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 종주산행

by 이흥재

2025년 6월3일 화요일 흐리고 한때 비


오늘은 설악산 종주산행을 떠난다. 우리나라에 대피소가 있는 국립공원이 모두 네 곳 있는데, 그중에 지리산은 여러 번 다녀왔고, 덕유산은 2023년 2월, 소백산은 지난 3월에 다녀왔었다. 그러니까, 설악산을 다녀오면 대피소가 있는 국립공원 종주산행의 도장깨기를 마친 셈이 된다.


그런데, 다른 산들에 비해 설악산은 딱히 정해진 종주산행 코스가 없다. 인터넷을 찾아봐도 각자 적당한 코스를 정해 대피소에서 하루 머물고 1박2일 코스로 종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번에 내가 택한 코스는 백담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대청봉엘 올랐다가 희운각대피소에서 하루 묵은 後 설악산 소공원으로 내려와 시내버스를 타고 속초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는 코스다. 곳곳에 세워진 이정표를 기준으로 계산한 산행거리는, 백담사에서 대청봉까지가 12.9km, 소청봉 삼거리에서 대청봉 왕복구간 1.2km, 다시 희운각대피소까지 1.3km를 더하면 첫날 산행거리는 15.4km다. 다시 다음날 희운각대피소에서 비선대까지 5.5km, 비선대에서 설악동탐방지원센터까지 3.0km로 둘째날 산행거리는 8.5km고, 총 거리는 23.9km가 된다.


동서울터미널에서 용대리로 가는 첫 버스(06:49 출발)를 타기 위해 새벽 4시55분에 알람을 맞춰놨었다. 일어나자마자 세수만 하고 배낭을 메고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롱역으로 갔는데, 첫차 시간(05:34)까지 아직 20분도 더 남아있다. 너무 서둘렀나 보다. 그래도 버스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일찍 다니는 게 마음 편하다.


예정시간보다 2분쯤 늦게 온 지하철을 타고 천호와 잠실에서 2번 갈아탄 後 동서울터미널이 있는 강변역에 내렸는데, 버스시간까지는 아직 30분 넘게 남아있다. 그런다고 딱히 할 일도 없어 버스승차장으로 가서 기다리는데, 버스는 와 있지만 출발 5분전부터 승차를 시작한다면서 아직은 문이 굳게 닫혀있다.


또 하릴없이 기다리다가 검표가 시작되자 배낭을 버스 트렁크에 싣고 정해진 3번 자리에 가서 앉았다. 버스를 탈 때는 맨 앞자리가 아니면 멀리를 하기 때문에 탑승시간을 조정해서라고 어떻게든 앞자리에 앉으려고 한다. 이번에도 예매하면서 운 좋게 앞자리가 남아있었다. 하긴, 어떤 사람들은 일부러 뒤로 가서 앉는 사람들도 더러 있다.


버스는 목적지에 가까워진 인제와 원통에서 한 차례씩 정차한 後 8시 반쯤 용대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내렸다. 여기서 산행 출발지인 백담탐방지원센터까지는 도보로 2시간 거리나 되기 때문에 셔틀버스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하지만 셔틀버스를 타려면 1km쯤 걸어가야 한다. 그리고 앞서 가는 사람들을 따라 셔틀버스 타는 곳까지 부지런히 걸어갔는데, 좀전에 버스가 출발했다고 한다.


이곳 셔틀버스는 기본적으로 30분마다 운행하는데, 그 사이 버스가 만석이 되면 시간에 관계 없이 출발한다고 했다. 오늘도 20분 만에 33명이 탑승해서 예정보다 10분 일찍 출발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왼쪽 보행로로 걸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데, 중간에 보행로가 끊기기도 하고 거리도 멀어서 굳이 걸어가는 걸 추천하진 않는다.


버스로 30분쯤 달려 9시35분쯤 백담사(百潭寺) 입구에 도착했는데, 백담사가 가까운 곳에 있긴 해도 구경할 여유가 없어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그런데, 등산로 초입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백담사는 신라 진덕여왕 원년(647) 자장율사가 한계사(寒溪寺)로 창건했다. 후에 운흥사(雲興寺)• 심원사(深源寺)•선구사(旋龜寺)•영취사(靈鷲寺)로 불리다가 1783년 백담사로 개칭했다. 전설에 따르면, 대청봉에서 절까지 작은 담이 100개 있는 지점에 세운 데서 일컬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만해 한용운(萬海 韓龍雲 1879~1944) 선사는 1905년 이곳에서 삭발염의(削髮染衣, 머리털을 깎고 검게 물들인 옷을 입는다는 뜻으로, 佛門에 들어섬을 이르는 말)하고 입산수도 해 깨달음을 얻었다.”

20250603_093626.jpg

등산로 입구는 짧은 숲길이 이어진다. 처음 만나는 이정표를 보니 봉정암 (鳳頂庵)까지 10.6km, 백담탐방지원센터까지는 0.4km다. 그런데 오늘의 목적지인 대청봉까지 거리는 아직 나와있지 않다. 앞서 걸어가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목적지가 어디인지, 어디서 묵을 것인지는 알 수 없으니 무심하게 뒤따라 걸어간다.

20250603_094125.jpg

10분쯤 걸어 백담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잠시 後 다시 만난다고 돼있다. 시원한 물소리가 듣고 싶어 계곡과 조금 더 가까운 오른쪽길을 택했는데, 이런 계곡 물소리를 올라가는 내내 듣게 될 거란 걸 이땐 미처 몰랐다. 물론, 좋았다는 얘기다.


조금 가다 보니 ‘유네스코 생물권 보전구역’ 안내문이 보인다. 설악산은 수려한 경관과 다양한 동식물 서식처로 가치를 인정받다 1982년 생물권 보전지역으로 지정됐다고 한다. 2024년 현재, 세계 136개국 759곳이 지정돼있으며, 우리나라는 설악산을 시작으로 2024년 창녕까지 10곳이 지정돼있다. 이중 제주도는 2002년 지정된 後 2019년 확대됐으며, 신안다도해도 2009년 지정된 後 2016년 확대됐다. 여기는 광릉숲(2010년 지정)과 연천 임진강(2019년 지정)도 포함돼있다.


등산로 곳곳에는 설악산을 주제로 한 시(詩)들이 새겨져 있다. 그중 첫번째 만난 시는 효종(孝宗, 재위1649~1659) 때 영의정을 지낸 이경석(李景奭 1595~1671)의 <백헌집(白軒集)>에 실려있는 시다.
<雪嶽山(설악산)>
迥立含雲氣(형립함운기) 멀리 구름기운 머금고 서니
層巓逼紫霄(층전핍자소) 층층 봉우리 하늘에 닿을 듯
應知太始雪(응지태시설) 응당 알겠노라 태초의 눈이
六月不曾消(유월불증소) 6월에도 녹지 않음을.


다음은 영조(英祖, 재위1724~1776) 때 이조참판을 지낸 이재(李縡 1680~1746)의 <도암집(陶菴集)>에 실려있는 시다.
<望雪嶽(설악을 바라보며)>
語大元無敵(어대원무적) 크기를 말하자면 원래 비할 데 없고

窮高詎可重(궁고거가중) 높이를 다했으니 어찌 하겠는가
試於平地見(시어평지견) 시험 삼아 평지에서 바라볼 때
邱垤亦爲峰(구질역위봉) 자그마한 언덕도 또한 봉우리네.


또한 숙종(肅宗, 재위1674~1720) 때 공조참판에 제수됐던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은 곡운집(曲雲集)에 곡연기(曲淵記)란 시를 남겼다.
한계와 설악 사이에 곡연(백담계곡)이 있다(寒溪雪嶽之間 有所謂曲淵者). 땅은 수십 리에 이르며 고개의 동서를 차지한다(其地方無慮數十里 正據嶺東西). 사방이 험하게 막혀있어 사람이 통하지 못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지세가 평탄하고 넓어 밭을 일구어 살 만하다(四面險阻 人跡不通 入其中 地勢平曠 可耕可居). 울창한 숲이 해를 가려도 토지는 비옥해 산골짜기에서 생산하는 것은 없는 것이 없다(穹林蔽日 土地膏沃 山峽所產 無有不備).
수석의 뛰어남은 우리나라에서 제일이다(水石之勝 冠絶東方). 간혹 삼을 캐는 사람이 오간다(或有採蔘人往來). 옛 집터가 한 곳 있는데, 부자가 살던 곳이라 한다(有一故基 傳以爲富民舊居). 혹은 동봉(김시습)이 소요하던 곳이라고 한다(或以爲東峯所遊). 야사에 동봉이 한계와 설악 사이에 오래 머물렀다 하니 이곳이 그곳 아니겠는가(野史云 東峯多住寒溪雪嶽之間 則無乃此是其地歟)? (하략)


하나 같이 설악을 잘 표현한 시들이다. 마지막으로 영의정 김수항(金壽恒 1629~1689)의 아들이자 숙종 때 대제학을 지낸 김창협(金昌協 1651~1708)의 <농암집(農巖集)>에 실림 시를 보자.
<望嶽(설악산을 바라보며)>
木末奇峯次第生(목말기봉차제생) 나무 끝으로 기이한 산 차례로 나오는데
晶熒秀色使人驚(정형수색사인경) 수정처럼 고운 빛 사람을 놀래키네.

誰知楓嶽香城外(수지풍악향성외) 누가 알았으랴 풍악산 중향성 외에
更有山如削玉成(경유산여삭옥성) 옥을 깎아 세운 산 또 있을 줄을.
여기서 중향성(衆香城)은 금강산 내금강의 영랑봉 동남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하얀 바위성을 말한다.


10시38분, 백담사에서 3.5km 떨어진 영시암(永矢庵)에 도착했다. 1시간쯤 걸린 셈이다. 이곳에선 많은 사람들이 휴식하고 있었다. 나보다 앞서 간 사람들은 서너 명밖에 못 봤는데 언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 엉뚱한 사람을 만났다. 대피소를 예약하지 않고 왔다는 거다. 그러면서 당초 대청봉에 올랐다가 소공원 쪽으로 내려가려고 했었는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아 한계령으로 빠져야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거기까지도 만만히 않은 거리다. 한계령에서 저녁 7시쯤 서울로 가는 막차가 있어서 그걸 타야겠단다. 참 무모한 산행을 하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20250603_104038.jpg

영시암은 영의정을 지낸 김수항의 아들이자 유학자였던 삼연 김창흡( 三淵 金昌翕 1653~1722)과 관련이 많은 곳이다. 그는 1709년 이곳에 은거하면서 판잣집을 짓고 ‘영시암’이라고 했다. 이곳에 은거해 죽을 때까지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는 맹세의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김창흡 사후 폐허가 됐던 것을 1760년 중건하면서 유학자의 거처에서 스님이 기거하는 절로 바뀌었다. 이곳에는 삼연정사(三淵精舍)에 대한 모습을 담은, 영조 때 이조참판으로 추증된 홍태유(洪泰猷 1672~1715)의 내재집(耐齋集)에 실린 <유설악기(遊雪嶽記)> 일부가 소개돼있다.


“절에서 동쪽으로 몇 리 가면 김삼연 정사에 이른다(由寺而東僅數里, 得金三淵精舍). 특이한 것은 서루와 마주한 것이다(其異者直書樓). 봉우리가 하나의 띠처럼 옆으로 펼쳐졌는데, 짐승이 웅크려있는 듯, 새가 돌아보는 듯, 사람이 면류관을 쓰는 듯, 여러 모습을 하고 있다 (有峯一帶橫開, 如獸蹲, 如禽顧, 如人冠冕而行, 其狀百千). 색 또한 맑고 깨끗해서 한 밤의 보름달 같기도 하고, 아침에 쏟아지는 싸라기눈 같기도 해서 한 점 세상의 티끌도 없다(色又皎潔, 如明月之夜, 如微霰之朝, 無一點塵埃氣). 이곳에 살면 고결한 사람이 될 것이다(得此而居者).”


이정표를 보니 대청봉까지는 아직 9.4km나 남았다. 아마도 4시간 정도는 가야 할 것 같다. 1.2km 걸어 수렴동대피소에 도착했다. 이곳은 10명이 머물 수 있는 작은 대피소다. 벌써 다들 출발했는지 인기척이 없다. 하긴 대피소 출소시간이 아침 8시이기 때문에 이 시간에 대피소에 머물 수는 없다. 오른쪽 계곡의 물이 참 맑다.

20250603_110059.jpg

11시 반쯤 계곡으로 내려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침 괜찮은 장소를 봤는데 다른 사람이 먼저 와서 자리 잡고 있어서 조금 더 올라가 자리를 잡았다. 백담계곡엔 이름도 없는 크고 작은 폭포들이 참 많다. 이곳에도 여러 차례 떨어지는 작은 폭포가 있고 폭포 아래에는 어김없이 탕(湯)이 있다. 여기서 재미있는 구분법 하나.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탕(湯)은 폭포 밑의 못을 뜻하며 연(淵)이라고도 한다. 오랜 세월 폭포의 물줄기가 반석(盤石)에 떨어져 수식작용(水蝕作用)에 의해 만들어진 못이 탕이다. 비슷한 말인 담(潭)은 물이 고인 깊은 못으로, 폭포와 연결되지 않은 하식작용(河蝕作用)에 의해 형성된 못이며, 소(沼)는 늪이나 습지를 가리키고, 땅바닥에 우묵하게 패여 물이 고인 곳을 지칭한다. 늪보다 작은 규모를 웅덩이라고 한다.

20250603_122254.jpg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산줄기가 맑은 하늘의 흰구름과 잘 어울린다. 우리나라 산 높이 순위를 보면, 한라산과 지리산 다음으로 높은 산이 설악산이지만(지리산에 대청봉보다 높은 봉우리가 셋이 더 있어 대청봉은 여섯번째 높은 봉우리다), 산세의 아름다움으로 치면 설악산이 으뜸인 것 같다. 산행 중에는 큰 나무에 가려 보는 게 쉽지 않지만, 대청봉 등 정상에 올라가면 환상적인 절경을 볼 수 있다(하지만 아쉽게도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 풍경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었다).

20250603_122436.jpg
20250603_125422.jpg

해탈고개라고도 하는 깔딱고개를 500m 오르며 봉정암(鳳頂庵)으로 향하는데, 재미있는 문구가 보인다. “천당 극락이 어디에 또 따로 있나요? 지금, 이순간! 자로 이자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란 글이 떠오른다.

20250603_131129.jpg

오후 1시18분, 봉정암에 도착했는데 날씨가 갑자기 흐려진다. 그리고 비가 조금씩 내린다. 그렇지 않아도 오늘 이 시간쯤에 비가 올 거란 예보가 있었는데, 시간까지 딱 맞춰버렸다. 누군가 괜한 불평을 늘어놓는다. “이런 날씨는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아도 좋을 텐데.” 그런다고 날씨가 바뀔 일은 없다.


봉정암은 백담사 부속암자로 신라 선덕여왕 13년(644) 자장율사가 중국 청량산에서 구해온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려고 시창(始創)했다고 한다. 그 후 원효대사 등 여러 스님들이 중창했다고 하는데, 백담사에서 4시간 이상 올라와야 하는 험한 길을 뚫고 이곳에 암자를 지은 게 보통 일은 아니다. 진신사리는 보물로 지정된 5층 석탑에 봉안돼있는데, 그래서 법당인 적멸보궁(寂滅寶宮)에는 불상( )이 없다고 한다. 신라 애장왕(哀莊王, 재위800~809) 때 조사 봉정(鳳頂)이 이곳에서 수도했기 때문에 봉정암이라고 했다는 설도 있다고 한다.


다른 등산객들은 비가 멎을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적멸보궁으로 올라가는데, 언제 비가 그칠지 알 수 없어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나홀로 산행을 계속한다. 그런데, 비도 오고 바람도 부는 데다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려니 힘이 2배로 드는 것 같다. 날씨가 변화무쌍해서 올라가는 동안에도 비가 뿌렸다가 잠시 해가 나다가 다시 비가 내리지만 우비도 없이 다 맞고 가는 수밖에 없다.


이럴 땐 나이 때문에 더 힘든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이와 관계없이 나보다 더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많고, 산행속도로 보면 내가 무척 빠른 편이다. 그러니 나이 탓 할 게 아니지만, 전에는 이보다 덜 힘들었던 것 같아 아무래도 나이가 체력에 마이너스가 되는 건 맞지 않나 싶다.


오후 2시4분, 봉정암을 출발해 30분이 채 걸리지 않아 소청대피소 (小靑待避所)에 도착했다. 이곳은 수용인원이 62명인 꽤 큰 대피소다. 하지만 머물 곳은 아니니 주위만 한번 둘러보고 다시 산행을 계속한다. 그리고 400m를 20분만에 올라 소청봉에 이르렀다.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1.2km 가면 대청봉(大靑峯 1,708m)이고 왼쪽으로 1.3km 내려가면 오늘 묵을 희운각대피소다.


오늘 목적지가 대청봉이니 오른쪽 길로 향한다. 대신에 배낭은 벗어서 이정표 기둥 뒤에 뒀다. 비가 내리곤 있지만 커버를 씌워놓았기 때문에 안에 있는 물건들은 젖지 않을 것으로 기대하면서. 다른 때보다 조금 덜 무거운 배낭이었지만 그마저 벗어놓고 나니 산행이 훨씬 쉬워진다.


중청봉 허리를 돌아 중청대피소 건설현장을 지난다. 중청대피소는 1983년 임시건물로 시작해, 1995년부터 1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식대피소로 운영해왔는데, 노후화로 철거한 後 대피공간만 갖춘 소규모 대피소로 변경해서 운영될 거라고 한다. 그런데, 철거 당시 신문기사를 보면 2024년 말까지 완공될 거라고 했는데,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이며 공사안내판에는 준공일자가 아예 없다. 내가 이용할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너무 무계획한 공사인 것 같다.


이제 600m 남은 대청봉 정상으로 향한다. 하지만, 흐린 날씨에 비까지 흩뿌리고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바람이 거센 최악의 날씨다. 그래도 목표가 코앞이니 한발한발 정상을 향해 발을 옮긴다.


오후 3시 정각, 드디어 정상석이 있는 바위산에 도착했는데 사람이 한명도 없다. 날씨가 좋았으면 사람들이 많았을 텐데, 악천후다 보니 다들 올라오는 걸 힘들어했나 보다. 사진을 몇 장 찍는 동안 마침 한 사람이 올라오더니 고맙게도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해서 인증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땡큐!

20250603_150050.jpg
20250603_150211.jpg

하산하는 동안에도 바람이 역시 거세다. 손이 어는 것 같이 차가워진다. 이러다 동상 걸리는 거 아냐! 할 정도로 손이 곱아온다. 올라갈 땐 뒤에서 바람이 불어줘서 그나마 조금 쉽게 올라갔는데, 내려오면서는 맞바람이니 그만큼 더 힘들어진다. 바위투성이인 등산로에서 만에 하나 헛디딜 까봐 정신을 바짝 차린다.


다시 중청대피소 공사현장을 지나고 배낭을 내려놨던 소청봉에 오니 비가 조금 그친 것 같다. 배낭을 짊어지고 1.3km 거리에 있는 희운각 대피소로 향한다. 그리고 오후 4시23분, 오늘의 숙소인 희운각대피소에 도착했다. 접수처에 들러 자리를 배정받고 들어가보니 여기도 1인실이다. 예약이 만실이라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공간을 생각했었는데, 자유롭게 하룻밤 보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 좋다. 짐을 모두 풀어헤쳐 방바닥에 펼쳐놓고 잠시 쉬다가 저녁을 먹으로 나갔다.

20250603_162316.jpg

희운각대피소는 1969년, 한국산악회 소속 제1기 에베레스트 원정대가 훈련을 위해 죽음의 계곡 등반 중 눈사태로 10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가 있은 後 희운 최태묵(喜雲 崔泰默 1920~1991) 선생이 사재를 들여 이곳에 대피소를 건립한 것을 연유로 그의 호를 따서 희운각(喜雲閣)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저녁을 먹기 위해 어제 마트에서 사온 나시고렝(nasi goreng)을 야외테이블에 펼쳤는데, 한입 먹어보니 맛이 시큼하다. 처음 먹어보는 나시고렝이긴 해도 이 맛은 아니겠지! 설마 상한 건가? 모험할 수는 없으니 나시고렝 먹는 걸 포기하고 간식으로 준비해간 초코파이와 에너지바로 저녁을 때웠다. 그리고, 특별히 할 일도 없고 저녁 9시에 전체 소등한다고 했으니까, 그동안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8시쯤 되니 불을 꺼버린다. 에이, 일찍 자자!


6월4일 수요일 맑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는 사람들로 시끄럽다. 한참 지났다고 생각한 즈음에 진동알람이 울려 일어나 시계를 보니 3시30분이다. 아직은 일어날 시간이 아니어서 또 다시 잠자려고 하는데 사람들이 계속해서 짐 싸느라고 부스럭거린다. 그리고, 내가 맞춰놓은 알람을 듣고 5시에 일어났더니 밖은 훤하고 대부분의 방이 비어있다.


배낭을 싸들고 밖으로 나오니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들로 바쁘다. 화장실만 다녀온 後 씻지도 않고 바로 출발! 이정표를 보니 비선대까지 5.5km다. 하지만 비선대가 어디쯤인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내려가보는 거다.


5분쯤 내려가다 갈림길이 나왔다. 여기서 왼쪽으로 가면 그 유명한 공룡능선이고, 오른쪽은 양폭대피소를 거쳐 비선대로 가는 길이다. 나는 당초 예정대로 오른쪽 길을 택했다. 온통 바위투성이 길이라 어느 쪽으로 가든 쉽진 않겠지만, 공룡능선 쪽이 거리가 조금 더 긴 것 같아 그나마 짧은 코스로 가려는 거였다.


아침 6시7분, 계곡에 자리잡은 양폭대피소를 지난다. 수용인원이 8명인 소규모 대피소다. 사람들이 다들 떠났는지 대피소는 조용하다. 이정표를 보니 비선대까지는 3.5km 남았다.

20250604_060726.jpg

7시14분, 비선대(飛仙臺)를 지난다. 왼쪽으로 멋진 바위가 보이긴 하지만 내려오는 동안 봤던 경치에 비해 특별히 다를 것도 없어 보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와선대(臥仙臺)에서 노닐던 마고선(麻姑仙)이 이곳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마고(麻姑)는 신라의 박제상(朴堤上)이 지은 <부도지(符都誌)>에 나오는 마고성(麻姑城)에 사는 여신이다.

20250604_071614.jpg

발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그런데 원인을 잘 모르겠다. 엄지발가락 위에 뭔가 콕콕 찌르는 것처럼 아픈데, 신발을 벗어봐도 그곳에 별다르게 나와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그저 참으면서 걷는 수밖에.


‘와선대의 비밀’이란 안내문이 있는 곳에 도착했는데, 정작 와선대가 어느 곳을 지칭하는 지는 잘 모르겠다. “옛날 마고선(麻姑仙)이 바둑과 거문고를 즐기며 아름다운 경치를 너럭바위에 누워 감상했다고 해서 와선대 (臥仙臺)라고 부른다.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너럭바위 흔적을 사라졌다.” 그러니 정확한 장소를 알 수 없는 게 당연한 거였다.


비선대에서 600m 걸어온 지점, 설악동탐방지원센터가 2.4km 남은 곳부터 평지 흙길이라 걷기 좋다. 하지만 발가락 아픈 건 여전하다. 이럴 땐 잠시 쉬어가도 괜찮겠지만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다.


부지런히 걸어 7시50분쯤 신흥사를 지난다. 652년(진덕여왕6) 자장율사가 ‘중향성불토국(衆香城佛土國)’을 뜻하는 형성사(香城寺)를 창건한 後 몇 차례 소실됐다가 1644년(인조22) 중건하고 신흥사(神興寺)라 했다. 여기서 중향성은은 금강산 철위산(金剛山 鐵圍山)을 의미하고, 불토국은 부처님께서 교화할 대상적 국토란 뜻이다. 1912년부터 건봉사(乾鳳寺) 말사였지만 1971년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로 승격됐으며, 1995년 신흥사 (新興寺)로 사명(寺名)을 변경했다.

20250604_075441.jpg

이곳엔 보물로 지정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 보호시설인 108법당 건립공사가 한창이다. 영산회상도는 부처님이 인도에 있는 영취산 (靈鷲山)에서 불법을 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우리나라 각지에 문화재로 지정된 영산회상도가 여럿 있다.


안내소에 들러 속초로 가는 시내버스 탈 수 있는 곳을 물으니, 주차장 끝을 가리키며 그곳으로 가보라고 한다. ‘曹溪禪風始源道場雪嶽山門’이라고 적힌 일주문을 지나 알려준 대로 걸어가니 7-1번 시내버스가 와있다. 운전기사에게 물어보니 8시11분에 출발한다고 했다. 출발 전에 찾아봤던 정보로는 9시쯤 출발하는 버스를 탈 줄 알았는데, 1시간이나 앞당기게 됐다.

20250604_080457.jpg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서울로 가는 버스도 앞당겨 예매하려고 스마트폰을 보고 있으려니 멀미가 나는 것 같아 그만뒀다. 그리고 30분 이상 달려 속초시내를 돌고 돌아 시외버스정류장 앞에서 내려 식당을 찾아 들어가 아침을 먹으면서 서울로 버스를 다시 예매했다. 당초 11시30분 버스를 예매했었는데, 10시15분 버스로 바꾼 것이다. 대신에 취소 수수료가 조금 들긴 했지만, 하릴없이 여기서 시간을 보내느니 조금이라고 일찍 올라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출발시간을 기다렸다가 버스를 탔는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매할 때는 출발시간만 신경 쓰느라 운행코스를 생각하지 못했는데, 한계령 꼬부랑길을 빙빙 돌아가는 버스라 흔들림이 매우 심했다.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도 멀미가 날 지경이다. 게다가 원통 등 몇 군데 정차하는 곳도 있었다. 속이 울렁거리는 걸 잘 참아냈다.


그리고, 오후 1시15분쯤 드디어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탑승객은 몇 명 없다. 트렁크에 넣어뒀던 배낭을 꺼내 메고 강변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 걷는 내내 아프던 발가락도 이젠 웬만큼 괜찮아진 것 같아 다행이다. 산행 동안은 내내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다 지나고 나니 보람 있다. 그래도 설악산엔 그만 가야 할 것 같다. 너무 힘들어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청계산 매봉(582.5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