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첫날, 생장드뤼즈에서 이룬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7일(수)


어제는 시차적응이 안됐는지 일찍 잠든 데다가 주위에 코고는 사람들이 있어서 일찍 잠을 깼다. 시계를 보니 4시쯤이어서 6시에 알람을 맞춰놓고 다시 잤다.


새벽 6시에 일어나니 벌써 모두 일어나있다. 대부분은 각자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알베르게에서는 7시15분부터 아침식사를 준다고 했는데, 기다릴 수 없어 먼저 먹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따로 준비한 음식이 없으니 식사시간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7시쯤 식당으로 가니 먼저 커피를 주고 잠시 후 갓 구운 듯한 따뜻한 바게트(길이가 50cm쯤 됐다)도 하나씩 나눠줬다. 그걸 4등분 해서 딸기잼을 발라 3개는 먹고 1개는 남겼다.


생장드뤼즈를 출발해 첫 마을인 시부르(Ciboure, 프랑스 사람들은 ‘시브흐’로 발음하는 것 같다) 가는 길을 알베르게 주인에게 물어봤지만 설명이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어제 돌아다녔기 때문에 대략 알 것 같기는 했다. 아침 8시가 되기 조금 전에 알베르게를 나섰는데, 아직은 날이 밝지 않았다. 생자크(산티아고의 프랑스식 이름) 길(Rue Saint-Jacques)을 따라 갔더니 오른쪽에 어제 봤던 메종 인팡트가 보였다. 그렇지만 내가 갈 길은 왼쪽이다. 조금 가다 보니 시부르로 가는 찰스 드골 다리(Pont Charles de Gaulle)가 보였다.


다리를 건너 시부르로 들어섰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출근하는 듯한 여자에게 물어보니 해안길을 가르쳐줬다. 시부르에서는 카미노가 내륙길과 해안길로 나뉘는데, 내륙길로 가려 한다고 했더니 그럼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한참 가다가 또 두 갈래길이 나와서 소코아 해변(Plage de Socoa) 방향으로 난 왼쪽 길로 들어섰다. ‘소코아’란 이름을 어디선가 본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조금 걷다가 앞에서 조깅하고 있는 여자에게 위리뉴(Urrugne) 가는 길을 물어보니 왔던 길을 되돌아가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다. 어휴!


그 길로 조금 가니 드리튀비 성(Château d'Urtubie)이 보였다. 카미노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었지만 들어가서 사진을 몇 장 찍고 나와서 조금 더 걷다 보니 그제서야 처음으로 카미노 표시가 나타났다.

드리튀비 성.jpg

위리뉴 초입에서 소 울음소리가 들리길래 찾아가보니 우시장(牛市場)이었다. 한국에서 우시장을 본 건 아주 오래 전인데, 여기서 다시 보게 됐다.

우시장.jpg

위리뉴의 바(bar)에 들어가 생맥주를 한잔 마셨다. 카미노를 걸으면서 처음 마시는 맥주다. 그런데 3유로를 달라고 했다. 물가가 올라서 그런가? 아니면 프랑스여서 그런가? 지난 2018년 프랑스길을 걸을 땐 1유로였던 것 같은데!


위리뉴부터는 카미노 표시가 비교적 잘 돼있어 걷기 편했다. 그리고 여기도 바스크지방(Pays basque)이어서 이곳의 전통인 붉은 색 창을 단 집들이 많이 보였다.


카미노 표시를 따라 걷다 보니 조금 생뚱맞은 곳으로 길이 이어진다. 길이 아니라 풀이 우거진 숲길 같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다니지 않아서 그런가? 조금 더 가니 길이 더 안 좋아진다. 그래도 조금 더 가니 자갈길이 나왔다. 앙다이 마을에 접어들어 마침 ‘산티아고’란 안내판이 있어서 따라갔더니 더 이상 카미노 표시가 없다.


공원에서 강아지와 함께 쉬고 있는 여자에게 이룬(Irún)으로 가는 산티아고 다리(Puente Internacional de Santiago)로 가려 한다고 했더니 곧바로 가다가 왼쪽으로 내려가라고 한다. 한참 우회해서 온 셈이다.

산티아고 다리(이룬).jpg

알려준 대로 가다가 마을주민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계속 갔더니 뜬금없이 앙다이역(Gare de Hendaye)이 나온다. 어쨌든 이제 이룬은 멀지 않다. 역시 조금 더 갔더니 앙다이 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산티아고 다리가 보였다.

앙디이역.jpg

이 산티아고 다리에는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표시가 있다. 다리 한가운데 네모난 화강석 한쪽에는 프랑스(FRANCE), 다른 쪽에는 스페인(ESPAÑA)이란 글자를 새겨놨다. 무심코 지나가면 잘 모른다. 그래도 프랑스 방면으로는 경찰 2명이 서서 프랑스 쪽으로 가는 차들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국경표시.jpg

이룬에 들어서자 첫번째로 만나는 바르(bar)에서 점심을 먹었다. 조그만 샌드위치 2개와 튀김, 그리고 생맥주를 주문했다. 튀김이 조금 느끼하긴 했지만 계란과 채소를 넣은 샌드위치는 아주 맛있었다. 생맥주는 프랑스에서 마셨던 것보다 훨씬 시원하고 양도 많았다.


이제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Jakobi de Irun)를 찾아가면 된다. 그런데 이 이 알베르게는 카미노 중 가장 늦은 시각인 오후 4시에 오픈한다고 했다. 그래도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알베르게에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가는 길에 저녁에 먹을 훈제 통닭과 납작 복숭아(flat peach)•오렌지와 물을 샀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아직 오후 2시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순례자 몇 명이 와있다. 하긴 이 사람들도 별다른 소일거리가 없었을 거다. 배낭을 알베르게 앞에 두고 인근에 있는 나무벤치에 앉아 핸드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룬 알베르게.jpg

오후 3시 반쯤 알베르게 문이 열리고 체크인을 시작했는데, 한 명씩 접수 받는 시간이 꽤 오래 결렸다. 그래도 오픈 예정시간인 4시 전에 침대를 배정받을 수 있었다. 곧바로 씻고 옷을 빨아 탈수기에 넣었는데, 끊임없이 돌아간다. 탈수기가 아니라 건조기인가? 어쩔 수 없이 전기코드를 뽑았는데도 한참 더 돌아가다가 드디어 멈췄다. 그렇게 빨래해서 널고 나니 오늘의 큰 일 하나를 마친 셈이다.


일기 쓰고 저녁을 먹으려고 노트북 등을 챙겨 식당으로 갔는데, 배가 너무 고파 복숭아를 2개나 먹었는데도 계속 배가 고파서 저녁부터 먹은 후에 일기를 쓰기로 했다.


그렇게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일기를 쓰고 있는데,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일행 중 한 사람이 와인을 한잔 줬다. 고마운 마음에 준비해온 우편엽서를 한장 줬더니 이번에는 직접 만든 음식을 한 접시 가져왔다. 먹어보니 맛도 아주 좋다. 어제도 그 순례자가 음식을 도맡아 했었는데, 아마도 셰프인가 보다. 기념으로 그 일행의 사진도 찍었다.

그림1.jpg

일기를 다 쓰고 나니 오늘 할 일은 모두 끝났다. 침대로 돌아가 동영상을 보다가 자야겠다. 지금 시각은 7시35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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