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30일 목요일 흐림
오늘 산행목적지는 북한산 백운대였지만, 구파발역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효자2통 정류장에서 내려 국사당과 밤골매표소를 지나 밤골계곡으로 올라가려고 했었다. 전에 숨은벽능선으로 몇 번 오르면서 오른쪽으로 난 등산로에 대해 궁금해하던 차에 오늘 그 궁금증을 해소하려던 거였다.
그리고, 예정대로 구파발역에서 704번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입구 정류장까지 갔는데, 버스가 갑자기 유턴 한다. 뭐지? 효자2통 정류장까지는 아직 몇 정류장 더 가야 하는데! 운전기사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볼 겨를도 없이 후닥닥 내리기 운전기사가 깜짝 놀란다. 그 사이 버스 타는 사람들 때문에 결국 아무런 이유도 모른 채 버스에서 내렸다.
이제 망설일 것도 없이 북한산을 오를 때 가장 일반적인 루트로 가는 수밖에 없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를 지나 대서문(大西門)을 향한다. 문 옆에 세워진 안내문을 보면, “북한산성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숙종 38년(1712)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대서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과거 성안에 마을이 있었을 땐 주민들이 이용했던 문이다. 지금 문루(門樓)는 1958년 복원했다. 대서문을 통과해 중성문을 거쳐 대남문에 이르는 길이 북한산성 주요 간선도로였으며, 이곳의 수비관리는 어영청 유영(御營廳 留營 군대가 주둔한 곳)이 맡았다.”
대서문을 지나 올라가는데, 지난번 왔을 때 환경부 소유란 안내문이 붙어있던 낡은 한옥이 철거되고 빈터만 남았다. 그 한옥이 무슨 용도였는지, 왜 철거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허전해 보인다. 안내문을 보니 9월말에서 10월초 사이에 허물었나 보다.
돌로 만든 天下大將軍과 地下女將軍을 지나 무량사(無量寺)에 이른다. 안내문을 보니, “고종 후궁 순빈엄씨(淳嬪嚴氏)가 이곳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藥師佛坐像)과 산신탱화(山神幀畵)를 모신 後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을 낳았는데, 영친왕 이은(英親王 李垠 1897~1970)이다. 이후 순빈 원당 (願堂)이 됐으며, 경기도 전통사찰 제1호로 지정됐다.” 다른 자료를 더 찾아보니, 약수암(藥水庵)으로 불리다가 1980년 무량 스님이 주지로 부임한 뒤 무량사로 바꿨다고 한다.
새마을교 옆에 북한산성(北漢山城) 안내문이 있는데 그 내용을 보면, “북한산 여러 봉우리를 연결해 쌓은 산성으로, 길리 11.6km 내부면적은 5.3km2다. 1711년(숙종37), 6개월 만에 축성을 완료했다. 봉우리 정상부는 성을 쌓지 않았는데, 그 길이가 3km다. 성벽에는 대문 6곳, 암문 8곳, 수문 2곳을 뒀고, 초소인 성랑(城廊) 143곳이 있었다.”
새마을교를 건너 왼쪽 보리사 방향으로 간다. 보리사는 별다른 안내문도 보이지 않고, 전각(殿閣)이라야 달랑 대웅전(大雄殿) 하나 뿐이다. 이 정도면 암자(庵子)라고 해야 하지 않나! 이곳을 여러 차례 지나다녔지만 스님은커녕 염불소리도 들어본 적 없는 것 같다. 주차장 차들도 다른 사찰이름을 새긴 것들 뿐이고.
아무튼,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대동사를 지나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에 도착했다. 이제 백운대 정상까지는 300m 남았다. 암문 옆에 세워놓은 안내문을 보니, “북한산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봉 사이에 있는, 북한산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은 성문이다. 8개 암문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는 위문(衛門)으로 불렸다.”
이제 마지막 힘을 짜내서 백운대로 향한다. 지금까지도 충분히 힘들었지만, 남은 300m는 훨씬 더 가파른 바위를 올라야 한다. 다행히 쇠파이프로 가드레일을 만들어놨지만, 온몸으로 힘을 써야 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게 드디어 9시32분, 백운대 정상에 올라 인증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정상까지 4.1km 올라오는데,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올라올 때는 너무 힘들어 쉬고 싶었지만, 막상 정상에 도착하면 금새 힘이 다시 나는 것 같다. 그리고, 정상 바로 아래 있는 마당바위에 앉아 잠시 휴식하면서 간식을 먹었다.
지난 7월에 왔을 때는 러브버그가 들끓었었는데, 기온이 내려가서 그런지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해가 바뀌고 기온이 올라가면 언제 또 나타날지 모른다. 익충(益蟲)이라곤 해도 산에 오는 사람들을 너무 괴롭히니 없애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 같은데, 어떤 결과나 나올지 모르겠다.
정상에서 조금 내려오다 보면 삼각산(三角山) 안내문이 있다. “삼각산은 백운대(白雲臺 836.5m)인수봉(仁壽峰 810.5)만경봉(萬景峰 787)으로 구성돼있다. 고려수도 개성에서 이 봉우리들이 세 뿔처럼 보여서 삼각산으로 불렸다고 한다. 동남쪽에 솟은 만경대는 국망봉(國望峰)으로도 불렸다.”
북한산을 주제로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읊었는데, 그중에는 태조가 지은 <백운봉에 올라(登白雲峰)>란 시도 있다. 이 시는 <열려실기술 (燃藜室記述)>에 실려 전하는데, ‘연려실’은 이 책은 지은 이긍익(李肯翊)의 호다.
引手攀蘿上碧峰 넝쿨 움켜쥐고 푸른 봉우리에 오르니
一庵高臥白雲中 흰구름 가운데 암자 하나 걸려있네.
若將眼界爲吾土 눈에 보이는 곳 우리 땅으로 한다면
楚越江南豈不容 오월 강남 땅도 그 속에 있으련만.
숙종은 북한산성을 쌓은 후에 <삼가 태조의 ‘등백운봉’ 시에 차운함 (敬次太祖御製白雲峰韻)>이란 시를 지었는데, 이 또한 <열려실기술>에 실려 전한다.
高臨玉趾白雲峰 귀하신 발걸음 백운봉에 높이 오르시어
萬朶詳光擁繞中 못 봉우리 서광으로 휘감기게 되었네.
聖祖德符天地大 성조의 덕부가 천지간에 크기만 하니
區埏至廣盡包容 땅끝까지 널리 모두를 포용하리로다.
지금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나무데크 계단을 내려와 왼쪽으로 난 밤골공원지킴터 방향으로 내려가려는데, 이정표에 3.1km라고 써있다. 그런데, 조금 더 내려가니 거리는 어느새 4.1km로 바뀌어있다. 아무리 둘러봐도 외길인데, 왜 갑자기 1km나 늘어난 거지?
아침에 올라오려고 했던 길로 내려가는데, 온통 돌투성이인데다 경사도 가파르다. 그러니 올라오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다. 좀 내려가다 숨은벽능선에서 넘어오는 길을 만나고도 급경사 내리막길을 한참 내려가니 드디어 흙길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작은 폭포가 흐르는 계곡도 만난다. 지금은 건기라 물이 많이 없지만, 여름 우기 때 오면 폭포도 꽤 장관일 것 같은 크기다.
11시20분, 밤골공원지킴터와 국사당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국사당 대문이 열려있어 안으로 들어가보니, 누군가 마당에서 고기를 손질하고 있고, 북과 장구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국사당(國師堂)은 본래 남산 목멱대왕(木覓大王) 을 모시던 목멱신사 (木覓神祠)를 인왕산으로 옮겨, 태조와 무학대사(武學大師), 그리고 여러 호신신장(護身神將)을 모시면서 ‘국사당(무학대사를 모시는 곳이라 국사당이라 했다)’이라고 했던 것인데, 이곳은 왜 ‘국사당’이란 당호를 붙였는지 알 수 없다. 하긴, 어느 곳이나 지금은 굿당의 하나이긴 하다.
500m쯤 더 걸어서 효자2통 버스정류장에 도착, 제일 먼저 오는 버스는 타고 구파발역으로 가서 지하철을 갈아타고 귀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