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28일 목요일 흐림
우천(雨天)으로 미뤘던 올해 3분기 한양도성길 걷기 마무리를 위해 떠난다. 한양도성길은 언제든 걸을 수 있지만, 매분기 같은 색깔 배지를 주고 각기 다른 4가지 색깔 배지를 다 모으면, 다른 종류의 메탈배지를 주기 때문에 가능하면 분기에 한번씩만 걸으려고 한다. 지난해부터 걷기 시작해 올해 1분기에 메탈배지를 받은 적이 있지만, 이번에 다시 도전하는 셈이다.
오늘 출발지는 서대문역이다. 드물게 갈아타지 않고 한번에 갈 수 있는 곳이다. 4번 출구로 나가 조금 걸으면 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에 닿는다. 종이로 된 스탬프북도 있지만, 갖고 다니기 번거롭기 때문에 앱으로 받는 게 편하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2017년 ‘경희궁 자이’ 아파트 재개발 과정에서 서울시가 조합으로부터 기부채납 받은 부지에, 불미스런 일로 생을 마감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330억원을 들여 조성한 관광시설인데, 1960~1980년대 분위기가 나는 낡은 건물에 식당공방갤러리를 입점시켜 관광객을 끌어들일 생각이었지만, 찾는 사람이 없어 ‘유령마을’이 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이곳을 살리려고 2022년부터 매년 20억원을 들여 활성화를 모색했지만 여의치 않아, 철거한 後 공간을 재조성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물관에서 개최한 ‘돈의문 미디어아트쇼’ 방문객 50명에게 인증사진을 게시하면 상품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열었지만, 막상 참여한 사람은 10명 내외에 그쳤다고 한다.
박물관마을을 나와 맞은편에 있는 경교장(京橋莊)에 잠시 들른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부호 최창학(崔昌學)의 주택으로, 김구가 1945년 환국해 1949년 죽을 때까지 머물던 곳인데, 경교장이란 명칭은 서대문 부근 경교란 다리에서 따른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최창학은 일제강점기 때 친일기업인, 또는 심한 경우 친일반민족행위자라고 까지 소개되는 사람인데, 그 집을 임의로 사용하다 2005년에는 사적으로 지정하더니 2013년에는 전시관으로 개관했다. 일제 때 돈을 벌어 집을 마련한 사람은 ‘친일반민족행위자’가 되고, 그 집을 무상으로 사용한 사람들은 애국자가 되는 건가? 정말 ‘내로남불’이 따로 없다. 그러니 우리나라 좌파의 ‘내로남불’ 원조는 김구 일파가 아닌가 한다.
경교장을 나와 서울특별시교육청정문을 지나 월암공원에 있는 홍난파 가옥으로 향한다. 이 집은 본래 독일영사관으로 쓰이다 홍난파가 6년간 말년을 보내서 ‘홍난파가옥’이라고 부른다. <고향의 봄><봉선화> 등 가곡과 동요 100여 곡을 작곡한 홍난파(洪蘭坡, 본명 洪永厚 1898~1941)를 기리기 위해 1968년 집앞에 홍난파상(像)을 세웠다. 우리나라 최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1936년 경성방송 관현악단을 창설해 지휘한 방송음악의 선구자다. 그런데도 이 사람 또한, 친일반민족행위자란 딱지가 붙어있다.
일제강점기 때 한반도에서 정상적으로 사회생활 했던 이름 있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이 그 같은 딱지가 붙어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친일행위를 한 경우도 있지만, 그 당시를 살아간 방편이었을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를 수립하자마자 법(반민족행위처벌법)까지 만들어 이들을 처벌하려고 했지만, 조목조목 따져도 합당한 이유를 찾지 못해 대부분이 처벌받지 않았다. 어찌보면, 우리나라 좌파들이 그들의 잘못을 가리기 위해 툭하면 ‘친일’을 외치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구나 ‘친일’은 두 세대나 훨씬 지난 과거고, ‘친북’이나 ‘친중’은 현재진행형인데 이를 가리려니 자꾸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다. 뭣 모르고 따르는 대중들도 한심하긴 마찬가지다.
홍난파가옥 뒤편에 있는 경사진 월암공원에는 ‘어니스트 베델 집터’ 표지가 있다. 한국명이 배설(裵說)인 영국인 베델(Ernest Thomas Bethell 1872~1909)은 1904년 조선에 와서 양기탁(梁起鐸 1871~1938) 등의 도움을 받아 그해 7월 <대한매일신보(大韓每日申報)>를 창간했고, 조선에 정착해 죽을 때까지 살았다. 그의 묘지는 양화진(楊花津) 외국인선교사 묘원에 있다.
아침 7시20분,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지나 인왕산을 향해 올라간다. 하늘에는 구름이 한가득이라 해도 보이지 않지만, 무더워서 땀도 많이 난다. 앞에 인왕산이 보이고 가파른 계단도 층층이 쌓여있다. 조금 더 가니 한양도성 안내판이 보인다. 물론, 이와 같은 안내판을 한양도성길을 걸으면서 수시로 만나게 된다.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됐다. 1396년(태조5) 백악(북악산)낙타 (낙산)목멱(남산)인왕 등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따라 쌓았다. 전체길이는 18.6km로, 현존하는 전세계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1396~1910, 514년간) 그 역할을 했던 건축물이다.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고친 역사가 남아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刻字城石)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 모양을 통해 축성시기를 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사대문(興仁之門敦義門崇禮門肅靖門)과 사소문(惠化門昭義門 光熙門彰義門)을 뒀는데, 이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수많은 계단을 올라 7시54분, 인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멀리 남산타워와 롯데월드타워가 보이지만 날씨도 흐리고 미세먼지 때문에 뚜렷하게 보이진 않는다. 이곳 인왕산 정상에서 인증사진을 찍으려는데, 마침 외국인이 지나가길래 부탁했다. 그리고 잠시 後 이번에는 외국인인 듯한 여자들 무리가 올라오길래 또 다시 부탁해서 인증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요즘 몇 번 경험해보니, 젊은 여자들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해야 여러 각도에서 정성껏 찍어주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대충 찍거나 한두 장만 찍어준다.
이제 창의문을 향해 내려간다. 이정표상으로는 1.6km지만 계단도 많고 길도 가팔라서 쉽지 않다. 그래도 한발한발 조심스럽게 내려와 서시정(序詩亭)과 윤동주문학관을 지나 8시30분, 창의문에 도착했는데, 오늘도 북악산으로 올라가는 ‘백악구간’이 막혀있다. 노후탐방로를 정비하기 위해 9월30일까지 통제한다는 안내문이 걸려있다. 문제는, 청운대(靑雲臺)에서 마지막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그곳 등산로도 빨간 선이 그어져 있다. 창의문 안내소 직원한테 물어봐도 시원한 대답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코스를 포기하고 창의문을 지나 성벽 바깥을 따라 걷는다. 잠시 자동차도로를 따라 걷다가 ‘아델라 배일리(adela bailey)’란 빵집 앞에서 찻길을 벗어나 오른쪽으로 또 다시 수많은 계단을 따라 올라간다.
舊 경계초소와 옛 군견훈련장을 지나 9시 정각, 청운대안내소 앞에 도착했는데, 청운대로 갈 수 있는 문이 열려있다. 지난 1월 걸을 때도 같은 상황이라 청운대를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완주증명서를 받기 위해 남산에 있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을 찾았을 때 청운대를 지나친 것을 두고 직원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은 조금 번거롭더라도 청운대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거리는 멀지 않지만 계단을 한참 올라야 해서 좀 귀찮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 5분만에 청운대 표지석에 도착했는데, 역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여기부터 진입할 수 없도록 막아놓을 걸 보니 지난 1월에도 그랬을 것 같다. 아무튼, 이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얼굴과 표지석을 한 공간에 넣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간신히 인증할 정도의 사진을 찍고 다시 숙정문으로 향한다.
15분만에 숙정문에 도착, 마지막 스탬프를 받는다. 이제 4번의 인증사진과 4번의 스탬프를 다 받았다. 안내문을 보니, “숙정문(肅靖門)은 한양도성 북쪽대문으로, 처음엔 숙청문(肅淸門)이었다. 현존하는 도성 문 중 좌우로 성벽이 연결된 유일한 문이며, 1976년 문루를 새로 지었다.”
지금은 폐쇄된 말바위안내소 나무벤치에 앉아 잠시 쉬면서 간식을 먹는다. 그동안 몇몇 사람들이 올라오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는 이곳은 그냥 지나친다. 그런데 저 사람들 목적지가 어디일까? 중간에 길이 막혀있는 건
알고 가는 걸까? 알아서 하겠지. 여차하면 되돌아 내려올 수도 있는 거고.
내려오다 길을 잘못 들었다. 출입금지 줄이 쳐져 있어 무심코 오른쪽 길로 접어들었는데, 한참 내려가다 보니 삼청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전에는 이 길로 내려가기도 했지만, 오늘은 혜화동 한양도성 전시센터에서 완주인증서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와룡공원 방향으로 가야만 한다. 땀을 흘리며 다시 계단을 올라와 성벽을 따라 와룡공원 쪽으로 간다.
경신고등학교와 베들레헴 어린이집을 지나 10시24분, 드디어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에 도착했는데, 완주인증서는 뒤쪽 건물에서 발급해준다고 했다. 다시 몇 계단 올라 빨간 지붕의 조그만 건물로 들어가니 셋이 근무하는 사무실이 나왔다. 그 자리에서 완주인증 신청을 하고 2025-09871 인증번호가 적인 완주인증서를 받았다.
올해 세번째 받는 건데, 1월엔 173, 6월엔 8147번이었다. 내가 걷는 동안에는 이 길을 걷고 있는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통계를 보면 한 달에 1,200명 이상이 꾸준히 걷고 있다는 거다. 그러니 하루 최소 40명 이상이 걷고 있을 텐데도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게 의아하긴 하다.
완주인증서를 받아 들고 첫날 출발했던 한성대입구역까지 가서 오늘도 무사히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