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노 여덟째날, 라라베추에서 빌바오까지

by 이흥재

2022년 9월14일 (수)


엊저녁에 치료한 물집은 아침이 돼도 별 차도가 없었다. 아무래도 상처를 소독한 후에 말려야 했는데, 바로 꽁꽁 싸맨 후 양말까지 신고 잤더니 빨리 아물지 않은 것 같다.


오늘 걷는 거리는 다른 날에 비해 비교적 짧아 조금 늦게 출발해도 되지만, 평소대로 6시에 일어났는데 잠시 후 숙소직원이 음악을 틀었다. 군대에서 기상나팔과 비슷한 거였다. 어쩔 수 없이 모든 순례자가 강제로 기상했다. 덕분에 침실과 한 공간에 있는 식탁에서 간단하게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그래 봐야 요구르트와 복숭아 하나, 그리고 오렌지주스가 전부였지만.


양치한 후에 곧바로 짐을 싸서 알베르게를 나왔다. 아직은 날이 밝지 않은 이른 시간이지만 줄곧 포장도로를 걸으니 가로등이 있어서 걷기에 편했다.


첫 마을인 레사마에 1시간쯤 걸어서 8시에 도착했는데, 다행히 문을 연 바르가 있었다. 대도시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바르는 흔치 않다. 얼른 들어가서 음식을 주문했다. 카미노를 걷는 동안 먹는 양이 좀 줄어든 것 같다. 아니, 많이 먹을 만한 게 별로 없으니 반강제 다이어트 중이다. 밤에도 일찍 자기 때문에 물론 야식도 먹지 않는다.


두번째 마을인 사무디오(Zamudio)에는 빌바오 공항(Aeropuerto de Bilbao)이 있다. 그래서인지 아침부터 이륙하는 비행기소리가 요란했다. 맑은 하늘에 흰구름과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지만 숨을 몰아 쉬며 언덕을 올라야 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구경할 수는 없었다.


오늘도 빌바오 시내가 멀리 보이는 곳부터 한참 돌아서 시내로 내려갔다. 그런데 알베르게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당초에는 시내에 있는 알베르게에서 묵으려고 했었는데, 어제 인터넷으로 예약하려고 했더니 마감됐다고 했다. 물론 현장에 가면 침대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헛걸음 할지도 모르니 안전하게 공립 알베르게(Albergue Santa Cruz)를 찾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알베르게가 카미노에서 한참 벗어난 곳에 있어서 주민들에게 물어가면서 찾아야 했다.


그렇게 찾아가니 교회(Parroquia de la Santa Cruz en Bilbao)가 보였다. 교회 뒤쪽으로 돌아가니 입구에 알베르게라고 쓰여있긴 했지만 문 앞에 있는 아주머니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다. 그래도 바디랭귀지로 어찌어찌 의사소통을 해서 배낭을 숙소에 맡겨두고 구겐하임 미술관(Museo Guggenheim Bilbao)을 보러 다녀오기로 했다. 그 아주머니는 뭘 잃어버려도 책임질 수 없다고 했지만, 설마 이곳에서 잃어버리기야 하겠나. 교회 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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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바오 미술관.jpg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신발도 갈아 신은 후에 빌바오 시내로 향했다. 오늘도 역시 진통제 효과가 떨어지면서 아파오기 시작했지만, 참아야지 어쩌겠나! 조금 걸어가니 급경사 내리막이 나왔다. 아픈 발로 내려가는 것도 어렵지만 나중에 여길 다시 올라와야 한다고 생각하니 걱정스러웠지만,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빌바오 시청(Ayuntamiento de Bilbao)을 지나 조금 가니 수비수리 다리(Puente Zubizuri en Bilbao= puente blanco)가 보였다. 또한 다리 건너 쌍둥이 빌딩(Isozaki Atea, Atea는 바스크어로 문[gate]이란 뜻이다)도 함께 보였다. 이 빌딩은 일본사람(Arata Isozaki= 磯崎 新)이 설계한 것이라고 한다. 수비수리 다리는 도보전용다리다. 이 다리 또한 아주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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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비수리 다리.jpg

네르비온 강(Río Nervión)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조금 가니 살베 다리(Puente de La Salve)의 빨간 아치가 보이고 물고기 비늘 같은 빌바오 미술관도 보였다. 이곳에서 처음 만나는 작품은 마망(스페인어: Mamá, 프랑스어: Maman)이란 이름의 거미다. 같은 작가(Louise Bourgeois)가 만든 작품이 우리나라의 리움 미술관에도 있다고 하는데 가보진 못했다. 다음으로 쇠구슬 나무(El gran árbol y el ojo[큰 나무와 눈], 이 작품도 리움미술관에 있다)도 봤다. 미술관을 너무 가까이서 보니 그 웅장함을 잘 모르겠다.

살베 다리.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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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돌아 계단으로 올라가면 이 박물관에서 어쩌면 가장 유명한 퍼피(Puppy)가 있다. 그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도 쉽지 않다. 이 작품은 원래 임시로 만든 전시물이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철거하는 것을 원치 않아서 이제는 이제는 영구적으로 보존하게 됐다고 한다. 거대한 강아지에 계절마다 생화를 장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마다 꽃 색깔이 다른데, 요즘은 색상이 화려하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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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피를 구경한 후에 살베 다리를 건넜다. 차도와 인도가 함께 있는 다리다. 다리 끝에는 교각에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설치돼있어서 강가로 내려갈 수 있다. 나는 힘들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렇게 강 건너에서 미술관을 보면 인터넷에서 보던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강변을 따라 걸으며 미술관을 감상하고 인도교(Pasarela Pedro Arrupe)를 통해 다시 미술관 쪽으로 갔다. 이번에도 계단을 올라 퍼피 사진을 몇 장 더 찍은 후에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인도교.jpg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순례자들이 꽤 많이 와있었다. 좀 전에 만났던 아주머니는 알베르게를 오후 2시나 2시 반에 오픈할 거라고 했었는데, 3시가 거의 다 돼서야 문을 열어줬다. 나중에 보니 그 아주머니는 알베르게와는 무관한 사람이었다. 나는 일찍 와서 짐을 알베르게 안에 넣어놨기 때문에 오늘도 첫번째로 침대를 배정받았다.


샤워하고 빨래까지 마친 후에 일기를 쓰려다가 저녁에 먹을거리와 물집에 쓸 소독약이 필요할 것 같아서 약국과 슈퍼부터 다녀왔다.


저녁식사는 빵과 음료수로 해결했다. 처음으로 애플망고도 하나 샀는데, 맛은 좋았지만 까먹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어서 다신 사먹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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