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18일 목요일 흐림
오늘 목적지는 도봉산이다. 지난 1월에 다녀왔으니 8개월 만이다. 매주마다 서울근교 산들을 차례로 다녀오고 중간에 한양도성길도 걷다 보니 대략 6개월마다 같은 산엘 가게 되는 것 같다.
개롱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군자역에서 한번 갈아탄 후 도봉산역에서 내려 곧바로 도봉산을 향해 출발한다. 이른 아침이라 사람들은 많지 않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것보다 이렇게 호젓하게 걸을 수 있는 게 좋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주중산행을 하는 편이다.
도봉산역에서 1km쯤 떨어진 도봉탐방지원센터를 지나 조금 가다 보면 광륜사(光輪寺)가 나온다. 도봉산엘 오르려면 능 지나치던 곳인데, 오늘 보니 일주문에 전통사찰(傳統寺刹)로 지정됐다는 프랑카드가 걸려있다. 그런데 전통사찰이 뭐지?
인터넷을 찾아보니 <전통사찰의 보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의거해 불교신앙 대상으로서의 형상(形象)을 봉안하고 승려가 수행(奉安)하며 신도를 교화하기 위한 시설 및 공간으로서 법에 따라 등록된 사찰(法 제2조)이라고 한다. 이에 필요한 요건으로는, ① 역사적으로 볼 때 시대적 특색을 뚜렷하게 지니고 있음 ② 한국고유의 불교문화예술 및 건축사(建築史)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필요함 ③ 한국문화의 생성과 변화를 고찰할 때 전형적인 모형이 됨(法 제4조) 등이다.
사찰 앞에 세워 놓은 안내문을 보면, “673년 의상조사(義湘祖師)가 만장사 (萬丈寺)로 창건했지만 조선중기부터 극심한 탄압을 받아 명맥만 유지해오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소실됐다. 조선후기 추존국왕인 문조(文祖)의 왕비이자 헌종(憲宗)의 어머니며 고종의 양모인 신정왕후(神貞王后 1808~1890)가 중창한 後 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자주 방문해 국정을 논한 역사적 도량이다. 1970년대 이후 중창불사가 있었고, 2002년 광륜사로 새롭게 개창했다.”
연혁을 읽어봐도 어느 부분에 해당돼 전통사찰로 지정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활짝 열려있는 일주문으로 들어가 대웅전(大雄殿) 앞마당에서 주위에 있는 정천당(淨泉堂)과 정수당(精脩堂)을 돌아본 後 경내를 벗어나 도봉산으로의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했다.
잠시 後 김수영 시비(金洙暎 詩碑)와 도봉서원터(道峰書院址)를 차례로 지난다. 김수영 시비에는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풀>(1968) 중 두번째 문장이 새겨져 있다. 김수영(1921~1968)의 이름을 들어본 적은 있지만, 여기 있는 <풀> 말고는 아는 바가 거의 없다.
도봉서원터 앞에 있는 안내문을 보면, “도봉서원은 서울에 현존하는 유일한 서원으로 1573년(선조6) 양주목사(楊州牧使) 남언경(南彦經)이 조광조(趙光祖 1482~1820)의 학문과 행적을 기리는 뜻으로 건립하고 이듬해 ‘도봉(道峰)’ 이란 사액(賜額)을 받았다. 1696년(숙종22)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 1689)을 추가배향 하며 최고서원의 위용을 갖게 됐지만, 1871년 훼철(毁撤) 됐다 1971년 복원됐다. 2009년 서울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됐고, 2021년에 보물로 지정예고 됐다. 도봉구가 10년간 3차례 발굴조사를 완료하고 정비사업을 추진 중이다.”라고 돼있다. 이 안내문은 2021년 8월 설치된 것인데, 어느 땐가 남아있던 건물들도 모두 헐어버리고 지금은 잡초만 무성한 빈터만 남아있다. 정비사업이 추진되고는 있는 건지, 이대로 방치되는 건 아닌지 알 수 없다.
도봉서원터 앞 계곡에는 ‘고산앙지(高山仰止)’라고 새겨진 물에 잠긴 바위가 있다. 안내문을 보면, “고산앙지는 시경(詩經)에 나오는 문구로 ‘높은 산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다. 1700년(숙종26) 김수증(金壽增 1624~1701)이 조광조의 덕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으로 새긴 것으로 추측된다.” 네 글자 중 ‘仰’은 반만 보이고, ‘止’는 물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 요즘 이렇게 했다가는 처벌받을 수도 있는데, 옛 것이다 보니 문화재로 취급 받는다.
첫 갈래길에서 오른쪽으로 간다. 이정표에는 왼쪽 길이 ‘우이암’으로 표시돼있지만, 정상으로 갈 수는 있다. 좀 돌아가야 하지만. 어떻든 오늘은 정상으로 오르는 최단코스를 택한다. 하긴 그만큼 가파를 수 있어서 힘들겠지만 시간을 단축할 수 있는 코스다. 이정표에는 자운봉(紫雲峰 740m)까지 2.1km로 표시돼있으니 2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을 것 같다.
조금 오르다 보니 길 옆 바위에 폭포가 생겼다. 여느 때도 물이 조금씩 흐르긴 했지만 어제 비가 많이 온 탓인지 지금은 폭포형상이 됐다.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사진 찍기 위해 자리를 잡았다. 나는 얼른 동영상과 사진을 찍고 산행을 계속한다.
천축사(天竺寺) 일주문에 도착했다.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천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사찰로, 관음 영험기도 도량으로 유명하다. 673년 의상대사가 의상대에서 수도할 때 제자를 시켜 암자를 짓게 하고, 옥천암 (玉泉庵)이라 했다. 고려 명종 때 영국사(寧國寺) 산내암자가 됐다. 1398년 함흥에서 돌아오던 태조가 옛날 이곳에서 백일기도 하던 것을 상기해 절을 중창하고 천축사라 사액(賜額)했다 하며, 1474년 성종의 왕명으로 중창했다. 이후 여러 차례 중창해오다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대웅전과 독성각 산신각을 중수하고, 요사와 공영간을 신축했다.”
오늘은 천축사 경내로 올라가지 않고, 산행을 계속해 오전 8시쯤 마당바위에 도착했다. 흐리긴 했어도 미세먼지가 없어서인지 멀리 우이암 (牛耳岩)과 롯데월드타워 등이 뚜렷하게 보인다. 맑은 날도 이렇게 멀리까지 보인 적은 별로 없었다.
평일 이른 시간이라 홀로 산행을 계속한다. 이정표를 보면 마당바위에서 자운봉까지 400m지만, 길이 가파르고 바위투성이라 오르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요즘은 그냥 힘들 길인지 나이 때문에 더 힘든 건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시간을 보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으니 아무래도 여기가 그저 힘든 길인 것 같기도 하다.
자운봉 아래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면, “최고봉인 자운봉과 만장봉(萬丈峰) 선인봉(仙人峰) 등 세 봉이 도봉산을 대표하는 봉우리들이다.”라고 돼있지만, 정작 오를 수 있는 봉우리는 신선대 뿐이다. 물론 신선대를 오르는 것도 만만치는 않다. 가파른 바위산을 안전봉을 잡고 오른다. 그런데, ‘안전’하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힘도 들지만, 불안한 마음으로는 절대 신선대 정상에 오를 수 없다.
신선대 정상에 올라 주위사진을 몇 장 찍고 내려가려는데 뒤따라 올라오던 사람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한다. 정상에서 인증사진 찍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잠시 기다렸다가 서로 사진을 찍어줬다. 그런데 역시 내 사진을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 사람은 잘 찍지 못한다고 변명했지만, 어쩔 수 없다.
하산은 올라온 길과는 반대방향 길을 택한다. 그런데 그곳에는 가파른 ‘Y계곡’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우회길도 있지만, Y계곡으로 내려가보기로 한다. Y계곡을 여러 번 올라오긴 했지만 내려가기는 처음이다. 오르는 길은 힘들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위험하다. 그래도 한발한발 옮기며 무사히 Y계곡을 통과했다.
나무데크 전망대에 올라가니 먼저 온 사람이 있고, 고양이도 왔다 갔다 한다. 먼저 온 사람이 고양이한테 먹을 걸 줬는데, 나를 보자 도망다니기에 바쁘다.
일부러 쫓는 것도 아닌데, 자꾸 피해다니니 미안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잠시만 기다려라. 얼른 먹고 갈 테니. 배낭에서 간식을 꺼내 먹고는 바로 일어나 계속 내려가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가다 갈림길이 있는데 왼쪽으로 가면 은석암이 나오고, 오른쪽 데크계단을 내려가면 만월암(滿月庵)이 나온다. 오른쪽으로 내려가는데 한번쯤 갔던 길일 텐데도 왠지 낯설다. 아무렴, 목적지만 찾아가면 된다.
오전 9시 반쯤 만월암에 도착했다. 바위에 기대 만든 조그만 암자다. 안내문을 보니,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보덕굴(普德窟)이란 참선도량으로 알려지는데, 만월보전(滿月寶殿)에 서울시 문화재로 지정된 조선시대 석불좌상이 있다. 2002년 법당과 요사로 사용되는 만월보전을, 2004년에는 산신각을 새로 지었다.”
만월암을 잠시 둘러보고 있는데, 스님이 나오더니 차 한잔 하라고 한다. 쉴 겸 툇마루에 앉아 이름을 알 수 없는 따뜻한 차를 마시며 잠시 스몰토크를 나눴다. 주제는 ‘강릉 가뭄’ 결론은 참 알 수 없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스님 입담도 일반대중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됐다.
스님한테 ‘만월보전’이란 당호(堂號)를 처음 본다고 했더니, 약사여래 (藥師瑠璃光如來)를 봉안한 불전이라면서 여러 곳에 있다고 했다. 집에 와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른 이름으로는 ‘약사전(藥師殿)’이라고 했다. 그 이름이 좀더 익숙한 것 같다.
이정표를 보니 자운봉에서 도봉탐방지원센터까지 3.4km다. 올라올 때 2시간쯤 걸렸으니 내려갈 땐 1시간 반이면 될 듯하다. 지금부터 올라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진다.
오전 9시55분, 올라가면서 봤던 도봉산장이 나왔다. 여기부터는 낯익은 길이다. 몇몇 사람들이 등산로 보수공사를 하고 있다.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다닐 수 있지만 조금이라고 편리하게 해주면 좋은 일이다.
산행하는 중에는 너무 힘들어서 다음에 또 올 수 있을까 괜한 걱정을 하지만 다 끝내고 나면 조그만 성취감 때문에 오래지 않아 잊어버리고 다시 산을 찾게 된다. 오늘도 그럴 것 같다. 다음주는 원정산행이다. SRT를 타고 내려가서 ‘계룡산(鷄龍山)’을 다녀올 예정이다. 기차표도 예매해놨으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다녀와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