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27일 화요일 맑음
오늘 산행지는 청계산(淸溪山)이다. 그런데 이곳은 주소가 여러 개다. 우선 출발지인 원터골입구는 서울시 서초구다. 그리고, 오늘 목적지인 매봉은 성남시 수정구다. 또한 청계산의 최고봉이지만 군사시설이 설치돼있어 갈 수 없는 망경대(望京臺 616.3.m)는 경기 과천시다.
아무튼, 신분당선 청계산입구역에서 내려 산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5분쯤 걸어가면 원터골입구에서 미륵당(彌勒堂)을 만난다. 그 안에는 높이가 225cm나 되는 석불입상이 모셔져 있다고 하는데, 언제가 문이 닫혀있고 주위로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안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주민들이 매년 동제 (洞祭)를 지낸다고 하니, 그 날짜에 맞춰 온다면 석불입상을 볼 수 있을 것 같긴 하다.
미륵당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굴다리 밑에는 마을주민들이 채소 등을 파는 난전(亂廛)이 있는데,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천으로 덮여있다. 그리고 이내 오르막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5분도 채 걸리지 않아 계곡입구에 도착했는데, 산책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곳은 조용하고 숲속이라 공기도 좋기 때문에 가까운 곳에 산다면 수시로 산책해도 좋을 만한 장소다. 그런데 조금 더 가니 계곡 안에 중장비가 들어가서 공사가 한창이다. 안내문을 보니, ‘산림유역관리사업’이란다. 공사기간이 7월1일까지라고 돼있는데, 한달 안에 공사를 끝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어선다. 이정표를 보니 목적지인 매봉까지는 2,200m다. 어느 쪽으로 가든 거리나 난이도는 비슷할 테지만 청계산엘 오면 습관처럼 왼쪽길로 올라갔다가 다른 길로 내려온다. 오늘도 그 코스대로 올라갔다 내려올 예정이다.
청계산이 그렇게 높은 산은 아니지만, 오르막 경사가 심하고 그래서 계단을 많이 설치해놨기 때문에 만만하게 올라갈 수 있는 산은 아니다. 그래도 이왕 왔으니 힘듦을 참으면서 한발짝씩 계단을 올라간다.
청계산의 정기(精氣)를 받아갈 수 있다는 돌문바위를 지나, 오늘도 충혼비에 들른다. 1982년, 공수기본 250기 대원들이 자격강하를 위해 공군수송기에 탑승했다 짙은 안개로 추락하는 바람에 53인이 모두 희생됐는데, 그들을 기리는 충혼비다. 나도 1979년 204기로 공수기본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이곳을 지날 때마다 남일 같이 않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들이 안치돼있다는 국립서울현충원(27번29번)에는 아직 한번도 가보지 못했다. 올해는 시간을 내서 찾아봐야겠다.
매바위(578m)를 지나 100m 거리에 있는 매봉에 도착(8시21분)했더니 벌써 몇몇 사람들이 먼저 와있다. 사진 찍는 사람도 있고 옆에 설치된 벤치에 앉아 휴식하는 사람도 보인다. 이럴 땐 인증사진을 남길 수 있어 좋다. 처음엔 젊은 남자한테 찍어달라고 했는데, 사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잠시 앉아서 간식을 먹고 난 다음, 이번엔 젊은 여자들이 있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번 더 부탁했더니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면서 여러 장을 찍어준다. 그래도 내 맘 같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괜찮은 사진이 있긴 하다.
올라갔던 길과는 다른 코스로 산을 내려오다 보니 청계산의 유래에 대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청계산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라고 한다. 그 전에는 청룡산(靑龍山)이었다. 과천 관아의 진산을 관악산으로 볼 때, 왼쪽 산이 좌청룡 형국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백호산(白虎山)은 관악산 오른쪽에 있는 수리산이다.”
안내문 옆에는 고려말 학자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이 지었다는 시(詩)도 한 수 쓰여있다. 인터넷을 검색해서 찾아보니 원본이 있었다.
淸溪寺 청계사
靑龍山下古招提 청룡산 아래 옛 절
氷雪斷崖臨野溪 얼음과 눈이 끊어진 언덕이 들과 계곡에 잇닿았구나
端坐南窓讀周易 단정히 남쪽 창에 앉아 주역을 읽노라니
鐘聲初動欲鷄捷 종소리 처음 울리고 닭이 깃들려 하네.
내려오면서 보니 계곡에서 작업 중인 중장비가 한두 대가 아니다. 바닥을 정리하고 커다란 화강석으로 벽을 쌓고 있었다. 더 좋은 환경을 만들려고 하는 것이겠지만, 괜한 투자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내가 와보지 않은 사이에 어떤 재해로 인해 주변이 심하게 망가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은 여러 번 이곳을 다니면서도 눈에 거스르는 건 없는 것 같았었는데.
산을 내려와 다시 미륵당을 지나는데, 아직은 9시 반도 되지 않았다. 그래도 땀을 충분히 흘렸으니 오늘도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