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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길 제2일, 돈의문터~ 인왕산~ 북악산~ 숙정문

by 이흥재

2025년 10월23일 목요일 맑음


올들어 세번째 걷는 한양도성길의 제2일, 그러니까 세번째 완주를 위한 첫걸음은 서대문역 4번 출구를 나서면서 시작된다. 오늘 첫번째 스탬프를 받아야 하는 돈의문터까지는 직선거리로 260m다. 이른 아침이라 지나는 사람은 없다. 잠시 後 돈의문박물관마을에 도착했는데, 간판이 사라졌다. 출입구가 막혀있고 스탬프는 길건너 맞은편에 있는 경교장 (京橋莊)에서 받으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경희궁지 일대 역사문화공원 조성사업 일환으로 공간재구성을 위해 8월31일부로 운영이 종료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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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으로 가서 스탬프를 받고 다시 길을 나선다. 그런데, 돈의문은 참 사연이 많은 문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돈의문(敦義門)은 태조 5년 (1396) 9월 다른 4대문 및 4소문과 함께 세워졌다. 그런데, 태종 13년(1413) 6월,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지맥(地脈)을 온전하게 해야 한다고 상서해서 돈의문을 닫고 인덕궁(仁德宮) 앞에 서전문(西箭門)을 새로 만들었다.


세종 4년(1422)에는 도성을 새로 쌓으면서 서전문을 막고 다시 돈의문 (敦義門)을 설치했다. 그런데, <세종실록>에 ‘돈의문을 설치했다’고 했으니, 전에 있던 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 後 몇 차례 수리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5년 도시계획에 따른 도로확장을 위해 돈의문이 철거되면서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어, 정확한 설치위치도 모른다. 그리고, ‘신문로 (新門路)’나 ‘새문안’ 등의 이름만 남았는데, 그조차도 ‘신문’이나 ‘새문’이 서전문을 말하는지, 나중에 설치한 돈의문을 말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됐다.


서울특별시교육청을 지나 월암공원 도착했는데, 한켠에 어니스트 베델 집터(裵說家址) 안내문이 있다. 그런데 땅이 좁고 경사진 데다 지금은 나무만 심어져 있어 집터란 느낌은 나지 않는다. 베델(1872~1909)은 영국출신 언론인으로 1904년 조선에 들어와 이듬해 <대한매일신보 (大韓每日申報)>를 창간하는 등 활동해오다 1909년 사망한 後 양화진 외인묘지에 안장돼있다.


잠시 後 세븐일레븐을 지나 본격적인 인왕산행을 시작한다. 인왕산(仁王山 338.2m)은 한양 내사산(內四山) 중 하나로, 조선시대에는 호랑이가 살았었다고 한다. <세조실록>을 보면, 세조 10년(1464) 12월 인왕.백악 두 산에서 몰이해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사가 있고, 인조 4년(1626) 12월에도 인왕산 곡성(曲城) 밖에서 호랑이가 나무꾼을 잡아먹고 인경궁(仁慶宮) 후원으로 들어와 잡았다는 기사가 있다. 하지만 지금은 서울시민들이 즐겨 찾는 산일 뿐이다.


하지만 오르는 길은 만만치 않다. 계단이 많고 가팔라서다. 오르는 길에 왼쪽 성벽 밖으로 선바위가 보인다. 국사당(國師堂) 옆에 있는 바위로, 산중턱에 우뚝 서있어 입암(立岩)이라고도 하는데, 중이 장삼을 입고 서있는 듯해서 선암(禪岩,선바위)이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바위가 좀 기괴하게 생겼을 뿐, 중 모습으로 보이진 않는다. 아무튼, 다음에는 선바위를 조금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등산로로 올라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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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7시52분, 인왕산 정상에 올랐는데 인증사진 찍어줄 사람이 없다. 조금 떨어진 곳에 외국인인 듯한 남자가 있긴 해도 불러서 찍어달라긴 미안해서 결국 셀프로 찍었는데, 배경을 잡기가 쉽지 사진을 찍고 창의문(彰義門) 방향으로 내려간다. 잠시 後 ‘한양도성 부부소나무’란 이름이 붙은 연리지(連理枝) 나무를 지난다. 예로부터 연리지에 대한 일화는 많다. 그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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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서(後漢書)> [채옹전(蔡邕傳)]에 보면, “채옹은 성품이 독실하고 효성이 지극했는데, 어머니가 병으로 앓아 누운 3년간 계절이 바뀌어도 옷 한번 벗지 않았으며, 70일 동안 잠자리에 들이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집 옆에 초막을 짓고 모든 행동을 예에 맞도록 했다. 그 後 채옹 집 앞에 나무 두 그루가 자라면서 가지가 서로 붙어 하나가 됐다. 원근 사람들이 기기하게 생각해 모두 와서 구경했다(邕性篤孝, 母常滯病三年, 邕自非寒暑節變, 未嘗解襟帶, 不寢寐者七旬. 母卒, 廬于冢側, 動靜以禮. 有菟馴擾其室傍, 又木生連理, 遠近奇之, 多往觀焉. )”고 한다.


또한, 당나라 때 시인 백거이(白居易, 字; 樂天)도 <장한가(長恨歌)>에서 연리지를 노래했다.


在天願作比翼鳥 저 하늘에선 비익조가 되고 싶고
在地願爲連理枝 이 땅에서는 연리지가 되고 싶다
天長地久有時盡 장구한 세상도 다할 때가 있지만
此恨綿綿無絶期 이 한은 면면히 끊이지를 않으리


비익조(比翼鳥)는 날개가 한쪽 뿐이어서 암컷과 수컷 날개가 결합돼야만 날 수 있는 전설상의 새라고 한다. 아무튼, 연리지는 어디서나 상서로운 나무로 여겨지는 것 같다.


멀리 북악산을 바라보며 산을 내려가 윤동주 문학관을 지나 창의문으로 간다. 창의문은 한양도성 사소문(四小門) 중 하나로, 태조 5년(1396) 9월 처음 세워진 後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영조 17년(1741) 새로 지은 것이지만 조선시대 문루가 그대로 남아있다. 이 문 부근 경치가 개경(開京) 경승지(景勝地)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해서 자하문(紫霞門)이라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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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문에 보면,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한다’는 뜻이 있다”고 했는데, <태조실록>에는 4대문과 4소문에 대해 정북(正北)의 숙청문(肅淸門)과 정서(正西)의 돈의문, 서북(西北)의 창의문에 대해서만 별칭을 붙이지 않았다. 세 문 모두 건립 당시 출입문 역할을 제대로 하지 않아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즉 구색을 맞추기 위해 세운 문들 아니었을까.


오전 8시40분, 자북정도(紫北正道)를 지난다. 자하문 북쪽의 정의로운 길이란 뜻으로, 정도(正道)는 ‘국가안보’를 뜻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부터 계단이 급격히 가팔라진다. 군데군데 공사현장이 있지만 인부도 보이지 않고 길도 막아놓지 않아 산행에는 불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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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래 쉼터와 백악쉼터를 지나 9시 정각에 백악산(白岳山 342m) 정상에 올라 옆에 있는 사람한테 인증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는데, 나중에 보니 한국인이 아닌 듯하다. 아마도 중국사람들이었나! 그러고 보니 산을 오르면서 외국인을 꽤 봤다. 다들 이른 아침에 산행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다. 나야 항상 하던 루틴이니 그렇다 쳐도. 조용한 산을 오르고 싶었나! 빨리 산부터 오르고 다음 일정을 이어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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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사태 소나무’를 지나 청운대(靑雲臺)에 도착했는데, 부부인 듯한 사람이 있긴 해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진 못했다. 거리도 조금 떨어져 있었지만 백악산에서 인증사진을 찍었으니 청운대에서는 굳이 찍지 않아도 돼서다. 한양도성 완주인증서 신청서에는 백악산이나 청운대 중 한 곳에서 찍은 인증사진만 첨부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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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시21분, 숙정문에 도착해 마지막 스탬프를 찍으니, 완주했다는 표시가 뜬다. 이제 사무실로 가서 완주인증서만 받으면 된다. 숙정문은 태조 때 건립 당시에는 숙청문(肅淸門)이었는데, 중종 16년(1523) 6월 기사부터 숙정문(肅靖門)으로 나온다. 이 문은 지리적으로나 풍수적인 이유 때문에 조선시대 때는 잘 열지 않았다고 한다. 숙정문은 현존하는 도성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유일한 문이며, 1976년 문루를 새로 지었다고 한다.


말바위안내소 나무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고, 와룡공원을 지나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에 가서 완주인증서를 받았다. 2025년 13,317번째다. 1월엔 173, 6월엔 8,147, 8월엔 9,871번째였다. 6월과 8월 사이엔 1,724명이 걸었고, 8월과 10월 사이엔 2배인 3,446명이 걸은 셈이다.


혜화문을 지나 한성대입구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갈아탄 後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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