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한양도성길 제1일, 낙산~ 흥인지문~ 남산~ 숭례문

by 이흥재

2025년 8월21일 목요일 맑음


오늘부터 한양도성길을 또 걷는다. 한양도성길은 전체 길이가 18.6km로, 백악.낙산.남산(목멱산).인왕산.흥인지문.숭례문 등 6개 구간으로 나뉘어 있지만, 전체구간을 2번에 나눠 걷는다.


처음에는 흥인지문에서 시작하고 끝내다 보니, 완주인증서를 발급해주는 한양도성 유적전시관(남산)과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를 그냥 지나치게 돼, 완주인증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따로 방문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는 숭례문에서 걷기 시작해 이틀째 남산에서 걷기를 끝내고 곧바로 완주인증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혜화동 전시안내센터를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어, 걷기를 그곳에서 끝낼 수 있게 한성대입구역에서 시작하기로 했다. 물론, 그동안도 한성대입구역에서 걷기시작 한 경우가 있지만, 항상 이틀째로 남산에서 끝내가 위한 방편이었는데, 이번에는 순서를 조금 바꿔 첫날 숭례문까지 걷고 둘째날 돈의문박물관마을에서 걷기 시작해 혜화동에서 끝내는 것으로 계획을 바꿨다.


아무튼, 오늘은 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하기 위해 아침 일찍 개롱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한 後 한성대입구역으로 갔다. 그리고 4번 출구로 나와 본격적으로 순성(巡城)길 걷기를 시작했다.


길건너 있는 혜화문(惠化門)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난 나무데크 계단을 오른다. 혜화문은 태조 5년(1396) 한양도성에 4대문(興仁門.崇禮門.敦義門.肅淸門)과 4소문(弘化門.光熙門.昭德門.彰義門)을 만들 때 속칭 동소문 (東小門)인 홍화문으로 만들어졌는데, 창경궁(昌慶宮)이 세워지면서 동문이 홍화문으로 명명되자 혜화문으로 개명됐다. ‘혜화( )’는 “여진족에게 은혜를 베풀어 가르친다”는 뜻이라고 한다. 예전에 여진족 사신의 서울 출입문이었기 때문이다. 이 문은 용도가 없어지면서 방치됐다 일제 때 헐렸는데, 1994년 현재 자리로 옮겨 복원하다 보니, 문의로서의 역할은 아예 사라져버렸다.

20250821_070806.jpg

낙산공원으로 올라가 성곽길을 따라 걷는다. 장수마을을 지나, 첫번째 인증사진 장소에 왔는데 사진 찍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잠시 기다리니 학생이 지나가길래 한장 찍어달라고 했더니 등굣길이라 바빠서 곤란하단다. 다행히 곧바로 지나는 사람이 있어 얼른 부탁했는데, 썩 잘 찍진 못했지만 셀프로 찍은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 괜찮다.

20250821_072744.jpg

다시 성곽길을 계속 걸어 흥인지문 쪽으로 간다. 속칭 동대문이었던 흥인지문은 처음엔 흥인문이라 했는데, 풍수적인 이유로 지(之)가 추가됐는데, 이에 대한 논의가 영조 때(<승정원일기> 영조17년[1741] 4월11일)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 전부터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불린 것 같다. 영조임금과의 토론자리에서 승정원 주서((注書) 이기언(李箕彦 1697~1743)은 “도성 동쪽 수구(水口)의 지세가 매우 취약했기 때문에 별도의 곡성(曲城)을 쌓고 현판에도 ‘之’ 자를 더 써넣었다 한다”고 전한다. 물론, 효과는 없었다. 또한,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쓴 <임하필기(林下筆記)>의 [춘명일사 (春明逸史)]에 따르면, 흥인지문 현판글씨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글씨라고 한다.


흥인지문을 보면서 왼쪽으로 돌아, 훈련도감이 관리했다는 각자성석 (刻字城石)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길을 건너 흥인지문 앞에서 사진을 찍은 後 스마트폰 앱을 켜서 오늘 첫번째 스탬프 인증을 받았다.

20250821_074817.jpg

동대문디자인프라자(DDP) 앞에 복원해놓은 이간수문(二間水門)을 보면서 길을 계속 가려는데 공사 중이라 길을 막아놓아 조금 돌아서 가야만 했다. 이곳의 이간수문은 조선 초부터 남산 개울물(南小門洞川)을 도성 밖으로 흘려 보냈던 시설로, 2칸의 반원형 문으로 이뤄져 있어 ‘이간수문’이라 부른다. 일제 때 경성운동장 건립으로 파괴됐던 것을 2009년 DDP를 건립하면서 발굴해 현재 모습으로 복원됐다.

20250821_075457.jpg

이제 길을 2번 건너 광희문(光熙門)으로 간다. 광희문은 처음 건립 때 속칭 수구문(水口門)으로도 불렸는데, 후에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을 이 문을 통해 내보내면서 시구문(屍口門)이라고도 불렸다. 이때 순교한 천주교 신자들도 이 문 밖으로 내버려졌는데, 이 때문에 이곳은 ‘천주교 서울순례길’의 24개 코스 중 하나(光熙門聖地)가 됐다. 한편, 광희문은 일제 때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 자리에서 남쪽으로 15m 떨어진 곳에 고쳐 지었다.

20250821_080636.jpg

성곽멸실구간을 지나고 길을 건너, 장충체육관을 보면서 왼쪽으로 난 나무데크 계단을 오른다. 이 길은 신라호텔 외곽을 따라 조성된 성곽길로 조금 가파르긴 해도 주위에 나무가 많아 햇볕을 받지 않으면서 걸을 수 있어 좋다.


다시 반얀트리 호텔(Banyan Tree Club & Spa Seoul)을 지나 국립극장 쪽으로 간다. 이 호텔은 1969년 건축가 김수근(金壽根 1931~1986)이 설계한 타워호텔로 개장했으며, 쌍용건설이 2010년 6월 반얀트리 호텔로 오픈했던 것을 2012년 6월 현대그룹이 인수했다고 한다.


이제 국립극장을 지나 본격적인 남산길을 오른다. 그런데 첫걸음부터 쉽지 않다. 무려 700개에 가까운 나무데크 계단을 올라야 해서다. 누군가 하얀 잉크로 층계표시를 하다 나중엔 지겨워졌는지 표시하는 걸 그만뒀다. 전망대에서 잠시 국립극장과 신라호텔 뷰를 보고 난 後 남산타워를 향해 또 다시 올라간다.


남산을 오르내리는 버스정류장 앞에 남산팔영(南山八詠) 중 하나인 척헌광등 (陟巘觀燈) 안내문이 보인다. 이는 ‘초파일 남산에 올라 연등 구경하기’란 뜻이란다. ‘남산팔영’은 조선초 대사성(大司成) 등을 역임하고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된 정이오(鄭以吾 1351~1434)가 남산에 올라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서 남산을 예찬한 8편의 시로, 운횡북궐(雲橫北闕 구름이 흘러가는 경복궁 운치), 수창남강(水漲南江 장마철에 물이 넘쳐 흐르는 한강전경), 암저유화 (岩底幽花 바위 틈새 피어나는 그윽한 꽃들), 영상장송(嶺上長松 언덕 위 큰 소나무 정경), 삼춘답청(三春踏靑 봄날 남산나들이), 구일등고(九日登高 중양절 남산오르기), 척헌관등, 연계탁영(沿溪濯纓 계곡에 갓끈 씻는 선비들의 운치) 등이다.


남산 정상에 올라 남산타워를 한번 올려다보고, 서울중심점을 둘러본 後 두번째 인증장소인 목멱산 봉수대로 간다. 그런데, 지나는 사람이 없어 잠시 기다렸다가 바삐 걸어가는 사람이 있길래 염치 불구하고 사진 한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무사히 두번째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20250821_091606.jpg

‘사랑의 자물통’이 켜켜이 걸려있는 울타리 앞에 설치된 나무벤치에 앉아 보온병에 담아간 커피를 한잔 마시는데, 생각만큼 시원하지 않다. 아무래도 날씨가 너무 더우니 보온효과가 떨어진 것 같다. 병에 붙어있는 설명대로라면 하루쯤은 너끈히 효과가 지속돼야 하는 건데.


여기까지 올라왔으니 이제 가파른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밟으면서 남산을 내려간다. 한양도성 유적전시관 안내센터를 지나고, 서울특별시교육청 연구정보원 건물 옆에 있는 계단을 따라 내려가 숭례문(崇禮門)으로 향한다.


그리고, 오전 9시55분 오늘 목적지인 숭례문에 도착했다. 아니, 처음 계획은 세번째 스탬프 인증을 받을 수 있는 돈의문박물관마을까지 가는 거였는데, 날씨가 너무 더워 다음에 들르기로 했다.


숭례문은 태조 5년(1396) 다른 한양도성 문들과 함께 세워졌는데, 그때부터 남대문(南大門)이란 별칭이 있었다. 1907부터 1908년 사이 양쪽 성곽이 철거됐으며, 1961년부터 1963년 사이 전면 해체보수 작업을 했는데, 2008년 2월 방화사건이 일어나 크게 훼손된 것을 2013년 4월 복구를 마쳤다. <임하필기>에 따르면, 현판은 공조판서를 지낸 유진동(柳辰仝)이 쓴 것이라고 한다.

20250821_095707.jpg

이제 집에 오기 위해 늘 다니던 회현역으로 가려고 하는데, 앞에 서울역 4번출구가 보인다. 잘됐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역 안으로 들어갔는데, 4호선 타는 곳이 너무 멀다. 이 정도면 회현역으로 가는 것과 다를 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승강장을 잘 찾아서 무사히 귀가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한양도성길 제2일, 낙산~흥인지문~광희문~남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