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2일 금요일 맑음
북한산성 성문종주를 하기로 했다. 북한산성에는 5개 대문(대동문대성문 대남문대서문북문)과 7개 암문(서암문백운봉암문용암문보국문 청수동암문부왕동암문가사당암문), 그리고 행궁보호를 위해 쌓은 중성문까지 13개 성문이 있다. 여기에 중성문 옆에 있는 시구문을 포함하면 14성문이 되고, 중성문 옆과 북한산성 입구 왼쪽 계곡에 있는 수문지 2개를 더하면 모두 16성문이 된다.
그런데, 시구문과 수문지는 성문으로서 별 의미가 없기 때문에 13성문 종주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중성문은 일주코스에서 좀 벗어나있기 때문에 이를 빼고 12성문 종주를 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다.
나는 이번에 16성문 종주를 하기로 했다. 중성문에 가게 되면 시구문과 수문지를 함께 볼 수 있는 데다, 다른 곳의 수문지도 지나면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수문지라고는 해도 아무런 형태가 남아있지 않아 그저 위치만 알 수 있을 뿐이긴 하다. 그런데, 16성문 종주를 하루에 끝낼 수 없어 두번에 나눠 걷기로 하고, 오늘 그 첫날 종주산행을 떠나볼 참이다.
오늘 걷는 코스는, 먼저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출발해 대서문과 법용사를 지나 중성문에 다녀온 後 국녕사와 가사당암문, 그리고 용출봉 용혈봉증취봉과 부왕동암문을 지나고, 나월봉나한봉과 청수동암문, 마지막으로 문수봉에 올랐다가 대남문에서 끝내는 것으로 잡았다.
구파발역에서 ‘양주37’번 마을버스를 타고 북한산성 입구로 향한다. 북한산에 올 때 마을버스를 타긴 오랜만이다. 다른 버스들에 비해 배차간역이 길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운 좋게 바로 탈 수 있었다.
북한산성입구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 後 500m 거리를 10분만에 걸어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느 때와 달리 구파발역에서 화장실에 가지 못했기 때문에 이곳 화장실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여기도 만원이다. 다행히 바로 자리가 나서 일을 본 다음 산행을 시작했다. 오늘이 징검다리 휴일 사이에 낀 날이긴 해도 분명 평일인데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꽤 많다.
1km쯤 걸어 첫번째 성문인 대서문(大西門)에 도착했다. 이곳은 북한산성 정문으로, 성문 중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과거 성내(城內)에 마을이 있었을 때도 이 성문을 이용했다. 지금 문루(門樓)는 1958년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 가장 오래됐다. 대서문은 중성문대남문과 함께 어영청 (御營廳)이 수비관리했다.
돌장승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과 무량사(無量寺)를 지나고 2016년 건설된 새마을교를 건너 왼쪽으로 접어든다. 무량사는 고종 (高宗)의 후궁인 순빈엄씨(淳嬪嚴氏)가 이곳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 (藥師佛坐像)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영친왕 李垠 1897~ 1970)을 순빈의 원당(願堂)이 됐고, 1900년 전후 제작된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어 경기도 전통사찰 1호로 지정됐다. ‘약사불’이란 질병치료수명연장재앙소멸 등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부처를 말하며, 산신탱화는 비단이나 종이에 산신모습을 그려 벽에 걸게 만든 그림이다. 이 절은 약수암(藥水庵)이라고 불렸는데, 1980년 무량(無量)이 주지로 오면서 무량암이라고 했다가 무량사로 변경됐다.
오전 8시43분, 법용사에 도착해 오른쪽으로 종주를 이어가야 하지만, 외따로 떨어져 있는 중성문(中城門)을 먼저 다녀오기로 했다. 이 성문은 노적봉(露積峰)과 증취봉(甑炊峰) 사이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됐는데, 중성은 대서문에서 이곳에 이르는 지형이 평탄해 공격에 취약한 것을 보완하기 위해 쌓은 차단성(遮斷城)이다. 문루는 1998년 복원했다. 중성문 옆 암반에 이름 없는 암문(暗門)이 있었는데, 시신이 나간다고 해서 시구문 (屍軀門)이라고 불렸다. 중성문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에 수문이 설치돼있었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1745년(영조21) 편찬된 <북한지(北漢誌)>에도 수문모습이 보이지 않아, 오래 전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이렇게 한곳에서 중성문과 시구문, 그리고 수문 등 3개 성문을 본 셈이다.
다시 법용사로 내려와 오른쪽으로 올라가는데, 왼쪽 산중턱에 대웅전이 외로이 서있다. 처음에 법용사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조그맣지만 번듯한 대웅전이 있는 사찰이었다. 하지만, 대웅전 문을 굳게 닫혀있어 내부를 들여다볼 수는 없었다.
대웅전을 나와 국녕사 방향으로 산행을 계속한다. 가는 길에는 종이에 ‘국녕사 가는 길’이라고 쓰고 비닐코팅 해서 붙여놓은 안내문이 여럿 보인다. 그렇게 15분쯤 걸어 국녕사에 도착했는데, 엄청 큰 대불(大佛)이 먼저
맞이한다. 대불은 2000년 세워진 높이 24m의 동양최대 청동좌불로, 주위에 만불전(萬佛殿)이 진열돼있다. 그런데, 이 큰 불상을 어떻게 여기까지 옮겼는지 못내 궁금하다. 아마도 헬리콥터를 이용했을 것 같은데, 물어보진 않았으니 그저 의문으로 담겨둘 수밖에 없겠다. 국녕사(國寧寺)는 1711년 (숙종37) 북한산성 축성(築城) 후 성곽수비와 관리를 위해 성내 군사요충지에 건립한 13곳의 승영사찰(僧營寺刹) 중 하나로 1713년 창건됐으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됐다가 1998년 중창허가를 얻어 2004년 중창불사를 완료했다.
대불과 사찰 사이로 난 좁은 돌계단을 올라 산행을 계속한다. 그리고 10분 남짓 걸려 가사당암문(袈裟堂暗門)에 도착했다. 이것은 북한산성 성곽을 축주하면서 만든 8개 암문 중 하나로, 아래 국녕사가 있어 국녕문 (國寧門)으로도 불린다. 암문은 비상시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구원병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다.
가사당암문 옆으로 오르니 길이 양쪽으로 나있고, 가운데 지도가 있어서 보니 왼쪽은 의상봉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용출봉과 용혈봉으로 가는 길이다. 오늘 걷는 길이 대남문을 향하기 때문에 오른쪽 성벽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15분만에 용출봉(龍出峰 571m)에 도착했다. 이어서 10시쯤 용혈봉 (龍穴峰 581m)에 다다랐다. 용출봉은 용이 솟아오르듯 뾰족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용혈봉에 대한 마땅한 설명은 없다. 다음에 오른 증취봉 (甑炊峰 593m)은 증봉(甑峰 시루봉)이 변해 시루가 불타는 봉우리란 뜻이란다.
봉우리 사이를 지나는 길이 꽤 험하다. 바위를 타고 걷다 보니 조금이라도 정신을 놓으면 좌우로 추락하기 딱 좋은 지형이다. 코스로 봐서는 나월봉(蘿月峰 688m)과 나한봉(羅漢峯 715.5m)도 지나온 것 같은데, 다른 곳과 달리 정상표지석이 없어 어느 봉우리였는지 알 수 없다. 나월봉은 개성 천마산 나월봉에서 유래한 것으로, 봉우리가 달 모양을 닮아 붙여졌다고 하며, 나한봉은 문수사(文殊寺) 천연동굴의 오백나한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름은 다른 봉우리 이름보다 억지스러워 보인다.
성벽을 따라 걷는 동안 여장(女墻)과 성랑지(城廊址)를 여럿 만난다. 여장은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으로, 적을 관측하고 공격방어를 목적으로 만들었다. 여자도 넘을 수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성랑지는 성을 지키는 초소가 있던 곳으로, 북한산성에 143개 성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몇 군데 성랑 기초를 만들어놓은 곳이 있는데, 너무 어설퍼 보인다.
10시19분, 부왕동암문(扶旺洞暗門)에 도착했다. 나월봉과 증취봉 사이에 위치해 있으며, 성밖 삼천사에서 성안 중흥사에 이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이 암문 아래 승영사찰 중 하나인 각사(圓覺寺)가 있어 원각문(圓覺門)으로도 불린다.
오늘 걷는 내내 왼쪽 멀리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는 북한산 세 봉우리 (백운대인수봉만경대)가 계속 보인다. 하지만 너무 멀어 사진으로는 너무 뿌옇게 보였다. 날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긴, 꽤 맑은 날이었으니 아무튼,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남문을 400m쯤 남겨둔 지점에 진달래가 만개했다. 지금쯤이면 진달래가 다 지고 철쭉이 필 때인데, 아직도 남아있는 게 신기하다. 그리고 조금 더 가니 청수동암문(淸水洞暗門)이 나왔다. 탕춘대성과 비봉에서 성 안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단다. 원래 문짝이 있었지만 지금은 없다.
대남문을 바로 앞에 두고 오늘 마지막 봉우리인 문수봉(文殊峰 727m)에 올랐다. 오늘 지나온 봉우리 중에서 해발고도가 가장 높다. 문수봉의 평평한 바위 위에 처음엔 두세 명만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이 많아져 바위 위를 가득 채웠다. 나는 조금 비켜 앉아 조그만 바위 위에서 간식 같은 점심을 먹었다. 초코빵과 단백질바, 그리고 오이 몇 조각이 전부지만 허기는 면할 수 있었다.
마지막 목적지인 대남문을 지나 문수사에 잠시 들렀는데,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온통 연등을 달아놓아 여기 올 때마다 찍던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어 아쉬웠다. 대남문(大南門)은 소남문이라고도 불렸으며, 탕춘대성과 연결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다. 소실됐던 문루는 1991년 복원했다.
문수사(文殊寺)는 고려 예종 4년(1109) 개산(開山)했고, 천연동굴인 문수굴 (文殊窟)이 있다. 조선조 암행어사 박문수(朴文秀)와 이승만(李承晩) 전 대통령이 이곳에서 기도로 얻어진 인물이라고 하는데, 이승만 전 대통령의 경우 1875년 황해도 평산에서 태어나 어릴 때 서울로 왔다고 하는데, 평산에서 문수사까지 와서 기도했다는 것은 과장이 심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현재의 문수사 모습은 1983년 이후 개축한 것이라고 한다.
북한산국립공원 구기분소까지 2.5km 하산한 後 다시 버스정류장이 있는 이북오도청 쪽으로 가고 있는데, 내가 타야 할 버스가 막 지나간다. 그리고 다음 버스는 10분쯤 기다린 후에야 왔다. 오늘도 조금 힘들긴 했지만 아무 탈없이 산행을 마치고 귀가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