하철이 급행이었고, 그 열차는 내가 원하는 관악역엔 서질 않았다. 그렇다고 다음 열차를 기다리자니 인천행을 보내야 해서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 안양역에서 내려 한 정거장 거꾸로 오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그렇게 안양역까지 갔는데, 갑자기 배가 아프다. 어쩔 수 없이 출구로 나가 화장실엘 들렀다가 되돌아와 지하철을 다시 타고 한 정거장 가서 관악역에 내렸다. 곧바로 2번 출구로 나가 큰 길을 건너고, 안양예술공원을 찾아가는데, 얼마가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쩔 수 없이 산으로 올라가는 나무데크 계단 있는 곳에서 무작정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길을 5분 남짓 걷다 보니 좀전에 지나쳤던 등산로입구에서 올라는 길과 만났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괜스레 큰길을 더 걸은 다음 산에 오른 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됐다. 어쨌거나 이제부턴 전에 걸었던 산길을 따라 걸으면 됐지만, 너무 오래 전이라 그다지 기억에 남아있진 않았다.
한동안 굴곡이 거의 없는 산능선길을 걷다가 관악역에서 1.5km쯤 떨어진 구간부터 오르막 돌길이 만났지만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다시 산능선으로 난 흙길을 따라 걷다가 바위산을 만났는데, 한 여자가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리곤 나한테도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하길래, 찍어준 다음 조그만 바위산을 배경으로 나도 한장 찍었다. 그리고, 그 후부터는 돌길이 계속 이어졌다. 옆으로 좀더 쉽게 올라갈 수 있는 구간도 있었지만, 굳이 바위를 타고 올라가는 재미도 있었다.
오전 9시4분, 학우봉(368m)에 도착했다. 바위산에 소나무가 몇 그루 서있고 그 가운데 조그맣게 ‘학우봉’이란 정상석이 있다. 딱히 봉우리란 느낌은 없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학우봉에 대한 설명은 없다. 변변찮은 봉우리에 이름을 붙였을 때는 뭔가 뜻이 있었을 텐데. 학우봉을 지나니 맞은편에 나중에 들르게 될 삼막사(三幕寺)와, 그 뒤로 삼성산 정상에 세워진 안테나가 보인다.
삼막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을 지나 9시34분, 국기봉(477m)에 도착했다. 하지만 바람이 불지 않아서 국기도 펄럭이지 않고 조용하다. 이곳에 세워진 국기봉은 1998년 4월8일 대한민국공군전우회 금천구지회에서 고명산업의 협찬을 받아 세웠다고 표시돼있다. 또한, 네화예술산악회가 2009년 6월12일 세워놓은 정상석도 있다.
9시54분, 드디어 삼성산 정상에 도착했다. 산행을 시작한지 꼭 2시간 만이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당연하게도 정상에는 아무도 없다. 이곳엔 안양산죽산악회가 2012년 10월6일 까만 오석으로 세워놓은 정상석이 있는데, 중요시설물 때문에 이동해서 세워놓았다고 해놨다. 아무도 실질적인 정상에 세워져 있는 안테나를 이르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용도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안테나 앞에는 아주 낡고 조그만 건물도 하나 있는데, 그 또한 용도를 모르겠다. 거의 철거해야 하지 않나 할 정도로 낡았는데도 그대로 두는 이유도 역시 모르겠다. 미관상 빨리 철거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된다.
정상석 근처에 있는 울퉁불퉁한 바위에 자리잡고, 간식으로 삶은 계란과 음료수를 마신다. 하지만 너무 피곤해서인지 맛이 별로 없다. 하긴 아직은 좀 이른 시간이니, 참을 만하다.
왔던 길을 400m쯤 되돌아가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삼막사로 향한다. 그리고 5분쯤 걸어 칠보전(七寶殿)에 도착했는데, 문이 열려있다. 여러 번 지나쳤지만 문이 열린 건 처음 본다. 그곳엔 여자들이 기도하고 있었다. 칠성전 내부 정면에는 마애삼존불(磨崖三尊佛)이 있는데, 말하자면 칠성전은 삼존불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당우(堂宇)다.
칠성전 옆에 세워놓은 설명문을 보니, “마애삼존불은 바위벽을 다듬은 후 가운데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그 좌우에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 (月光菩薩)을 새긴 것이다. 치성광여래는 북극성(北極星)을 부처로 바꿔 형상화한 것으로, 무병장수와 자손번창을 상징한다. 삼존불 아래쪽에는 영조 39년(1763) 8월, 오심(悟心)이 발원하고 서세준(徐世俊)이 시주했다고 새겨져 있다. 삼존불 앞으로 칠보전을 붙여 지었는데, 이것이 보호각이면서 법당역할을 하고 있다. 칠보전 오른쪽 바위벽에는 영조 40년(1764) 칠보전을 새로 지었다는 명문이, 왼쪽에는 고종 18년(1881) 칠성각(七星閣)을 고쳐 지었다는 명문이 있다. 칠보전이란 이름은 후대에 바꿔 붙인 것이다.”
칠성전 옆에는 남녀근석(男女根石)이 있고, 경기도 민속문화유산이라면서 설명문도 거창하게 세워놓았지만, 아무리 봐도 남근,여근처럼 생기진 않았다. 차라리 아까 지나오면서 봤던 바위가 여근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삼막사로 내려가면서 초입에 있는 삼귀자(三龜字)를 본 다름, 원효굴 (元曉窟)로 향한다. 삼귀자에 대한 설명문을 보니, “부처님의 제자 지운영 (池雲英 1852~1935)이 꿈에 관음에게서 오래 살게 해준다는 뜻이 담긴 귀(龜) 자를 받아서 쓴 것이다. 지운영은 시와 글씨,그림에 뛰어나 삼절(三絶)이라고 불린 인물로, 종두법을 시행한 지석영의 형이다. 이 글자들은 지운영이 삼막사에 머문 1920년 무렵 새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원효굴에 가려면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따라 한참 올라가야 한다. 원효굴은 큰 바위 2개 사이에 지붕을 씌워놓은 형태로, 바위 가운데 불상이 놓여져 있고, 그 앞에는 시주자명단을 새겨놓은 비석이 있다.
원효굴을 내려와 삼막사 경내를 둘러본다. 이곳엔 대웅전이 없고, 천불전 (千佛殿)과 육관음전(六觀音殿)이 있다. 육관음전에 여러 사람들이 모여 스님을 중심으로 불경을 낭독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대웅전에 갈음하는 곳이 아닌가 생각된다. 마당에는 부처님 오신날 연등이 많이 설치돼있다.
삼막사를 구경하고 일주문으로 내려오니, 그 옆에 삼막사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삼막사는 남북국시대 원효(元曉)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고찰(古刹)로, 화성 용주사(龍珠寺)의 말사다. 1771년 편찬된 <삼막사 사적기 (三幕寺 事蹟記)>에 따르면, 원효(元曉), 의상(義湘) 두 스님과 윤필거사 (潤弼居士)가 삼성산(三聖山) 에서 초막(草幕)을 치고 수도한 후 원효가 삼막사를 창건했다고 하며, 경내에 있는 삼막사 사적비(三幕寺 事蹟碑)에는 ‘원효스님이 창건하고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건해 관음사(觀音寺)라 했던 것을 고려 태조(太祖)가 중수해 삼막사로 불렀다’고 기록돼있다.”
삼막사 계곡과 아스팔트 포장길을 따라 경인교대까지 내려와 버스를 타고 관악산으로 가서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