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12일 (월)
오늘은 알베르게에서 6시10분부터 아침식사를 제공한다고 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5시45분쯤 일어나 식당으로 갔더니 6시에 아침식사가 준비돼있었다. 하긴 토스트와 우유, 커피와 잼이 전부이긴 하다. 그래도 거의 공짜로 먹는 거니 불평할 건 없다(이 알베르게는 숙박비와 아침식사가 모두 기부제인데, 10유로는 냈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짐을 챙겨 곧바로 출발했다. 오늘도 밖은 어둡지만 가로등 불빛에 의지해서 걸었다. 그러다가 노란 화살표를 보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한참을 가도 아무런 표시가 없어서 지나가는 마을주민에게 물어보니 잘못 왔다고 되돌아가라고 했다. 아마도 500m는 간 것 같다. 그러니까 아침부터 1km 정도 헛걸음을 한 셈이다.
제자리로 돌아와 천천히 살펴보니 그제서야 노란 화살표가 보였다. 그런데 화살표를 따라가다가 또 놓쳤다. 오늘은 이런 일이 여러 번 있었다. 더구나 다른 순례자들을 따라갔는데도 단체로 길을 잘못 든 적도 있었다.
혼자서 잠시 어두운 산길을 걸었는데, 길은 좁고 바닥도 평탄하지 않아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걸었다. 만약 발이라도 잘못 디뎠다가는 크게 다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갈림길이 나오거나 아주 위험해 보이는 곳을 빼고는 손전등을 사용하지 않았다. 휴대폰 배터리를 최대한 절약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볼리바르(Cenarruza-Puebla de Bolívar)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얼추 밝은 8시쯤이었다. 이곳은 식민지 개척자인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 de la Rementería)가 태어난 곳이라는데, 그의 후손이자 남미독립의 영웅인 같은 이름의 시몬 볼리바르(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났다)가 유명해지면서 이곳에 기념비와 동상, 박물관 등이 세워졌다고 한다. 그러니까 시몬 볼리바르는 남미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라는데, 어찌 보면 반역자 같은 사람을 기념한다는 게 놀랍다. 남미의 볼리비아는 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시오르차(Ziortza)의 수도원(Monasterio de Santa María de Cenarruza)에 도착했는데, 앞서가던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엄청 빨라 걸어갔나? 그렇다고 안 보일 정도로? 알베르게(Albergue Aniketxe)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을 보지 못했다. 알베르게에는 나보다 한참 후에 도착한 것 같다. 아마도 수도원을 구경하느라고 늦은 것 같다. 수도원 옆에 알베르게 표시가 있었다(나중에 찾아보니 이곳에도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l Monasterio de Zenarruza]가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제일 열심히 걷는 것 같다. 그렇게 걷는 데만 집중하다 보니 주위의 구경거리를 대부분 그냥 지나치게 된다.
산속에 설치된 나무데크 계단을 한참 동안 내려가 바르가 있는 무니티바르(Munitibar)에 도착했다. 카미노에서는 계단이 흔치 않은데, 이곳의 계단은 높고 넓어서 내려가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무니티바르의 바르에 들어가 맥주와 음식을 주문해 먹고 있는데 바람이 세게 불면서 옆에 설치해놓은 천막이 날아갔다. 일시적이긴 하지만 굉장한 바람이었다. 바르에서 쉬었다가 출발하는데 몸 상태가 계속 좋지 않았다. 중간에 바르가 없이 계속 걸을 땐 쉬어가면 좀 나아질 것같이 생각했었는데, 휴식 후에도 힘들긴 마찬가지다.
무니티바르의 산 비센테 교회(Iglesia San Vicente Mártir en Munitibar) 앞에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여러 순례자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버스를 타고 가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의 행선지가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심하게 그들을 지나쳐 내 갈 길을 걸었다.
슬라이드 64
무니티바르에서 2시간 정도 걸어서 오늘 묵을 알베르게가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인터넷에는 ‘올라베(Olabe)’ 마을이라고 나오는데, 이정표에는 그런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올라베라고 추정되는 마을 초입에 있는 바르에 들어가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보니 조금만 더 올라가면 된다고 했다.
바르에서 알려준 곳으로 가보니 할머니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저 평범함 살림집처럼 보였다. 그래서 할머니한테 다시 알베르게 위치를 물었더니 문을 닫았다고 했다. 이런, 이제 어쩌지! 그런데 잠시 후 젊은이가 왔길래 얘기해보니 오후 3시에 오픈한다고 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문을 닫았다는 거였는데, 의사소통의 오류로 큰 낭패를 볼 뻔했다. 어제 예약하기 위해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더니, 받았다며 확인까지 해줬다. 알베르게 주인이 투잡(농사도 짓는 것 같았다)하는 사람이어서 알베르게에만 신경 쓸 수는 없었나 보다.
배낭을 알베르게 입구에 내려놓고 좀 전에 알베르게 위치를 물어봤던 바르로 다시 내려갔다. 요즘 맥주만 자꾸 마시니까 덥기도 하고 조금 무기력해지는 것 같아 오늘은 콜라를 마셨다. 앞으로도 가능하면 콜라나 주스를 마셔야 할 것 같다. 맥주는 마실 땐 시원하고 좋은데, 가끔 취기가 오르면 몸이 조금 불편하기 때문이다.
바르에서 와이파이를 연결해 손자에게 음성메시지도 보내고 가족들과 카톡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의자가 너무 높아서 앉은 자리가 영 불편했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오는데, 주인집 마당에 안락의자가 보이길래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알베르게를 오픈할 때까지 잠도 좀 자고 동영상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2시 반쯤 되어 주인이 알베르게를 오픈할 거라고 알려줘서, 오늘도 첫번째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이 알베르게는 아주 외진 곳에 있어서 밖에서는 아무 것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저녁식사도 알베르게에서 먹어야 했다. 아침식사도 제공한다고 하는데 너무 늦어서(7시30분) 주문하지 않았다. 아침을 먹기 위해 1시간 반이나 기다릴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내일 일찍 출발해서 첫 마을인 게르니카에 가서(7km쯤 걸으면 된다) 아침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바들이 많지 않아 내일 아침도 굶을 수 있어서 걱정이긴 하다.
저녁식사는 알베르게에서 여럿이 함께 먹었다. 순례자들이 20명쯤 됐는데, 다른 곳에서는 식사할 곳이 마땅히 없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알베르게 옆에 바르가 있었지만 다른 바르들과 달리 맥주와 음료수만 팔았기 때문이다.
메뉴는 에피타이저로 콩수프를 주고 메인 요리는 쌀밥과 햄버그 스테이크, 그리고 디저트로는 멜론을 줬다. 모든 게 양은 충분했지만 봄 짠 게 흠이었다. 여기서는 하몽을 비롯한 대부분의 음식들이 대체로 짠 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