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13일 화요일 대체로 맑음
오늘은 벼르던 축령산과 서리산을 간다. 얼마 전에 아내와, 자동차를 갖고 산에 가는 것에 대해 약간의 다툼이 있었는데, 아내가 동생 간호하느라고 자리를 비운 틈에 자동차를 갖고 다려오기로 했다. 기실, 축령산은 자동차가 아니면 다녀올 수 없는 산이긴 하다.
축령산과 이어져 있는 서리산이 요즘 한창 철쭉 철이라 그에 대한 호기심도 조금 있었다. 전에도 다녀오긴 했지만, 딱히 철에 맞춰 간 게 아니라서 철쭉이 피어있는 걸 본 적은 없다. 오늘도 철쭉을 보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지만, 간 김에 볼 수 있을 테니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아침 6시쯤 자동차를 타고 축령산으로 향하는데, 아침 일찍부터 차들이 꽤 많다. 하긴 요즘은 6시만 돼도 날이 훤하게 밝았다. 산행기점인 축령산자연휴양림 제1주차장까지는 48km, 1시간쯤 걸린다. 7시쯤 자연휴양림 입구에 도착했는데, 주차비 3,000원을 내라고 한다. 전에도 냈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오는 동안 고속도로 통행료도 1,500원 결제했다.
제1주차장에 차를 대고 본격적으로 등산을 시작한다. 이른 아침인데도 주차장에는 차들이 더러 있다. 나중에 보니, 이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룻밤 보낸 사람들 차였다. 야외에 텐트를 쳐본 기억이 거의 없어서 뭐가 좋은진 모르겠다. 피톤치드? 벌레소리? 계곡 물소리? 잠깐씩 보고 들으면 되지 밤새워 보고 듣고 싶진 않다.
축령산은 조선 태조와 인연이 깊은 산이다. 축령산은 예전에 비룡산 (飛龍山)이나 오득산(五得山)으로 불렸다는데, 고려 때 태조가 사냥하면서 유독 축령산에서만 짐승이 잘 잡히지 않자 정신을 바싹 차리고 재빠른
동작으로 사냥하는 모습이 마치 용이 나는 듯해 ‘비룡산’이 됐고, 짐승사냥이 시원치 않자 이곳에서 산제를 지내고 한꺼번에 돼지 다섯 마리를 잡게 되어 오득산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그리고, ‘고사 드렸던 산’이라고 해서 축령산(祝靈山)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1800년대 후반에 나온 <경기지>나 <경기읍지>에는 축령산으로 돼있지만, 이보다 빠른 시기에 만들어진 <신증동국여지승람 (新增東國輿地勝覽)>(1530년[중종25])이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1861년 제작) 등에는 비랑산(非郞山) 또는 비령산(飛靈山)으로 돼있다. 사냥에 성골하긴 ‘빌었기’ 때문에 빌령산으로 부르건 것이 변한 게 아닌가 추측된다고 한다. 아무튼, 누군가 열심히 ‘빌었던’ 산인 건 분명한가 보다.
축령산은 육산(陸山)이지만 초입부터 경사가 무척 심하다. 이럴 땐 계단을 설치한 게 더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긴, 계단을 설치한다면 또 힘들다고 투덜대겠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육산은 토산(土山)이라고도 하고, 그에 대비되는 악산(嶽山)은 골산(骨山)이라고도 한다고 한다. 이는 융기 (隆起)의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고 하는데, 그냥 등산로에 바위가 많으면 악산이고, 흙이 많으면 육산으로 보면 될 것 같다.
출발한지 20분 남짓 걸려 800m를 올라 수리바위에 도착했다. 먼저 와있던 젊은 여자 둘이 사진 찍기 위해 서로 다투고 있다. 찍는 사람은 찍히는 사람한테 수리바위에 올라가라고 하고, 찍히는 사람은 또 나중에 올라가겠다고 하다 결국 사진을 찍기 위해 수리바위로 올라간다. 그런데, 올라가는 길이 워낙 험하기 때문에 쉽지 않고 그래서 올라가지 않으려고 했던 거였다. 바위 옆에 있는 안내문에는, “이곳에 독수리가 많이 살았고, 이 바위를 멀리서 보면 독수리 머리를 닮아 수리바위라고 부르게 됐다. 실제로 얼마 전까지 독수리 둥지가 있었다.” 그런데 바위모양이 독수리 머리를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독수리 머리를 자세히 본 적도 없지만.
이정표상 거리로 950m를 30분만에 올라 남이바위에 도착했다. 조선초 명장이었던 남이(南怡 1443~1468)가 무예를 닦던 곳으로, 바위에 깊게 파인 자국은 남이장군이 앉아있던 자리라고 한다. 남이는 태종의 딸인 정선공주 (貞善公主)의 손자로, 1460년(세조6) 18세 때 무과에 급제해 이름을 날리다 1468년 역모에 연루돼 참수됐다. <연려실기술 (燃藜室記述)> 등 여러 문헌에는 남이장군에 대한 많은 전설이 실려있으며, 무속에서는 무당이 섬기는 장군 중 한분이라고 한다.
남이바위를 지나면서 등산로가 악산으로 바뀐다. 그나마 정상까지 거리가 720m로 멀지 않다. 그렇게 20분이 채 걸리지 않아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작은 돌탑과 ‘축령산’ 표지석이 있고, 해발 887.1m라고 새겨져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태극기가 바람에 힘차게 나부끼고 있다. 잠시 후에 남자 둘이 올라오길래 그중 한명에게 인증사진을 부탁했지만,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성의가 없는 건가, 사진에 별 관심이 없는 건가!
시간도 이른데다 앉아 쉴 곳도 마땅치 않아 바로 서리산 방향으로 향한다. 이정표를 보니 2.87km다. 그런데 계속 내리막길이다. 서리산도 꽤 높은 산인데, 이렇게 내려가다간 떠 얼마나 올라가려고 이러나! 길은 다행히 흙이라서 걷기에 힘들진 않다. 그렇게 1시간쯤 걸어 서리산 정상에 도착했다.
이곳 정상에도 돌탑이 있긴 한데, 축령산에 비해 훨씬 작다. 그저 흉내만 낸 정도다. 서리산 정상석에 표시된 높이는 해발 832m다. 그런데 내려온 길에 비해서는 올라온 기분이 그리 들지 않는다. 그리고 여기서도 인증사진을 한장 부탁해서 찍었다. 정상석 앞에 조금은 성의 없게 붙여놓은 안내문을 보니, “서리산은 북서쪽이 급경사로 이뤄져 서리가 내려도 쉽게 녹지 않아 늘 서리가 있는 것처럼 보여 서리산(霜山)으로 부르게 됐다고 한다.”
서리산 정상에는 단체로 온 듯한 나이든 남녀들이 여럿 보였다. 나도 나무벤치에 앉아 잠시 쉬면서 에너지바 1개와 커피를 마셨다. 오늘 낮 기온이 26도나 된다고 해서 더울 줄 알았는데, 바람도 조금 불어서 서늘하고 딱 좋다. 이참에 땀도 어느 정도 말랐다.
이제 철쭉동산 방향으로 하산한다. 축령산과 서리산은 거의 붙어있는데도 서리산 쪽에만 철쭉꽃이 만발해있다. 누군가 일부러 심어놓은 것 같다. 오늘 올라는 사람들은 대부분 철쭉으로 보기 위해 온 사람인 듯하다. 단체로 온 사람들 중 일부는 축령산 쪽으로 내려가려는가 하면, 다른 일부는 이제 서리산 정상에도 올라왔고 철쭉도 봤으니 올라온 길로 그냥 내려가자고 한다. 축령산 쪽으로 가려면 아무래도 1시간 이상 더 걸릴 테니 그만큼 더 힘들 것이다.
철쭉동산을 지나면서 보니 꽃이 많이 피어있는데도 아직 꽃망울도 많이 있다. 어차피 자주 오지도 못할진대, 이정도 구경했으면 대만족이다!
조금 내려오다 왼쪽으로 조그만 샛길이 보여 내려갔더니 조금 안가 임도가 나타났다. 2년전(2023년) 건설했다는데 용도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임도를 따라 걸어도 경사가 워낙 심하니 쉽지 않다. 더구나 포장길은 흙길에 비해 더 힘들다. 그래도 산으로 올라가는 사람들에 비할 데는 아니다.
내려오면서 보니 산중턱에 ‘화합바위’라는 게 보인다. 그 밑에 있는 안내문을 보니, “한 바위가 갈라진 형태지만, 이곳에서 기도하면 안 좋았던 관계가 좋아지면 좋겠다는 의미로 축령산자연휴양림에서 ‘화합바위’라고 이름 붙였다.”
갑자기 김춘수(金春洙 1922~2004) 시인의 시구(詩句)가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의미를 부여하니까 그럴듯해진다.
이번에는 ‘승천바위’를 만났다. 그곳에도 여지없이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바위 옆 계곡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어 바위 위에 있는 구멍을 통해 승천했다고 해서 ‘승천바위’라고 부르게 됐다. 무속인들의 기도장소로 사용되다 1995년 축령산자연휴양림이 조성되면서 산불예방을 위해 기도장소를 폐쇄했다. 지금은 ‘소나무바위’라고도 부른다.”
내려오는 내내 계곡을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요즘 비가 온 탓인지 물이 더 많이 흘러내리는 것 같다. 문득, 10여년전 에티오피아에서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곳은 우기 때는 그나마 물 구경이라도 할 수 있지만, 건기 때가 되면 6개월 동안 계곡에서 물을 볼 수 없다. 그리고 가끔 보이는 계곡물도 여기처럼 맑은 물이 아니라, 매우 탁하다. 어떤 이는 우리나라도 물부족 국가에 끼워 넣곤 하지만, 다른 나라를 가보지 않고 하는 소리다. 물론, 물을 아껴 써야 하긴 해도 사시사철 이렇게 물줄기가 요란한 나라도 흔치 않다는 생각이 든다.
3시간 정도의 산행을 마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올라갈 때는 무척 힘들다고 느끼는데, 막상 끝내고 나면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그래도 예전보다 더 힘든 건 확실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