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서문(右翼門)&수어장대(守禦將臺)

by 이흥재

2025년 7월29일 화요일 맑음, 최고기온 37℃


오늘 목적지는 남한산(522m)을 정했었다. 하지만, 지난주엔 너무 더워서 산행을 미뤘었고 오늘도 만만치 않은 더위가 계속되고 있어서 아무래도 무리인 것 같아 서문과 수어장대까지만 다녀오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그리고, 마천역에서 내려 마천4재정비촉진구역을 지나 송파상운 버스 (3214,3316,3317,3415) 종점까지 걸어간 後 왼쪽으로 가는 코스를 따라 가려고 했는데, 전에 다녔던 길을 알 수 없어 다시 종점으로 돌아와 성불사 코스로 가기로 했다.


상가거리를 지나 위례대로 고가 아래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조금 가면 산길 초입에 성불사란 작은 사찰이 있다. 있다. 이곳은 일주문이 사찰의 대문구실을 하는데, 전국의 여느 성불사가 ‘이룰 성(成)’ 자를 쓰는데 반해 여기는 ‘깨달은 성’자로 쓰여 있었다. 경내도 옹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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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불사를 지나면 왼쪽으로 곧바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육산(肉山)인 데다 경사도 그리 가파르진 않지만 기온이 워낙 높아서 그런지 초입부터 땀이 나기 시작한다.


조금 오르다 보니 첫번째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으로 올라가면 연주봉 옹성(連珠峰 甕城)이고, 오른쪽을 내려가면 호국사(護國寺)란 이정표가 보인다. 호국사의 본래 이름은 호국사자사(護國獅子寺)로, 1988년 거여동 특수전사령부 내에 창건됐는데, 2011년 사령부가 이천으로 이전하면서 호국사도 그곳으로 옮겨가 2016년 11월 낙성(落成)됐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정표도 바꿔줘야 하는데, 15년이 지나도록 그대로 둔 게 직무유기 같다.


성불사를 떠난지 50분 만에 남한산성 연주봉 옹성 암문(連珠峰 甕城 暗門)에 도착했다. 남한산성에는 16개 암문이 있는데, 이곳은 제5암문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연주봉 옹성은 조금 떨어져 있지만 거기까지 가긴 귀찮아서 암문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만 보고 암문을 통해 남한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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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에 따르면,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성벽을 한겹 더 둘러쌓는 시설물로, 남한산성에 5개 옹성이 설치돼있다. 연주봉 옹성은 한강과 서울,하남,남양주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요충지로 병자호란 이후인 인조 16년(1638) 쌓은 것으로 보인다. 2001년 발굴조사 결과와 <남한산성 실황도>를 근거로 현재 모습으로 복원했다.”


남한산성에는 임금이 거처할 수 있는 행궁(行宮)이 있었기 때문에 관련 유적지(遺跡址)들이 많이 있지만, 유적들은 거의 없어지고 그 자리에 간단한 안내문만 설치돼있다. 그중 군포지(軍鋪址) 안내문에는, “군포는 성을 지키기 위한 초소건물이다. <중정남한지(重訂南漢誌)>(1847) 기록에 따르면 남한산성 내에 125개 군포가 있었지만 현재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또한, 매탄터(埋炭址) 안내문을 보면, “병자호란 때 혹독한 추위 속에서 전쟁을 치른 後 유사시 방어에 필요한 숯을 묻어둔 곳이다. 군포 근처, 군기고와 영고(營庫) 주변에 소금과 숯을 묻었다. <중정남한지>에 따르면 북장대 군포 앞에서부터 성내 각 사찰에 이르기까지 94곳이라고 한다.”


오른쪽으로 롯데월드타워를 보면서 서문 누각 위를 지난다. 전에는 밑으로만 다녔는데, 누각을 지나긴 이번이 처음이다. 서문의 원래 이름은 우익문(右翼門)인데, 왕이 행궁에서 남쪽을 향해 앉기 때문에 서문은 왕 오른쪽이 된다. 같은 이유로 동문은 좌익문(左翼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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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에서 수어장대로 가는 길 왼쪽에 국청사터(國淸寺址) 안내문이 있다. “국청사는 남한산성 내 10개 사찰 중 하나다. 인조 2년(1624) 한흥사 (漢興寺)와 함께 지어졌다. 승군이 성을 유지.관리하는 승영사찰로, 서문 주변을 담당했다.” 한말에 의병의 군기창고로 사용되다 일본군에 의해 불태워져 절터만 남아있던 것을 1968년 보운(普運)이 중창해 오늘에 이른다.


오전 7시51분, 수어장대에 도착했는데 그 입구에 청량당(淸凉堂)이 자리잡고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청량당은 남한산성 축성과 관련한 민간신앙처로 마을의 신을 모시는 신당 성격을 갖고 있다. 10명의 무속신 가운데 이회 (李晦 1567~1625) 장군이 있는데, 이회는 남한산성 축성 때 동남쪽 부분을 담당했다. 그런데 이회는 경비를 탕진하고 공사에 힘쓰지 않아 날짜 내에 공사를 마치지 못했다는 억울한 모함을 받아 처형당한다. 그의 처첩도 삼남 (경상,전라,충청) 지방에서 축성자금을 모아 돌아오는 길에 남편의 소식을 듣고 강물에 투신했다. 후에 이회의 무고함이 밝혀져 사당을 짓고 넋을 달래게 했는데, 이회를 도당신(都堂神)으로 모시게 된 것이 도당굿의 기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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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당에서 몇 계단 오르면 넓은 마당과 함께 왼쪽에 수어장대가 우뚝 솟아있다. 무더운 여름에도 수어장대 안은 시원한지 누군가 쉬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안내문부터 읽어보고 주위를 돌며 사진을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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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안내문에 따르면, “장대(將臺)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 장대가 있었다. 수어장대는 남한산성 서쪽에 있어 ‘서장대(西將臺)’라고 불렸다. 처음엔 단층 누각이었는데, 영조 27년(1751) 유수 이기진(廣州留守 李箕鎭)이 복층으로 중건하고 ‘수어장대’라 했다. 지금의 수어장대 현판은 현종 2년(1836) 유수 박기수(廣州留守 朴岐壽 )가 수어장대를 중수했는데, 그 형인 박주수(朴周壽)가 쓴 것이다.

수어장대에서는 수어사(守禦使)가 수어청(守禦廳) 군사를 지휘했는데, 정2품 상사(上使)에 해당했다. 수어청은 한양을 수비하는 5군영의 하나로, 광주부윤(廣州府尹) 을 부사로 삼았는데, 후에 광주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했다.

수어장대는 2021년 보물로 지정됐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남한산성의 군사경관 일부에 해당한다.”


수어장대 옆에는 ‘무망루(無忘樓)’란 편액을 걸어놓은 전각이 있다. 이는 영조 27년 광주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 내편(內便)에 있는 편액 (扁額)을 일반인이 볼 수 있도록 1989년 전각을 건립하고 현판(懸板)을 새로 설치한 것이다. ‘무망루’는 병자호란 때 인조가 겪은 시련과, 8년간 청나라 심양(瀋陽)에 볼모로 잡혀갔다가 귀국 後 북벌(北伐)을 꾀하다 승하한 효종의 원한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영조가 이름 지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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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어장대 주위를 한바퀴 돌고 밖으로 나와 나무그늘 아래 벤치에 앉아 차가운 물과 역시 차갑게 보온병에 담아간 냉커피를 한모금씩 마신 후에 서문을 지나 전망대에 올라 롯데월드타워를 다시 카메라에 담고 하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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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작부터 계단이 이어진다. 오랜만에 이 길로 내려갔는데 계단이 많아진 것 같다. 계단을 다 내려온 지점에 숫자가 쓰여있는데, ‘1172’도 있고 ‘1,252’도 있어 어느 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매직펜을 들고 오르면서 정확한 숫자를 적어놓아야 할 것 같다.


산을 다 내려온 지점에 ‘산할아버지 상(像)’이 있다. “길과 다리,층계를 만들고, 벚나무와 은행나무,단풍나무 등 수많은 관상수를 심고 가꾼 고인의 뜻을 기리고자 2006년 세웠다”는 안내문이 함께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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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다 내려와 마을을 지나다 청운사에 잠시 들렀는데, 입구 왼쪽에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다. 영주 부석사(榮州 浮石寺 )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여기서 보니 신기하다. 그에 비해 대웅전은 외롭고 초라하게 서있었다.


버스를 탈까 잠시 망설였지만 언제 올지 몰라 지하철을 타기 위해 땡볕을 걸어 마천역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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