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둘째날, 이룬에서 산 세바스티안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8일(목)


저녁에 일찍 자니까(알베르게에서는 밤 10시면 불을 끈다) 밤중에 한번씩 잠을 깬다. 오늘도 밤 1시에 일어나 화장실에 다녀온 후에 다시 잠들었는데, 아침에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서 일어났더니 5시45분이다. 알람은 6시에 맞춰놨지만 그냥 일어났다.


오늘 묵은 알베르게는 정원이 60명이나 되는데 화장실은 8개 뿐이어서 가능한 한 일찍 이용하는 게 좋다. 그래서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갔더니 역시 사람이 없다.


알베르게에서 아침식사를 6시 반부터 준다고 했지만 6시에 식당으로 갔더니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그래 봐야 바게트를 포함한 빵 몇 가지와 잼, 우유와 커피, 그리고 끓여놓은 물이 다다. 우유는 상온과 따뜻한 것 2가지고, 끓인 물에 여러 가지 차를 넣어 마실 수도 있도록 해놨다. 그리고 식당 입구에는 아침식사를 위한 기부함이 놓여있었지만, 어제 지불한 숙박비에 포함된 것으로 생각해서 그냥 나왔다.


아침을 일찍 먹으니 자연스럽게 출발도 일찍 하게 된다. 다만 아침 7시인데도 아직은 주위가 어둡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


오늘은, 엊저녁에 음식을 나눠줬던 사람들과 함께 출발하게 되어 길 찾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어제 명함을 받았는데,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음식을 만들던 사람이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 있는 사람인 것 같아서였다.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퉁이를 막 돌았는데, 어둠 속에서 일단의 브라스밴드가 차들의 통행을 막고 길 가운데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진기한 구경거리여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연주가 끝날 때까지 구경했다.

브라스밴드.jpg

다시 걷다가 산티아고 예배당(Ermita de Santiagotxo en Hondarribia)을 지나는데 또 다른 무리의 브라스밴드가 축포를 쏘고 연주를 시작했다. 바로 앞에서 축포를 쏘니 귀가 먹먹할 정도였다. 오늘 이룬에서 축제가 있다고는 했는데 무슨 축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밴드 단원들이 모두 바스크 전통복장을 한 것으로 보아 바스크와 관련된 축제인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산티아고 예배당.jpg

산을 올라 과달루페 성소(Santuario de la Virgen de Guadalupe)에 이르러 바로 앞에 있는 전망대에서 해 뜨는 광경을 구경했는데,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아 이룬 시내가 잘 보이진 않았다.

과달루페 성소.jpg

과달루페 성소에서는 빈자리 없이 좌석을 전부 채우고 앉아 기도가 한창이었다. 밖에도 사람들이 있었는데, 구경만 하는 건지 자리가 없어서 못 들어간 건지는 잘 모르겠다. 마침 바스크 복장을 멋지게 차려 입은 사람이 있어서 사진을 한장 찍고 싶다고 했더니 흔쾌히 포즈를 취해줬다.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왼쪽으로 난 길로 오르막을 올랐다. 조금 더 가니 갈림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해발 374m까지 올라야 하는 대신 파사야(Pasaia, 스페인어[español o castellano ]로는 파사헤스[Pasajes])까지 11km고, 왼쪽 길은 157m만 오르면 되지만 12km라고 쓰여있는 이정표가 있었다. 그렇지만 함께 걷던 순례자들은 모두 왼쪽으로 가길래 나도 그 길로 갔다.


길은 오르막이 거의 없이 평평하고 주위에는 밤나무가 아주 많았고, 떨어진 알밤과 밤송이들이 많았지만 구경만 하거나 가끔 발로 차면서 갔다.


아침이라 컨디션이 좋아서 열심히 걷다 보니 뒤쫓아오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만 어차피 혼자 걷는 길이니 상관 없다. 그래도 숲길만 계속 걸으니 지루하긴 하다. 게다가 쉴 곳도 없으니 파사이 도니바네(Pasai Donibane, 스페인어: 파사헤스 산 후안[Pasajes San Juan])까지 줄곧 걷기만 해야 한다.


과달루페 성소에서 7시50분쯤 출발했는데 파사이 도니바네에는 10시20분 도착했다. 2시간 반을 쉬지 않고 걸어온 거다. 이곳에서는 나룻배를 타고 파사야 만(Bahía de Pasaia)을 건너야 한다. 그전에 쉬면서 맥주라고 한잔 할까 했는데, 아직은 문을 연 바르가 없으니 배를 타고 건너가서 바르를 찾아와야겠다.


나루터로 가니 조그만 배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요금은 1.1유로. 전에 0.7유로란 정보를 봤었는데, 그 사이 올랐나 보다. 그러고 보니 맥주 값도 조금 오른 듯하다. 배 타는 시간은 1~2분 정도다. 바로 앞이지만 큰 배들도 지나기 때문에 다리를 건설하지는 못하는 것 같다.


배에서 내려 파사이 산 페드로(Pasai San Pedro, 스페인어: 파사헤스 산 페드로[Pasajes San Pedro])에 도착했다. 여기서 카미노는 오른쪽으로 이어지지만 그곳에는 바르가 없을 것 같아 포구에 나와있는 마을주민에게 바르 위치를 물으니 왼쪽으로 가보라고 해서 조금 가니 바르가 있었다. 화장실도 이용하고 맥주와 핀초(pincho, 바스크어: pintxo)를 주문했다. 이곳에서 마시는 맥주는 아주 시원하고 맛이 좋다. 더러 쓴 맥주도 있지만.


다시 배낭을 메고 왔던 길로 되돌아가 카미노를 계속 간다. 전에 조선소였던 곳이 박물관(Albaola Itsas Kultur Faktoria)으로 바뀌었다는 정보를 본 적이 있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입구에서 설명을 듣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조선소 박물관.jpg
조선소 입구.jpg

조금 가다 해안길이 끝나는 지점에 가파른 계단이 있었다. 카미노에서는 계단이 흔치 않은데, 가파르기까지 해서 오르는데 아주 숨이 차다. 이 오르막이 1.1km나 된다고 하니 거의 진이 빠질 지경이다. 그래도 다 오르고 나면 평탄한 길이어서 그곳부터는 걷기에 부담스럽진 않다.


산 세바스티안(San Sebastián, 바스크어: 도노스티아[Donostia]) 초입에서 길을 몰라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경찰에게 물어보니 오른쪽으로 가라고 했다. 그런데 그곳도 무지막지한 오르막이다. 조금 가다가 재미있는 안내판을 봤다. 인터넷에서 봤던 거다. 그곳에는 이런 문가가 있다. “Love finds the Way”

Lovw finds the Way.jpg

산속에 한 무리의 가족들이 모여있었다. 놀러 온 건가, 무슨 행사가 있나? 그중에 한 꼬마가 웃통을 벗고 웃고 있길래 사진을 찍겠다고 하니 포즈를 잡아줬다.


오후 1시가 되어 산 세바스티안의 수리올라 해안(Playa de La Zurriola)에 도착해 처음 보이는 바르에 들어가 샌드위치와 맥주를 주문했다. 역시 맥주는 시원하고 좋다. 그런데 샌드위치를 다 먹기에는 맥주가 부족하다. 이번에는 콜라를 시켰다. 얼음까지 달라고 해서 컵에 따라 마시니 이 또한 아주 시원하다. 어쩌면 샌드위치에는 콜라가 더 맞는 건지도 모르겠다.

수리올라 해변.jpg

점심을 다 먹었으니 이제 알베르게(Albergue Juvenil Ondarreta)를 찾아가야 하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너무 멀다. 하긴 처음엔 이곳이 수리올라 해변이 아니라 콘차 해변(Playa de la Concha)이라고 착각했으니 더 멀게 느껴졌다. 산 세바스티안에는 해변이 셋 있다. 동쪽으로부터 수비올라, 콘차, 온다레타(Playa de Ondarreta)가 그곳이다. 그 중에서 콘차 해변이 가장 크고 사람들도 많이 모인다. ‘콘차’란 조개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해변이 조개를 닮아서 그렇게 이름 붙였을 거다.

콘차 해변.jpg

수비올라 해변부터 구경하면서 갔다.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가 아주 예쁘다. 그리고 해수욕하거나 수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는데, 다소 민망한 장면도 봤다. 젊은 여자들이 수영하고 나와 해변에서 속옷까지 벗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수비올라 해변을 지나 쿠르살 다리(Puente del Kursaal)를 건너 콘차 해변을 걷고 있는데, 햇볕이 너무 뜨겁다. 길 건너 전광판에는 23도라고 나오는데 이렇게 뜨겁다고. 다행히 가끔 바람이 불어오고 그때마다 시원하다.

쿠르살 다리.jpg

이제 본격적으로 알베르게를 찾아가야 한다. 지도를 보면 온다레타 해변에서 오른쪽으로 난 카미노를 따라 가다가 카미노에서 조금 벗어나 왼쪽으로 가도록 돼있지만, 카미노 표시를 찾지 못하겠다. 주위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르겠다고 한다. 아마래도 이곳 주민이 아니라 해수욕하러 온 사람들인가 보다. 나중에 주민인 듯한 사람에게 물어봤더니 대략적인 방향만 알려주고 정확한 위치는 모르겠다고 했다. 그래도 방향을 알려주니 그 길로 갔다.


그런데 나중에야 주민들조차 몰랐던 이유를 알았다. 구글 지도에는 시레나 유스호스텔(La Sirena Youth Hostel)이라고 나오는데 나는 온다레타 알베르게를 찾고 있었으니 모를 수밖에. 그렇게 주민이 알려준 방향을 따라가다 청소부에게 또 다시 물어보니 구글지도를 찾아 알려주길래 카미노 표시를 따라 계속 갔더니, 청소부가 따라와서 그 길이 아니라 왼쪽으로 가라고 했다.


어딘지 모르고 계속 올라가다가 ‘시레나’란 버스정류장이 있어서 바로 앞에 있는 건물에 들어가 길을 물어보니 그곳이 바로 내가 찾던 알베르게였다. 여권과 순례자여권을 제시하고 숙박비를 지불하는데 22.25유로나 된다고 했다. 왜 이렇게 비싸지? 어제는 10유로로 아침식사까지 했는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했더니 호스텔이라서 그렇단다. 알베르게와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


게다가 이곳에서는 가까운 곳에 슈퍼마켓도 없었다. 직원이 지도를 보며 근처의 슈퍼마켓 위치를 알려줬지만 가보니 그곳엔 없었고, 주민들에게 물어 한참 떨어진 곳에 가서 저녁과 내일 아침에 먹을 장을 봐왔다.


그런데 슈퍼마켓에서 먹을거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꽤 괜찮은 걸 팔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주민들을 위한 음식재료들을 팔기 때문에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슈퍼마켓을 둘러보다가 치킨 샌드위치와 토르티야(tortilla de patatas, 감자와 계란을 섞어 만든 스페인식 오믈렛)를 하나씩 샀는데, 토르티야는 냉동식품이었다. 토르티야를 조리해 먹는 방법도 적혀있었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아 먹는 걸 포기해서 5유로도 함께 날아갔다. 납작 복숭아도 오늘도 맛있었지만 오렌지는 껍질이 너무 두꺼워 까기도 어려웠는데 낱개로 잘 쪼개지지도 않았다. 그래도 맛은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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