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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제1일, 숭례문~ 남산~ 흥인지문~ 낙산

by 이흥재

2025년 10월17일 목요일 맑음


지난주에도 우천으로 산행을 못하고 엊저녁에도 비가 내려서 이번주에도 못 갈까 염려했는데, 다행히 아침에는 비가 내리기 않았다. 그리고 오전에 흐리더니 산행을 마치고 귀가한 지금은 아주 화창한 날씨가 됐다.


올해 들어 세번째 한양도성길을 걷는다. 한번 완주할 때마다 기념뱃지를 주지만, 분기별로 한번씩 4번 완주하면 특별히 메탈뱃지를 주기 때문에 분기에 한번씩은 다녀오려고 한다. 하지만 올해 1분기까지 걷고 메탈뱃지를 받았었기 때문에, 내년 1분기까지 걸어야 다시 메탈뱃지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열심히 걸으려고 한다.


아무튼, 지하철 5호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4호선으로 갈아탄 後 회현역내린다. 아직은 아침 7시도 되기 전인 이른 시간인데도 4호선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다. 당연히 앉을 빈자리를 없다. 다행히 세 정거장 만에 내리면 된다. 5번 출구로 나가 숭례문(崇禮門)으로 향한다.


숭례문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6시53분. 숭례문은 아직 닫혀있다. 멀리서 사진 한장 찍고 스탬프를 받은 後 남산으로 향한다. 숭례문에 대해 <조선왕조실록>에 처음 기록된 것은 태조 5년(1396) 9월24일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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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쌓는 역사를 마치고, 또 각 문의 월단누합을 지었다. 정남은 숭례문이니 속칭 남대문이라 하고, (築城役訖, 又作各門月團樓閤. 正南曰崇禮門, 俗稱南大門.).”


그런데, 숭례문 앞에 세워놓은 안내문에는 “태조 7년(1396) 한양도성 남쪽 대문으로 세워졌다.”고 돼있다. 명백한 오기(誤記)다. 또한, 세종 29년(1447) 8월30일에는 “숭례문을 새로 짓는데, 좌참찬 정분 등에게 명해 그 역사를 감독하게 했다(新作崇禮門, 命左參贊鄭苯等, 監督其役.)”는 기록이 있는데, 안내문에는 “세종 30년(1448) 크게 수리했다”고 했으니 어느 기록을 보고 적어놓았는지 모르겠다.


각설하고, 오늘은 다른 날과는 걷는 방향이 다르다. 항상 시계방향으로 돌았었는데, 오늘은 그 반대방향으로 걷는 중이다. 변화를 주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매번 지나쳤던 한양도성박물관을 방문해보고 싶어서다. 다른 때는 박물관 근처를 일찍 지나다 보니 언제나 문제 닫혀있어서 아직 한번도 방문해보지 못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 한양도성 유적전시관에서 잠시 숨을 고르고 남은 계단을 다시 올라 7시30분쯤 남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봉수대를 배경으로 인증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배경이 너무 어둡다. 마침 지나가는 사람이 있어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역시 물체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둡다. 하지만 집에 와서 넓은 화면으로 보니 다행히 좀더 밝은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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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주위를 돌며 ‘사랑의 열쇠’와 멀리 보이는 북한산 등을 사진으로 남겼다. 전망대 앞에는, 조선 태종 때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를 지낸 정이오 (鄭以吾 1347~1434) 시를 지어 읊었다는 남산팔영(南山八詠) 안내문이 있는데, 이곳 경치는 첫번째인 ‘운횡북궐(雲橫北闕 구름이 흘러가는 경복궁 운치)’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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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葉橫金闕, 옥엽은 금궐에 비끼고,
朱甍照碧天. 붉은 기와 푸른 하늘에 비치네.
丁東傳促漏, 뗑뗑 누수 재촉하는데,
戌北釀非煙. 북쪽에 상서로운 구름 일어나누나.
佳氣晴相擁, 아름다운 기운 개인 날 서로 둘렀는데,
高標望更連. 높은 기상 바라보니 다시 잇닿았네.
南山將獻壽, 남산 같은 높은 복을 우리 임금께 드리려니,
穆穆萬斯年. 조심조심 일만 년을 누리소서.


남산 안내문을 보면, “본래 이름은 ‘인경산(引慶山)’이었지만 조선초 남산 산신에게 목멱대왕이란 벼슬을 내리고 제사를 지내면서 ‘목멱산 (木覓山)’이란 이음으로 봉했다. 그러다 한양 남쪽에 있는 주작(朱雀)에 해당한다는 의미로 ‘남산(南山)’으로 불리게 됐다.”


이와 관련해서 <조선왕조실록> 태조 4년(1395) 12월29일에 “이조에 명해 백악을 진국백으로 삼고 남산을 목멱대왕으로 삼아, 경대부와 사서인은 제사를 올릴 수 없게 했다(命吏曹, 封白岳爲鎭國伯, 南山爲木覓大王, 禁卿大夫士庶不得祭.)”는 기사가 있다. 그러니까 조선초에도 ‘남산’이라고 불렸다는 거다. 안내문 내용이 모두 오류투성이다.


남산을 내려오다 버스정류장 인근에는 남산팔영 중 일곱번째인 ‘척헌관등 (陟巘觀燈 초파일 남산에 올라 연등 구경하기)’ 안내문이 보인다. 나머지 여섯 곳은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


八日觀燈盛, 4월8일 관등놀이 성대한데,
昇平第幾春. 승평세월 이 얼마인가.

萬龕明似晝, 일만 초롱불 대낮같이 밝으니,
四境靜無塵. 사방이 고요하고 티끌 하나 없네.
虹焰蟠千丈, 붉은 불길 천 길이나 서린 듯,
星芒拱北辰. 별 광채 북두칠성(北辰)으로 향했네.
通宵看未足, 밤을 새워도 구경 부족하여,
不覺到鷄晨. 닭 우는 새벽에 이른 줄도 모른다네.


이제 국립극장 방향으로 내려간다. 이곳 또한 수많은 계단이 있지만 그나마 내려가는 길이니 좀더 수월하다. 계단 중간쯤에서 오늘 첫 각자성석 (刻字城石)을 만난다. “都廳監官 趙廷元 吳澤 尹商厚 邊首 安二土里 乙丑八月日(임시책임자인 조정원 오택 윤상후가 감독했으며, 전문석수 안이토리가 참여했다).”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을 ‘각자성석’이라 하며, 한양도성에 남아있는 각자성석은 천자문 글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14C)과 축성을 담당한 지방이름을 새긴 것(15C), 축성책임 관리와 석수이름을 새긴 것(18C 이후)으로 나뉘는데, 한양도성에는 280개 이상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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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한양도성은 축성시기에 따라 형태가 바뀌었다. 태조 때는 1396년 1월과 8월, 산지는 석성(石城) 평지는 토성(土城)으로 두 차례 쌓았는데. 성돌은 자연석을 거칠게 다듬어 사용했다. 세종 때는 1422년 1월, 평지 토성을 석성으로 고쳐 쌓으면서 성돌을 옥수수 모양으로 다듬어 사용했다. 숙종 때는 무너진 구간을 여러 차례 쌓았는데, 성동크기를 40~15cm 방형으로 규격화했다. 또한, 순조 때는 60cm 정방형으로 다듬어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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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과 반얀트리 호텔을 지나고 신라호텔 담장을 돌아 광희문(光熙門)에 도착했다. 안내문에는, “한양도성 동남쪽 문으로, 시구문 (屍口門) 또는 수구문(水口門)이라고 불렸다. 일제강점기 때 일부 무너지고 1960년대 퇴계로를 내면서 반쯤 헐렸던 것을 1975년 본래 자리에서 15m 떨어진 곳에 고쳐 지었다”고 돼있다. <조선왕조실록> 태조 5년(1396) 9월24일에도, “동남은 광희문이니 속칭 수구문이라 한다 (東南曰光熙門, 俗稱水口門.)”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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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을 지나 흥인지문(興仁之門)으로 향한다. DDP는 2007년 동대문운동장이 철거된 자리에 이란계 영국인 자하 하디드(Dame Zaha Hadid 1950~2016)가 설계하고 삼성건설이 2009년 착공해 2014년 개관했다. DDP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에 따르면, 개관 10년만인 지난해 6월 누적방문객 1억명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2천만명 이상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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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인지문에 도착해 두번째 스탬프를 받았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조 5년(1396) 한양도성 4대문과 4서문을 완성했는데, 정북의 숙청문(肅淸門)과 정서의 돈의문(敦義門), 서북의 창의문(彰義門)에 대해서만 별칭이 없다. 흥인지문의 당초 이름은 흥인문(興仁門)이었는데, 정동에 있어 속칭은 동대문(東大門)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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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건너 낙산으로 올라간다. 남산부터 계속 내려오다 오르는 길이 또 힘들어진다. 그래도 터덜터덜 올라갈 수밖에. 먼저 한양도성박물관에 잠시 들른다. 처음 오는 곳이라서 기대가 많았는데, 전시내용은 단출하다. 그리고 새로운 내용도 거의 없다. 넓지 않는 전시공간을 한바퀴 돌아보고 팜플렛을 몇 장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좀더 올라 ‘낙산공원’에서 두번째 인증사진을 찍기 위해 지나는 사람을 기다린다. 잠시 후에 만난 사람한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상반신만 찍으면 된다고 했지만 굳이 전신을 찍어 마음에 썩 들진 않지만 셀프카메라보단 나으니,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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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산 성곽길을 돌아 한성대입구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타고 무사히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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