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일곱째날, 올라베에서 라라베추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13일 (화)


밤에 비가 내려서 걱정했는데, 아침이 되니 날씨는 화창했다. 대신에 바람이 많이 불었다. 어제, 알베르게가 휴업 중인 게르니카까지 가지 않고 7km 전인 올라베의 알베르게에서 묵었기 때문에 오늘은 게르니카를 지나 라라베추(Larrabetzu)까지 가야 한다. 당초대로라면 다음 마을인 레사마(Lezama)까지 가는 거였지만, 어차피 내일의 목적지인 빌바오(Bilbao)까지의 거리가 얼마 안 되기 때문에 큰 상관은 없었다. 다만, 올라베의 알베르게에서 7시30분부터 아침식사를 할 수 있다고 했기 때문에 먹지 않고 곧바로 출발해서, 게르니카에서 아침식사를 할 수 있길 바랬다.


오늘도 어두운 시간에 출발하다 보니 카미노 찾기가 쉽지 않다. 생각했던 곳에 노란색 화살표가 없으니 답답하다. 후레쉬를 이곳저곳 비춰봐도 화살표가 보이지 않아 오늘도 잠시 길을 헤맸다.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더 이상 길이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어제 다운로드 받은 앱(Mapy.cz, ‘조’가 알려줬었다)에서 지도를 찾아보고 갔던 길을 되돌아와 카미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나보다 늦게 출발한 조를 만나서 잠시 함께 걷다가 조가 사진을 찍으면서 가겠다고도 하고, 오르막길은 천천히 걷겠다고 해서 내가 먼저 가기로 했다.


게르니카에 이르기 전에 몇몇 마을들을 지났지만 어둡기도 하고 마을규모도 작아서 마을인지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고 지나쳤다.


1시간40분쯤 걸어서 멀리 게르니카가 보이는 지점에 도착했는데, 길은 외곽을 빙 돌아서 나있었다. 이러다가 게르니카를 그냥 지나치나 싶었는데, 30분 이상 가다가 게르니카 시내에 있는 빵집에 도착했다. 아침식사로 크림빵 하나와 콜라를 사서 마셨다. 그렇게라도 아침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게르니카 외곽으로 걷고 있는데 등교하는 아이들이 보인다. 대부분 손수레에 가방을 싣고 가든가 보호자(엄마나 할아버지)가 대신 가방을 들어주면서 함께 등교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은 대부분의 나라에서 비슷할 것 같다.


게르니카에서는 벽에 타일로 붙여놓은 <게르니카> 작품을 보고 싶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 만약 게르니카에서 묵었다면 천천히 찾아봤으면 될 테지만, 물어가면서까지 찾을 정도는 아니었다. 대신에 시청(Ayuntamiento de Gernika Lumo)과, 마을이 거의 끝날 무렵에 있는 <카사 데 훈타스(Casa de Juntas)>(바스크 자치지방 비스카야 주[Provincia de Vizcaya] 의회건물로 쓰인다)와 그 옆에 있는 <게르니카의 나무(Antiguo árbol de Guernica)>를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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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르니카 나무.jpg

카미노를 걷는 동안 북쪽길을 걷고 있는 순례자들을 자주 만난다. 대부분 같은 숙소에서 묵는 순례자들이지만, 출발시간이 조금씩 다르고 걷는 속도도 달라서 만났다 헤어지길 반복하게 된다. 그럴 때면 가벼운 눈인사나 ‘올라(¡Hola!)’ 하면서 지나간다. 오늘도 그런 경우가 여러 번 있었다.


오늘의 목적지인 라라베추 8km쯤 전에 헤레키스(Gerekiz)란 마을이 있다는 이정표가 있어서 들르려고 했는데, 어딘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다.


산길을 걷다 보면 쇠철망으로 된 문을 열고 지나가도록 한 곳이 여럿 있는데, 정확한 용도는 잘 모르겠다. 인터넷에서는 가축들을 관리하기 위한 곳이라고 하기도 했는데, 주위에 가축을 키우는 곳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철망 출입문.jpg

지금 걷고 있는 카미노는 카탈루냐 지방과 함께 분리독립 의지가 매우 강했던 바스크 지방이라서 그런지 정치적인 구호를 써놓은 곳들이 많았다. 주로, ‘바스크에 자유를 달라’는 것과 정치범들을 바스크로 돌려보내라는 내용들이다. 몇 년전까지(2018년 5월 해체됨) 활동했던 바스크지방 테러단체도 ‘바스크의 조국과 자유(ETA, Euskadi Ta Askatasuna= País Vasco y Libertad)’라고 했었다. 조금 더 걷다 보니 ‘여기는 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니다’란 문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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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도 프랑스도 아니다.jpg

총 7시간 걸어서 알베르게(Albergue de peregrinos de Larrabetzu)가 있는 라라베추에 도착했다. 그렇지만 알베르게는 오후 3시에 오픈하기 때문에 아직 2시간 정도 기다려야 했다. 우선 알베르게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필요한 짐만 챙겨 점심을 먹기 위해 바로 밖으로 나갔다. 이곳에서는 만만한 게 토르티야와 맥주다. 그런데, 주문한 토르티야를 다 먹기엔 맥주가 부족해서 콜라를 추가로 시켰다. 그러면서 슈퍼마켓 있는 곳을 물어보니 조금 있으면(오후2시) 문을 닫을 거라고 하기에 주문한 음식을 탁자에 올려놓은 채로 가게로 달려갔다. 하지만 사고 싶었던 납작 복숭아가 없어서 일반 복숭아 2개와 주스만 사 갖고 다시 바르로 가서 점심식사를 마저 했다.


오후 2시 반쯤 알베르게(건물 3층에 있었다)로 올라갔더니 직원이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다시 1층으로 내려가 조금 기다리니까 직원이 내려와서 접수를 시작하겠다고 해서 짐을 챙겨 직원을 따라 계단으로 3층까지 올라갔다. 옆에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접수 받는 직원은 스페인어만 할 수 있었는데, 엄청 수다스러웠다. 그래도 먼저 접수한 순례자가 영어로 통역하는 수고를 해줘서 어렵지 않게 접수할 수 있었다.


이 알베르게는 침대가 11개 뿐이고, 전부 단층이라서 이용하기 편리했다. 요금은 기부제였다. 오늘은 며칠 묵혀놓은 발의 물집을 치료해야 한다. 아침에 진통제를 한 알 먹고 출발했더니 걷는 동안에는 아픈지 몰랐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파오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아 확인해보니 물집 잡힌 곳이 터져있어서 조에게 소독해줄 수 있냐고 했더니 갖고 다니던 비상약품을 가져왔다. 그런데 그걸 보고 있던 알베르게 직원이 자기가 치료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면서 그 직원도 약통을 들고 왔다.


나는 그동안 물집에 바늘로 구멍만 내고 물을 짜냈었는데, 그 직원은 바늘에 실을 꿰어 물집을 통과시킨 뒤 실을 길게 잘라 그대로 뒀다. 그리고는 락스 물을 타와서 발을 담그라고 했다. 20분쯤 후에 수건으로 발을 닦아주고 소독까지 한 후에 밴드와 거즈로 싸매주기까지 했다.


치료해준 게 너무 고마워서 퇴근하는 직원을 붙잡고, 갖고 다니던 전통한복 그림이 있는 엽서를 원하는 대로 가져가라고 내밀었더니 손녀가 좋아할 거라며 손녀사진까지 보여줬다. 그래서 손자 것까지 합해 3장을 가져갔지만 고마운 사람들에게 주려고 갖고 다니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아깝지 않았다.


물집치료를 하고 나서 조와 함께 저녁 먹을 식당을 검색해서 찾아갔지만 문을 닫았거나 음식을 팔지 않았다. 그나마 한곳에서 ‘menú del día’란 간판을 내놨길래 들어갔더니 오늘은 준비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감자튀김과 닭고기 요리를 권했다.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것이라도 먹지 않으면 저녁을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오랜만에 고기를 먹으니 기분이 좋다. 가격은 10유로. menú del día와 비슷한 가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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