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10일 화요일 맑음
오늘 N번째 한양도성(漢陽都城) 일주를 다시 시작한다. 지난해만 해도 3번 일주 했고, 올해도 지난 1월 이후 두번째 시도다. 전체 길이는 18.6km인데, 대부분 2번에 나눠 걷는다. 하지만, ‘한양도성’ 공식사이트에는 4구간 또는 6구간으로 나눠 걷길 추천한다고 돼있다. 즉, 백악낙산남산인왕산 구간과 도성이 멸실된 흥인지문숭례문구간 등으로 나뉘는데, 흥인지문 숭례문구간을 낙산과 인왕산구간에 각각 포함시키기도 한다.
한양도성은 1396년(태조5) 처음 완공된 後, 세종(1426)숙종(1704)순조 (1800) 때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거쳤다. 1395년(태조5) 도성축조도감 (都城築造都監)을 설치하고 성터를 조사측정한 後 이듬해 1월, 축성을 시작해 98일 만에 성벽축조를 완료하고, 9월에는 성문을 모두 완성했는데, 정북 (正北)엔 숙청문(肅淸門), 동북(東北)엔 홍화문(弘化門), 정동(正東)은 흥인문 (興仁門), 동남(東南)엔 광희문(光熙門), 정남(正南)엔 숭례문(崇禮門), 소북 (小北)엔 소덕문(昭德門), 정서(正西)엔 돈의문(敦義門), 서북(西北)엔 창의문 (彰義門)을 뒀다.
이들 문 가운데 숙청문은 중종 때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홍화문은 나중에 창경궁에 홍화문이 생기면서 혜화문(惠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흥인문은 고종 때 수리하면서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이름을 바꿨다. 또한 소덕문은 1744년 소의문(昭義門)으로 개칭된 後 일제강점기인 1914년 철거됐으며, 돈의문은 여러 차례 우여곡절을 거친 후에 1915년 철거됐다.
조선시대부터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도성안팎 풍경을 감상했는데 이를 ‘순성(巡城)’이라고 불렀다. 유본예(柳本藝 1777~1842)는 <한경지략 (漢京識略)>에서 “봄과 여름철에는 성안 사람들이 짝을 지어 성 둘레를 따라 한바퀴 돌면서 성 안팎 경치를 구경한다. 한바퀴 돌자면 하루 해가 걸린다. 이를 ‘순성놀이(巡城之遊)’라 한다 (春夏之際都人結伴沼堞步行以玩城內外景物一日之內僅能周行謂之巡城之遊)”고 적었다.
이 ‘순성놀이’를 딴 행사가 2011년 9월 서울시와 시민단체(한국청년연합, 서울KYC) 주최로 ‘하루에 걷는 600년 서울, 순성놀이’란 이름으로 돼 지금까지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시는 2012년부터 한양도성 주변 길을 도보답사 길로 조성하면서 ‘순성길’이란 이름 붙였으며, 2019년 10월 중구 정동의 750m 구간이 이어지면서 순성길이 완성됐다.
오늘 출발지점인 숭례문으로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으로 가서 5번 출구로 나가 퇴계로와 소월로를 따라가면 되는데, 전에 다니던 샛길 대신 큰길로 갔더니 훨씬 돌아가서야 숭례문이 나왔다. 숭례문 앞에서 앱을 켜고 첫번째 스탬프를 받았다. 숭례문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아 멀리서 사진을 찍었는데, 햇빛 방향까지 맞지 않아 제대로 된 사진을 얻진 못했다.
숭례문은 1398년(태조7) 한양도성 남쪽대문으로 세워졌으며, 여러 차례 수리했는데 1907년부터 1908년 사이 양쪽 성곽이 철거됐다. 한국전쟁 後 1953년 응급복구 하고, 1961년부터 1963년까지 전면 해체보수 작업을 했지만, 2008년 10월 방화사건으로 건물전체가 크게 훼손돼 2013년 4월까지 복구하면서 양쪽 성곽도 일부 복원했다. 숭례문을 남대문으로도 부르는데, 이는 처음 지을 때부터 부르던 명칭이다. <조선왕조실록>(태조5년9월24일)을 보면, “정동은 흥인문이니 속칭 동대문이라 하고, 정남은 숭례문이니 슬라이드 116
속칭 남대문이라 한다(正東曰興仁門, 俗稱東大門. 正南曰崇禮門, 俗稱南大門.)”고 돼있다.
아침 7시13분, 본격적인 한양도성 순성길 걷기를 시작한다. 잠시 신호를 기다렸다가 세종대로를 건너 대한상공회의소 쪽으로 간다. 다음 목적지인 돈의문터까지는 숭례문에서 2km쯤 된다. 재개발 공사현장을 지나 다시 서소문로를 건너고 아펜젤러 기념공원(Appenzeller Memorial Park) 앞에 도착했다.
안내문을 보니,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인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는 1885년 4월 한국에 도착해, 8월부터 2명의 학생에게 영어를 가르치다 고종으로부터 ‘배재학당(培材學堂)’이란 교명을 하사 받고 본격적으로 교육사업을 시작했다. ‘크고자 하거든 섬기라(欲爲大者 當爲人役, 마태20:26)’는 교훈아래 교육선교의료 출판사업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아펜젤러 탄생 160주년을 맞이해 ‘아펜젤러 기념공원’을 조성했다.”
기념공원에서 조금 더 가면 ‘배재공원’이다. 그러고 보니 이 일대가 온통 ‘배재’와 관련된 땅이다. 하지만, 배재학당 후신인 배재중고등학교는 1984년 강동구 명일동으로 이전했고, 배재대학교는 대전에 있다. 배재공원은 배재중고등학교가 있던 자리에 코오롱건설과 체이스맨해턴은행이 1989년 조성해 서울시에 기부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감리교회(first methodist church)인 정동제일교회 (貞洞第一敎會)를 지나 정동으로 향한다. 이 교회는 배재학당 교장이던 아펜젤러가 1885년 설립한 최초의 개신교회다. 주요 신자(信者)로는 이승만 (李承晩 1875~1965) 전(前) 대통령과 서재필(徐載弼 1864~1951) 박사, 한국최초의 여의사 박에스더(1876~1910), 주시경(周時經 1876~1914) 선생 등이 있다.
이화여자고등학교창덕여자중학교와 예원학교 등이 있는 정동길은 2019년 마지막으로 이어진 순성길이라고 한다. 경향신문 빌딩을 지나고 새문안로를 건너 돈의문터가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에 들러 두번째 스탬프를 받았다.
돈의문은 사연이 많은 문이다. 1396년(태조5) 다른 성문과 함께 완성됐지만, 풍수상 자리가 좋지 않다고 해서 1413년(태종13) 문을 닫고 서전문(西箭門)을 설치했다. 1422년(세종4)에는 서전문과 기존 돈의문을 철거하고, 신문로 언덕 위에 새로운 돈의문을 건설했는데, 이 문을 ‘새문신문(新門)’ 등으로 불렀으며, 지금도 신문로(新門路)와 새문안교회 등의 이름이 남아있다. 돈의문은 1915년 도로개설을 위해 철거되면서 그 위치를 잘 알 수 없게 됐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나와 서울시교육청을 지나는데, 오늘도 확성기를 갖춘 천막시위대들이 시끄럽다. 이곳은 지날 때마다 시위가 끊이지 않는다. 다들 이런저런 불만이야 있겠지만 이렇게 농성한다고 해결될 일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물론, 시위 자체를 즐기는 건 아니겠지!
월암근린공원 끝에 있는 홍난파 가옥에 잠시 들렀다. 전에 이곳을 자주 지나다니면서도 관심을 갖지 않았었는데, 얼마 전 인터넷을 보다가 관심이 생겨 들러본 것이다. 물론, 밖에서 사진만 찍고 안에는 들어가보지 않았다. 하긴 이른 시간(오전8시)이라 아직은 문을 열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홍난파(洪蘭坡 1898~1941)는 <봉선화>와 <성불사의 밤><고향의 봄> <고향생각>등을 작곡한 천재작곡가였지만,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72일간 옥고를 치른 후 일본을 위해 협력하다 교통사고와 일본경찰의 고문에 의한 상처가 재발하면서 44살에 숨졌다. 이를 두고 홍난파를 친일행위자로 비판하지만, 일본의 지배아래 생활하면서 어느 정도까지 친일(親日)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친일인명사전>이 발간돼있지만, 진보성향 민간단체인 민족문제연구소가 만든 것 뿐이고, 더구나 이를 주관한 사람들 주변에도 조금만 파고들면 친일과 무관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지 의문스럽다. 항일이나 독립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러시아를 전전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친공산주의자들이 많다. 친일은 안 되고 친공(親工)은 괜찮은가?
1945년부터 1949년까지 김구의 사저이자 공관,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 한국독립당 본부로 사용됐던 경교장(京橋莊)은 일제강점기 때 금광업자인 최창학(崔昌學 1891~1959)의 별장이었는데, 최창학은 대표적인 친일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친일파(親日派)인데, 평생을 독립운동 했다는 김구도 말년에 이를 모두 받아들이고 생활했던 것 아니겠나? 그러니 더욱 더 친일이란 개념을 정의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친일인명사전> 같은 편협된 자료는 하루빨리 폐기돼야 할 것이다.
오전 8시7분, ‘세븐일레븐’을 지나 본격적인 인왕산 산행을 시작한다. 조금 가다 보니 왼쪽으로 ‘선바위’가 보인다. 인터넷을 보면 인왕산을 오르는 기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순성길 코스와는 조금 떨어져 있어서 눈으로만 보면서 지나간다.
8시40분, 인왕산 정상에 올랐는데 인증사진 찍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셀프로 찍으려 해도 구도가 잡히지 않는다. 이리저리 시간을 보내는데 누군가 앉아있는 사람을 발견했지만 쉬는 사람을 불러 사진 찍어달라고 하기 뭣해서 잠시 기다렸더니 옆으로 지나가길래 얼른 사진을 부탁했다.
하지만 찍어준 사진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뒤따라 올라온 사람한테 다시 찍어달라고 부탁할까 하다가 먼저 찍어준 사람이 옆에 있어 포기했다. 더구나 사진 찍어준 사람은 한국사람 같지 않아 보였다. 일본사람이었나!
이제 다음 목적지인 창의문(彰義門)을 향한다. 도중에 ‘부부소나무’를 만났는데, 연리지(連理枝)다. 연리지와 관련해서는 당나라 시인 백거이 (白居易)의 <장한가(長恨歌)>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늘에서 만난다면 비익조가 되길 원했고, 땅에서 만난다면 연리지가 되길 바랐지 (在天願作比翼鳥 在地願爲連理枝).” 비익조는 하나의 눈과 날개만 지니고 있어 한쌍이 돼야만 서로 의지해 날 수 있는 상상의 새다.
오늘 처음 각자성석(刻字城石)을 만났다. 축성과 관련된 기록을 새긴 성돌을 각자성석이라 하는데, 한양도성에는 여러 유형의 각자성석이 280개 이상 전해지고 있단다. 여기 내용은 “순조11년(1806) 11월 최일성이 공사를 돌봤고, 이동한이 공사를 감독했으며, 전문석수 용성휘가 참여해 성벽을 보수했다(嘉慶十一年 丙寅十月 日 看役 崔日成 監督 李東翰 邊首 龍聖輝)”는 것이다. 이처럼 축성(築城)에 대한 책임소재를 명확하게 기록했다.
서시정(序詩亭)과 윤동주문학관을 지나 창의문에 도착했다. 윤동주문학관이 들어선 곳은 원래 인근의 청운아파트 상수도 가압장이었다. 1969년 아파트가 건설된 後 1974년 가압장을 만들었는데 2005년 노후화된 아파트가 철거되면서 가압장도 방치됐다가 2012년 리모델링을 통해 문학관으로 개관하게 됐다. 보기엔 조금 낡고 허름해 보이는 시설인데, 2012년 대한민국 건축상 국무총리상 등 여러 건축상을 수상한 건축물이다.
한편, 창의문은 서울성곽의 4소문(四小門) 중 하나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란 뜻이 있단다. 위치상 북소문(北小門)이지만 그렇게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이름을 빌려 자하문(紫霞門)이란 별칭이 있었다. 창의문도 다른 문들과 같이 1396년(태조5) 완공됐지만, 풍수상 이유로 잘 쓰이지 않다가 영조 때(1741년) 문루를 설치해, 서울 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을 간직하며 오늘에 이르게 됐다.
창의문을 지나 북악산(北岳山)을 향해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紫北正道(자북정도)’ 쓰인 표지석이 보이는데, 박정희 전(前) 대통령의 글씨로 “자하문 북쪽 산의 정의로운 길”, 즉 ‘국가안보’를 뜻하는 것이라고 한다.
‘돌고래쉼터’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지금부터 경사가 심해 위험하니 핸드레일을 잡고 가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지금까지도 힘들게 올라왔는데 새삼 더 힘들 거란 경고문이 붙어있으니 조금은 황당하다. 어차피 힘들 걸 각오하고 왔으니 묵묵히 참으면서 한발짝씩 올라간다.
가파른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 백악쉼터를 지나고, 9시45분 백악산(白岳山 342m)에 올랐다. 백악산은 북악산(北岳山)이라고도 하는데, 언제부터 그렇게 불렸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일설에는 일제강점기 때부터 북악산으로 불렸다고 하지만, 그 이전부터 북악산으로도 불려왔기 때문에 맞지 않는 얘기다.
백악산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121사태 소나무’가 나오고, 이내 두번째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 청운대(靑雲臺293m)에 도착한다. 소나무엔 1968년 무장공비가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침투했을 때 우리 군경과 교전 중에 생긴 총탄흔적이 6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게 남아있다.
청운대에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찍어줄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번에도 셀프로 찍어보려 하지만 배경을 잡기가 너무 어렵다. 이리저리 시도하다 포기하고 혹시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때까지 기다려보기로 했는데, 얼마 있지 않아 누군가 달리기를 하면서 지나가길래 염치 불구하고 불러 세워 얼른 인증사진을 찍었다. 휴, 다행이다!
다음 목적지는 숙정문이다. 이곳에서 세번째 스탬프를 받아야 한다. 숙정문은 처음엔 숙청문(肅淸門)이었는데, 풍수상 이유로 잘 사용하지 않다가 16세기에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이는 “정숙하고 고요한 기운을 일으킨다”는 뜻이란다. 현존하는 도성 문 중 좌우로 성벽이 연결된 것은 숙정문 뿐이며, 1976년 문루를 새로 지었다.
숙정문을 지나 말바위안내소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해결했다. 먹을 거라야 초코파이 2개와 몇 개의 오이, 그리고 커피 한잔이 전부다. 이곳은 2023년 12월부터 자율입산제 시행으로 안내소 운영이 종료돼 안내소 문을 닫았다.
이제 오늘 코스에서 스탬프도 다 받고 인증사진도 찍었으니 와룡공원과 혜화문을 지나 한성대입구역까지 가서 귀가하면 되는데, 삼청공원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어차피 어느 쪽으로 가든 상관없으니 오늘은 삼청공원 쪽으로 내려가보기로 한다.
그런데 처음 가는 길이라 어디로 가야 할지 잘 모르겠다. 삼청공원에 도착했는데도 방향을 몰라 감으로만 걸어가다 네이버지도를 열어보니 가장 가까운 안국역까지 거리가 2km 남짓 되고, 30분쯤 걸린다고 나온다. 이왕 걸으러 나왔으니 그 정도 쯤이야 걸을 만하다.
뜨거운 햇볕을 맞으며 걸어가고 있는데, ‘삼청동 수제비’ 집앞에 사람들이 여럿 줄 서있다. 아직은 오픈 전이라 문 열 때까지 기다리고 있나 보다. 얼마나 맛있길래 더운 날 저렇게 줄 서 있을까, 괜한 호기심이 생긴다.
안국역까지 가는 동안 몇몇 포인트를 지난다. ‘서울도심등산관광센터’도 그중 하나다. 특히 외국인들 사이에서 인기 많은 장소라고 한다. 서울 도심의 여러 산들을 아무런 준비 없이도 이곳에 들러 완벽하게 준비해서 등산할 수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길 건너편에 있는 ‘한국민속박물관’ 정문 앞에는 한복을 입은 외국인들이 눈에 많이 띈다. 하긴 걸어가는 길에서도 다양한 외국인들이 한복을 입고 포즈를 잡아가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역시 길 건너에 있는 건춘문(建春門)은 경복궁(景福宮) 동문인데, 1865년 (고종2) 경복궁을 중건할 때 세웠다. 홍예문(虹霓門)을 낸 석축(石築) 기단 위에 단층으로 세운 우진각지붕 건물로, 문반(文班)들만 드나들 수 있는 문이었다고 한다.
안국역 인근에 도착했는데도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어 네이버지도를 보면서 찾아갔지만 입구표시가 있는 곳에서도 어디로 들어가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다 건물 안으로 표시된 입구를 발견하고 우여곡절 끝에 지하철역을 찾아 들어가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